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교과서의 문제점 지적에 대해서 *..역........사..*



금성 교과서 개정(改定)이 개악(改惡)일까? 나츠메 님의 포스팅에 링크

나츠메 님은 금성 교과서가 사실 관계도 틀린 "소설"을 썼다고 주장하면서 네가지 항목을 예로 드셨습니다. 그 네가지 예에 반론을 드릴까 합니다.

근현대사 교과서는 조영수호조약을 1883년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실은 조영수호조약은 1882년에 있었고, 1883년에 '신조영수호조약'이 체결되었다.
-> 이것은 틀렸다고 이야기하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조선은 1882년 6월 6일에 조미수호조약과 동일한 조약을 만들어서 영국에 보냈습니다. 대개 근현대사 책이 이때 조약을 조인한 것으로 간단히 기술합니다. 그런데 조약은 이때 조인되지 않았습니다. 영국정부가 거부한 것이죠. 그래서 다시 조정에 들어갔고 최종적으로 조약이 체결된 것은 1883년 11월 26일로 조선전권대신 민영목과 영국전권대신 파크스 간에 이루어졌습니다. 비준교환은 1884년 4월 28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1883년이라고 썼다고 “틀렸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매우 정확한 기술이었다고 해야겠습니다.

갑신정변에 '민중의 지지가 없었다'고 금성교과서는 설레발을 친다.
-> 이 부분은 나츠메 님의 주관적인 해석일 뿐입니다. “민중의 지지”라는 것은 당시 국정에 대한 일반 백성들의 불만이 얼마나 있었는가에 따라서 결정되어집니다. 3.1 운동도 소수의 인원이 극비리에 추진했던 것인데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당장 당일에 서울에서 난리가 났던 것이죠. 불만이라는 폭약에 어떻게 도화선을 당길 것이냐의 문제인 것이며, 이점은 "사실과 해석"의 문제이지 일방적인 사실의 문제는 아닙니다.

금성교과서를 보면 독립협회가 영은문을 헐었다고 했으나, 영은문을 철거한 때는 1895년 2월로 그 때는 시기적으로 독립협회가 조직되기 이전이었던 시기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보면 1896년에 영은문을 헐었다고 나오네요. 또한 독립문 건립에 대해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1896년(건양 1) 미국 망명생활에서 돌아온 서재필(徐載弼)이 조직한 독립협회의 발의로 국왕의 동의를 얻어 뜻있는 많은 애국지사와 국민들의 광범위한 호응을 받아 1896년 11월 21일 정초식(定礎式)을 거행하여 1년 뒤인 1897년 11월 20일에 완공하였다.

독립협회가 생기기 이전에 독립문 건립이 들어간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이게 독립협회와 관련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겠습니다. 더구나 이런 것을 가지고 “황당하다”고 까지 이야기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참... 영은문 <옆>에 지은 것에 대해서는 저는 잘 모르겠지만-일단 날카로운 나츠메님의 눈썰미에 감탄하고- 영은문, 독립문 관계 기술된 대부분의 것들에 그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있더군요.)

금성 교과서는 제너럴 셔먼호가 '민가를 약탈'했다했지만, 그런 기록은 전혀 없다.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이런 기술이 나오네요.

그러나 프레스턴 일당은 물러가지 않았고, 야간에는 상륙하여 약탈까지 자행했다.

설마 한국민족문화대백과나 브리태니커가 모두 좌빨들에 의해서 만들어져서 이런 부분들이 있는 건 아니겠지요. 이런 것들을 가지고 역사가 아니고 소설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지나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백과사전을 가지고 주장하면 되냐, 뭐 이런 말씀들로 태클을 겁니다만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들이 백과사전에도 실려있는 기술이라는 것일 뿐입니다. 보편적으로 그렇게 여겨지는 사항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후 더 연구가 진행되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면 수정하는 것은 마땅할 것입니다.

나츠메 님은 잘못된 교과서를 고치라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 말씀하시는데, 그 점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그런 것을 정부가 강제하고 강요하는 것을 저는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입장은 이미 이전 포스팅에 담았으므로 중언부언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냥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도 교과서로 발매해서 교육시장에서 경쟁하는게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입을 틀어막으면 안 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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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온푸님 2008/11/30 13:57 #

    정 자기들 맘대로 교과서를 바꾸고 싶으면 다음 검정때 태클을 걸어서 바꾸면 될 것이지 아직도 국정교과서 시대 마인드로 상황을 판단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앞으로 정권 바뀔때 마다 '권한' 운운하면서 이 짓거리 한다고 칠때, 그 쪽 사람들의 반응이 참으로 궁금해지네요 ^^;
  • 공돌이 2008/11/30 14:00 #

    보수부패세력의 앞잡이의 주장에 너무 신경쓰지 마시지요.

  • 크악크악 2008/11/30 14:10 #

    김영삼 시절에 중,고교를 다닌 저도 갑신정변은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배웠는데....
    년도 관련 문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네럴 셔먼호 약탈과 갑신정변은 오래전부터 보편적으로 저렇게 알려져 있던걸로 압니다...
  • rumic71 2008/11/30 14:15 #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선조가 셔먼호와 싸웠다고 하는 마당인데 저 정도야...
  • 을파소 2008/11/30 14:15 #

    정작 교과부는 신경도 안 쓴 부분 같군요.
  • RLamiel 2008/11/30 14:19 #

    내용이 맞고 그르고를 일단 넘어간다손 치더라도
    '선례'가 생겨버린다는 것 때문에라도 신경이 쓰이죠
  • tore 2008/11/30 15:00 #

    브래태니커는 사람들이 작성하거잖아요? 라고 할려다가. 오 갇.

    생각해보니 위키. 제 무식을 만천하에 공개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결국 출판사들이 개정한다고 통보하고 말았네요.
  • 슈타인호프 2008/11/30 15:03 #

    건립 직후의 사진을 보면, 독립문 옆에 영은문의 석제 기둥돌만 덩그러니 서있더군요. 독립문이 영은문을 헐어내고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지지 않았다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게 뭐 큰 의미가 있는건지.

    하여간 이제 선례가 생겼으니, 다음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서 "우파" 교과서를 때려잡아도 할 말이 없게 생겼군요.
  • 초록불 2008/11/30 15:04 #

    선례가 생겼다고 그런 짓을 하면 안 되죠...^^;;

    그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역시 그래서는 안 된다는 포스팅을 하게 되겠군요.
  • Freely 2008/11/30 15:15 #

    그냥 민영화 시키면 됩니다 (...)
  • Wizard King 2009/08/30 02:22 #

    천재교육 판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재인용하자면 영문판 '독립신문'에서는 "국왕이 서대문 밖 영은문의 옛터에 독립문이라고 명명할 문을 건립할 것을 승인"했다고 나오는군요. 또 '대조선독립협회 회보'에 따르면 "전 영은문 유지에 독립문을 새로이 세"운다고 적었고요. 아마 당시에도 영은문 터에 짓겠다고 선언한 점을 특별히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적은 것에 불과한 듯합니다. 천재교육 교과서 서술에도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지었다고 했고 조선 말기를 다루는 몇몇 역사서에서도 그렇게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반적으로 그렇게 서술하던 것이 큰 무리 없다고 보아 수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기억나는 책은 이태진의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한 권뿐이군요.

  • 나인테일 2008/11/30 19:28 #

    이제 이 교과서로 수능 봤다간 교과서가 아니라 논문 갖다 들이밀며 오류네 뭐네 싸움박질 해야겠군요. 아주 그냥 아수라장이 될 것 같습니다. 에효.....
  • 행인1 2008/11/30 21:25 #

    '해석'이 좀 다른 저분 주장에 따르면 갑신정변 다음날 백성들이 육조 앞 거리에 몰려나와 천세라도 외쳤나 봅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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