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그리고 시민불복종 *..문........화..*



The Great Debaters라는 영화가 있다. 국내에는 개봉되지 않았으며, 영영 개봉되지 않을 것 같다. DVD도 발매되지 않았다. 영화에 대한 정보는 여기서 얻을 수 있다.

[네이버 영화] 그레이트 디베이터스 [클릭]

2007년 최고의 영화중 한 편이라고 평가되었다고 한다. 동의한다. 예고편이라도 보자...


미국에서 "토론"이라는 것이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잘 모른다. 나는 학생 시절에도 이렇게 주제가 주어지고 강제로 찬/반의 입장에 서서 토론해야 하는 것이 불만이었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이렇게 토론이 진행된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어찌보면 다행히도 이 주인공들은 도덕적으로 나와 같은 위치에 서서 토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면 어떠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이 포스팅의 주제와는 관계가 없다. 나는 최근에 이 책을 읽었다.

정의 - 10점
오트프리트 회페 지음, 박종대 옮김/이제이북스


이 책은 복잡한 내용에 딱딱한 번역으로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이 책의 결말 부분에서 위 영화의 결말 부분과 같은 것을 다룬다. 시민불복종이다.

영화에서 토론의 주제는 "시민 불복종은 정의를 향한 싸움에 도덕적 무기이다."였다. 위 책에서는 저항권과 시민불복종은 형제지간이라고 이야기한다. 고전 그리스 시대로부터 저항권의 문제는 끊임없는 논쟁거리였다고 말한다. 그런 역사의 소개 끝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적 법치국가의 조건 아래에서 저항권은 (아무튼 그것이 허용된다면) 예외적인 경우와 엄격한 장치 아래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p 179)

저 말에서 "민주적 법치국가"라는 말은 매우 중요하다. 시민불복종에 대한 반론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저 부분에 있기 때문이다. 즉,

국민의 자기입법,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인권과 기본권의 인정으로 인해 시민불복종은, 정치적으로 불필요한 것이 된다. (p 179-180)

즉, 법치와 민주주의가 완전히 구현된 사회에서는 시민불복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당연히 반론은,

정당한 불복종은 극단적인 불의에 저항해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스스로 불법을 행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p 180)

로 나오게 된다. 다시 말해서 민주적 법치가 행사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불복종은 불법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들을 갖춰야 한다.

1. 도덕적, 정치적 동기를 가지고 있다
2. 공개적으로 활동한다
3. 비폭력
4. 균형잡힌 수단을 사용한다

이 경우, 시민불복종은 법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완고한 다수(또는 주류)"에게 호소함으로써 정책의 변경을 재고토록 하게 된다. 다만 소수(또는 비주류)가 자기들의 이득을 위해 시민불복종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증명으로, 합법적인 모든 방법이 이미 사용되었고 결과가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된다 해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데 동의하고 있어야 한다.

이리하여 시민불복종이 성과를 거두면, 성과를 거둔만큼 시민불복종은 그 정당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위 책의 p180-181 부분의 요약임)

우리는 이런 상황을 지난 촛불문화제 때 겪어 보았다. 그것 자체는 불법적인 시위였다는 주장이 주류 측에서 누차 제기되었다. 그러나 당시 시민들은 위 네가지 조건을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완고한 다수"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시민들은 익숙하지 않았던 "비폭력" 시민불복종 운동에 빨리 지쳐버렸다. 이 운동의 열기를 이끌어갈 지도부가 보이지 않았던 것은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아도 안타깝다.

87년의 6월 대항쟁에서 정부가 6.29선언을 하고 나서 강경파들은 여전히 투쟁해야 한다고 했으나 그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그것은 바로 "성과를 거둔만큼 그 정당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바로 그 이유였던 것이다. 촛불문화제의 결과, 대통령의 사과, 검역에 대한 추가협상 등이 나왔고, 그것은 비록 강경한 입장의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실상 "성과"였고, 그 "성과"만큼 "정당성"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유혈을 통해서도 목적을 달성할 수는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위 영화는 1935년의 상황이다. 흑인 토론자는 말한다.

"텍사스에서는... 흑인들에게 린치를 가합니다."

그들은 한 흑인이 나무에 매달려 불에 타는 것을 보았다. 1935년. 미국 남서부의 상황은 그랬던 것이다. 대학의 학장도 흑인이기 때문에 백인 농부에게 자신의 월급을 빼앗기는 곳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토론자는 말한다.

"이 흑인의 범죄는 무엇이었을까요? 무엇 때문에 안개로 가득찬 어두운 숲에서 재판없이 매달려져야 하나요? 도둑이었을까요? 살인자였을까요? 아니면 그냥 흑인? ... 그가 무엇을 했던간에 그 폭도들은 범죄자입니다."

매달린 흑인, 그가 무엇을 잘못 했건 간에 그를 그곳에 매단 백인들은 범죄자다. 그러나 그에 대하여 토론자는 결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폭력 또는 시민 불복종 중에서... 여러분은 제가 후자를 택할 것을 기원할 것입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비폭력의 길은 어렵다.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그 길만이 승리의 길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촛불문화제 때 열심히 참가하던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들은 척도 안 하잖아! 어쩌라고? 더 이상 어쩌라고!" 내 대답은 이렇다.

바둥 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덧글

  • 피그말리온 2009/01/24 11:25 #

    뭔가 여러가지가 생각나게 만드네요....
  • 김우측 2009/01/24 12:20 #

    미국에서의 debate은 한가지 주제가 주어지고,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서, 각각에게 case building 시간을 주고 토론을 하게 됩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찬성 case building 5분
    반대 case building 5분

    반대측의 질의 3분
    찬성측의 답변 2분

    찬성측의 질의 3분
    반대측의 답변 2분

    찬성의 closing comment 3분
    반대의 closing comment 3분

    머 이런 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제로 찬성이나 반대의 입장을 가져야 하긴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것을 변호하고 반론할 기회를 가져본다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하고,
    좋게 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때 해본 기억이 새록새록 나오는군요.
    영화를 한번 봐야겠습니다. :)
  • 초록불 2009/01/24 12:32 #

    그렇군요. 저런 토론은 우리나라에도 필요한 교육 같습니다. 많은 면에서 부러웠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01/24 12:30 #

    87년을 직접 경험해보지는 못한 세대지만, 그때의 믿을 수 없는 신화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찹니다. 적어도 그런 경험이 있기에 희망은 더욱 확신할 수 있겠죠.
  • 2009/01/24 13:3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01/24 13:47 #

    그렇군요. 영화에서는 2인만 토론에 참여합니다. 1935년경의 룰은 그랬던 모양입니다.
  • Nova_Mania 2009/01/24 14:09 #

    시민불복종의 결론이 성과만큼 정당성을 잃어버린다면 결국에는 성과와 정당성에 대해서 검토해본다면 성공할 수 없다는 모순에 이르게 된다는 말일지도 모르겠군요(...)
  • 초록불 2009/01/24 14:22 #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불복종할 필요가 없는 정의로운 사회가 건설된다는 뜻이 되겠지요...
  •   2009/01/24 16:06 #

    수단 때문에 목적까지 낙인 찍는 사회라면 얼마든지 변화할 여지가 있을겁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시민불복종이 아예 의미가 없는 국가 따위 존재하지 않을거라고 믿습니다.
    인간들 한 다발이 언제 그렇게 짜임새 있었나요.
  • dunkbear 2009/01/24 14:46 #

    87년은 저도 기억하지만 6.29 선언 이후 노태우의 "고뇌와 갈등의 결정"을
    미화하는 방송국들의 찬양에 어리둥절 했었죠. ㅡ.ㅡ;;;
  • 타루 2009/01/24 17:16 #

    과연... 불복종으로 성과를 얻게 되면 그만큼 정당성이 사라지는 군요. 불복종 자체가 성과를 위해서였으니....
    그런데 어째 현제의 우리나라는 성과는 일어나지 않는데, 시민 불복종은 줄어 드는것 같습니다.
    일부에서는 불평할 틈에 일이나 하라는 말도 있고....
    으음.... 역시 생각을 많이 해놔야 겠군요.
  • 한빈翰彬 2009/01/25 00:05 #

    막스 베버의 현대국가에 대한 언급이 기억나네요. 시민불복종과도 관계가 깊을 것 같습니다.
  • 목성소년 2009/01/25 13:54 #

    오늘도 바둥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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