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읽으며 성공과 실패를 헤아린다 *..역........사..*



천하의 일이란 대저 8~9할이 요행[幸]으로 이루어진다. 사서史書를 보면 고금을 막론하고 성패成敗와 이둔利鈍이 그 시기의 우연에 따른 경우가 많고, 심지어 선한 쪽과 악한 쪽,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에 대해서도 그 실상을 반드시 알아낸다고는 볼 수 없다.

옛날 사서를 편력하여 상고하고 여러 서적을 방증旁證하여 이리저리 참작하고 비교해 보니, 오로지 한 서적만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옛날 정자程子(정이천)는 사서를 읽다가 한 반쯤 이르러서 문득 책을 덮고 한참동안 생각하여 그 성공과 실패를 짐작한 후에 다시 읽었고, 또 사실이 잘 맞지 않는 곳이 있으면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깊이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그 안에 요행이 있으면 성공하고 요행이 없으면 실패하는데, 합치하지 않음이 많고 합치한다 해도 가히 믿을 바가 못 되었다.

역사가는 성공과 실패가 이미 결정된 후에 사서를 쓰므로 그 성패成敗에 아름답게 꾸미기도 하고 나쁘게 깎아내리기도 하여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만들어버린다. 또한 선한 쪽에 대해서는 그 잘못을 많이 숨기고, 악한 쪽에 대해서는 그 좋은 부분을 반드시 없애버린다. 따라서 어리석음과 슬기로움에 대한 판별이나 선악에 따른 응보를 마치 알아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훌륭한 계책이었어도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있고, 졸렬한 계획이었는데도 우연히 화를 피한 것도 있으며, 선한 가운데 악이 있었고 악한 가운데 선함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천 년이나 지난 후에 무엇을 따라 그 옳고 그름을 바르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서에 따라 그 성공과 실패를 헤아릴 때면 그대로 맞는 곳이 많지만 오늘날 목격한 것을 따라 생각하면 8~9할 쯤이나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것이 비단 내 지혜가 밝지 못한 탓만은 아니다. 이것은 즉 요행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사서가 참되지 않기 때문에 그에 비춘다면 오늘날 일도 이치에 맞지 않게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천하대사란 그 처한 바의 형세가 최상이며, 요행이 있고 없고가 그 다음이며,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최하라 생각한다.


- 이익, 성호사설, 경사문, 독사요성패讀史料成敗


예전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클릭]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나는 "어떤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역사라는 것이 단순히 승자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인 것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위의 글을 쓴 이익은 18세기 중엽, 쉽게 말해서 숙종 - 영조 때의 선비입니다. 형이 장희빈을 두둔했다가 옥사를 당해버리자 관직에 미련을 버리고 낙향해서 살았던 사람이죠. 평생을 책만 좋아해서 끝내 모든 가산을 말아먹고 83세에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학문적 경지는 꽤나 높아서 성호사설은 지금 읽어보아도 그 박학다식과 날카로운 식견에 감탄할 때가 많은 좋은 책입니다. 위의 이야기, 즉 "역사를 읽으며 성공과 실패를 헤아린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옛날 사서의 경우 패주는 방탕하고 음란하지 않은 경우가 없습니다. 그래서 옛 역사책을 읽다가 그 군주가 음란하고 방탕하고 사치스럽고, 아무튼 부정적으로 기술되면 그가 실패하리라는 것을 쉬 맞출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단지 그런 식으로 도덕을 성패와 연관지어 지금 오늘날 일어나는 일에 빗대어 본다면 도무지 맞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대통령 선거와 총선과 교육감 선거가 이 모양인가, 처럼 작금의 현실에 비추어 본다 해도 똑같은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익은 바로 그런 바를 헤아려가며 역사를 해석해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유교적인 관점에서 도덕적 역사를 논하는 단계를 벗어나 객관적 역사의 실체로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죠. 그가 요행을 이야기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으로 형세를 꼽은 것도 주목해서 보아야 하겠습니다. 형세가 결정되고 나야 요행이 있건 없건 그 성패가 나타나는 것이니 이는 아주 당연한 것이라 처음에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최하라는 것은 도덕과 명분을 따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역사해석에 있어서 그것을 제일 아래에 놓는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남겨진 사료를 통해 진실을 찾아가는 역사가의 작업은 역사를 해석하는 과정이며, 그것은 의심하고 비판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익도 알고 있었던 것이죠.

덧글

  • 스카이 2009/01/04 22:50 #

    역사를 공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겠죠.
  • tore 2009/01/04 23:12 #

    어째 어째 요행이라 함은 입맛대로 '하늘의 뜻이다'라고 바꿔 말할수도 있겠군요.
    (정당화 혹은 체념으로)
  • dunkbear 2009/01/05 08:48 #

    요행으로 승리자가 되면 하늘의 부름을 받은 것이고
    요행 때문에 실패하면 하늘의 버림을 받은 것으로... 흠.
  • 새벽안개 2009/01/05 09:41 #

    역사의 이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래야 할텐데.... 저는 아직 이렇게 생각이 돌아가지 않네요.
  • leopord 2009/01/05 18:46 #

    성호선생의 이 글을 읽으면서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역사를 통찰하는 그 안목이 어찌나 뛰어난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과 로마사논고에서 했던 이야기-왜 같은 방법이 다른 결과를 낳고, 다른 방법이 비슷한 결과로 이어지는가-를 고스란히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역시 대가들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서로 통하는 것일까요? (성호선생과 마키아벨리 둘 다 은거할 때에 역사를 논했다는 것도 비슷하군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유사역사아웃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