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계몽사에서 나온 동화책 중 독일 동화집을 읽을 때면 늘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동화책의 첫번째 이야기는 바그다드의 임금님이 황새가 되는 이야기였고, 두번째 이야기에도 위대한 예언자 마호멧이 등장하는 등 책 절반이 넘는 분량이 아랍의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이상한 기분에 지도까지 찾아본 적이 있었다. 이건 터키 동화집 정도 되어야 말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독일의 동화작가가 아랍을 무대로 한 동화를 썼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한국적 판타지, 한국적 무협 운운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한국 사람이 중세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를 쓴 것을 한국 문학이라 할 수 있느냐거나, 한국 사람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무협소설을 쓰고 한국 문학이라 할 수 있느냐는 식의 무식한 주장은 훠이훠이 사라지길 바란다.)
이 작가는 빌헬름 하우프. 계몽사 독일동화집에 네 편의 글이 실려있으며, 그것들이 모두 22세에서 25세 사이에 쓰인 글이다. 하우프는 25세에 죽었다.

(사진은 새로 장만한 폰카로 찍었다. 이놈의 폰에서 사진을 꺼내려고 왼갖 삽질을...-_-;;)
비룡소 클래식으로 나온 책은 하우프의 첫 동화책인 <교양계층의 자녀들을 위한 동화연감 제1권 카라반 이야기>의 완역본이다. 그는 살아생전 세 권의 동화책을 냈다.
불행히도 독일동화집에 들어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 - <코장이 꼬마>는 다른 동화책에 있었던 모양으로 이 책에는 실려있지 않다. 하지만 그전에 보지 못했던 동화가 두 편 더 들어있었다.
총 5편의 동화가 들어있는데,
1. 황새가 된 칼리프 이야기
2. 유령선 이야기
3. 잘린 손 이야기
4. 파트메의 구출 (스타워즈 이야기는 아니라능...)
5. 난쟁이 무크의 이야기
가 그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6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액자 구조로 이루어진 이 책은 결말에 이르러 의외의 반전을 보여준다. 상당히 재미있는 책으로 크리스마스 선물로도 적당하다고 하겠다. (물론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역사 속으로 숑숑>이 훨씬 좋다....ㅠ.ㅠ)
![]() | 카라반 이야기 - ![]() 빌헬름 하우프 지음, 이지 트른카 그림, 박민수 옮김/비룡소 |
위 책그림을 누르면 알라딘으로 연결됩니다.
덧글
제가 어릴때 봤던 책에는 중동 민화라고 쓰여있었어요 ㅠㅠㅠㅠㅠㅠ
연재분 끄트머리 코멘트로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어서 기억에 남네요
"배경도 중국이고 등장인물도 전부 중국인인 구운몽은 중국적 소설입니까?"
당시 이래저래 이영도씨한테 '한국적 판타지'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거기에 대한 대답이었던 걸로 압니다.
뭐 결국 나중에 눈마새/피마새 시리즈로 한국적 판타지를 써내긴 했지만,
마법사가 영어 대신 한문 주문을 외우고 기사 대신 무사가 나오는 정도의
'한국적 판타지'를 생각하던 사람들에게는 꽤나 통렬한 일갈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작가는 혹시 당대의 '투르크빠' 셨을라나요 ^^;
그렇지 않아도 선물하려고 주문을 해볼까 생각중인데..
중학생 정도 까지는 무난하겠지요? "역사 속으로 숑숑" 시리즈 말입니다...
그쪽도 뒤져보면 건질게 참 많답니다.
초원의 집 시리즈랑 짐크노프도 당연히 그쪽에 분류되어있고...
(책을 깨끗하게 보는 편은...아니라서요^^;;;. 침칠해서 책장넘기거나 그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흠없이 보지는 못합니다)
이거 꼭 다시 보고 싶었어요!! 우아오아
아아아...저 파란 표지의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초등학교 5학년 때 옆집에서 갖다 버린 걸 몽땅 싣고 와서 지금껏 갖고 있습죠. 한데 하필이면 오늘 사진 찍어 올려주신 저 "독일동화집"은 어렸을때 표지 그림이 '예뻐서' 따로 빼 두었는데 그만 잃어버렸습니다. 그 이전 아주 어린 시절 광명시 하안동에 살때 역시 옆집에서 갖다 버린 걸 어머니께서 주워오신 빨간 표지 전집도 갖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책장의 무게를 줄이라는 어머니의 엄명으로 결국은 몇권만 빼고 몽땅 내버렸습니다. 저는 그밖에 에이스88과 에이브 전질을 아직까지 다 갖고 있는데, 어렸을땐 즐겨 봤어도 지금은 거의 안보는 터라, 언젠가 이사가면서 처분할 날이 오면 그때 살짝 블로그 광고로 분양을 내볼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2.
물론 18세기 후반에 전 유럽에 걸쳐 '동양/(북)아프리카' 유행이 불긴 했었습니다만, 특히 독일 사람들이 유난히 아랍 무대로 한 작품을 많이 쓴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아, 혹시 1926년 독일 애니메이션 영화 - 공식적인 세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인 - "아흐멧 왕자의 모험"을 보셨는지요? 그 영화가 하우프가 천일야화를 다시 각색한 "아흐멧 왕자"와 "파리바누"와 "알라딘" 을 뒤섞어 만든 작품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