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천재 조원리 *..역........사..*



다음은 갈홍이 지은 서경잡기에 나오는 내용이라 한다. - 해동역사에 실려있다.

현도(玄菟) 사람 조원리는 산술(算術)에 밝았는데, 한(漢)나라 성제(成帝 BC33~7) 때 사람이다.
조원리가 일찍이 그의 벗인 진광한(陳廣漢)을 찾아갔는데, 진광한이 말하기를,

“나에게 두 창고의 쌀이 있는데, 몇 섬인지 잊어버렸다. 자네가 계산해 보라.”

하였다. 그러자 조원리가 젓가락을 10여 차례 움직이더니 말하기를,

“동쪽 창고에는 749석(石) 2승(升) 7홉(合)이 있다.”

하였고, 또다시 젓가락을 10여 차례 움직이더니 말하기를,

“서쪽 창고에는 697석 8두(斗)가 있다.”

하였다. 그러고는 드디어 창고의 문에다가 이를 크게 써 붙였다. 그 뒤에 쌀을 꺼내어 헤아려 보니, 서쪽 창고에는 697석 7두 9승이 있었으며, 그 속에 1승을 먹을 만한 큰 쥐가 한 마리 있었다. 그리고 동쪽 창고는 조금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 조원리가 그다음 해에 다시 진광한에게 가자, 진광한이 쌀 숫자를 말해 주었다. 조원리가 손으로 상을 치면서 말하기를,

“쥐가 곡식을 먹을 것은 몰랐으니, 창피하기 그지없구나.”

하였다.

진광한이 조원리를 위하여 술상을 마련하였는데, 녹포(鹿脯) 몇 조각뿐이었다. 그러자 조원리가 다시 계산하여 말하기를,

“사탕수수밭이 25구(區)이니 1536매(枚)는 거둘 것이고, 토란밭이 37묘(畝)이니 673석은 거둘 것이며, 1000마리 소가 200마리의 송아지를 낳을 것이고, 1만 마리의 닭이 5만 마리의 병아리를 깔 것이다.”

하였으며, 양과 돼지, 거위와 오리까지도 모두 숫자를 말하고, 과일과 열매, 어육과 채소까지도 모두 얼마나 있는지를 알아맞혔다. 그러고는 이어 말하기를,

“이처럼 생활이 풍족한데 어찌하여 내오는 안주는 이 모양인가?”

하니, 진광한이 부끄러워하면서 말하기를,

“창졸간에 찾아오는 손님은 있어도 창졸간에 술상을 마련하는 주인은 없는 법이네.”

하였다. 그러자 조원리가 말하기를,

“도마 위에는 찐 돼지 한 마리가 있고, 주방 안에는 여지(荔芰)가 한 쟁반 있으니, 모두 술안주로 해도 될 걸세.”

하였다. 진광한이 두 번 절하면서 사죄한 다음, 직접 들어가서 꺼내 가지고 나와 종일토록 즐겁게 술을 마셨다.

그 뒤에 조원리의 산술법은 남계(南季)에게 전해졌고, 남계의 산술법은 항도(項瑫)에게 전해졌고, 항도의 산술법은 자륙(子陸)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모두 조원리의 헤아리는 법은 얻었으나, 산술법의 현묘한 이치는 잃어버렸다.


그런데 읽다보니, 사탕수수? 현도는 압록강 이북에 있던 땅인데 여기에 웬 사탕수수가 나온담? 물론 이런 경우 유사역사학에 빠진 사이비는 현도의 위치를 냉큼 중국 남방으로 옮겨놓겠으나, 이성을 가진 사람들은 물론 그렇게 하지 못하는 법.

원문을 보면, 藷蔗(저자)라고 나온다. 이것은 오늘날 분명히 사탕수수라고 번역되는 단어다. 갈홍은 동진의 인물로 <포박자>를 지었으며, 도사 노릇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283(?)~343년간에 살았다. 이 시기에 중국에 사탕수수가 있었을까?

[원문]
玄菟曹元理,並明算術,皆成帝時人。
元理嘗從其友人陳廣漢,廣漢曰:「吾有二囷米,忘其石數,子為計之。」元理以食箸十餘轉,曰:「東囷七百四十九石二升七合。」又十餘轉,曰:「西囷六百九十七石八斗。」遂大署囷門,後出米,西囷六百九十七石七斗九升,中有一鼠,大堪一升;東囷不差圭合。元理後歲復過廣漢,廣漢以米數告之,元理以手擊床曰:「遂不知鼠之殊米,不如剝面皮矣!」廣漢為之取酒,鹿脯數片,元理復算,曰:「藷蔗二十五區,應收一千五百三十六枚。蹲鴟三十七畝,應收六百七十三石。千牛產二百犢,萬雞將五萬雛。」羊豕鵝鴨,皆道其數,果蓏肴蔌,悉知其所,乃曰:「此資業之廣,何供饋之偏邪?」廣漢慚曰:「有倉卒客,無倉卒主人。」元理曰:「俎上蒸豚一頭,廚中荔枝一柈,皆可為設。」廣漢再拜謝罪,自入取之,盡日為歡。其術後傳南季,南季傳項瑫,瑫傳子陸,皆得其分數,而失玄妙焉。

핑백

  • 초록불의 잡학다식 : 바둑천재 박구 2009-03-05 09:09:59 #

    ... 황제의 기대조라고밖에 나오지 않지만 왕적신이나 고사언과 같은 사람들의 일화를 볼 때 그가 바둑의 천재이지 않고는 그 지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은 분명하다. 참고 인물 수학천재 조원리 [클릭] ... more

덧글

  • 카구츠치 2008/12/23 00:46 #

    남의 집 세간살림이 훤한 사람이었군요. 친구들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네요 하하
  • 하얀까마귀 2008/12/23 00:54 #

    요즘 버전이라면 "자네 PC의 야동은 전부 43.7GB이고 C:Documents and SettingsAll Users바탕 화면두루미새 폴더 (2)report 폴더에 들어있지 아니한가..." 쯤이겠군요. :)
  • 초록불 2008/12/23 00:59 #

    역사 밸리가 아니라 과학 밸리로 보낼 걸 잘못 보낸 것 같습니다...^^
  • windxellos 2008/12/23 01:00 #

    그나저나 다른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도마 위의 찐 돼지' 라든가
    '주방 안의 여지'가 산술법과 과연 어느 정도나 관련이 있을는지는
    다소 의문입니다. 제가 '산술법의 현묘한 이치'를 모르기 때문일까요.(...)
  • 초록불 2008/12/23 01:04 #

    그거야 집에 들어오다가 부엌을 슬쩍 훔쳐보고 온 때문이 아닐까요?
  • leopord 2008/12/23 01:05 #

    동아시아로 사탕수수가 전래되기 이전에 부르던 어떤 곡식(저자?)과, 실제로 전래된 사탕수수가 유사하기 때문에 이름을 붙인 건 아닐런지 어렴풋이 추측해볼 뿐입니다;

    조원리의 말씀을 듣고 보니 우리학교 경제학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 "경제학 교수들이랑 사학과 교수님들이랑 같이 있으면 우리가 좀 인품에서 밀리는 것 같아. 경제학이 엔간히 좀스러운 학문이어야 말이지!"
  • rumic71 2008/12/23 01:40 #

    요즘 같으면 '원리수학 1' 을 써 내어 큰돈 벌었겠군요.
  • Esperos 2008/12/23 01:48 #

    태평광기 算 편에도 나오는 그 이야기군요. 원래 태평광기가 워낙 방대한 이야기 모음집이라... 태평광기에는 비슷한 이야기가 더 있었지요. 가령 어떤 산술가의 제자가 너무 실력이 뛰어나 스승이 죽이려고 했는데, 제자는 스승의 계산이 어떻게 나올지 산가지로 미리 역산해서, 죽은 척하고 있었고...스승은 제자의 수에 넘어가 '그놈은 이미 죽었다' 해서 무리를 이끌고 죽이려다가 돌아갔다고요.

    한 산술가가 다른 사람 부탁을 받고 어떤 나무 잎파리를 계산했는데, 그 숫자가 맞는지 어찌 일일이 세겠습니까. 하여 나뭇가지를 흔들어 잎사귀 3개를 떨어트렸더니, 산술가가 계산을 수정하며 말하기를 "방금 잎사귀 3개가 줄었네"
  • 措大 2008/12/23 02:07 #

    초록불님이야 이미 잘 아시겠지만...다소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자면

    여기서 算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산술이나 수학이 아니라 역술에 해당하는 것이죠. 산대를 통해서 감춰진 것이나 미래의 것을 들여다보는...

    그건 그렇고 藷蔗는 저도 꽤 궁금하군요.
  • Esperos 2008/12/23 03:20 #

    옛 사람들 세계관을 따라가면, 현대와는 달리 수학과 역술을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겁니다. 하도 낙서 같은 거야 요즘은 마방진-수학의 영역이지만 고대 중국인들에게는 안 그랬듯이요. 음양오행에 팔괘가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도 수학이 동원된다니까요.
  • 초록불 2008/12/23 09:11 #

    네, 산학이나 산술이 모두 역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피타고라스도 종교인이었으니, 대충 수학의 원조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어서요. 저는 조원리가 암산의 천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암산법이란 사실 근대에 이르기까지 남에게 가르쳐준다는 것이 불가능했고, 지금도 원리가 모두 밝혀졌는지 잘 모르겠네요.
  • 들꽃향기 2008/12/23 02:43 #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그런데 서경잡기 원문에서는 조원리가 진광한을 만난 장소 자체가 장소가 현토로 되어 있는것 같지는 않습니다. 조원리가 현토 출신이라고만 되어 있을뿐인거 같에요;; 물론 전근대 사회에서 자기 고향을 떠나 이동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요. ;;

    그리고 사탕수수 자체는 중국에 비교적 빨리 알려져서 후한대의 설문해자, 이물지에 등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동진시기의 화가인 고개지가 사탕수수를 즐겨먹었다는 고사가 5세기경, 그리고 농정서인 제민요술에 등장하는 하는 것이 6세기경이니, 실용작물로의 제배는 그 사이의 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 초록불 2008/12/23 09:13 #

    菟는 토라고도 읽는데, "현도"라고 할 때는 "도"로 읽습니다...^^;; 저 구절은 동진때의 갈홍이 자기에게 익숙한 작물을 임의로 나열했을 가능성이 높겠네요. 후한 시대에 이미 알려졌다니 놀랍군요.
  • damekana 2008/12/23 10:19 #

    서경잡기의 저자가 누구인지 불분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한의 유흠이 쓴 것을 나중에 갈홍이 편집했다는 설도 있지요. 심지어 더 후대의 위작이라는 설도 있고요.
    그리고, 원문의 저 정체불명의 식물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사탕수수와 같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국 남부에서 자생한다고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 들꽃향기 2008/12/23 10:55 #

    초록불님//

    발음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 그리고 생각해보니 본문에 등장하는 여지도 남쪽지방 작물이군요; 아무래도 초록불님 말씀대로 갈홍이 아는 작물을 나열한거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둘의 만남이 현도군은 아니었을 것 같네요;;

    damekana님//

    사실 한대의 저작 대부분이 위작의 의심을 사고 있으니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다만 원문의 저 식물이 정말 사탕수수인지는 의문이 있지만, 세설신어나 농상집요에 나오는 표현은 그 식생지역이나 생김새, 먹는 방법등으로 봤을때 사탕수수는 맞는거 같습니다.
  • 누렁별 2008/12/23 14:39 #

    "기후의 반역(유소민 저)"란 책을 보면, 전한 때 황하 유역에서 벼와 대를 재배했다니 기후 조건만 봐서는 중원에서도 사탕수수 재배가 가능했을 겁니다. 전한 때까지 중원의 기후는 현재 동남아와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 muse 2008/12/23 03:02 #

    저야 역사에는 문외한이므로 사서를 참고하는 것은 꿈도 못꾸겠습니다만, 부족하게나마 구글신님께 여쭈어 보고 이리저리 맞춰본 결과 흔히 사탕수수라고 불리는 sugar cane (그러니까...그 동남아에서 기르는 대나무 같은 거요)는 일단은 압록강 이북에서 자란다는 소리가 뷁일 뿐더러 당나라 시대에서야 인도에서 승려들을 통해 그 농사법이 전해졌다고 나오네요.

    ...하지만 먹는 수수(sorghum)가 나오면 어떨까? (그러니까, 고량주 빚는 그거요...)

    수!
    수!

    ...예, 농담 따먹기는 그만하고, 보통 중국 동북부에서 재배되는 수수로도 품종에 따라서 당도가 높을 경우 설탕을 뽑을 수 있다는 군요. 사료로 쓰다가 요즘은 이걸로 먹는 당도 뽑고 연료도 만들고요. 이것이라면 압록강 이북에서 재배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따라서 한나라 시대때 재배되었던 '사탕수수'는 현대의 '사탕수수'가 아니라 요즘의 '수수'에 더 가까운 다른 종의 식물이었다고 뻘설을 올려봅니다.

    제가 확실한 증거만 있었으면 포스팅을 할텐데 이건 확실하지 않게 구글링 결과로만 도출한 추측성 의견이니 안 믿으셔도 됩니다^^
  • 초록불 2008/12/23 09:08 #

    우리야 수수와 사탕수수가 비슷한 거로 알지만, 당시 중국에서는 그랬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수수를 가리키는 한자어와 사탕수수를 가리키는 한자어가 관련이 없거든요. 藷는 참마나 산약에도 쓰인다고는 하지만...
  • muse 2008/12/23 11:27 #

    옙. 역시 헛소리였군요. 이래서 원래 자신의 주 분야가 아닌 포스팅에 설레발치면 안되는 겁니다.

    저는 쥐구멍을 찾아서...
  • 초록불 2008/12/24 00:55 #

    설레발이라니요...^^;;

    댓글 달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 새벽안개 2008/12/23 08:48 #

    역쉬 고대 중국 사람들의 과장은 재미 있군요. 5% 오차이내 또는 유효숫자 두자리 정도로 맞춘걸 과장해서 쓴것이 아닐까요. ㅎㅎ
  • 炎帝 2008/12/23 09:25 #

    사탕수수와는 상관이 없지만 동양에서의 산수라 하니 어릴때 주판 공부하던 기억이 나는군요.
    특히 나눗셈 할때 꽤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 초록불 2008/12/23 09:31 #

    고대는 잘 모르겠지만 조선 시대로 오면 산수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 야스페르츠 2008/12/23 09:31 #

    아무리 산술의 천재라지만 젓가락 몇 개 움직여서 창고 안에 든 곡식을 맞추다니.... 과장이 참 대단하군요.
  • 초록불 2008/12/23 09:37 #

    여기서도 대륙의 풍미가...^^
  • 소하 2008/12/23 21:40 #

    읽어본 적은 있는데, 왜 저 구절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날까요?
  • 루드라 2008/12/23 21:42 #

    조금 뒤 이야기지만 고개지가 사탕수수를 먹을 때 다른 사람과 달리 달지 않은 부분부터 먹기 시작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그렇게 먹어야 점점 달고 맛있어 진다 하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단맛을 보기 위해 수수대를 먹는 것이니 요즘 수수가 아니고 사탕수수가 확실한 거 같습니다.
  • wholic 2008/12/24 00:03 #

    근데 이건 아무리 봐도 산술이 아니라 투시나 초능력인데요..;;
  • 초록불 2008/12/24 00:56 #

    미래인이 타임머신을 타고 갔을지도....^^;;
  • ExtraD 2009/03/06 07:57 #

    3세기-4세기 때 인류가 알고있던 수학수준을 고려하면 위에 언급된 '투시력'에 동원되었을 사칙연산은 그리 인상적인 수준은 아니네요.

    그가 남긴 수학 교과서나 기타 저술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초록불 2009/03/06 09:17 #

    그냥 저 일화만 남은 것이죠. 사실 수학자라기 보다는 초능력자...죠...^^;;

    수학책들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는 언제 한 번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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