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자........서..*



1.
담배를 피우던 시절 - 내가 담배를 피면 상대가 놀라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내가 담배 피는 줄 몰랐다고 말한다.

2.
그러고나서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담배 피는 폼이 이상하다고 한다. 어색해 보인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내가 담배 피는 걸 몰랐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3.
고3 대입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끼리 모여 앉으면 일순위로 하는 일이 담배를 피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담배갑과 라이터를 꺼내고 있는 인간들이 줄줄이 꺼내놓으면 담배를 꺼내놓든 아니든 다 한개비씩 어느 틈에 손에 쥐고 있게 된다. 기침이 나오는 것을 꾹 참고 피는 척 하고 있었는데 - 그래도 꼭 몇 번은 기침을 하고 만다. 감기 든 척 위장하곤 했다.

4.
한 친구가 솔(담배 이름)은 독하니 이것부터 시작하면 괜찮을 것이라고 권해준 담배가 있었다. 수정. 박하향이 있는, 이른 바 멘솔이라는 담배다. 그래서 대충 담배가 늘었다.

5.
아버지는 골초였다. 할머니는 담배를 안 태우는 시간이라고는 주무실 때밖에 없었던 것 같다. 긴 곰방대로 담배를 피셨는데, 생각해보니 이건 무필터였던 셈이다. 아버지는 하루에 세갑 정도 담배를 피셨던 것 같다. 그런데 절반 쯤 피우고 담배를 껐는데, 건강을 생각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할머니가 그 꽁초들을 모아서 동그랑 깡통에 차곡차곡 모으셨기 때문이기도 했다.

6.
어느날 아버지가 "나, 담배 끊었다"라고 말씀하셨다. 마크 트웨인은 하루에 열두 번도 끊을 수 있는 게 담배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 말씀이 처음이자 끝이었다. 그 후 담배 피는 모습을... 딱 한 번 본 적 있다. 그럴만한 날이었다. 물론 지금도 금연 지속 중이시다.

7.
그래서 그런지 나도 마음만 먹으면 담배를 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하나도 어려워보이지 않았다. 어느날 어떻게 그렇게끊으셨는지 여쭤 보았다. "손 닿는 곳에 언제나 담배가 있단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담배를 다 치워버리면 오히려 불안해서 담배가 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참을 수가 없게 된단다. 하지만 담배가 안주머니에, 서랍에 있으니 손만 뻗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그까짓 걸 못 참아, 라고 넘길 수 있단다."

8.
교수님이 금연 실패기를 이야기해 준 적이 있었다. 한 밤중에 담배가 너무 피고 싶었는데 가까운 편의점은 수십 마일 밖에 있었다. 미국에서의 일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길거리로 나가서 골목을 뒤진 끝에 꽁초를 발견해서 담배를 피웠다. 그렇게 스스로를 모멸스런 경지에 넣고나면 당연히 금연은 실패한다는 것. 더구나 큰 아이로부터 "아빠는 에이즈에 걸렸어!"라는 꾸지람까지 들었다고 한다.

9.
큰애가 태어난 다음에 집안에서 금연을 했다. 더구나 아내가 워낙 "개코"라서 내 방에서 한밤중에 몰래 피우더라도 즉각, "담배 꺼!"라는 고함이 날아왔다.

10.
직장에서는 사교라는 명목이 있어서 담배를 끊기 어려웠다. 찾아온 손님이 으레 한 대 꺼내주는데, 금연입니다, 라고 손사레 치는 건 어쩐지 비인간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끊기로 했다. 일차로 담배를 사지 않기 시작했다. 정 못 참으면 뺏어피웠다. 한국 사회에서 담배 인심은 꽤나 후한 편이니까.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결국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정말 끊는 거다.

11.
그런데 전혀 눈치가 보이지 않는 자리가 있다. 술자리다. 술이 웬만큼 들어가면 이게 누구 담배인지 알 수 없는 상태고, 설령 나같은담배의 왕빈대가 꺼내 핀다고 해도 눈치를 주는 사람이 없다. 더구나 이 놈의 알콜은 니코틴을 부르고...

12.
다행스러운 것은 어차피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만드는 술자리라는 게 전무하다시피해서(일년에 한 번이면 많다) 잠시 사람들과 소원해지면 몇 주씩 담배를 피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느날 담배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13.
술을 마시고 피워도 메스껍다. 굳이 피울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14.
담배는 기호식품이다...라고 생각한다. 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고 몸에 좋지 않으니 피지 않는 게 좋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런데 십여년 전 일본에 갔을 때 작은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태연하게 담배를 피며 걸어가는 여자를 본 것이다. 그 순간 그 묘한 이질감이란... 나는 처음에 어떤 풍경이 이상하게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그 광경이 이상했던 것을 알고... 반성했다. 마음 속으로는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고 해놓고서 실제로 보자 이상하다고 생각한 나에 대해서.

15.
그리고 담배를 끊은 이후 몸무게 십여 킬로그램이 불어났다.

덧글

  • 레인 2008/11/23 17:42 #

    ...마지막이 크리티컬이군요
  • 다크엘 2008/11/23 17:58 #

    15번이....orz
  • Nova_Mania 2008/11/23 18:40 #

    역시 입이 심심해지는 겁니다. orz...
  • 아롱쿠스 2008/11/23 18:50 #

    담배를 처음 배운건 초딩 5년때 동네선배의 꼬임을 받아 동네 뒷산에서 한모금 들이마신건데, 그순간 토할것 같은 기분에 그만두었고, 그 후부터 담배를 '혐오'하게 되었습니다.

    군대 있을때가 담배피우는 최대 고비였죠. 나 있던 소대가 워낙 병장이 많았던지라 고달펐고, 실제로 몇가치 핀 적도 있습니다만, 결국은 극복했습니다.

  • 수룡 2008/11/23 18:56 #

    뭐랄까, 딱히 담배를 피는 이미지가 뭔지 설명을 못 하겠는데 초록불님은 담배를 안 피우실 것 같은 이미지로 생각돼요^^ ...근데 맨 밑의 글 무섭군요-_-;
  • 토마스 2008/11/23 19:02 #

    15번에서 눈물을... 사탕을 그렇게 열심히 드시더니 결국...
    전 요즘 걷기 운동을 하면서 살이 좀 빠진 듯 싶은데, 문제는 걸으면서 담배를 피워대서
    건강해지는 것 같진 않아요.
  • dunkbear 2008/11/23 19:22 #

    15번은 일종의 반전이군요. ^^
  • savoury 2008/11/23 19:38 #

    앗, 저도 담배 피울 때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담배 피우는게 뭔가 어색하다고, 애기가 피우는 것 같아 보는 사람이 좀 불안불안하다고들 하더라고요. ^^;;
    생각해보니 제가 담배를 끊을 때가 석사 입시 준비할 때라... 아는 사람도 없고, 당연히 술자리도 없었지요. 그래서 끊기가 쉬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전 사실 담배를 끊은지 몇 년 지난 지금도 가끔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이 담배를 피우면 저도 피우고 싶답니다. ㅜㅜ
  • 무곡 2008/11/23 20:24 #

    금연중이시니 입이 심심해서 많이 먹게 되겠죠 ^^;;
    적당히 운동도 하시면 좋을듯한 ...ㅎㅎ
  • 루드라 2008/11/23 20:27 #

    15번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
  • 2008/11/23 20:3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8/11/23 20:35 #

    아무튼 그후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사람은 해외에 나가보아야 한다는...(틀려!)
  • 한단인 2008/11/23 20:50 #

    [ 스스로를 모멸스런 경지에 넣고나면 당연히 금연은 실패한다는 것 ]

    담배는 피우지 않습니다만, 콜라를 달고사는 저로서는 가슴에 깊이 새겨둘 경구로군요.

    ...그러고보니 비슷한 일이 몇번 있기는 해놔서..;;;
  • mattathias 2008/11/23 21:08 #

    음식을 줄이는 것을 추천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대사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하루 두 끼를 먹거나 식사량을 매 끼니마다 20-30% 정도 줄이는 것이 좋답니다. 국물류를 안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 자그니 2008/11/23 21:36 #

    담배를 다시 피우니 몸무게가 줄었습니다...;;
  • 소하 2008/11/23 22:17 #

    저는 차라리 담배를 피우고 일찍 죽을랍니다...
  • 초록불 2008/11/23 22:18 #

    담배를 핀다고 꼭 일찍 죽는다고 볼 수는 없죠...^^;; 할머니께서도 89세에 돌아가셨답니다.
  • 파파울프 2008/11/23 23:06 #

    사교 때문에 피우는 담배가 하루 한갑이었죠. 헌데 직장 그만두니 딱 끊게 되는군요
  • 미타민 2008/11/24 00:12 #

    저도 마지막과 비슷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전 20kg.... 흑흑
  • 어릿광대 2008/11/24 07:51 #

    15번이 좀 대박이네요;;
    저는 요즘 잘먹고 잘움직이지않아서 몸무게 측정할때 어떻게 나올지 막막합니다(...)
  • 루드라 2008/11/24 16:43 #

    담배 핀다고 반드시 일찍 죽는다고 볼 수는 없는게 우리 왕고모님은 시집가기 전부터 담배를 폈는데 103살에 돌아가셨습니다. 세계 최고령자로 기네북에 올라 있는 프랑스의 잔느 할머니 역시 처녀때부터 담배를 펴서120세에 담배를 끊어셨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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