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노와 오가녀 *..문........화..*



벌써 아주 옛날 일인데, 언젠가 고우영 만화 중 초기 소국 시대를 그린 듯한 만화가 있었다는 기억만 날 뿐, 구체적인 장면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 제목이 아사달과 아사녀였을까? 물가에서 자맥질하는 장면이나 산 위를 표범처럼 뛰어다니는 장면은 생각이 나는데, 그 이상은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답답하기만 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소중한 부분을 잃어버린 것 같은 아쉬움이었다. 그나마 그 부분이 기억나는 것은 대학 시절 장롱 바닥에서 나왔던 밑에 깔아두었던 신문에서 보았던 덕분이었다. 어찌 된 것인지 그때 신문에서 만화의 제목 부분은 날아가고 없었다.

그런데 바로 내 잃어버린 기억의 일부였던 그 만화가 재출간되었다. 바로 이 책, 아라노와 오가녀.

고우영 아라노와 오가녀 1 - 10점
고우영 지음/애니북스


책 전면의 일러두기에 재미있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 이 책은 1976년 어문각에서 간행된 단행본 [아라노와 오가녀]를 저본으로 하여 편집되었으며 단행본은 인터넷 커뮤니티 [클로버문고의 향수]의 김광래, 고영준 씨에게서 제공받았다. 아울러 소년한국일보 연재본은 양덕진 씨에게서 제공받았다.

저 까페... 나도 회원인데... 안 가본지는 수삼년 된 것 같다. 아무튼 보관하고 있으니, 이처럼 책으로 다시 보는 기회가 생기는구나 싶어서 얼른 주문했다.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고우영 아라노와 오가녀 2 - 10점
고우영 지음/애니북스


아니, 아라노와 오가녀가 아무리 쌍둥이라도 그렇지, 왜 두 표지 모두 아라노만 등장하는 거람.

만화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강마을 촌락에서 촌장의 아이로 태어난 쌍둥이 남매 아라노와 오가녀는 모두 훌륭한 아이로 성장한다. 시대는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대략 그 정도 시대.

산마을 촌락과 이런저런 다툼이 있고, 산마을에서는 아라노를 죽이기 위해 온갖 계략을 꾸민다. 그 와중에 아라노의 동생 오가녀를 며느리로 맞으려는 흉계도 꾸미고. 아라노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마을을 떠나 주몽을 찾아간다. 가는 도중 불달과 족마라는 친구도 만나고. 성급하게 나서는 두 친구 덕분에 주몽과 한족의 싸움에 말려들어버리고 엉겁결에 한족의 편에 서게 되는데, 그것은 약자를 돕는 의협심 때문에 생긴 아이러니다.

아라노는 탈출하게 되지만 이때 의외의 변수가 생긴다. 산마을에게 점령당한 강마을에서 탈출한 오가녀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아라노로 오인받아서 체포된 것. 더구나 아라노를 죽이기 위해 온갖 음모를 꾸미던 노파 마춘의 흉계로 아라노는 한족의 첩자로 몰려 죽음의 칼날을 받게 되는데... (이후는 직접 보시라.)

그림에 고증은 없다. 몽고족 복장을 한 친구가 등장하는가 하면, 한족과 북방 오랑캐 등의 등장도 역사적 사실과는 좀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런 배경을 무시하고 이야기 자체로 볼 때 아주 재미있다. 주몽과 아라노가 만났을 때, 주몽의 꿈을 듣고 아라노가 내뱉는 말 - 아저씨와 나와 누가 왕이 되죠?

아라노가 군사를 이끌고 산마을과 결전에 임하면서 쓸쓸하게 하는 말 - 꼭 이렇게 싸워서 끝을 보는... 그것이 가슴 아픈 일이다.

전쟁을 그리고 있는 만화지만 단순히 싸우고 이기는 것을 찬양하는 만화가 아니다. 북방 오랑캐에게 대승을 거둔 뒤, 부하 장수가 와서 주몽에게 말한다.

"장군! 주몽 장군! 이럴 때 쫓아가면 오랑캐를 전멸시킬 수 있습니다."

주몽이 고개를 흔든다.

"아서라. 그들도 인간이다. 인간은 이승에 목숨을 얻어 태어나 자기의 명을 이어가기 위하여 온갖 고생을 하는 것이다. 이제 남은 영토를 넘보던 힘이 꺾인 자들을 죽인다는 것은 잔혹한 짓일 터."

과장 없이 담담하게 주몽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은 멋지다. 아이들을 위한 만화책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 하겠다. 부디 많이 팔리고 오래오래 살아남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핑백

  • 초록불의 잡학다식 : 올해 산 책 얼마나 읽었나 2009-04-06 16:59:52 #

    ... 1.8꼬마 니콜라 전5권 - 쉬엄쉬엄 읽고 있음. 언제 다 읽을지 모름아라노와 오가녀 - 서평 올렸음 http://orumi.egloos.com/4038660경성탐정록 - 서평 올렸음 http://orumi.egloos.com/40370831.23괴물들이 사는 나라 - 읽었음 http://orumi.egloo ... more

덧글

  • EST_ 2009/01/13 10:27 #

    이젠 잘 기억나지 않는 고우영화백 단편 중에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았는데, 말씀하신 대로 부디 많이 팔리고 오래오래 살아남기를 바라며 그 덕분에 다른 작품들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삼별초가 소재로 쓰였던 <꽃네별네>라는 작품도 좋았고 권말에 수록된 단편 <놀부전>도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 키엘 2009/01/13 11:20 #

    저도 기억이 나는군요. 아마 1편이 집에 있었던것 같네요. (80년대 초반같은데..)

    마침 오늘 네이버 카페 메인에 '클로버 문고의 향수' 카페가 떴네요.
  • 2009/01/13 11:3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01/13 18:49 #

    그림체는 초기작들이 좋아보입니다.
  • 희야 2009/01/13 11:55 #

    전 쌍동이 진이와 실이가 나오는 만화랑, 불, 바람, 물 술법 익히는 삼형제 나오는 만화가 예전부터 보고싶더군요.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아 아쉽지만요. 둘 다 출간되어 있다면 꼭 좀 구하고 싶습니다.
  • 한양댁 2009/01/13 12:30 #

    혹시 그 삼형제 만화가 [거북바위] 아닌가요? 처음 산 만화책이라 기억합니다.
  • 희야 2009/01/13 13:34 #

    댓글 쓴 후 안그래도 검색해보니 '거북바위'는 바로 뜨더군요. 그렇지만 진이와 실이 이야기는 여전히 안나오는 것 같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께서 제목이라도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marlowe 2009/01/13 16:30 #

    쌍동이 왕자(진이와 실이)가 나오는 만화는 [새소년]에 연재되었던 [너와 나]입니다.
    삼형제(물호, 풍갈, 화동)이 나오는 만화는 [소년중앙]에 연재되었던 [거북바위]입니다.

    [거북바위]는 [고우영 新 고전열전 박스 세트] (전10권)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 희야 2009/01/14 13:25 #

    감사합니다~ 너와 나도 복간되면 좋겠네요. 어릴때 일부분만 보아서 더 궁금하고 보고싶거든요.
  • catnip 2009/01/13 11:59 #

    제목만 듣고 낯선데 쌍동이 남매가 뛰어다니는거 하니까 어렴풋이 기억나는듯도 하지만 거의 깜깜이네요.
    알고보니 저것뿐만 아니라 신고전열전으로 빵빵한 작품들이 세트로 구성되어있군요.
  • 고어핀드 2009/01/13 12:03 #

    오, 저 시대는 제가 좋아하는 시대인데. 사봐야겠군요.
  • 초록불 2009/01/13 18:48 #

    아무튼 판타지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셔야 합니다...^^;;
  • 한단인 2009/01/13 19:24 #

    와.. 역시 고우영이구나 하는 느낌이네요. 그나저나 소재 자체가 대단히 독특한 듯..

    사극에서 역사적 영웅을 주인공으로 다루는 건 좀 안봤으면 했는데 70년대 고우영이 지금 드라마 작가들보다 훨 나은 듯..

    소장 욕구가 무럭무럭..
  • 애니북스 2009/01/13 21:14 #

    오가녀는 표지로 쓸 만한 그림이 없었습니다. ^^;
  • 초록불 2009/01/13 21:49 #

    헉...
  • 정호찬 2009/01/13 22:20 #

    임진왜란이 배경인 잡초와 들꽃도 좋더군요.
  • 잠본이 2009/01/13 22:25 #

    옛날 클로버문고 목록에서 제목만 보았던 건데 저런 내용이었군요.
  • 뚱띠이 2009/01/13 22:28 #

    고우영선생님은 뭔가 깊은 맛과 멋이 있습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