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 여동생 버전 *크리에이티브*

정말 내 이야기를 꼭 듣고 싶다면, 내가 어디서 출생하고, 내 칠칠치 못한 오빠와 지낸 어린 시절이 어땠고 부모님의 직업은 무엇이며, 그들이 날 낳기 전에 뭘 했다는 등의 너저분한 이야기를 알고 싶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난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그런 이야긴 우선 따분한데다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알면 오빠는 적어도 두 번은 뇌일혈을 일으킬 테니까요. 오빠는 그런데 되게 민감하거든요.

난 세 명의 오빠가 있었어요. 제일 큰 오빠 D.B는 헐리우드에 가 있지요. 네, 영화를 만드는 헐리우드요. [비밀 금붕어]라는 단편을 쓰고 헐리우드로 갈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런 소설을 누가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자기 돈으로 금붕어를 샀다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는 그런 재미도 없는 이야기거든요.

둘째 오빠 홀든은 문제아예요. 벌써 세 번이나 퇴학을 당했지요. 이제 또 퇴학을 당하면 정말 어떻게 할지 모를 거예요. 과목은 죄 낙제고 대체 앞으로 뭘 하고 싶어하는지 조차 알 수가 없어요. 열일곱 살이나 되어서 아프리카가 어디에 있는지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도 모르니까요. 오빠는 아무 것에도 집중하지 못해요. 아마 자기 생각에도 집중하지 못할 거예요. 늘 엉뚱한 생각만 하다가 뭘 물어도 제대로 대답하는 일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셋째 오빠 앨리는... 6년 전에 폐결핵으로 죽었어요. 난 그때 네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종종 함께 놀러가곤 했던 걸 기억해요. 그때는 둘째 오빠도 멀쩡했었는데...

그날은 헤이즐이 나오는 탐정소설을 조금 쓰고 자고 큰오빠 방에 자고 있었어요. 큰오빠는 집을 비우면 내가 자기 큰 침대에서 자도 된다고 했어요. 난 거기서 기지개를 쫙 펴는 것을 좋아해요. 이 소설을 내가 언제 끝낼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나도 언젠가는 큰오빠처럼 헐리우드로 나가서 내 이야기를 영화로 찍고 싶어요. 헤이즐의 성은 웨더필드였는데, 나는 그 이름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내 가운데 이름으로 사용하기로 했어요. 내 가운데 이름은 본래 죠세핀인데, 그건 너무 촌스럽거든요.

오빠는 또 퇴학을 당한 거예요. 어떻게 하면 좋지요? 아빠는 이제 오빠를 죽이려고 할 거예요. 하지만 바보 같은 오빠는 자기 편한대로만 생각하고 있어요. 난 오빠에게 왜 퇴학을 당했는지 말하라고 정말 여러번 이야기를 했어요. 하지만 오빠는 여전히 횡설수설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아무 이야기나 막 했지요. 세상에 단 한사람이라도 오빠의 이런 이야기를 재밌다고 생각할는지 궁금해요.

"오빠는 좋아하는 게 아무 것도 없어."
"아니야. 나도 좋아하는 게 있어."
"좋아하는 게 정말 있다면 하나만 말해 봐!"
"내가 그냥 좋아하는 거? 아니면 내가 무지 좋아하는 거?"
"무지 좋아하는 거."

오빠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어요. 한가지 생각에 집중할 줄 모르거든요. 그래서 맨날 낙제를 하는 거예요. 결국 오빠는 이렇게 말했어요.

"모르겠어. 생각이 안 나."
"아니야. 오빠도 한 가지는 생각할 수 있어. 해 봐."

오빠는 인상을 쓰다가 말했어요.

"난 앨리를 좋아해."
"앨리는 죽었어. 그런 이야기는 그만 해."
"앨리가 죽었어도 앨리를 좋아할 수는 있는 거야."

그건 그랬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오빠는 조금 자신감을 가진 모양이에요.

"그리고 난 너랑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해."

속물 샐리나 좋아하면서 말도 못 붙이는 제인이 아니라 내가 제일 먼저 나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하지만 내버려두면 샐리랑 한 데이트 이야기나, 제인과 어렸을 때 만났던 구질구질한 이야기들을 또 늘어놓을까봐 걱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난 바로 핵심으로 이야기를 옮겼지요.

"그런 건 다 필요없어. 내가 묻는 건 오빠가 되고 싶어하는 거야. 뭐가 되고 싶어?"

오빠는 도무지 뭐가 되고 싶은 게 없는 모양이었어요. 내가 아빠처럼 변호사가 되는 건 어떻냐고 말하자, 변호사는 그저 허세나 부리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했을 뿐이었어요. 아, 아빠는 오빠를 죽이고 말 거예요! 오빠는 욕설을 내뱉고 혼자 중얼거리다가 이야기를 했어요.

"어린애들이 넓은 호밀밭이니 뭐니에서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 걸 계속 생각하는 중이야. 수천명이나 되는 어린애들이 있는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 내 말은, 어른이 아무도 없다는 거야. 나 말고는 말야. 그런데 나는 어떤 미치광이같은 벼랑 가장자리에 서 있는 거야. 내가 뭘 하냐 하면 말야, 아이들이 벼랑을 넘어가려고 하면 그들을 잡는 거야. 내 말은, 아이들이 어디로 가는 지 보지도 못하고 달려갈 때 내가 어디선가 나와서 그들을 잡는다는 거야. 내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은 그것뿐이야. 나는 그저, 호밀밭이니 뭐니에서 파수꾼이 되고 싶어. 그게 미친 짓인 줄은 알아, 하지만 내가 정말 되고 싶은 건 그것밖에 없어. 그게 미친 짓인 줄은 알아."

미친 짓이 맞았어요. 아빠는 오빠를 죽이고 말 거예요. 열 살짜리인 나도 그런 것이 되고 싶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아요. 나는 좀 더 현실적인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오빠한테 열심히 말했어요. 하지만 오빠는,

"그래. 그거 좋은데."

라고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말을 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하겠다며 일어났어요. 오빠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어요. 오빠가 전화를 하는 동안 나는 라디오에서 음악을 들었어요. 오빠는 돌아와서 춤을 추자고 했어요. 신발도 신은 채로 말이죠. 내가 그걸 가리켰을 때야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걸 알았죠. 난 오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같이 춤을 추었어요. 오빠는 춤을 추는 동안에도 뭔가 자꾸만 떠들려고 했지요. 정말 구제불능이에요.

그리고 엄마가 왔어요. 우린 깜짝 놀랐어요. 지금 오빠가 집에 있는 걸 아빠가 보면 아빤 정말 오빠를 죽일 거예요. 오빠에게 빨리 가라고 했는데, 오빠는 우물쭈물하다가 말했어요.

"너, 돈 좀 있니?"

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고 돈을 좀 모아놓았어요. 크리스마스가 멀지 않았으니까요. 난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주었어요. 아무튼 난 오빠를 좋아했고, 오빠가 오빠 친구 제임스 캐슬처럼 옥상에서 뛰어내리거나 하는 꼴을 보고 싶진 않았어요. 오빠를 잃는 건 하나로 충분하거든요. 돈은 얼마 되지 않았어요. 8달러 65센트. 내가 좀 썼거든요. 그걸 받더니 오빠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어요.

오빠는 한참을 울다가 간신히 떠나갔어요. 그러더니 학교로 편지를 보냈지 뭐예요. 멀리 떠날 테니까 잘 지내라는 편지였어요. 내 돈도 돌려줄 테니 박물관으로 오라고 했지요. 아, 정말 이 오빠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집에 가서 아빠의 커다란 여행용 백을 질질 끌고 나갔어요. 오빠는 깜짝 놀라서 그게 뭐냐고 물었지요.

"나도 따라 갈 거야."

물론 오빠는 깜짝 놀랐지요. 난 철없는 오빠 때문에 엉엉 울고 말았어요. 절대 혼자는 못 간다, 따라가겠다고 하자 오빠는 고함을 질렀어요.

"아무데도 안 갈 테니 그만 울어!"

나는 속으로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오빠는 제 정신은 아니지만 아무튼 날 좋아하니까요. 오빠는 나더러 학교로 가라고 했지만 이런 오빠를 두고 혼자 학교에 갈 수가 없었어요. 더구나 어제 친구 앨리스한테 듣기로는 오빠는 모텔에 묵으면서 매춘부까지 불렀다지 뭐예요! 앨리스는 그게 오빠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고 했지만 난 오빠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오빠한테 돈이 하나도 없었던 거예요. 난 그런 짓을 또 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어요.

오빠는 결국 아무 데도 가지 못했어요. 어쩌면 정말 갈 수 없었던 건지도 몰라요. 사실 오빠는 겁도 많고, 세상 물정도 모르죠. 남들이 보기에는 멍청한 부잣집 도련님일 뿐일 거예요 그래서 누군가가 붙잡아 주기를 바랬을 지도 모르죠. 그리고 여전히 앞으로 공부를 하게 될지 어떨지도 모르고 있어요. 아빠는 오빠를 죽이는 대신 정신과에 보내서 상담치료를 받게 했어요. 그건 오빠가 말한 변호사와 비슷한 직업인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은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모르더라고요.

오빠같은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자기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리고 난 내가 오빠한테 그런 사람이 되어주었다는 걸 잘 알아요. 어쩌겠어요. 아무리 모자라도 우리 오빠인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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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cdc 2009/01/07 00:52 # 답글

    그 꼬맹이에 대한 완벽한 해설이 붙었군요 :)
  • 초록불 2009/01/07 08:53 #

    ^^;;
  • 2009/01/07 02:37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01/07 08:53 #

    고맙습니다...^^
  • 아문 2009/01/07 03:55 # 답글

    헉! 호밀밭의 파수꾼은 시니컬함이 생명인데..
  • 초록불 2009/01/07 08:52 #

    물론이지만, 그건 홀든의 시각이죠...^^
  • 회색인간 2009/01/07 08:00 # 답글

    정신병자 취급이군요...ㅠㅠ
  • 초록불 2009/01/07 08:52 #

    정신과 상담치료=정신병자라는 공식은 곤란합니다...^^;;
  • 초록불 2009/01/07 09:01 #

    아, 그리고 원작에 정신분석학자와 상담하는 내용은 원래 들어있습니다...^^
  • 회색인간 2009/01/07 09:54 #

    아, 정신병원이 아니구 그냥 정신과 상담이었군요.....잘못 읽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호밀밭의 파수꾼은 안 읽어봐서.....읽어봐야 할듯....
  • 영혼의시대 2009/01/07 11:05 # 답글

    헉..... 진짜로 책이 나온 줄 알았어요 ㅠㅠ
  • nabiko 2009/01/07 11:45 # 답글

    원작 읽다가 번역이 이상해서 포기했어요.ㅜㅜ)
  • 초록불 2009/01/07 11:57 #

    번역본이 대단히 많은 책이니 좋은 번역본으로 재도전해보세요.
  • catnip 2009/01/07 12:00 # 답글

    이상하게 안읽히던 작품입니다.
    별별 작품들 명작분류에 들어가면 일단 끝까지 읽어내긴 하는데 이건 몇번이나 실패했답니다.
  • 초록불 2009/01/07 12:05 #

    사실 미국에서 명작이라고 그것이 한국에서도 반드시 공감을 형성할 수는 없죠. 대표적인 예가 불후의 명작으로 미국에서 손꼽는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생각해요. 줄거리 상으로는 분명히 별다른 요소가 없어서 문장에 어떤 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어차피 그 영역은 제게는 별너머의 영역인지라...
  • 천지화랑 2009/01/07 12:52 # 답글

    전 중학교 때 호밀밭의 파수꾼 읽고 독후감을 제출해야 하는데 그 내용을
    "이게 대체 어째서 명작인지 통 모르겠다. 선생들은 이거 읽어나 보고 우리한테 읽어보라고 하는거냐?"
    식으로 줄줄 써서 두 바닥 채웠는데 A+ 뜨더군요.[머엉]
  • 작나무 2009/01/07 13:14 # 답글

    크흣. 현실적인 여동생의 시점으로 보니 홀든이 완전 달리 보이는군요.
    이쪽에 더 공감하고 있는 제 자신도 늙어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ㅠ ㅠ
  • 초록불 2009/01/07 13:25 #

    정말 현실적인 버전으로 가려면... 아버지 버전을 하나 써드릴까요? (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쓸 생각은 없습니다...^^;;)
  • 훅훅사복 2009/01/07 13:57 # 답글

    딴지는 아닙니다만... 앨리는 폐결핵이 아니라 백혈병으로 죽었죠.
  • 에나 2009/01/07 15:26 # 답글

    분명,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는데 내용이 거의 생각나지 않네요.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당장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이 이 글을 읽고 들었습니다. ^^
  • 구름밟기 2009/01/07 17:14 # 답글

    맨 밑에서 네 번째 문단(?) "아무데도 안 걸테니 그만 울어!" 혹시 '아무데도 안 갈테니' 아닌가요?^^
  • 초록불 2009/01/07 22:32 #

    맞습니다. 오타네요...^^
  • 소시민 2009/01/08 18:56 # 답글

    홀든의 정서에 꼭 공감이 가지 않더라도 그의 어투는 꽤 재미있죠. 그 특유의 과장이 나올때마다

    웃음이 나왔던게 기억납니다.
  • 초록불 2009/01/08 19:24 #

    문장은 발군이죠.
  • 풋내기슛 2009/03/08 23:03 # 답글

    호밀밭의 파수꾼... 저는 참 좋았습니다. 힘든 시기에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런데 위대한 개츠비는, 뭐랄까... 너무 추상적인 느낌 때문에 힘들어요.
    페이지를 넘기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는.
  • 초록불 2009/03/08 23:08 #

    뭐, 저도 이 작품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청소년기에 읽으면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요. 하지만 역시 좀 과대포장된 느낌은 있습니다.

    문학작품을 읽고 느끼는 감동의 정도는 사실 개인적인 것이어서 일괄적으로 뭐라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요...^^
  • 초록불 2009/03/08 23:09 #

    저 패러디 태그를 눌러보시면 위대한 개츠비의 패러디 버전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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