황진이 - 與蘇陽谷여소양곡 *..잡........학..*



月下梧桐盡월하오동진 霜中野菊黃상중야국황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져도
서리 속에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네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 人醉酒三觴인취주삼상
누각은 높아 하늘 아래 닿았지만
사람일랑 석 잔 술에 벌써 취했네

流水和琴冷유수화금냉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흘러가는 물이야 거문고 곡조따라 차가워져도
매화꽃은 피리 소리에 스며 향기로워라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날 밝은 아침이면 헤어질 사이지만
정일랑은 푸른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1486-1562)이 황진이의 미색을 듣고 친구들에게 장담했다.

"내가 그 계집과 한달을 살고 곧 헤어질 것이며 다시는 마음에 두지 않을 것이다. 이 기한을 어기면 나를 사람 취급하지 마라."

황진이가 명성을 날린 것이 가정 초년, 즉 1522~3년경이니 대충 이 이후 소세양이 황진이를 만났을 것이다. 또한 이 시에는 <奉別蘇判書世讓봉별소판서세양>이라는 제목이 붙기도 하는데, 소세양이 처음 판사가 된 것이 1531년이었다. 따라서 소세양과 황진이가 만난 것은 1531년 이후에서 그가 우찬성이 되는 1537년 사이일 것이다. 황진이가 이름을 날린 것이 1522~3년경이라 하면 이때 서경덕이 33~4세로 개성 화담花潭에 서재를 세우고 지내던 무렵이다. 이 무렵 황진이가 지족선사와 서경덕을 찾아가면서 크게 이름을 얻었다고 볼 수 있겠다.

황진이가 이름을 날리던 때가 20대 초반이었다 가정한다면, 소세양과 만났을 때는 3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소세양은 이때 40대 후반이었다. 호언장담을 하고 한달 약정의 계약 동거가 끝난 날, 황진이와 함께 마지막 술자리를 남루南樓에서 가졌다. 이때 황진이는 슬픈 기색 하나 없이 시 한 수를 올리고 싶다고 말했고, 소세양이 허락하자 한 수 시를 써서 올렸는데, 그 시가 바로 위에 소개한 것이다. (한글 번역은 내 맘대로 한 엄청난 의역이다.)

소세양은 저 시를 읽고 길게 한숨을 쉬고 이렇게 말했다 한다.

"난 사람이 아니구나."

그는 결국 황진이를 떠나지 못했다.

덧글

  • organizer 2008/11/12 01:36 #

    "난 사람이 아니구나." ㅋㅋ

    明朝는 내일(다음날) 아침이겠지요../?

    아직은 새벽이 될때까지 술을 마시고 있는 상태는 아닌가 봅니다. 하긴 새벽까지 마시고 있었으면 "개"가 되었거나, 시 따위를 읊을 정신이 없었을 지도. 역시나 뭔 일이든 비교적 멀쩡한 정신에 해야~ ;;
  • 초록불 2008/11/12 08:49 #

    내일 아침, 맞습니다.
  • bzImage 2008/11/12 12:41 #

    공돌이적 마인드로 생각하자면 호롱불에 새벽을 밝히기엔 어렵지 않았을까요... :)
  • 서산돼지 2008/11/12 09:13 #

    저런 시츄에이션 한번 경험해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네요. 질투심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네요
  • 초록불 2008/11/12 10:21 #

    소세양과 서산돼지님 나이가 얼추 비슷했겠군요...^^;; 소세양도 물론 유부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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