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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단군 조선의 영토 - 후반기
아홀 이후 43대 물리에 이르기까지 영토와 관련하여 별다른 일이 없다. 물리 때 우화충이라는 사냥꾼이 반란을 일으켜 물리가 죽고 백민성 욕살 구물이라는 자가 단군이 되어 우화충을 처단한 뒤 삼조선 제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어? 삼조선은 이미 색불루 때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건 태백일사에 나오는 이야기고 단군세기에는 이때 만든 것으로 나온다. 우스운 것은 삼한을 삼조선으로 바꾸고 나라 이름을 대부여로 고쳤다고 써놓은 것이다(그런데 왜 삼조선이야? 이조선과 대부여지...). 단군 통치 지역 = 진한 = 진조선 = 대부여? 이때부터 단군의 권위가 무너졌다고도 적어놓았다.
45세 단군 여루 때 연나라가 요서를 점령했다(BC 365). 삼조선이 연합해서 연나라를 공격하여 격퇴했다. 번조선은 북막과 연합해 연나라의 상곡上谷을 빼앗고 그곳에 성읍을 설치했다. 어라라? 상곡이 어디일까?

지도를 약간 재활용. 환단고기가 아홀 단군 시점에서 주장한 중국 영토는 붉은색 스프레이로 표시한 부분. 상곡은 우상단에 파란 테두리를 두른 곳이다. 여기가 연나라 땅이었다는 이야기는 그 밑의 하북 영토가 통째로 빼앗긴 상태라는 뜻이다. 대체 언제 저렇게 많은 영토를 빼앗긴 것일까? 소리 소문도 없이. 태백일사를 보면 이때는 가삭이 군주로 있을 땐데 물론 이런 일에대해서 한마디도 없음은 물로, 그 이전에도 영토를 빼앗겼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이야말로 유사역사가들이 주장하는 망상춘추필법 위국휘치爲國諱恥(나라를 위해 수치를 감춘다)는 원칙에 충실한 기술이다. (참고 유사역사학의 춘추필법 [클릭])
가삭 다음에 번조선 왕 해인은 연나라에서 보낸 자객에게 죽는다. 그 아들 수한이 즉위했는데, 이때(BC 339) 연나라가 또 침공. 그동안 단기고사에서 빌려서 이름짓는 수고를 덜었던 환단고기가 여기서 문제에 부딪친다. 이 번조선이라는 나라는 결국삼국지 위서 동이전 위략에 나오는 고조선을 가리키는 것이고, 거기에는 기자지후 - 기자의 후손이 왕을 하고 있다고 나오기 때문에 번조선이 멸망할 시점에서는 왕이 기씨여야 하는 거다. 그래서 이유립은 이때 기후箕詡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다.
기후는 연의 공격을 막아내고 역공을 가해서 연의 사죄와 볼모를 받아내고 그 공으로 결국 번한의 왕이 된다. 그리고 왕위가 기후 - 기욱 - 기석으로 내려가 위략에 나오는 조선왕 비丕로 이어지고 있다.
기비의 아들 기준은 떠돌이 도적 위만의 꾐에 빠져 패하고 바다로 들어가 돌아오지 못했다라고 써서 위만조선의 성립을 알리며 번한은 사라진다.
그럼 만주에 있던 진조선(=대부여)은 어찌 되었을까? 여루의 아들 보을 때, 나라에 난리가 일어나고 장군 고열가가 의병으로 간신히 진압한 뒤 마지막 47대 단군이 되었다. 이 고열가라는 양반, 나라가 쇠퇴하여 유지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산으로 들어가 선인이 되어버리는 대인배. 이렇게 해서 단군 조선=진조선은 없어져버린다.
그 뒤를 이은 사람이 고구려 사람 해모수. 이 이야기는 다음 절에서.
한반도에 있던 마한=막조선은 어찌 되었을까?
모른다...-_-;;
태백일사 마한세가 하편은 진조선 멸망 이야기를 하고는 그냥 끝나버린다. 막조선의 이야기는 없고 다시 마한으로 돌아가버린 이야기가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 조금 나오는데 아래와 같다.
마려 등이 온조에게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마한이 이제 곧 쇠패할 것이라 하니 바로 지금이 우리가 그곳으로 가 도읍을 정할 때입니다." 하였다. 온조가 승낙하였다.
즉, 삼조선 중 그래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 마한이었다는 이야기겠다. 그나마 이것으로 끝이다.
그럼 분조가 성립되어 있던 뺏고 뺏어도 또 뺏는 회-대 지방은 어찌 되었을까?
역시 모른다.
결국 이유립에게 있어서 이 지역은 한민족의 위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그냥 빼앗기만 하면 되는 땅이었기 때문에 굳이 그 전말을 기록할 필요가 없었던 거다. 하지만 이 지역이 이대로 환단고기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민족의 영광을 위해서 또 빼앗아야 하니까. 참고로 적어본다면 중국 사서에는 진시황이 통일한 후 구이가 소멸한 것으로 나오는데, 유사역사가들의 인식도 대체로 그런 편이다.
7. 삼국시대의 영토
해모수가 BC 239년 나라를 세웠는데, 부여=북부여=고구려라고 부른다. 해모수의 둘째 아들 고신과 증손자 불리지는 위만을 토벌하고 제후가 되었다고 하는데, 토벌 당한 위만의 손자 우거는 어찌 되었을지... 쯧쯧... ([추가] 태백일사 북부여기를 보면 위만은 토벌 당했으나 우거는 멀쩡하다. 멀쩡할 뿐만 아니라 북부여를 자꾸 침공해서 골치를 썩기도 한다. 그러다 이들을 무찌르고 나자 한무제가 쳐들어온다. 한무제는 북부여 장군에게 격퇴되는데 그 장군이 고두막한=동명이다. 이 고두막한의 아들이 고주몽이다. 어라라? 고주몽은 불리지 아들이라면서? 이 문제는 하도 횡설수설해서 나중에 다시 쓰도록 하겠다. 아무튼 고두막한은 전공을 세워 왕위를 뻬앗고 쫓겨난 이들은 가섭원에 가서 새로운 부여를 만든다는 이야기... 나원참...)
자, 해모수의 아들손자가 위만을 토벌했다고 하면, 요서를 점령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불리지의 아들이 고주몽이고, 고주몽의 손자 대무신열제가 남쪽의 낙랑국을 토벌하고, 다시 그 후손이 서쪽의 현도와 낙랑을 토벌해서 요동을 차지했다고 하니, 대체 이 나라들은 영토가 왜 이렇게 고무줄일까?

그러니까 이런 형태라는 것. 그럼 또 묻게 되는데, 영토는 언제 이렇게 쪼그라든 걸까?
불리지는 서압록에서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나 고주몽을 낳았고, 불리지가 죽자 유화는 고주몽을 데리고 웅심산에 가서 살았으며, 고주몽은 관청의 말 키우는 관리가 되었다가 오이, 마리, 협보와 도망쳐서 부여왕의 사위가 되고 왕위에 올라 고구려를 만들었다는 니름도 안 되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니름도 안 되는 이야기는 계속 된다.
부여왕의 사위가 되어서 왕위를 계승하고는 장인의 나라를 없애고 자기 나라를 세운 고주몽. 맏아들이 오면 태자를 삼겠다고 해버려서 단물 다 빨어먹은 소서노를 팽 시킨다. 소서노는 두 아들을 데리고 이상한 곳에 가서 사는데, 어딘지 알 도리는 없다. 고구려국본기에는 이렇게 나온다.
패수와 대수 사이의 토지가 비옥하고 물산이 많아 남으로 달아나 진번지간에 이르러 바다 가까운 벽지에 살았다. 남쪽으로 대수에 이르고 동쪽은 큰 바닷가였다.
동쪽은 큰 바닷가라... 이 대목은 원래는 서쪽이 큰 바닷가라고 적었다가 이유립이 나중에 수정한 부분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이유립이 처음 온조가 있었던 지방을 중국 동해안 - 말하자면 산동반도 - 으로 상정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백제라는 이름이 백가제해에서 왔다고 믿었던 것이리라.
곧 배를 만들어 바다를 건너 처음으로 말한 미추홀에 닿아 사방의 들을 살펴보니 그곳은 텅 비어 사는 사람이 없었다. (중략) 하남의 땅은 북으로 한수를 띠고 동으로 높은 산을 의지하며 남쪽으로 비옥한 평야가 열리고 서쪽으로 큰 바다가 막혔으니 이처럼 천험과 지리를...
동쪽이 바다인 곳에서 배타고 건너와서 서쪽이 바다인 지형에 자리를 잡았으니 이 바다가 황해임은 일곱살배기도 알 것이다. 이유립의 세계관에서 백제는 한반도 경기-충청-전라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바다 건너에 온조가 처음 자리 잡은 곳을 만든 이유야, 나중에 백제가 그곳을 점령할 때 타당한 이유를 주기 위한 복선이었을 것이고.
부여 제실의 딸 파소가 처녀 임신을 해서 진한에 도망쳐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거서간이 되어 나라를 세워 진한=사로가 된다. 자, 진한이란 본래 단군조선이었는데 여기서 갑자기 신라의 전신으로 등장해버린다. 무슨 연관으로? 물론 그런 거 없다.
파소의 이동로가 고구려국 본기에 나온다. 다음과 같다.
눈수嫩水 - 동옥저 - (배타고 남하) - 진한 나을촌
눈수라는 것은 눈강을 가리키는 것으로 송화강을 이루는 2대 지류 중 하나다. 흑룡강성과 길림성, 내몽고 자치주를 갈라놓는 강이라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파소(본래 사소가 맞다)의 이동로는 이렇다. 발로 그린 거 같지만 참고 보기 바람.

따라서 이유립은 신라의 경우도 경상도에 비정하고 있었음을 손쉽게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환단고기에 대륙 삼국의 증거가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믿는 건 난 환단고기를 읽지도 않고 남의 이야기만 듣고 쫓아다니는 바보라고 선전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 외에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조금 더 붙이면, 임나는 대마도고, 일본섬은 삼한이 나눠서 다스렸고 그나마 광개토왕 이후에는 모두 고구려 땅이 되어버렸을 뿐이고~
문자왕 때가 되면 불사의 떡밥 회-대 지방이 다시 등장한다. 이 땅은 일찍이 백제가 점령했다가,
이보다 앞서 백제가 제, 노, 오, 월의 땅에 파병하여 점령하고 관아 부서를 설치하여 민호를 대장에 올리고 분봉하고 작위를 내려주었고 험지에 요새를 두고 본국처럼 병역과 세금을 부과했다.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
백제가 지키지 못하고 고구려에 넘겨준 것으로 되어 있다.
11년에 제, 노, 오, 월의 땅이 우리에게 속하게 되니 이에 이르러 나라의 강역이 점점 커졌다.
이 부분은 고구려가 백제의 월주를 쳐서 빼앗았다는 이야기도 다시 뒷부분에 나온다. 갈팡질팡 갈피를 못잡고 있는 이유립군이라 하겠다.
또한 평강왕은 산서 이동을 온달을 시켜 점령한다. 자, 이제 고구려 영토는 앞서 본 단군 조선 영토와 비슷해졌다. 다시 보자. 붉은색-주황색-초록색이 모두 고구려 영토다.

그런데 이 땅은 또 아무 기록없이 중국에 넘어간다.
을지문덕이 여러 장수들과 더불어 승승장구하여 한 갈래는 현도에서 태원에 이르고, 한 갈래는 낙랑에서 유주에 이르러 그 주현에 들어가 다스리고 유민을 안심시켰다.
이유립은 낙랑을 요서에 두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유주, 하북, 산서를 모두 빼앗겼다는 이야기인데, 물론 언제 어떻게 빼앗겼는지는 한 줄도 쓰지 않는다. 아무튼 을지문덕은 "예전처럼" 빼앗은 땅에 관리를 두었다.
그럼 그 아래 녹색 땅은?
수양제가 쳐들어갔다. 그러나 고구려가 군사를 파견해 격퇴. 그런데 분명 수양제는 해군도 보냈는데, 저 지도 상태라면 해군을 대체어떻게 보냈을까? 답이 적혀 있다.
주라구가 군사로 등주를 점거하고 전함 수백 척을 징집하여 동래에서 배를 띄워 평양으로 나아가다가 우리에게 발각되어 후군으로 맞서며 전진하다 대풍을 만나 전군이 표몰하고 말았다.
무슨 가미가제라도 불었단 말이냐? 얼마나 그걸 부러워했는지 알만한 이야기다. 일시 점령한 지역에서 배를 띄워 타국을 공격하기 위해 떠나다니... 정말 쓰레기 판타지 소설에도 나오기 힘든 설정이다.
이하 당태종과 연개소문의 전쟁 소설이 이유립 딴에는 신나게 전개되는데, 이환경의 사극보다도 날림이니 이를 어찌할꼬... 아무튼 이 대목에 와서 점령지 지명이 나온다. 보자.
일군을 두어 요동성을 지키니 지금의 창려다.
일군을 두어 상곡을 지키니 지금의 대동부다.
을지문덕이 빼앗았던 땅을 그새 빼앗긴 거냐? OTL... 이유립군, 생각은 하고 글을 써야 할 것 아니냐고...
아무튼 이리하여 당태종은 항복한다. 그 결과,
산서, 하북, 산동, 강좌의 땅을 모두 우리에게 속하게 했다.
그러니까 위의 지도에 나온 영역을 다시 먹어치웠다는 이야기다. 산동은 고구려 것이었는데, 여기다 또 쓴 이유가 뭐냐, 대체.
이보다 앞서 요서에는 백제군이 있었는데 이것도 연개소문이 먹어치운 것으로 나온다.
8. 그 후의 영토
유사역사식 역사기술의 모범인 환단고기에는 고구려가 어떻게 멸망했는지 나오지 않는다. 그냥 망했다. 고구려 멸망에 대한 문장이라고는 "평양성 함락"(태백일사 대진국본기)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런 주제에 이유립은 자치통감을 야단치고 있다. 위국휘치하고 있다고...-_-;;
8-1 발해
발해는 고구려의 후신이니 회-대 떡밥이 또 등장해준다.
대장 장문휴를 보내 자사 위준을 죽이고 등주와 내주를 빼앗아 성읍을 만들었다.
물론 이걸 언제 또 잃어버렸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이 패턴 이제 지친다.)
신라와의 경계도 나오는데, 서쪽은 지금의 옹진에서 임진강까지 신라가 물러나고 동쪽은 지금의 강릉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유립은 대륙 신라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다.
발해가 멸망한 후 한반도 이북의 땅은 모두 날아가버렸다. 고구려-발해 멸망으로 땅이 싸그리 없어진 것이고, 그후 영영 회복하지 못한 걸로 환단고기는 이야기한다.
8-2 고려
여기에 거란 소손녕과 서희가 벌인 담판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을 보면,
소손녕 - 너희 나라는 신라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 땅은 우리 것인데 너희가 침식하고 있다. 또 우리와 땅이 잇닿아 있는데 바다를 건너 송을 섬기니 우리가 출병한 것이다.
서희 - 귀국의 동경이 우리의 경내이니 어찌 침식한 것이겠는가.
우리는 이유립이 설정한 신라가 어디에 있는지 이미 보았다. 또한 바다를 건너 송에 가야 하고, 거란과는 육지와 잇닿아 있는데 그 나라의 동경이 고구려의 영토에 속한다라는 점을 종합하면, 고려의 위치는 자연히 한반도가 된다. 이유립에게는 대륙 신라가 없었던 것처럼 대륙 고려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 보면 환단고기는 유령처럼 땅을 뺏고 뺏고 또 뺏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승리를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괴서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은근과 끈기라는 말은 우리와 상관없이 그네들에게 붙여줘야 할 것 같다. 대체 이런 패배와 굴종의 역사서를 자긍심을 길러준다고 생각하고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완결)
덧글
뺏은건 기록해도 잃은건 기록하지 않았다. 인겁니까 ---;;;;;
머지않아 사실 조선에는 포털이 있었다능~ 이라던지 하는 소리도 나오겠군요....;;;
점점 밑구멍도 없는 수렁을 파고들어가는 기분입니다 -_-;;;;
<-- 오타인 것 같네요.
아무튼 결론은 의지의 漢국인. ^^
사서에 영토기록이 엉망인건 각론으로 치고
중요한건 韓족이 대륙을 지배할 원천기술이 있다는거 아니겠습니까...
전쟁에서 패해 죽은 한족들이 얼마 시간 지나면 다시 부활해서
삼조선이나 대부여의 영토에 다시 국가를 세우고 또 다시 토벌
당해서 죽고 또 부활해서 다시 국가 세우고.... ㅎㅎㅎ
<환단고기>에 들어있다는 사서들의 형식은 기년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당할 것입니다. 위의 기준으로 편집해보면, 수미도 없고, 일관성도 없고, 서례라는 것은 그저 흉내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금방 느끼게 됩니다. 초록불님의 글은 수미의 일관성이 없음을 잘 지적해 주신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중국의 사서 중에서 이런 종류의 기록은 <소미통감절요>가 대표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사건의 앞뒤가 연결되지도 않고, 기사는 좌충우돌하여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학적 재능은 마음만 앞서서 흉내낸다고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단지 기록이 '조금' 소실된 탓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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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걸 몇년 전까지는 이렇게까지 허술하다는 걸 눈치를 못챈건지..
이렇게 해도 말이 되겠지요.
민족의 영광을 위해 몇번이고 다시 뺏는 챔피언 벨트였군요.
이건 뭐 챔피언 사관이라고 불러야 하나... OTL
WWE 프로레슬링에서 가끔씩 특정 선수의 챔피언 벨트 보유
기록을 늘려주기 위해, 단시간내에 벨트를 줬다 뺏었다하는 각본
을 만들어 내는데... 환단고기는 역시 시대를 앞선 모양입니다. OTL
"아니 왜. 작년에 주가가 2000까지 올라갔다는 것도 이제 와서 자랑하지 그러세요?"
...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을 시궁창이라고 가정하고 거기에 대비된 위대한 역사를 세운다... 글쎄요. 그만큼 후대로 갈수록 퇴화하고 있다는 이야기 밖에 안 되는데 거기서 뭘 자랑하고 싶은건지 저는 이해가 안 되더군요...;;;
그거 일본인이 만든 책이었을텐데... 환단고기같은거 읽지말고 환빠들은 그런책이나 읽을것이지;
한단고기의 신라는 진짜 개구라에다가 신라를 대빵 무시하고있어...
테클은 하지말아주세요
리플에 대한 응답이 싫다면 댓글을 달지 않아야 하겠지요.
아니 왜 환단고기엔 전쟁에서 진기록없이 땅을뻇겨? 한족에게 바쳤나?
삼조선이야기도 단군세기를 막배껴서 그런가 태백일기와 단군세기가 겹치는걸 그대로 방치하고
책으로내다니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