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치가 *..역........사..*



그는 스물하나에 첫 과거에 합격했고, 스물넷에 연달아 세 번 장원을 하고 스물다섯에 관직에 나아갔다. 스물여덟에 북방의 외적과 싸웠으며 서른여섯에 서쪽에 있는 대국으로 사행을 떠났다가 타고 있던 배가 풍랑에 침몰하여 표류했다. 그는 말다래(말안장 아래 늘어뜨린 진흙막이)를 베어 먹으며 바다 위에서 버텼다. 열사흘째 지나가던 배에 구조되었다. 그는 돌아가지 않고 기어이 황제를 만났으며, 나이 마흔하나에는 더 위험한 동쪽 나라로 역시 바닷길을 따라 사행을 떠났다. 마흔넷에 남쪽에서 온 도적떼와 싸워 적은 수로 많은 수를 이겼으며, 마흔여덟에 다시 서쪽 대국으로 배를 타고 떠났다. 모든 이들이 그곳에 가기를 꺼려하거늘, 이미 한 번 빠져죽을 뻔했던 그는, “임금님과 아버지의 명이라면 물불도 가리지 않거늘 하물며 천조에 가는 일이겠습니까?”라고 말한 뒤 곧바로 일어나 길을 떠났다. 스물여덟부터 근 30년간 생사고락을 함께 한 장군이 있었으니, 그가 반역을 꾀함을 알고 그를 따르지 않았다. 장군의 아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결국 그를 죽이고 말았으니, 그의 성은 정, 이름은 몽주다.

그의 머리는 저자에 효수되어 매달렸으나, 누구도 그의 충성을 의심하는 자 없었다. 그는 백성을 위해 의창을 만들어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제했으며, 조운을 바로 잡아 국세의 낭비를 막았고, 인사를 올바르게 하여 나라의 기강을 세웠다. 전장에 종사하며 외적을 물리쳤으며, 이웃나라를 다니며 국교를 맺었다. 큰일을 하나 작은 일을 하나 안색과 음성이 전혀 변하지 않았으며 오부학당과 향교를 세워 교육의 근본을 바로 잡았다. 그는 개혁을 원했고, 그를 위해 매진했으나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일찍이 이런 말을 했다.

“믿음은 군주의 큰 보배이니 나라는 백성으로 보전하고 백성은 믿음으로 보전된다.”

믿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증오밖에 들어올 것이 없으니, 오늘날 이런 정치가가 보이지 않음이 한스러울 뿐이다.

덧글

  • 아롱쿠스 2009/01/03 18:04 #

    특히 한국 외교관들이 배워야 할 표상입니다~
  • R쟈쟈 2009/01/03 18:08 #

    결국은 그를 죽인 장군의 후예들도 그를 인정하여 사당을 지어 제를 올려 그 충의를 찬양했지요. 대단한 사람입니다.
  • 2009/01/03 18:1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01/03 18:17 #

    앗...^^;;

    처음에 스물두 살로 계산을 잘못 해서...^^
  • 회색인간 2009/01/03 18:16 #

    요즘 들어 더 그리워집니다....
  • 계원필경 2009/01/03 18:29 #

    이런 분이 한 국가의 마지막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안타까울 노릇이죠...(충성심이기도 하지만...)
  • 마데모시 2009/01/03 18:31 #

    좋은 사람이네요
  • 꽃곰돌 2009/01/03 18:49 #

    그런 사람은 반드시 요절한다는 게 역사에서 증명하니... 그리고 요절한 뒤에는 개죽음으로 묘사되게끔 언론이 뒤틀려 버렸으니... 더 이상 나타날 수 없고 있어도 숨죽이는 게 아닐까 싶네요...
  • AlexMahone 2009/01/03 20:22 #

    절로 존경심이 생기네요...

  • 해방 2009/01/03 20:24 #

    이제는 이런 분들을 볼 수 없다는 현실이 참 가슴 아픕니다.
  • 네비아찌 2009/01/03 20:52 #

    그런데 정몽주가 효수되었습니까? 제 기억에는 이성계가 안타까워하며 후장할 것을 지시한 걸로 아는데요.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이방원은 이성계한테 못된놈으로 찍혀 버렸고요.
  • 초록불 2009/01/03 20:54 #

    고려사 정몽주 열전에 의하면 효수되어 저자거리에 목이 내걸렸으며 가산이 적몰되었습니다.
  • dunkbear 2009/01/03 21:26 #

    살해 당해서 효수된데다 가산까지 적몰되었다는 전례가 있으니 오늘날에 저런 인물이 없는지도 모르겠네요. 국가를 위해 몸 바치다 죽거나 집안이 풍비박산난 애국자들과 그 후손들은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고 친일부역자들은 제 세상 만난 듯 판치고 무슨 짓을 해서든 돈 많이 벌고 출세하면 장땡인 이 사회에서 21세기의 정몽주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겠지만요. 쩝.
  • 自重自愛 2009/01/03 21:37 #

    매우 매우 매우 매우 사소한 딴지입니다만 정몽주가 베어먹은 것은 옷이 아니라 말다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주)
  • 초록불 2009/01/03 21:48 #

    아, 그렇습니까? 그 부분이 제가 가진 녀석이 하필 한자가 깨져서 다른 것을 보고 썼더니... 얼른 고쳐놓겠습니다. 저도 좀 의아하더라고요.
  • muse 2009/01/03 22:31 #

    말다래 이야기 나오니까 딱 정몽주 생각 나더군요. 정말 대단하신 분, 외교관과 정치가의 모범이셨습니다.
  • highenough 2009/01/03 23:08 #

    삼봉은 포은을 일컬어 입에서 나오는 대로 혹여 횡설수설 말하더라도 도에서 벗어남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했죠.

    휴우..
    나라가 어려울 때일수록 더 저런 정치가가 나올 수 있고 그런 거긴 한데.. 요.. 휴우..
    지금 시대는 이런 순수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 않죠.
  • 比良坂初音 2009/01/03 23:11 #

    후우......지금 꼬라지는 그 오랜 옛날서부터 이어져 온거지요 눼미...
  • organizer 2009/01/04 05:02 #

    (별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그런 정치가는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
  • 어릿광대 2009/01/04 07:50 #

    마지막에서 가슴이 찡해지는 글이네요..
    이런 정치가 지금도 나왔으면 좋겠네요 ㅠㅠ
  • 미리내 2009/01/04 09:21 #

    덕분에 공부 잘 했습니다. 장기 플랜을 가진 개혁이 무엇인지 진작 잘 보여주신 위대한 스승임에도 승자가 기록하는 역사 때문에 우리에게 잘 인식되지 않고 있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오부학당과 향교운동은 이 시점 우리가 준비할 일이 무엇인지 뚜렷이 얘기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MadEye 2009/01/04 11:19 #

    하지만 이후 특히 사림에게는 절의의 대명사로 추앙받으셨지요. 진정한 선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절의의 면에서는 의문이 없을 것 같네요.
  • 프랑켄 2009/01/04 13:49 #

    정몽주 이사람 일대기를 한 번 드라마로 만들어 보는 것도 정말 좋겠습니다. 인생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이니깐요ㅋㅋ
    아무튼 자기를 죽인 자들이 세운 나라에서 충신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그 크신 업적 내공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네요.
  • 초록불 2009/01/04 18:13 #

    여말선초기는 정말 후덜덜한 케이스의 대하드라마가 가능하죠. 지금껏 <개국>이라는 드라마 밖에 안 만들어져서 아쉽습니다. 원래 그 <개국> 드라마의 원작이 좀 그러저러해서... (이런 대목에서는 이준님의 눈치를...^^;;)
  • 굽시니스트 2009/01/04 14:11 #

    그의 고향은 경성 도영천군... 이 아니라 경상도 영천군.....;ㅁ;
  • 초록불 2009/01/04 18:12 #

    하하...^^
  • 암호 2009/01/04 23:02 #

    그런데, 혈죽전설이 희안하게도 민영환에게도 나오지요. 근데, 두 사람 모두 용인시에 안장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제가 3번 역사 수업 관련으로 다녀왔지요. 모교 뒤에 민영환 묘가 있어, 초등시절 거의 매일 보고,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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