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말 *..역........사..*



2004년 6월 2일 원로출판인 최덕교 선생이 [한국잡지백년]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 안에 "어린이"라는 말이 소파 방정환이 사용한 것보다 먼저 사용되었다는 주장이 실렸다.

그 내용은 6월 4일 연합뉴스에 다음과 같이 보도되었다.
[연합뉴스] 원로 출판인 최덕교씨 「한국잡지백년」 펴내 [클릭]
'어린이'라는 낱말을 소파 방정환이 처음 지어낸 것이 아니라 육당 최남선이 1914년 10월 「청춘」 창간호에 '어린이의 꿈'이란 권두시를 실으면서 처음 사용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굴, 기록하고 있다.

저 말만 보면 오해의 여지가 있다. 최남선이 [어린이의 꿈]이라는 시를 지은 것처럼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부분에서 기사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저 기사에서는 최남선이 시를 지었다는 말이 없고, 단지 "실으면서"라고 하여 그 시를 실었다는 이야기만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렇게 주장했다.
[연합뉴스] "어린이, 방정환보다 최남선이 먼저 사용" [클릭]
최덕교 창조사 대표는 최근 출간된 「한국 잡지 백년 1-3」(현암사 刊)에서 "1914년 「청춘」 창간호 '어린이의 꿈'이라는 권두사에 어린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됐다"며 "권두시의 저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잡지의 주관자가 육당인만큼 육당이 어린이의 저작권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저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덕교 선생 역시 "가능성이 높다"라고만 말한 것이고, 또한 "어린이"라는 말만 나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한 저 기사에는 기존에 알려진 사실도 기재하고 있다.

지금까지 어린이라는 말은 소파 방정환이 1920년 8월 「개벽」 3호에 실린 번역 동시 '어린이의 노래'를 발표하면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엄밀히 말한다면 위의 기사와 아래 기사 모두 틀린 부분이 있다. 시의 제목이 모두 틀려있다.

청춘 창간호에 실린 시 제목은 <어린이 꿈>이고, 방정환이 처음 어린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하는 시의 제목은 <어린이 노래 : 불 켜는 이>다. 이 <불 켜는 이>조차 인터넷 상에서는 <불 켜는 아이>로 잘못 쓰인 곳이 매우 많다.

먼저, 소파 방정환의 <불 켜는 이>를 보자. 이 시는 번역 시로 알려져 있는데, 누구의 시를 번역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린이 노래 : 불 켜는 이

기난 긴 낮 동안에 사무를 보던
사람들이 벤또 끼고 집에 돌아와

저녁 먹고 대문 닫힐 때가 되며는
사다리 짊어지고 성냥을 들고
집집의 장명 등에 불을 켜놓고
달음질 해가는 사람이 있소

은행가로 이름 난 우리 아버지는
재주껏 마음대로 돈을 모으겠지
언니는 바라는 대신이 되고
누나는 문학가로 성공하겠지

아 나는 이 다음에 크게 자라서
이 몸이 무엇을 해야 좋을지
나 홀로 선택할 수 있게 되거든
그렇다 이 몸은 이와 같이
거리에서 거리로 돌아다니며
집집의 장명 등에 불을 켜리라

그리고 아무리 구차한 집도
밝도록 훤하게 불 켜 주리라
그리하면 거리가 더 밝아져서
모두가 다 같이 행복 되리라

거리에서 거리로 끝을 이어서
점 점점 산 속으로 들어가면서
적막한 빈촌에도 불 켜 주리라
그리하면 세상이 더욱 밝겠지

여보시오 게 가는 불 켜는 이여
고달픈 그 길을 외로워 마시오

외로이 가는 불 켜는 이의
이 몸은 당신의 동무입니다.


이 시는 <어린이 노래>라는 이름 아래 실려 있는 것과 같이 한 어린이가 자신의 꿈과 희망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즉 오늘날의 "어린이"와 동일한 뜻을 가지고 사용된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1914년 <청춘>에 실린 시 <어린이 꿈>을 보자. 이 시는 노래로도 만들어져서 악보도 같이 실려있는데, 그 악보를 올려놓도록 하겠다.

시를 대충 지금 말로 옮기면 이렇게 된다.

어린이 꿈

아침 해에 취하야 낯붉힌 구름
인도 바다의 김에 배부른 바람
홋홋한 소근거림 너 줄 때마다
간지러울사 우리 날카론 신경

초록장草綠帳 재를 두른 님의 나라도
네게듯 고아라서 그리워하고
화로수花露水 흘러가는 기쁜 가람에
배 타려고 애씀도 원래 네 꼬임

처음 고인 포도주 같은 네 말을
길이 듣게 귀밝기 내 바람이니
취하리라, 취하여 네 기운 타고
날개 돋쳐 나는 듯 두루 날리라

내 볼이 두둑하고 더운 피 돌아
따뜻한 네 입맞춤 받을만 하니
닿도록 어깨 걸어 동무해주게
불빛 빤히 오라는 하늘 저편에


보다시피 이 시는 술을 마시고 입맞춤을 하는 등, 어린이를 위한 시도 아니고 어린이가 주인공인 시도 아니다. 여기서 쓰인 "어린이"라는 단어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어린이"라는 단어와는 그 뜻이 다르게 사용된 것으로, 그저 "어린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 사람" 정도가 적당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파는 청춘 지에 투고도 하였다고 하니 이 단어가 소파에게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가능성일 뿐이다.

"어린이"라는 단어 자체는 그 전에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을 어린 사람에 대한 존칭적인 의미를 담아서 새로운 낱말로 만든 사람이 소파 방정환이라는 점은 이런 단어 하나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흔들리지는 않는다. 뉴스가 센세이셔날한 것을 찾아가는 것이야 늘상 있는 일이니 그것을 탓할 일은 아니겠다. 하지만 어떤 자료가 기존 통설에 변경을 가져오려고 한다면 그만한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주장으로 본다면 이런 주장도 있다.
[부산일보] '어린이'란 말의 어제와 오늘 [클릭]

전 한글학회 부산지회장 류영남 씨가 2006년 5월 2일에 올린 글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볼 때,17세기 '가례언해'나 '경민편언해'들에서 모습을 보인 오늘의 '어린이'란 말은,1914년 10월 '청춘'지에서 '어린이 꿈'으로 나타나고,1920년 8월 '개벽'지에 실린 방정환의 '어린이 노래'로 우리에게 다가온 말이라 하겠다. 그리고 '어린이'는 원래부터 있던 우리말로 최근세에 잡지에서 이 말을 처음 쓴 이는 최남선이요,'어린이'란 잡지 등으로 이 말을 널리 보급한 이는 방정환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본다.

그러나 글쓴이의 수고로움은 칭찬해 줄 수 있어도 그 결론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청춘> 지에 실린 <어린이 꿈>에 사용된 "어린이"는 오늘날의 "어린이" 즉 소파가 만든 "어린이"라는 단어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덧글

  • 코코볼 2009/01/05 16:42 #

    음, 어원이 된 말이 될 수는 있지만 결국 어린이라는 말을 현재의 의미에 맞게 사용한 사람은 부정할 수 없이 방정환이라는 것이로군요.
  • 초록불 2009/01/05 16:42 #

    좋은 요약입니다...^^
  • 슈타인호프 2009/01/05 16:51 #

    원래 조선시대의 "어리다"는 "어리석다"는 의미였죠(경상도 사투리에는 아직 "어리하다(멍청하다, 어리숙하다)"는 단어가 남아있습니다).

    1914년의 노래가 조선시대처럼 어리석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오늘날의 어린이와 똑같은 의미라고 보기는 조금 곤란한 것 같습니다.
  • 초록불 2009/01/05 16:55 #

    네, 맞는 말씀입니다.

    어리다는 나이가 "어리다"와 머리가 "어리석다"로 조선 중기에 이미 분화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직 띄어쓰기가 정착하지 않은 단계인 지라 "어린이"라고 쓰여 있다고 해도 "어린" "이"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젊은이와 늙은이는 단어로 확실히 자리를 잡은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어린이를 가리키는 "아이"라는 단어가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따라서 소파가 "아이"를 존중하는 의미로 "어린이"라고 부르자고 했을 때, "어린이"는 새롭게 발견되었고, 그 단어 또한 새롭게 등장한 것이지요.
  • 천지화랑 2009/01/05 17:17 #

    근데 최남선이 실었다는 시는 도통 의미가 와닿질 않는군요. -_-;;
  • 초록불 2009/01/05 17:25 #

    7.5조에 맞추려고 너무 무리한 시 같습니다.
  • 누렁별 2009/01/05 17:55 #

    "술김에 새우잡이배에 오르는 어린이"가 떠올랐습니다 -_-;
  • rumic71 2009/01/05 17:24 #

    뻘건 산타클로스와 코카콜라의 관계 같은 것이로군요.
  • 메피스토 2009/01/05 18:14 #

    성인 남자와 여자가 얼러서 생긴 이라서 "어린 이" 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하하
    나이가 되서 이성과 얼른 경험을 갖게 된 사람은 "얼른, 어른" 이라거나 말입니다 :)
  • MadEye 2009/01/05 18:54 #

    이 해석도 그럴듯한데요? '얼다'라는 말이 그런 뜻이고보니... 하지만 역시 어렵네요.
  • 하리 2009/01/06 12:05 #

    잘봤습니다. 어떤 사실이 통념화 되고 바뀌지 않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법이죠.

    근데 초록불님도 은근 뒤끝있으신듯 ^^;;
  • 루드라 2009/01/06 13:14 #

    최남선의 저 시는 차라리 "어린(혹은 어리석은) 이 꿈"이라고 해야 바른 제목이 될 듯 싶네요. 아무리 봐도 어느 예쁘장한 기생에게 반한 어리숙한 한량이 부르는 노래 같군요. 최남선이 처음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목만 보고 가사는 보지 못한게 확실할 듯 합니다.
  • 초록불 2009/01/07 08:54 #

    사실 보도자료에 제목도 틀린 걸 보면 직접 확인하지 않은 건 아닐까 하는 의문도 있습니다만, 그건 저도 그 책을 직접 보지 못한 관계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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