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타타르 *..역........사..*



타타르 관련 떡밥도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있군요.

역시 대표적인 것은 <한국사 미스테리 60>에 있던

또한 조선의 북쪽에 타타르가 있었는데 그것도 조선땅이다 라고 씌여있다. 타타르는 내몽고에서 활동하는 종족이다.

라는 구절이겠지요. 실제로 타타르는 여말선초에 우리나라 북쪽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등장한다고 조선을 내몽고 옆에 옮겨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이건 사실 상식에 속하는 문제인데, 언제나 그렇듯이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 떡밥을 덥석덥석 물어버리고 있습니다. 더구나 오늘날 러시아 연방의 하나인 타타르 공화국은 무려 이런 곳에 있습니다. 손바닥이 있는 곳이 타타르 공화국입니다.

대체 왜 이런 곳에 타타르 공화국이 있는 걸까요?

이들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8세기 전반에 돌궐제2제국(682-745)에서 세운 비문입니다. 빌게카간Kutlug Bilge Kagan(재위 716-734)의 비문에 타타르가 나타납니다. 중국은 당나라 시절이고 당에서는 이들을 달단(達旦 혹은 韃靼)이라고 표기했습니다.

사진은 빌게카간의 동생 퀼 테킨의 비문입니다.

돌궐제2제국 멸망 후 위구르 제국의 성립, 그리고 위구르 제국마저 멸망한 840년 이후 몽골에는 통일된 정치결사체가 사라집니다. 10세기 초에 거란이 등장하면서 타타르 부족은 거란의 지배 아래 들어갑니다. 거란 제국의 멸망 후 거란을 대치한 여진 족의 금나라는 몽골 지방까지 확실히 다스리지는 못했습니다. 이때문에 몽골 지대는 당시 유목민 간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곳으로 변하죠. 타타르 부족은 칸을 자처하면서 몽골리아 동쪽에서는 유력한 종족이 됩니다. 이들은 금나라도 수시로 침략하는 등 무서운 것이 없이 설쳐댔죠. 그러다 강적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칭기즈칸입니다.

그림은 스캔 받기 귀찮아서 접사로 했더니 좀 뿌옇게 나왔네요. 빨간 테두리 안이 타타르입니다.

칭기즈칸은 몽골을 통일했는데, 당연히 타타르도 정복했습니다. 타타르 족은 후일 오고타이 칸 시절, 바투의 유럽원정대로 끌려가는데 바로 이 원정대의 주력이었습니다. 이때문에 유럽에서는 몽골 족과 타타르 족을 구분하지 못했고, 모두 묶어서 "타타르"라고 부르게 됩니다. (또는 지옥을 나타내는 타르타르라는 말로도 부릅니다.)

지금의 타타르 공화국은 이 당시 원정에 따라갔던 타타르 인들을 주축으로 해서 만들어진 나라(이 과정이 꽤 복잡한데 그걸 논하는 건 아니니까 과감히 생략)입니다. 이들의 활동범위가 넓었던 다른 증거를 하나 볼까요? 사할린 섬과 러시아 사이의 해협 이름이 바로 타타르 해협입니다. 바로 이 지점입니다.

동시베리아에 있는 러시아 연방의 하나인 야쿠트 공화국에도 타타르인이 살고 있고, 몽골하면 떠오르는 바이칼 호 동쪽의 부리야트 공화국에도 타타르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아무튼 몽골제국이 붕괴되고 있던 시점으로 돌아가 보죠.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태조 1권 총서 69번째기사
태조가 단주에 침입한 호발도를 격퇴하고 변방을 평안히 할 계책을 올리다
“북계(北界)는 여진(女眞) 과 달단(韃靼) 과 요동(遼東) · 심양(瀋陽) 의 경계와 서로 연해 있으므로 실로 국가의 요해지(要害地)가 되니, 비록 아무 일이 없을 시기일지라도 반드시 마땅히 군량을 저축하고 군사를 길러 뜻밖의 변고에 대비해야 될 것입니다. (하략)


일단 저 기사에서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고려(조선 때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성계가 호발도(여진 추장)를 몰아낸 것은 우왕 9년=1383년의 일입니다)의 북계, 즉 북쪽 경계는 요동, 심양을 포함하지 않고 있으며 그곳에는 여진족과 타타르족이 모두 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제법 세력이 강성해서 명나라 초기에 명을 여러차례 괴롭힙니다.
1409년, 명은 기국공沂國公 구승丘勝에게 타타르 정벌을 명하는데 10만 대군이 몰살 당하는 치욕을 겪게 됩니다. 명은 이를 갈고 영락제가 직접 정벌에 나서겠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영락제의 막북원정입니다. 이때 조선에게도 병력을 동원하라는 명이 떨어지지요. 조선에서는 명이 싸우거나 말거나 그 불똥이 조선으로 튀는 것이 걱정입니다. 당시 요동도 전쟁 상태라 조선은 초조 불안해 하고 있었습니다.

태종 19권, 10년(1410 경인 / 명 영락(永樂) 8년) 1월 14일(신사) 2번째기사
명군과 달단군과의 전황을 보고받고 성곽 등을 수축하여 무비를 정비토록 하다

통사(通事) 이자영(李子瑛) 이 요동(遼東)에서 돌아왔는데, 이자영이 말하기를,
“달단[達達] 의 군사가 개원(開元) · 금산(金山) 등처에 많이 돌아다니는데, 관군(官軍)이 만나기만 하면 문득 패(敗)합니다. 달단의 순초군(巡哨軍)이 정월 초2일에 요동(遼東) 북문(北門)을 공격하여 이기지 못하고, 성밖의 거민(居民)을 노략해 갔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과연 자영 의 말과 같다면 마땅히 무비(武備)를 정비(整備)해야 하겠다.”
하였다.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양계(兩界)의 수령(守令)을 무재(武才)가 있는 사람으로 차견(差遣)하시고, 충청도(忠淸道) 세 곳의 성자(城子)는 사람을 보내어 땅을 살펴본 뒤에 쌓으면 일이 완만(緩晩)할 것 같사오니, 각각 보고한 것에 의하여 즉시 쌓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모두 옳게 여기고, 성산군(星山君) 이직(李稷) 을 보내어 광주(廣州) 의 일장성(日長城) 을 수축(修築)할 가부(可否)를 살펴보게 하였다.


태종은 이 전쟁이 명이 부러 걸었다는 것을 알고 황제가 친정에 나섰다가 패하기라도 하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 비웃습니다. 그러나 1410년 2월 50만 대군을 이끌고 떠났던 영락제는 타타르를 격파하고 개선합니다. 영락제는 5월초 알난하斡難河(=오논강;아까 타타르 있던 지도에서 찾아보면 있습니다. 타타르 위쪽 11시 방향을 보세요)에 이르러 타타르 수령 본아실리本雅失里를 격파하고 타타르의 태사 아로태阿魯台도 무찔렀습니다.

우리나라에 달단인들이 들어와 살기도 했습니다. 포로로 잡혀와 살기도 하고, 백정 일을 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태종 11권, 6년(1406 병술 / 명 영락(永樂) 4년) 4월 24일(갑신) 1번째기사
달단이나 화척이 소와 말을 도살하는 것을 거듭 금하다

달단(韃靼) 화척(禾尺)에게 소와 말을 잡는 것을 금하도록 거듭 밝혔다.


위와 같은 기사들이 있기 때문이죠. 화척이란 백정의 다른 말입니다. 타타르인들은 그후에도 요동 지방에 일부 거주했는데, 그들을 얕잡아 부를 때는 달로, 달자라고도 불렀습니다. 이들은 그 후에도 종종 조선과 명의 북방을 괴롭혔고, 청나라 때도 충돌이 있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진족과 구분하지 않고 한 통속으로 묶어서 부른 적도 있는 모양입니다.

전근대 시절, 유목종족과의 조우는 이처럼 광범위한 지역에서 일어났다는 점을 무시하면 멀쩡한 조선을 떼어다가 엄한 동네에 가져다 놓는 일이 생깁니다. 그러지들 마세요.

덧글

  • 회색인간 2008/11/17 19:26 #

    푸하하하하 이러다 조선사까지 대륙지배설을 가져오겠군요
  • 초록불 2008/11/17 19:28 #

    이미 그러고들 있답니다.
  • 회색인간 2008/11/17 19:33 #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네요.....
  • anaki-我行 2008/11/17 19:36 #

    임진왜란이 중국에서 일어났다는 대륙조선설은 이미 유명하죠....ㅋ
  • 초록불 2008/11/17 19:39 #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그런 엄한 소리 하지 말라고 제가 말하기 때문에, 저보고 화교니, 매국노니, 친일파니, 매식자니... 등등 욕이란 욕은 죄 퍼붓는 거죠. (화교라는 것은 본래 욕이 아니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욕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인종주의자들이기 때문이죠...)
  • 이준님 2008/11/17 19:38 #

    그러고 보니 일역임에 분명한 소싯적 동화책 "코카서스의 포로"에 끝없이 나오는게 "머리 검고 눈 까만 황인종 달단 사람"이야기였지요 어렸을때도 꽤 이상했습니다.

    소비에뜨에서 제작한 "대제의 밀사" 판에서는 상층부는 슬라브인이고 엑스트라는 동양인인 타타르 제국이 나오기도 하지요
  • dunkbear 2008/11/17 20:11 #

    오히려 타타르가 대륙 지배설에 훨씬 더 어울리는 민족 같습니다. 헐헐.
  • 고어핀드 2008/11/17 20:13 #

    고려사를 읽다 보니까 달단, 그러니까 타타르라는 말을 일종의 북방 유목 민족의 통칭 비슷하게 사용하기도 하더군요.
  • 초록불 2008/11/17 20:16 #

    네, 그래서 혼동이 종종 생기는 것 같습니다.
  • 킴사장 2008/11/17 20:56 #

    타타르 소스에 생선 찍어먹으면 아주 맛이 그냥;
    끝내줘요 (>_<)=b
  • 고어핀드 2008/11/17 21:25 #

    이것이 정답이군요. :D
  • 自重自愛 2008/11/17 21:37 #

    우왕 9년, 우왕ㅋ굳ㅋ (죄송)
  • savoury 2008/11/17 22:30 #

    중국에서도 달단은 북방 유목 민족을 통칭할 때 쓰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예전에 관련 논문들을 읽는데... 그 달단 개념이 또 학자마다 다른 것 같더라고요.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혼란스러워지면서 머리가 폭발할 지경이 되더군요. 그러다 괜히 혼자 뭔가 억울해서 읽다 말고 소리내어 엉엉 울었었던 기억이 나요. 아, 그 땐 공부도 참 열심히 했었는데... (갑자기 먼 산;;)
  • 꽃곰돌 2008/11/18 00:34 #

    저분들께는 조선의 발 아래 전 세계가 있었나 보네요 ㅋ
  • 2008/11/18 04:4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8/11/18 08:22 #

    어떤 맥락에서 쓴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80년대 역사 인식이라고 이야기할 때, 그 대상은 흔히 민중사관을 가리킵니다. 80년대 중반에 도서에 해금 바람이 불면서 맑스의 유물사관이 대거 소개되는데,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새로운 역사 해석을 시도한 것이 "민중사관"입니다. 민중사관=유물사관이라고 보기는 좀 어려운데, 상당히 유사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 초록불 2008/11/18 08:39 #

    뭘보고 하신 말씀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만 본 것 같긴 하군요.) 문제라면... 80년대 역사인식, 즉 민중사관이라는 것이 한때 맹위를 떨친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학계를 놓고 본다면 여전히 비주류였고, 지금도 비주류라는 점이겠네요. 저 인식으로부터 생활사 -> 미시사 쪽으로 역사학의 관심 영역이 넓어져 나간 점이 특이한 사항이라면 특이한 사항이겠습니다.

    앞 댓글에도 잠깐 썼지만 민중사관과 유물사관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은 민중사관에는 민족주의가 깊이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모택동의 모순론과 같은 민족주의적 관점이 혼재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덕분에 이 민중사관의 관점에서 민족주의적 세례를 심하게 받은 사람들은 좌파 민족주의가 되면서 환빠틱한 사고를 하는 경우가 왕왕 보입니다.

    학계에서의 문제라기 보다, 일반 대중에게 미친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조명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긴 하네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역사비평 등을 찾아보면 여러 자료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TheGame 2008/11/18 10:17 #

    지도만 보면 사할린 섬이 한반도보다 길어보이네요..ㅎㅎ
  • mattathias 2009/01/30 20:55 #

    유목민족인 타타르인들이 내몽골 지역에만 몰려살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순진한 것이지요... 잘 보고 갑니다.
  • 초록불 2009/01/30 20:56 #

    네, 그리고 "타타르"라는 이름은 유목민에 대한 통칭으로도 많이 쓰였습니다.
  • 해양 2009/02/20 07:43 #

    유럽에서 동해가 동양해(Mer Orientale)라고 명명하게 되었던 유래를 기록한 18세기 초반 서양의 고지도가 있습니다. 지금 그 지도의 이름과 제작자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내용이 "유럽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바다로써 타타르인들이 동양해라고 부른다."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타타르는 바로 몽골지방의 주민이 아닌 만주지방의 주민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보다 구체적인 증거로는 그 무렵 발행된 서양의 지도들이 중국의 북쪽과 만주포함 유라시아대륙의 북동부 전체를 "그랜드 타타르" 명명했다는 것을 볼 때, 조선의 북쪽이 타타르에 이르렀다는 말(선교사의 말?)이 조선의 영역이 만주와 몽골까지 이르렀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는 않습니다.

    애초 만주와 몽골지방까지 조선의 땅이었다면, 선조가 임진왜란때 압록강을 건너는 것을 주저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여송이 요동병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오거나 왜장 가등청정이 두만강을 건너 여진의 땅을 침입했다는 사실과의 연결이 어려워집니다.
  • 민소정 2012/11/07 23:18 #

    사할리얀 강 하구의 해협(Tartary Strait) 이름 같은 건 진짜 그 타타르가 아니라 유럽인들의 퉁구스 제 민족에 대한 범칭이고, 유럽인들이 '조선에 접한 타타르' 운운한 건 만주, 연해주 지역의 퉁구스인으로 봐야겠지요.

    원대에서 명대에 이르기까지 요동 등지에 퍼져 살던 몽골인들도 전부 달단이라 불리고 그 명칭이 중세 한국어에 '다다'로 나타나지만요 (노걸대).
  • 초록불 2012/11/08 10:32 #

    유럽인들의 그러한 인식을 유사역사가들이 묶어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경계를 담아서 한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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