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도 - ![]() 토드 스트래서 지음, 김재희 옮김/이프(if) |
서문에 있는 말을 먼저 적어본다.
<파도>는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어느 고등학교 역사 수업에서 실제 벌어진 일을 각색한 소설입니다. 역사 교사였던 벤 로스에 따르면, 이 사건 이후 3년 동안, 당시 일에 대해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수업시간에 역사 교사 벤 로스는 나치 독일의 참상을 소개한다. 당시의 참상을 보여주는 필름을 상영하자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독일 사람들은 전부 나치였나요?"
"그렇지 않아. 독일 사람 중에 나치 당원이었던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퍼센트도 안 돼."
"근데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했지요? 90퍼센트 넘는 사람이 그걸 막을 수 없었나요?" (p 25-26)
막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남이 대신 내려주는 명령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벤 로스는 다시 말한다.
"놀라운 일은, 전쟁 끝난 후, 나치 돌격대원들의 만행에 대해 독일 사람 대부분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고 주장했다는 거야."
"거짓말!"
"어떻게 천만 명이 죽는데, 아무도 몰라요?"
"사기예요." (p 26-27)
아이들은 나치의 실상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벤 로스는 생각한다. 그들에게 어떻게 이 점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
당시와 유사한 상황을 설정하면, 거기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하는지, 그런 실험도 가능하지 않을까? 언제 하루 날을 잡아, 일단 그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에 우리 각자 어떤 두려움을 느꼈는지, 그 결과 다음 행동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이런 것들을 한번 토론해 보면 어떨까? 마치 나치 독일에 실제 살고 있는 듯한 불안감과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 거기서 우리 아이들이 어떤 느낌을 갖게 되는지 실험할 수 있을 것이다. (p 52)
그리하여 그는 실험에 돌입한다. 첫번째로 내세운 것은 "훈련을 통한 힘의 집결"이라는 일종의 구호였다.
훈련을 위해서 먼저 올바른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반듯한 자세를 가르친 다음, 헤쳐와 모여를 통해 자리에 앉는 훈련을 시킨다. 이결과 아이들은 점점 더 신속하게 자기 자리에 앉게 된다. 48초, 30초, 16초. 기록은 점점 더 짧아지고 아이들은 그 기록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 훈련의 힘을 몸으로 느낀 것이다.
벤 로스는 다음으로 규율을 가르친다. 자신을 부를 때는 "로스 샘"이라고 부르게 한다. 그리고 답변은 간결하고 빠르게. 물론 올바른 자세로. 벤 로스가 지목하면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 "로스 샘!"이라고 말한 뒤 질문에 답변을 했다. 아이들은 이 실험에 빠져들었다.
복도에서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분위기가 엄숙하고도 비장했다. 모두 하나가 되어 열정과 감격에 사로잡힌 놀라운 경험이었다. (p74)
벤 로스 자신도 이 실험에 흥분했다. 그는 두번째 구호인 "공동체를 통한 힘의 집결"을 내놓고, 이 운동의 이름을 "파도"라 명명하는 한편, 파도타기 인사법까지 만든다.
벤 로스는 계속 지시한다. 세번째 구호로 "실천을 통한 힘의 집결"이 나오고, 파도 회원증이 발급된다. 이 회원증은 두 종류로 빨간 십자가가 그려진 회원증을 가진 사람은 파도의 질서를 유지하는 "갈매기 군단"이라 명명된다. 이들은 파도의 규칙을 어기는 회원 이름을 벤 로스에게 제출해야 한다. 그럼 파도의 규칙이란?
파도의 일원인 여러분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마치 커다란 기계의 일부가 된 것처럼 호흡을 맞춰 최대한의 협동심을 발휘하는 거야. 자기 맡은 몫을 더욱 더 열심히 하고, 단결심을 발휘할수록 우리는 더 빨리 배우고 더 많은 걸 성취할 수 있어. 하지만 모든 건 우리가 서로 돕고 함께 일하며 규칙에 복종할 때만 가능해.... 이 안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단 사실을 잊어선 안 돼. '파도' 안에서는 모두 평등한 회원일 뿐, 누가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지도 않고, 특히 누구를 제외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어. '공동체'는 평등한 구성원들의 조직이기 때문이야. (p 117-118)
그리고 그 다음으로 해야할 일이 결정된다.
우리가 이제 해야 할 일은 더욱 거센 '파도'를 일으키기 위해 새 회원을 확보하는 일이야. '파도' 회원이 되려면 먼저 우리의 규칙을 정확히 이해하고 여기 복종한다는 선서를 해야겠지. (p 118)
아이들은 소속감을 가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생긴다.
'파도'에 가입하겠다는 아이들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이렇게 학생 수가 늘고 수업 중에 수시로 파도타기 인사를 하고 구호를 외치는데도, 전보다 진도는 더 잘 나갔다.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리 숙제를 많이 내주어도 제 날짜에 모두 제출하고,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질문에 숨 고를 겨를도 없이 척척 기계처럼 대답을 했다. (p 127-128)
그러나 벤 로스는 서서히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벤 로스는, 아이들이 이렇게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해왔지만, 생각하는 힘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통째로 암기한 답을 줄줄 주워 섬길 뿐 자기 나름의 의문을 품거나 자기 방식으로 분석하는 면은 별로 없었다. (p 128)
하지만 벤 로스는 애초 실험의 목적을 찾으려고 한다.
아울러 벤 로스로서는 학생들이 이 '파도'에 그렇게도 열광하는이유가 무엇인지. 그걸 찾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건 애초 이 실험을 구상할 당시의 목적이기도 했다. 아이들한테 물어보면 그 답은 대개 비슷했다. 이건 무지 쌈박하고 새로운 유행이라고, 여직 경험해 본 적 없는 끝내 주는 느낌이라고 대답했다. 이를 통해서 모두가 평등해진다는 느낌 - 진정한 민주주의가 뭔지, 그 짜릿한 맛을 볼 수 있어서 좋다는 답들도 많이 나왔다. (p 129-130)
하지만 벤 로스는 이 실험이 공포를 불러 일으켜 그것을 체험하게 한다는 원 목적은 까먹고, 이 운동이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에만 매달린다.
아이들 사이에서 쓸데없는 경쟁이나 편 가르기가 줄어든다는 것도 그로서는 설레는 일이었다... 규율과 질서 대신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풍토가 어느덧 자리 잡아 요즘은 학생들에게 파도 식의 지도를 하지 않는다. 본인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선택할 일이지 교사들이 어떤 방향으로 학생들을 몰고가며 훈련을 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벤 로스는, 이런 교육이 옳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 시행 중인 실험을 통해, 학교에 다시 규율과 훈련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었다. (p 130)
벤 로스는 이 실험이 <타임>지에 실릴 수도 있다는 공상까지 한다. 하지만 곧 우려가 모습을 드러낸다. 우려는 교장으로부터도 왔다. 교장은 벤 로스를 불러서 말한다.
...한가지 더 명심할 일은, 벤 선생, 이 '실험'에는 아직 어리고 감성적인 미성숙한 아이들이 참여하고 있어요. 이 녀석들 덩치는 산만하지만, 실제로는 미숙하고… 우리의 기대만큼 충분하게 판단력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걸 잊기 쉽단 말입니다. 어른들이 잠시만 한눈을 팔면, 언제라도 엉뚱한 방향으로 달아날 수가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p 152)
교장의 걱정은 정확했다. 아이들은 파도에 가입하라는 강요를 받고 협박을 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새로운 현상이 발생한다.
요 며칠 벤 로스는 아이들이 '명령'이란 용어를 부쩍 많이 쓴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정작 최고 지도자인 벤 로스는 이런 표현을 사용한 적이 한번도 없다. 훌륭한 조직을 만들어 보겠다는 아이들의 상상력이 자꾸 부풀려지다 보니 이런 용어가 활개치게 된 것인데, 며칠 사이에 그만 지도자의 지시인 양 모두의 말버릇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p 159)
학교의 우등생인 로리 손더스는 이런 사태에 대해 우려를 갖게 된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학교 신문 '포도나무'를 통해 파도의 린치를 보도하고 파도를 비판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요즘 학교에서 극성을 떠는 '파도'는 무엇보다 생각의 자유와 의사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데, 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립의 토대로 국가가 보장하는 인간의 기본권마저 흔드는 위험하고 몰지각한 운동이다. (p184)
로리는 이 일로 위험한 처지에 놓인다. 남자 친구와 베스트 프렌드와도 사이가 멀어진다. 로리는 공부 잘하는 우등생으로 자신이 특별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평등한 사회인 '파도'를 질시하는 것이라는 평을 받는다. 사물함에는 "파도의 적"이라는 위협적인 문구가 적혀있다. 벤 로스 역시 신문을 보고 당황한다.
교사 휴게실에서 <포도나무>를 읽던 벤 로스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머리가 뽀개질 듯 심한 두통이 시작되었다. 뭔가 크게 잘못 되었다. 그건 분명하다. 벤 로스는 이 모든 불화의 원인이 바로 자기라는 생각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파도'로 인해 학생 하나가 뭇매를 맞았다니, 호되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p189)
벤 로스가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일 중 하나인, 학급 내 왕따 해소 문제도 서서히 엉뚱한 방향으로 진화해간다. 왕따였던 로버트는 가장 극렬한 파도추종자가 되어서 이제 로리를 왕따 놓는데 앞장 선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서구의 침략적 민족주의와 다르다고 입에 침을 튀기는 사람들은 이런 점에 부디 주목해 주기 바란다.)
벤 로스는 실험을 중지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다. 하지만 어떻게? 이미 파도는 제어하기 어려운 힘이 되어 넘실거리고 있다. 더구나 일방적으로 이 실험을 중단하는 경우, 아이들은 강압적, 강제적으로 실험을 마치게 된다. 그것으로는 아이들이 겪은 일들을 교훈으로 남길 수 없을 것이다. 그 점이 벤 로스의 뒤통수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벤 로스는 지도자가 되어 자기도 모르는 새 권력의 단맛을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교실을 꽉 메운 학생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면서 그를 따라서 숨쉬고 열광하며, 그의 명령에 복종했다. 자신이 고안한 파도의 문양과 포스터가 학교 여기저기에 붙고 보디가드까지 거느렸다. 본디 권력은 그토록 매혹적이라 사람을 혼수 상태에 빠뜨린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 몸소 겪은 셈이다. 독재자들이 즐기는 그 권력의 중독이라는 것을 그는 톡톡히 맛보았다. (p 218)
벤 로스는 이 모든 실험을 접을 방법을 떠올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씁쓸했다.
광기어린 파도에서 학생들을 뜯어내는 일을 완수하면, 그는 다시 예전과 같이 노곤하고 답답한 달팽이 행진을 지켜봐야 하고, 예전처럼 간신히 끼적여서 제출하는 과제물을 놓고서 또다시 잔소리를 늘어놓아야 한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인가? 제3의 방법은 없단 말인가?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개인의 자유를 담보하지 않고는 결코 이런 질서가 생겨날 수 없는 것일까? (p 246)
하지만 이제 끝내야 할 시간이었다.
짧은 시간 벤 로스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인간의 본성 안에 이런 허약함이 있다면, 그는 교사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점을 아이들에게 깨춰쳐 주어야 한다. 남의 의견을 무조건 따라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생각하고 끝까지 질문하는 법, 이른 바 자기 성찰 능력을 단단히 키워주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언제라도 같은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 (p 251)
이 책에는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중대하다면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 로리가 실험에 대해서 아버지와 이야기하는 장면인데, 이때 로리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실험의 목적과 이유를 알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뒤에 로리가 바로 앞에 이야기한 그 부분을 깨닫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더 혼란스럽다. 번역 상의 실수인지, 원전 자체가 잘못 되어있었던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 물론 이 부분이 어떻든 간에 이 소설이 이야기하는 것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나는 일부러 <파도>의 실험에 대한 이야기로 한정지어 이 책을 소개하고자 했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변화에 대해서는 이 책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사춘기 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꼭.
덧글
스포일러가 들어가 있습니다. 세세한 과정까지 모른다면 요지는 스포일러 당해도 상관
없으시다면 몰라도... 아니시라면 책 구입시 스크롤 내리지 마시길 권합니다... -.-;;;
그 근본이 되는 마인드가 위해하다면 결과 역시 위해할 수 밖에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근본이 선하다면, 무슨짓을 해도 긍정적인 결과가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네요.
뜬금없는 소리지만 가장 위대한 인간의 능력은 사랑이고,
다른 부차적인 제도나 발전적인 사상 없이
이 사랑만으로도 충분히 사회와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달리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서 ^^; 사이비 종교적인 말로 보일 수 밖에 없는거 같네요;
결말이 어떨지 참 궁금하네요.
소름 돋네요. 다민종 국가인 미국 같은데서도 저런 일이 가능하다니...
http://youtube.com/watch?v=GqOtsveuDm8
참고로 저 책의 내용은 순전히 로스 개인만의 이야기인지라 저 이야기가 실제 있었던 일이다 아니다의 논란이 일었습니다.
흥행에서도 꽤 성공해서 2백5십만명 이상이 극장에 들었다고 하네요. 2008년 독일에서 개봉한 모든 영화 가운데 9위의 성적이랍니다. (http://www.wulfmansworld.com/Die_besten_Filme/Kinocharts/Kinocharts_2008_-_Die_erfolgreichsten_Kinofilme.htm 참고)
교직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