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 우리 역사의 전환기 *..역........사..*



1937년. 정축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9년. 일본제국 소화(쇼와) 12년. 만주국 강덕 4년. 중화민국 26년. 

이해 7월 7일. 노구교蘆溝橋에서 몇 발의 총성을 계기로 중일전쟁이 시작되었다. 조선 반도는 이 전쟁의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본이 패한다면 조선은 독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국민당 정부의 수도 남경이 함락되고, 다음 해 10월 동방의 마드리드라 불리던 무한마저 함락되었다.

이로써 조선의 운명은 결정된 듯이 보였다. 이제는 저항조차도, 그저 협력하지 않는 저항, 즉 비협조의 저항마저도 힘겨운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일본 안에서 조선의 살 길을 찾자는 논리 아래 지식인들의 대거 이탈이 벌어졌다. 1937년은 우리 역사에 있어 한 획이 그어진 해였다.

1940년 3월 왕정위汪精衛의 친일 정부가 남경에 수립되고 1940년 6월 히틀러에 의해 파리가 함락 당하자 이제 파시스트에 의한 지배는 필연적인 것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최재서와 같은 작가가 친일에 나서게 되는 것도 이 충격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일제의 중국 점령을 근대가 봉건을 이기는 것으로 이해하고 환호했다. 그 정도가 심해서 조선총독부는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더욱 긴장해야 한다는 요지의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라 아예 근대를 넘어선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이라는 신체제론도 등장한다.

1940년 12월에는 일제를 찬양하기 위한 문예보국강연대 활동이 시작된다. 그것은 어떤 논리였을까? 채만식이 [삼천리] 1941년 1월호에 실은 글을 보자.

인류는 바야흐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려 위대한 아침을 맞이했다. 그리고 방금 몰락하고 있는 구라파적인 자본주의와 더불어 성장하고 더불어 번영을 누려오던 자유주의나 개인주의도 그와 더불어 몰락 또한 같이할 운명을 짊어진 자이어서 지금에 그 종언을 고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역사의 거대한 행진과 발을 맞추어 우리는 시방 동아의 전역에서 세계 신질서의 일환인 신동아 질서 건설의 대업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의 추진력으로써 그리고 명일의 세대를 담당한 태세로써 우리는 내부적으로 신체제를 이미 가지게 되었다. 소화유신이라는 역사적인 국민운동이 외부의 그와 같은 객관적인 정세와 호응하여 마침내 적극적인 실천운동으로 발전을 했던 것이다.

이처럼 당대의 지식인들조차 파시즘이야말로 미래의 구원 사상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나마 채만식은 해방 후 자신의 친일 행위를 사죄한 몇 안되는 지식인에 속한다.) 이 무렵의 정황에 대해 서정주가 훗날 털어놓은 이야기를 한 번 보자.

나는 제2차 대전에서 싱가포르가 일본군에 함락당했다는 기별과 그 축하잔치를 보고 들은 뒤로부터는 일본과 독일과 이태리의 동맹한 주축국이란 것이 마침내 이기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쪽으로 가져왔다. 그러다가 1944년 여름에 와서는 그들의 승리를 불가피한 것으로 예상하기에 이른 것이다. (중략) 정치세계에 대한 내 부족한 지식이 내 그릇된 인식을 만들었고 이 그릇된 인식에서 나온 언행들이 내 생애의 가장 창피한 일들을 빚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나는 나를 가장 객관적인 관찰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서정주 문학전집 3, 일지사, 1972, p238-239)

서정주의 가장 창피한 일은 이 뒤에 쓴 전두환 찬가가 아닐까 싶긴 하다. 그 나이에 정신 못 차리고 또 그런 짓을 하다니... 아무튼 1942년 2월 15일 싱가폴이 일제에 의해 함락되었다. 이때 한반도도 열광의 도가니였던 모양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때 어린 나이에 감격하고 말았다는 고백을 한 바 있다. 그리고 노천명은 4일 후 매일신보에 이런 시를 썼다.

싱가포울 함락

아세아의 세기적인 여명은 왔다
영미의 독아에서
일본군은 마침내 신가파(新嘉坡)를 뺏아내고야 말았다

동양 침략의 근거지
온갖 죄악이 음모되는 불야의 성
싱가폴이 불의 세례를 받는
이 장엄한 최후의 저녁

싱가폴 구석구석의 작고 큰 사원들아
너의 피를 빨아먹고 넘어지는 영미英美를 조상하는 만종을 울려라

얼마나 기다렸던 아침이냐
동아민족은 다같이 고대했던 날이냐
오랜 압제 우리들의 쓰라린 추억이 다시 새롭다

일본의 태양이 한번 밝게 비치니
죄악의 몸뚱이를 어둠의 그늘 속으로
끌고 들어가며 신음하는 저 영미를 웃어줘라

점잖은 신사풍을 하고
가장 교활한 족속이여 네 이름은 영미다
너는 신사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상을 해적으로 모신 너는 같은 해적이었다

쌓이고 쌓인 양키들의 굴욕과 압박 아래
그 큰 눈에는 의혹이 가득히 깃들여졌고
눈물이 핑 돌땐 차라리 병적으로
설웃음을 쳐버리는 남양의 슬픈 형제들이여

대동아 공영권이 건설되는 이날
남양의 구석구석에서 앵글로색슨을 내모는 이 아침

우리들이 내놓는 정다운 손길을 잡아라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에
일장기가 나부끼고 있는 한
너희는 평화스러우리 영원히 자유스러우리

얼굴이 검은 친구여!
머리에 터번을 두른 형제여!

잔을 들자
우리 방언을 서로 모르는 채
통하는 마음 굳게 뭉쳐지는 마음과 마음

종려나무 그늘 아래 횃불을 질러라
낙타 등에 바리바리 술을 실어 오라
우리 이날을 유쾌히 기념하자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니, 저 평안북도 촌구석에 살던 한 유학자가 자기도 이런 세상에 끼어보려고 발버둥친 것이 무어 대수겠는가? 그는 진주만 습격을 천황폐하의 거룩한 결단으로 찬양했는데, 어디 그만이 그랬겠는가?

이광수 [선전대조宣戰大詔] (1942년 1월 신시대)

'미국과 영국을 쳐라'
하옵신 대조를 나리시다
12월 8일 해뜰 때
빛나는 소화 16년

하와이 진주만에
적악을 때리는 황군의 첫 벽력

웨스트 버어지니어와 오클라호마
태평양 미함대 부서지다

이어서 치는 남양의 해공육
프린스·업.웨일즈 영함대 기함
앵글의 죄악과 운명을 안고
구안탄 바다 깊이 스러져 버리다.

아시아의 성역은 원래
천손 민족이 번영할 기업

앵글의 발에 더럽힌 지 2백년
우리 임금 이제 광복을 선하시다.


진주만 기습에서 광복을 노래하는 춘원 이광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들은 훗날 모두 신나게 욕을 처먹고 계시다. 그리고 이들에게 누구보다도 열심히 돌멩이를 집어던지는 무리들이 있는데, 그 무리들은 이 평북 삭주에서 친일파로 지낸 이 양반을 스승으로 떠받들며 돌멩이를 던진다는 참으로 기괴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삭주의 단하산인 이유립. 그의 말만 믿는다면 독립운동의 가문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부터 독립운동을 했으며, 스승 계연수로부터 민족의 지보 [환단고기]를 받아 60년을 숨겨온 인물. 그러나 실상을 알고보면 조선총독부 발간지 [조선]에 시를 기고하고, 친일단체 [조선유교회]의 일원으로 기관지 [일월시보]의 주필을 지내고 일본의 출판사가 내건 법질서를 지키는 표어 공모에 응모해서 상을 탄, 그런 인물이다.

또한 내가 그동안 조사해온 바와 악질식민빠님이 조사해 온 바에 의하면, 이 [환단고기]라는 책을 최소 수년간 주물럭거려 만들어냈음이 분명하다.

친일파가 해방 후에 독립운동가 행세를 한 것이 어디 하나둘이겠냐마는, 이렇게 증거가 속속 드러나는데도 "민족의 스승" 운운하는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대체 왜 선생님이 욕 먹어야 하는 겁니까?"라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그래, 이제는 뭐라 할지 참 궁금하다. 모른 척 하고 넘어갈 것인가? 청년 시절 문인이 되고 싶어한 게 분명했던 이유립으로서는 이광수, 채만식, 노천명, 서정주 등과 함께 그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유립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친일 유사역사학의 끝은 어디일까? 이유립 편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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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끼님 포스팅에 있던 내용은 확실히 낚시가 맞군요. 보수를 자처하는 분의 글에서 이런 낚시를 찾을 줄이야... (파닥파닥)
낚시임을 모르고 걸려버린 것을 반성하고 향후 이런 일이 있을 때는 확실한 검증 작업을 거치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슈타인호프 2009/01/18 17:31 #

    제 생각인데, 그 위대하신 분께서는 해방이 오지 않았으면 대일본제국사를 쓰지 않았을까요-_-
  • 초록불 2009/01/18 17:48 #

    그 양반이 쓴 떡밥이 먹혔을지는 의문이...
  • 암호 2009/01/18 17:41 #

    정치적 성숙성이 떨어지는 이 나라를 보는 것이지요.
    [그 외이지만..... 누리꾼 전면 참여로 유명한 모 백과 한국어판에 실려진 내용을 보다보면 민주화의 필수요소인 정치적 성숙성이 대한민국은 아직도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 초록불 2009/01/18 17:42 #

    저 위에 나오는 채만식의 "개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놓고 오늘날 이야기를 좀 할까 했는데, 주제가 너무 커져서 포기했습니다. 언제 따로 조촐하게 써볼까 생각합니다.
  • 암호 2009/01/18 19:55 #

    아이고, 정보 유출(?) 감사합니다. ^^
  • 키시야스 2009/01/18 18:03 #

    전 이런 내용들을 보면 논거에 의지하지 않고 근거에 의지하는 현대 한국인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에서는 편리한 어떤 근거가 나와도 인정해서는 안되는 몇가지 일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사실 몇가지를 가지고 의지를 꺾는것 이것은 지식인으로써는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일텐데 말이죠.
  • 누렁별 2009/01/18 18:03 #

    주사파와 환빠는 친일파라는 한 조상의 후예인가 싶습니다. 아아 영미귀축 -_-;
  • 원래그런놈 2009/01/18 23:25 #

    주사파가 나오는 이유가 뭔가요?
  • 초록불 2009/01/18 23:40 #

    주사파와 친일파가 반미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을 가지고 한 농담인 것 같습니다.
  • 玄武 2009/01/19 13:03 #

    NL이 환빠 떡밥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민족' 이니까요. 한겨레 옛날기사에 NL계 사람들이 '다물' 이니 잃어버린 역사학이니 연구한다는 얘기도 꽤 있었죠.
  • 누렁별 2009/01/19 15:10 #

    농담에 해설까지 붙여 주시고 쑥스럽습니다 -_-;
  • 2009/01/18 18:0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01/18 18:17 #

    그런가요...-_-;;

    요즘 워낙 이상한 일이라 언급하시는 건 특별한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러신 건가요?
  • 2009/01/18 18:3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회색인간 2009/01/18 18:44 #

    이름부터 촌스럽네요...단단학회....ㅋㅋㅋ
  • Mizar 2009/01/18 18:54 #

    '저 평안북도 촌구석에 살던 한 유학자가 자기도 이런 세상에 끼어보려고 발버둥친 것'

    떠나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매달리고 있는 불쌍한 모습이 연상이 되는군요..
    그 자신은 어쩌면 막차에 놓치지 않고 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진성당거사 2009/01/18 19:23 #

    문득 이 글을 읽고 떠오른 옛날 노래 가사가 있습니다.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는 새 아침 / 반도에 태어남을 자랑하며 울면서 /
    바다로 가는 마음 물결에 뛰는 마음 / 나랏님의 병정되기 소원입니다.

    (남인수, 박향림, 백년설 노래, "혈서지원" 1943년 오케레코드 발매)

    대중가요조차 대동아공영권을 운운하던 시대이니 말 다했죠.
    '저 평안북도 촌구석' 대목, 크게 공감합니다.
  • 제갈교 2009/01/18 20:22 #

    중일 전쟁에서 얼마나 충격을 먹었으면 조선 반도 전체가... -_-;;;
  • Sollen 2009/01/18 20:35 #

    저 싱가폴 함락 당시 학살현장에서 빠져나와 미친듯이 도망쳐 살아남은 소년 중 하나가 나중에 리콴유 총리가 되지요...
  • 천지화랑 2009/01/18 20:46 #

    역시 중국이 문제(뭐?)
  • 2009/01/18 21:0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이준님 2009/01/18 21:15 #

    1. 일제 연간 된장남 -_-;;(이라고 쓰고 모단 보이라 읽는다)이자 나중에 월북을 하게 되는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로 남한 문단에서는 이 혐의를 피해가는- 박태원의 경우 왕정위의 탈출(그러니까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를 탈툴해서 베트남으로 가고 최종적으로 일본에 협력하는)르포를 아주 리얼하게 썼지요. 왕정위는 나중에 말 그대로 부관참시 되버립니다만 -_-;;;

    2. 노천명은 한국전 당시에도 북한 부역 혐의로 수감되는 굴욕을 겪습니다.(꽤 엄하게-그러니까 미군에게 투항했는데 남한 헌병대에 넘어가 즉결처분된 이인수 같은 경우와는 아주 다르게 10년형을 받고 석달만에 석방되지만요 -_-)

    3. 같은 시대 북지의 이태준은 "독일의 파리함락과 독-소 불가침 조약때문에 자살한 어느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러나 희망을 가진다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온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물론 그 자신은 극심한 생활고로 고생을 하지만요)

    4. 홍성유의 소설에서도 개그스럽게 묘사했지만 당시 싱가포르 주둔 사령관의 어리벙벙한 항복 모습-실제로는 상당히 과장되었습니다만-은 만담 개그에서 주요 레퍼토리였다지요. -_-;;; 싱가폴이 그만큼 상징적인 곳이기도 했습니다.

    5. 사실 내지건 조선이건 반체제 지식인의 대거 이탈은 일본쪽에서 보면 파시즘 정권 수립 이후에 음양으로 지속되던 전향 사업의 성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쪽 이야기를 보면 아스트랄함의 극치입니다만 이런 전향사업의 성과로 나온 부산물중 하나가 "대화연맹"이지요. 이런 전향사업에서 쓰였던 여러 기술-이를테면 감옥에서의 학대같은- 은 유신 연간에 어떤 나라 반체제 인사들에게 그대로 사용되었고 대화동맹은 그 나라의 50년대 악명높은 "보도 연맹"의 기초가 됩니다. (유명한 오제도 검사가 보도연맹의 기초를 일제연간의 대화연맹에 근간을 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으니까요) 중일전쟁의 성공은 이미 진행된 전향사업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볼수 있지요
  • 초록불 2009/01/18 21:48 #

    1. 아시아의 여명...이었던가요?

    3. 서정주의 친구이자 동료 문인이었던 오장환(1918-1951)은 서정주가 변절했다고 관계를 끊어버렷다고 하죠. 월북작가라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지만...

    4. 맥아더가 잡혀가는 영화도 절찬 상영되었다고 하더군요.

    5. 맞는 말씀입니다.
  • matercide 2010/08/20 19:16 #

    일본이 펼친 전향사업을 알지만 그게 얼마나 아스트랄 했습니까?
  • 2009/01/19 05:4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01/19 09:32 #

    고맙습니다.
  • 2009/01/19 12:00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leopord 2009/01/19 12:24 #

    제가 당대 사람이었다면, 혹은 현재가 그런 시대라면 친일부역의 유혹(?)과 싸워 이겨낼 수 있을지 솔직히 두렵습니다. 부단히 스스로를 돌아보고 가난을 각오해야만 하는 어려운 일일테지요. 하지만 견뎌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른바 '내지' 뿐만 아니라 '식민지'에서의 반체제 지식인에 대한 전향활동이 성과를 거뒀다는 것은 그만큼 일제 관료조직의 높은 지능과 교활함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 초록불 2009/01/19 12:30 #

    맞는 말씀입니다.
  • matercide 2010/08/20 19:17 #

    결론 천황제 폐지 천황 및 황족은 능지처참
  • leopord 2009/01/19 14:18 #

    저 단하산인 떡밥도 그렇고... 뭔가 이상합니다-_-;;
  • 초록불 2009/01/19 14:24 #

    낚시는 낚시일 뿐이죠. (파닥파닥)
  • guriguri938 2009/01/19 15:00 #

    링크할께요 ^^ 덧글 달고 싶은데 아직 공부를 많이해야할듯 하네요 ^^

    언제나 친일파에 대한 글을 보면서 지난 과거를 투명하게 밝혀줄 수 없는 이 나라가

    조금은 원망스럽습니다
  • 초록불 2009/01/19 15:09 #

    링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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