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장르소설 3 *..문........화..*



나는 지난 번에 순문학, 대중소설, 장르소설에서 이것이 카테고리가 큰 순서라고 말했었다. (순문학 대중소설 장르소설 (우리 사회의 장르소설 2) [클릭]) 이 말은 장르소설이 대중소설의 하위 개념이라는 생각에서 했던 말인데, 과연 이것이 올바른 분류인가에 대해서 큰 의문이 생겼다.

이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논의의 정확성을 위해 정확한 용어를 규정하고 가자. 우선 나는 지난 번에도 이야기한 것처럼 대중문학, 장르문학이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고, 대중소설, 장르소설이라는 말이 정확한 용어라고 생각한다. 모두 붙여서 쓴다. 그리고 순문학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관습적으로 우리가 사용하고는 있으나, 이제부터는 "주류(mainstream)문학"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 용어가 순문학=순수문학이라는 자칫 오도된 관념을 낳을 수 있는 말보다는 나은 것이라 생각한다. 일반인들에게 있어 소설이라 하면 바로 주류문학(주류소설)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웃기는 이야기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주류문학이란 "등단"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서 출판을 한 작품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때문에 분명 장르소설을 쓰는 사람이라 해도 "등단"을 통해서 나온 작가에 대해서는 평단이 제법 후한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장르소설가들은 무시하고 "등단"을 통해서 장르소설을 쓰는 사람들만 "장르소설가"라고 부르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 "등단"이라는 제도는 글쓰기의 욕구가 있는 "대중"들을 가려내는 장치로 작동하여 자신들만의 리그를 지켜내는데 여러모로 유리하기 때문에 이용되는 것인데, 어차피 "등단"을 하지 않은 나같은 작가가 이런 말을 하면 무자격자의 불평으로 취급받을 확률이 높으므로 더 파고들지는 않겠다.

장르소설은 대체 무엇일까? 이런 정의는 매우 적절하다.

장르문학(장르서사)은 추리소설, 판타지, SF 등과 같이 각각의 장르마다 창작자와 수용자가 직관적으로 공유하는 일련의 관습들(conventions)과 규약들(protocols)로 이루어진 서사양식을 말한다. (장르들과 접속하는 문학의 스펙트럼 / 박진 / 창작과비평 2008 여름)

나는 지난 번에 대중소설에 대해서 정의를 했었다. 지난 번에 논의를 더 이상 끌고가지 못한 것은 사실 위 장르소설의 특성이 정의되어진 바 대중소설의 정의와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공부가 부족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렇게 여겨지는 사실(장르소설은 대중소설의 하위 그룹이다)에 대해서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문화는 대량생산된 문화이며, 수준 낮은 문화라는 정의가 일반적이다. 레이먼드 윌리암즈Raymond Williams는 "대중적popular"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 열등한 작품들
- 사람들의 선호에 일부러 맞춘 작품들
- 사람들이 사실상 자신들을 위해 만들어낸 문화
(문화연구와 문화이론 / 존 스토리 / 현실문화연구 / 1994)

저 정의의 반대편에는 고급문화, 이 글의 논점에 한한다면 주류문학이 있다. 위에 언급한 존 스토리의 책에는 재미있는 예가 하나 실려있다. 1990년에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내놓은 "공주는 잠도 자지 않고Nessun dorma"라는 음반이 영국 음반 순위 1위에 올랐다. 그러자 이렇게 대중적으로 널리 팔린 음악은 고급 취향이 아닌 것이라는 불평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현실에 이 점을 빗대어 본다면 천만부가 나갔다는 <삼국지>를 쓴 이문열은 대중소설가이며, 책을 내놓으면 수십만 부를 파는 황석영도 대중소설가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본인들이 들으면 버럭 화를 낼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반면, 한때 수십만 부를 파는 이변이 있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5천부 이상이 나가지 않는 장르소설계란 사실 소수의 독자들을 위한 글을 쓰고 있는, 즉 대중소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분야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된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우리 시장에 있어서는 대량 생산이라는 대중소설의 특징 하나는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양산형 판타지 소설이라는 이름에서 증명할 수 있고, 실제로 작년에 나온 로맨스, 판타지 소설의 숫자는 분명 상식을 뛰어넘는 수량으로 대량 생산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대량생산된다고 해서 그것이 널리 알려지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즉 대량생산되지만 대중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러나 이것은 대여점이라는 특수한 시장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장르소설은 앞의 정의에서 나온 것처럼 일련의 관습과 규약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진입장벽으로 작동한다. 딘 쿤츠는 <베스트셀러 소설 이렇게 써라>에서 말한다.

장르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도록 해라. (중략) 100만부 이상 팔리는 책을 쓸 가능성이 있는데 왜 기껏해야 1만 단위의 독자밖에 얻지 못하는 장르를 고집하는가. 만일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어 장르소설에 적합하다면 좀 더 큰 야심을 갖고 멋진 대중소설이 되게끔 구상을 넓히고, 생각을 키우고, 재편성할 것을 권하다.

대중소설은 단지 대량생산된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대량소비가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황석영이나 이문열은 대량생산을 하는 작가가 아니고, 단지 대량소비되었을 뿐이므로 각각 그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셈이다.

진입 장벽에 대해서 더 이야기해보자.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우>의 속표지에는 "로맨스"라는 말이 적혀 있다. 그것은 로맨스 소설이었다. 이 "로맨스"라는 말은 지금 장르소설인 "로맨스장르"와는 다른 것이다. 넓은 테두리 안에서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사랑 이야기는 모두 로맨스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로맨스장르는 로맨스장르로서의 관습과 규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 소설을 읽을 수 없다. 상당수의 남자들이 그런 이유로 로맨스소설을 읽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SF나, 판타지나, 무협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고 일어나니 벌레가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는 감동적으로 읽는데, 왜 자고 일어나니 마법과 드래곤이 있는 세계였다는 소설은 읽지 못하는 것일까?

이상할 것이 없는 이야기다. 그 반대의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으니까. 그것은 결국 주류문학과 장르소설은 사실상 동일한 진입장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여기서 미리 흥분할지 모르겠다. 저 문장의 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양판소와 주류문학이 동등하다고? 물론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주류문학 역시 관습과 규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면 곤란하다. 아주 쉽게 말해서 "등단용 작품"이라는 말은 대체 뭘 의미하고 있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주류문학의 비평가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이 장르소설의 관습과 규약을 스토리와 혼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그들은 장르소설은 천편일률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곤 했던 것이다. (다행히 창비 2008 여름호에서 정영훈은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들이 장르문학을 읽는 것은 단순히 장르적 관습이 반복되는 데서오는 재미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새로움 때문이다.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이라는 시빗거리 / 정영훈 / 창작과비평 2008 여름)

이런 이야기는 1999년에 하응백이 한 아래와 같은 천박한 인식과는 궤를 달리 하는 것이다.

구태여 팬터지 소설의 한국문학 상의 계보를 찾자면, 그 무협지적 성격에 따라 <인간시장>, <소설 OOO>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이어질 것이다. (팬터지소설의 허와 실 / 하응백 / 문예중앙 1999 봄)

하응백의 저런 말이 나온 시점을 살펴보면 일견 저런 반응도 이해는 할 수 있다. 저 시절은 국내 장르소설들이 아직 서점에서 팔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즉 대여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장르소설 시장이 막 형성되어가고 있던 시점이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대여점에 대한 논의는 다음 편을 기약하자. 결국 이 이야기를 해야 대중소설과 장르소설에 대한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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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나 김진명을 대중소설가라 부를 수는 있지만, 그들을 장르소설가라고 부를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두 명칭 사이의 차이는 분명해진다 하겠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http://orumi.egloos.com/4051757를 참조.) 조성면 교수는 단지 그들의 차이점만 던져버리고는 얼렁뚱땅 논의를 넘겨버리고 말았다. 내가 보기에는 이에 대한 고민부족이 드러나버린 것으로 여 ... more

덧글

  • kkkclan 2009/01/29 13:40 #

    구태여 팬터지 소설의 한국문학 상의 계보를 찾자면, 그 무협지적 성격에 따라 <인간시장>, <소설 OOO>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이어질 것이다. <- 여기서 웃으면 되는건가요 ......... 간만에 큰웃음 짓고갑니다.
  • 초록불 2009/01/29 14:13 #

    그렇습니다...^^
  • 2009/01/29 14:0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01/29 14:13 #

    고맙습니다. 번역문에 있는 대로 옮겼더니...^^;;
  • moii 2009/01/29 14:28 #

    어떤 상품이 시장에서 존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상품을 욕망하는 수요자들이 있어야 되기 마련이지요.

    현실 속에서 탈주를 원하는 수요자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이 병폐에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양판소가 대량으로 생산되고 판매되는 현실은 사회적 병폐를 진단해야 할 하나의 사회과학적 fact로 규정하고 치료를 위한 대안을 찾아내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해요.
  • 초록불 2009/01/29 14:48 #

    양판소가 대량으로 생산은 되지만 대량으로 판매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문제는 차후 자세히 거론하도록 하겠습니다.
  • 진성당거사 2009/01/29 16:04 #

    잘 읽었습니다.
  • 초록불 2009/01/29 16:14 #

    고맙습니다.
  • 루드라 2009/01/29 17:17 #

    흐릿하게 알고 있던 부분들을 명쾌하게 정리해 주시는군요. ^^
    감사~ 감사~
  • Fedaykin 2009/01/29 18:29 #

    아아.. 요즘 고민하고 있었던 부분인데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2009/01/29 18:4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01/30 01:12 #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주류문화 대 대중문화의 구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새로운 화두기도 하죠.
  • kkkclan 2009/02/01 06:26 #

    순문학 하다 장르 하는... 박민규 작가님?
    여기서 잠시 떠오른 생각이지만, 한국의 장르문학을 관통하는 일련의 경향이란 어떤 걸까요. 이전에 한국적 판타지의 대표작이 이영도 작가님의 작품들이라는 부분에 이의를 제기하던 포스트에서 잠시 이야기했던 게 생각나네요.
  • 초록불 2009/02/01 09:37 #

    한국작가들의 장르소설에 어떤 공통적 경향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겠으나, 한국적 판타지라는 명제는 자칫 지엽말단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로서는 그다지 집중하지 않고 있습니다.
  • Eleniel 2010/12/28 17:49 #

    잘 읽었습니다. 장르소설 중 고급문화, 고급문학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있었는데 관련해서 또 생각해볼 거리가 생겼네요. 긁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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