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십이지 이야기 - ![]() 모로하시 데쓰지 지음, 최수빈 옮김/바오 그림을 클릭하면 알라딘으로 연결됩니다. |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모로하시 데쓰지 (諸橋轍次) - 1883년 일본 니가타에서 태어나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동경문리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문화훈장' '아사히 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을 비롯하여 <유교강화> <장자이야기> <중국고전명언사전>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1982년 100세로 사망했다. (저자 소개는 알라딘에서 거의 업어왔음)
저 <대한화사전>이라는 것이 물건이다. 1929년에 편찬에 들어가 1943년 1권 출간, 1960년 총 13권으로 완결. 꼬박 30년이 넘는 집념의 산물이었던 것. 사전 편찬 과정에서 눈을 혹사해 한쪽 눈이 실명되기까지 했다 한다. 이 책은 그가 85세 때 쓴 것으로 12간지에 대한 오만 잡설을 줄줄줄 늘어놓은 책이다. 처음에 중간부터 펼쳐보았던 탓에, 대담 형식을 묶은 책인 줄 알았다. 질문과 답변으로 이야기가 나가는데, 이 질문자의 내공도 보통이 아니어서, 대체 질문자는 누구지 하고 궁금해 했는데, 자문자답이었다.
저자는 한화대사전을 낼만큼 한학에 조예가 깊어서 12지에 얽힌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일본과 중국의 고사들로 이루어져서 우리나라 고유의 이야기들은 찾을 수 없다. 가령 토끼 편에서는 <토끼의 간>이 나오지 않으며, 용 편에서는 수로부인의 이야기가 언급되지 않는다. 말 편에서는 신마 거루가 등장하지 않고, 물론 화살보다 빨리 달린 이성계 말의 전설도 나오지 않는다. (앗, 이런 식으로 쓰다보니 어쩌면 한국편으로 나도 하나 쓸 수 있을지도... 퍽!)
이 책을 보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이만한 내공에 필적할만한 사람은 이 양반밖에 없을 것 같다. 육당 최남선. 육당이 일제말기에 변절하지 않았다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참으로 놀라운 재능의 소유자였던 그가 결국 시대의 희생양이 된 점을 보면 참 우리는 가혹한 역사를 지내왔다는 감상에 빠지곤 한다.
십이지 이야기라 주역이나 점술 같은 허황된 이야기도 은근슬쩍 집어넣을 수 있었을 텐데, 저자는 그런 고사들을 소개는 하지만 확실하게 그것은 미신이라고 줄을 그어버린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일본인이므로 간지에 대한 일본어 읽기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한다. 경군님 같은 경우 이 책을 보면 혹 도움 되는 이야기가 있을까? 어쩌면 아주 기초적인 이야기들일지도 모르겠지만.
몇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옮겨보자면,
1. 서아작각지쟁鼠牙雀角之爭 - 쥐 송곳니와 참새 뿔의 전쟁
쥐의 송곳니나 참새의 뿔이나 둘 다 세상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조리하고 무리가 있는 소송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최근에 괘씸죄에 걸려 구속된 어떤 사람이 생각나는 고사성어. 쥐 편에는 이런 연상이 되는 이야기가 많은데... 뭐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
2. 왕팔王八이라는 욕의 유래
이미 댓글로 치오네님과 루드라님이 달아주신 적이 있는데, 자라는 여덟가지 덕목을 잃어버려서 망팔忘八이라 부르는데 이 말이 왕팔王八로 변했다고 한다. 물론 민간어원설일 수도 있다. 여덟가지 덕목(八德)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충忠, 신信, 효孝, 제悌로써 자라가 이 팔덕을 잃어버린 증거는 자라가 동족과 결혼하지 않고 이종족 - 뱀과 결혼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현무玄武라는 신수神獸는 거북과 뱀의 두 동물이다.

(그림 출처 : http://minihp.cyworld.com/pims/main/pims_main.asp?tid=21581147&urlstr=visi&item_seq=57584893&board_no=28&urlstrsub=search&seq=28)
위 그림은 거북과 뱀을 분리해서 잘 표현해 냈다. (제가 쓴 동화책 <역사 속으로 숑숑> 제2권에서도 현무가 암수로 분리되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 확실히 박학다식이란 게 어떤 것인지 알게 해준다. 기껏 잡학다식에 머물고 있는 초모 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교양서로 신년에 읽어보고 설에 아는 척 설레발을 푸는데 제 격인 책이다.
덧글
왠지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
그 무슨 겸손하신 말씀을... (흑흑) 그나저나 책은 재미있을 것 같네요. 또
추가 지출을 해야 하나...
초록불님의 육당 관련 코멘트는 뭔가 생각할 게 많네요. 저는 폴 임 박사를 떠올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