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속의 주몽 *..역........사..*



이유립은 주몽이 "고"씨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는 세상이 아는 고구려빠였다. 자기가 고구려 사관을 연구한다고 경찰에서 공산주의 연구라고 찾아오기도 했다... 뭐 그런 주장도 있는 사람이다.

[부연설명]
기억력에 의존하다보니 오류가 있어서 해당 대목을 찾아보았습니다.
한배달 3호(1989) 한암당 이유립과 고구려 / 전형배 / 127쪽
정치적으로 한창 소란스러운 5공 시절 어느 날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한암당 선생을 찾아왔다. 묻기를 "선생께서 고구려사를 정통으로 쓰시고 계시다는데 사실인지요? 그것이 공산주의 이론은 아닌지요?" 하였다 한다
.


1. 연호와 연대의 문제

이유립은 처음에 주몽의 연호를 "다물"이라고 설정했었는데, 뒤에 "평락"이라고 고쳤다. 이 수정 부분에 따라 녹도승이 가져갔던 광오이해사 본과 이유립이 나중에 내놓았던 배달의숙 본의 판본이 갈라진다. (궁금해진 임승국의 환단고기 번역 [오류 수정] [클릭]) 고친 이유는?

이처럼 이유립은 나중에도 주몽과 관련된 오류를 채 다 잡아내지 못했다. 이제 그 설정 지대로 오류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이유립이 주몽의 연호를 다물에서 평락으로 고쳤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다. 그것은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서 고쳤다는 이야기였다. 삼성기 전편에는 미처 고치지 못한 탓에 그대로 다물이라고 남아있다.

그해 계해년의 봄 정월에 이르로 고추모高鄒牟 역시 천제의 아들로서 북부여를 계승하여 일어났다. 단군의 옛 전장을 회복하고 해모수를 태조로 제사지내고 처음으로 건원하여 다물이라 했다. 그가 고구려의 시조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에는 수정 전에는 다물이라 되어 있었는데 후에 수정하면서 평락이라는 연호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평락이라는 연호는 위에 말한 부분 말고도 있는데, 그 부분을 보자.

[광오이해사본] 32년 갑오 10월 북옥저를 정벌하여 이를 멸망시켰다. 다음해 을미년에 졸본으로부터 서울을 눌현으로 옮겼다.
[배달의숙본] 평락 11년 갑오 10월에 북옥저를 정벌하여 이를 멸망시켰다. 다음해 을미년에 졸본으로부터 서울을 눌현으로 옮겼다.


임승국은 저 알 수 없는 32년 - 삼국사기를 따르면 주몽은 재위 19년에 승천했다 - 을 BC 147년이라고 주석했다. 이것은 심지어 본문에 나와 있는 주몽 탄생 연도(원봉 2년 - BC 79년)보다도 앞선 연대인데, 이렇게 뻔뻔하게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임승국이 환단고기를 얼마나 엉터리로 읽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자, 처음에는 32년 갑오라고 했는데, 뒤에 평락 11년으로 고쳤다고 했다. 대체 저 사이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우선 저 갑오년이 언제일지 따져보자. 주몽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원봉 2년은 BC 79년 임인년이다. 그후 처음으로 갑오라는 갑자가 오는 해는 BC 27년이다. 무려 52년 후다.

평락 11년이라는 것은 삼국사기와 그 연대를 맞춘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동명왕 11년이 바로 갑오년이다. 그럼 32년은? 저게 주몽 탄생으로부터 52년 차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했다. 바로 그거다. 주몽이 20세에 왕이 되었으니 재위 32년이면 20세+재위 32년=52세...가 된다.

이렇게 이유립은 처음에 연도를 잘 맞춰놓았다가 평락이라는 연호로 고치면서 그만 삼국사기의 연대를 그대로 옮기는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이제 환단고기 지지자들은 주몽이 40세에 고구려를 열었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하하...

자, 이 평락 연호는 뒤에 한 번 더 나온다. 그 대목도 살펴보자.

[광오이해사본] (연타발이) 나이 80에 죽으니 바로 다물 34년 병인 3월이다.
[배달의숙본] (연타발이) 나이 80에 죽으니 바로 평락 13년 병신 봄 3월이다.

32년이 갑오였는데 34년은 병인이 되다니... 이런 일은 물론 있을 수 없다. 어쩌면 이유립은 이 부분에서 연대를 바로 잡으려다가 다물 연호도 버린 것이 아닐까? 이번에는 수정한 것이 맞아서 병신이 맞다. (어감 참...) 즉 BC 25년이 된다. 역시 임승국은 아무 생각없이 연대가 틀렸다고 주장한다.

2. 주몽 출생의 비밀

삼성기전 상편
그해 계해년(BC 58)의 봄 정월에 이르러 고추모高鄒牟 역시 천제의 아들로서 북부여를 계승하여 일어났다. 단군의 옛 전장을 회복하고 해모수를 태조로 제사지내고 처음으로 건원하여 다물이라 했다. 그가 고구려의 시조다.

북부여기 하편
단군 고두막(=동명왕) 30년 임인(BC 79) 5월 5일에 고주몽이 차릉에서 태어났다.
단군 고무서 2년 계해(BC 58) 겨울 10월에 제帝가 붕하니 고주몽이 유명을 따라 대통을 계승하였다. 제에게는 아들이 없어 고주몽을 보고 비상한 사람이라 딸을 아내로 주어 이에 이르러 즉위하니 이때 스물셋이었다. 한때 하부여 사람들이 그를 죽이고자 하여 모친의 명을 받들고 오이, 마리, 협보를 친구로 삼아 함께 차릉수에 이르렀는데 건너고자 해도 다리가 없었다. 병사들이 다가오자 두려워 물에게 말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오, 하백의 외손이라 오늘 도주하는데 병사의 추격이 급하니 어찌 하랴" 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주어 물을 건너자 흩어졌다.


북부여기 가섭원부여기
시조 해부루 8년 임인(BC 79) 이보다 먼저 하백의 딸 유화가 놀러나가 부여 황손 고모수高慕漱의 유혹을 받아 강제로 압록강변의 집으로 가서 사통하게 되었다. 이에 승천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부모는 중매없이 따른 것을 책망하고 변방으로 유배보냈다. 고모수의 본명은 불리지인데 혹 말하기를 고진高辰(단학회는 고신이라 읽는다)의 손자라 한다. (중략)
28년 임술(BC 59)에 나라 사람들이 고주몽이 나라에 이롭지 않다 하여 죽이려 해서 고주몽은 유화 부인의 명을 받들어 동남으로 달아나 엄리대수를 건너 졸본천에 이르렀다. 명년(BC 58)에 새나라를 열었으니 이이가 고구려의 시조이다.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고리군왕 고진은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고 옥저후 불리지는 고진의 손자인데 모두 적도 위만을 토벌하여 봉작되었다. 불리지가 일찌기 서압록을 지나다가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나 기뻐서 거둬들여 고주몽을 낳았다. 그 때가 임인(BC 79) 5월 5일로 한 소제 원봉 2년이다. 불리지가 죽으니 유화가 아들 주몽을 데리고 웅심산으로 돌아갔다. 웅심산은 지금의 서란(지금 길림성에 있다)이다. 자라서 사방을 주유하다 가섭원을 택해서 살았다. 관가에 뽑혀 목마牧馬가 되었으나 얼마후 관가에서 꺼리자 오이, 마리, 협보와 달아나 졸본으로 갔다. 이때 부여왕이 후계가 없어 주몽이 드디어 사위가 되어 대통을 이으니 이가 고구려의 시조이다.

연대가 많이 요상하지만 꿋꿋이 지키는 원칙이 하나 잇는데, 그것은 주몽의 출생 연도다. 이유립은 그야말로 곧 죽어도 주몽이 BC 79년에 태어났다고 우기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본래 BC 37년 갑신년에 건국된 고구려의 역사가 BC 58년으로 조금 올라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평락 11년, 평락 13년의 간지가 하나도 맞지 않게 된다는 것. 평락 11년이라는 것 자체가 BC 37년 개국을 상정하는 것이다. 이유립, 대체 생각은 하고 연도를 고친 걸까?

삼성기전을 보면 주몽은 스스로를 천제의 아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태백일사를 보면 천제는 커녕 일개 후의 아들 - 그것도 무슨 이유에선지 봉작도 물려받지 못한 후의 자식에 불과하다. 북부여기를 보아도 그저 황손이라고만 나온다. 그럼 "천제의 아들"이라는 소리는 주몽의 구라였단 말인가?

삼성기전,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쭉 살펴보아도 주몽이 왕의 사위가 되기 전에 결혼했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다. 그런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말미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고주몽 재위 때에 늘 말하길 적자인 유리가 온다면 마땅히 태자로 봉하리라 했다.

삼국사기를 읽은 사람이야 뭔 말인지 알겠지만 환단고기만 본다면,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겠는가? 이유립은 고구려 이야기만 쓰다가 문득 백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빼먹은 게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쓰기도 귀찮으니 그냥 무시하고 적은 것이 바로 위의 이야기되겠다.




이렇게 짧은 주제를 하나 파고 들어도 위조와 날조의 흔적이 일주일 안 감은 머리에서 비듬 떨어지듯이 하는 책이 바로 환단고기다.

[추가]
이유립은 동명왕과 주몽을 분리해서 두 사람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은 고리국에 동명왕이 있었다는 부여의 전설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백제와 고구려에서 모두 섬긴 동명왕은 사실은 이 부여의 동명왕이고 고주몽이 아니었다는 학설도 있다. (나도 이 설을 지지한다.) 이유립도 두 사람을 분리해 놓긴 했는데, 학계 소식은 영 모르니 그것을 분리하면 백제 왕계도 변화를 줘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하지 못했으리라.

덧글

  • 엘레시엘 2008/11/24 19:28 #

    이런...중딩이 판타지 쓴다고 설정놀이 해도 이것보단 구멍이 덜하겠습니다 -_-;;;
  • 초록불 2008/11/24 21:21 #

    설정은 날아가는 판타지 소설도 많긴 하죠...^^

    문제는 이게 역사서라는 거지만...
  • 번동아제 2008/11/24 19:31 #

    굳이 다른 사료와 교차 검증을 통해 사료비판을 시도하지 않아도 일종의 내재적 접근법만으로도 헛점이 줄줄이 튀어 나오는군요.
  • 초록불 2008/11/24 21:08 #

    네, 자꾸 고치다가 점점 더 구렁텅이에 빠지는 거죠.
  • 耿君 2008/11/24 19:34 #

    좋은 포스팅을 연이어 쓰고 계셔서 감사히 보고 있사옵니다.
  • 초록불 2008/11/24 19:41 #

    사실 환단고기는 일용할 포스팅거리로는 쵝오지요...
  • 야스페르츠 2008/11/24 20:23 #

    사실, 임승국은 저 주몽의 출생 연대를 쓰면서도 실수하는 걸 잊지 않았습죠.

    분명 원문에는 元鳳으로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번역문에서는 元封으로 쓰는 삽질을...

    임승국의 주석 대로라면, 주몽은 BC109년 출생 이라능...
  • 초록불 2008/11/24 21:07 #

    호, 그랬군요.
  • 소하 2008/11/24 22:28 #

    원봉..ㅋ 그런일이...
  • 야스페르츠 2008/11/24 23:21 #

    ㅎㅎ 예전에 승리의 임승국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발견한 것이죠. 준비 단계에서 스톱하기는 했지만요... ㅡㅡ;
  • 초록불 2008/11/24 23:24 #

    시간만 충분하면 광오이해사본과 배달의숙본을 한 자 한 자 비교해서 뭘 고쳤는지 다 찾아내보고 싶긴 한데, 그만한 시간이 나질 않는군요. 건질 것들이 한 바가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뚱띠이 2008/11/24 20:44 #

    자기 글에서조차 틀리면 어쩌자는 건지....
  • 초록불 2008/11/24 21:07 #

    이런 오류가 있어서 진짜라는 소리가 나온다는데 붕어빵 10개 겁니다.
  • 소하 2008/11/24 22:25 #

    병신년. 우리 발음으로는 참 껄쩍지근 하네요. 헌데 <삼국사기>에는 "다물"의 뜻이 잃어버린 고토를 회복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나요? 그것을 연호를 사용했다는 것이 좀 웃깁니다. 환단의 고구려 발해쪽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한번 제대로 봐야겠습니다.
  • 소하 2008/11/24 22:27 #

    평락은 왕망과 관련된 용어 같은데, 확실히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연호라는 것이 특별한 뜻을 담고 있는 것이라서 그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뜻을 분석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 초록불 2008/11/24 22:36 #

    제가 작가라 인명, 지명 짓는 일을 종종 해봐서 아는데, 평락이라는 연호는 그냥 평양과 낙랑에서 한글자 씩 따온 겁니다. 다물을 연호로 쓰지 않은 것은 바로 소하님 지적과 비슷한 이유였겠죠. 그건 순 우리말이므로 연호에 사용하는 것이 우습다는 생각을 한 게 틀림없습니다.
  • 소하 2008/11/25 00:45 #

    아! 평양과 낙랑이군요. 이제 생각해 보니 평곽을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 연호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고구려에서 중국 지명인 "낙랑"을 사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지명을 사용하여 연호를 짓는다는 것도 한심하고, "평양"(평평한 벌판)의 지명도 후대에 만들어진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이유립의 온갖 허점들이 드러나게 되는군요. 위서를 창작한다는 것이 정말 쉬운일이 아니죠. 역사에서 제일 난해하고 광대한 부분이 전장제도일 겁니다.
  • 꽃곰돌 2008/11/25 02:18 #

    쌩뚱맞지만 새벽에 이 글을 보다 '연타발'에서 양 대창 전문점(강남역에 있는;)이 생각나네요... 배고프다ㅠ_-
  • 2008/11/25 14:1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8/11/25 14:25 #

    저도 그렇습니다. 이상하네요.
  • 경언o 2011/12/31 20:28 #

    주몽이 고씨로 성을 바꾼이후, 고구려를 20년간 통치하다가 훗날
    유리왕은 "해"씨인 상태로 고구려에와서 왕자가 되는데
    주몽은 2년만에 급사한후에 ..

    유리왕은 그전 고구려세력을 숙청하며 "오이" "마리"는 죽고 "협보"는 도망가고
    수도를 졸본성에서 국내성으로 옮겨서 소노부 "해"씨 정권이 시작하다가

    훗날 모본왕때 두노에게 피살당하고 "해"씨정권이 끝나며

    계루부 "고"씨인 태조왕이 왕이되고

    옛날 추모왕 ~ 모본왕 까지는 부족국가쯤이고

    태조왕이 되서야지 중앙집권국가가 되었다는 추측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ㅠㅠ.

    ps.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를 보니 대부분의 왕들의 묘호는 무덤과 관련있던데

    별생각없이 고구려의왕들의 묘호는 후손들이 왕이 묻힌 무덤/언덕에서 따온걸까요 ?

    ps. 4시간뒤에 새해복 많이받으세요 ~~
  • 초록불 2011/12/31 23:20 #

    글쎄요...
  • 경언o 2012/01/08 00:52 #

    아넵.ㅋㅋ
  • 2012/01/01 16:3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2/01/01 16:59 #

    잘 모르기 때문에 붙인 것입니다...^^
  • 경언o 2012/01/08 00:53 #

    고구려본기 대무신왕20년의 낙랑을 멸망시켯다는 기록은 낙랑국과 낙랑군중 낙랑근이겟지요??
  • 초록불 2012/01/08 01:57 #

    그 판단은 스스로 하셔야 합니다. 제 견해에 대해서는 http://orumi.egloos.com/3090612 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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