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대표 33인 *..역........사..*



3.1 절 특집 포스팅입니다.

민족대표 33인에 대해서는 한 번 포스팅한 바 있지만(그리고 아마도 작년에도 링크를 걸었던 기억이 나지만) 아직도 네이버 지식인 등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변절하지 않은 사람은 만해 한용운 뿐이다라는 거짓 이야기가 횡행하고 있으므로 재탕이라도 다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제가 2006년에 이 문제에 대해서 포스팅한 이래 제 포스팅이 여기저기 인용된 것을 보았지만 넷 상에 일단 퍼진 엉터리 정보는 웬만해서는 가라앉지 않는군요.

친일파 문제에 평생을 바친 임종국 선생님의 <실록 친일파>(돌베개, 1991) 중 한 구절입니다.

- 3.1정신은 죽지 않았다
기미년 민족대표 33인 중에서는 최린, 정춘수, 박희도의 3명이 변절하였다. 독립선언서를 쓴 최남선을 포함해도 그 수효는 4명이다. 나머지 30명이 절개를 온전히 지켰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 30명마저 변절했다면 우리는 어디 가서 3.1의 자랑을 말하겠는가?

나머지 4명의 변절의 자취를 더듬어보면서 필자는 우리 민족이 살아온 고난의 현장을 생각하게 된다. 물에 빠진 자 지푸라기를 움켜잡는다는 속담이 있거니와, 일제 36년 특히 그 말엽에 이르러 조선인은 황민화정책의 탁류 속에서 그야말로 익사직전이었다. 이럴 때 박희도의 눈 앞에는 동아연맹이라는 환상의 지푸라기가 표류해왔다. 이나마를 움켜잡고 싶었던 박희도의 단말마적인 손길에서 필자는 보다 참혹한 비극의 현장을 보는 것이다. 비타협 급진 -> 타협노선 -> 친일화라는 당국의 간계를 뻔히 짐작하면서도 자치라는 지푸라기를 움켜잡았던 최린, 최남선... 이들의 단말마적인 손길에서 차라리 그냥 익사하느니보다 더 참혹한 비극의 현장을 보는 것이다.

말이 같아서 친일이요 반민이지만 그 동기와 양상은 천차만별이다. 누구는 군자금 몇 백 원을 밀고로 때웠고, 누구는 상여금 몇 푼에 독립군을 팔아먹었다. 일본여자를 아내로 삼아 일본 가문에 입적한 사람도 있었고, 반민 법정에서 후안무치하게 호통을 질러댄 사람도 있었다. 차라리 그 4명이 반민 법정에서 호통이라도 질렀다면 하는 역설적인 아쉬움마저도 남게 된다. 친일을 했으니까 미워해야 하는데, 차마 미워만 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그 4명의 발자국에서 느껴지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10%의 변절이 한국인에게 수치만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한 민족의 한 시대의 비극이 그들의 추문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친일자의 전부에 해당할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민족대표 중의 4명만큼은 한 시대의 민족의 비극을 고뇌하면서 살다 간, 변절을 했을 망정 그래도 조선의 양심이었다. 이들 4명의 죄상보다도 식민정략의 정체에 대한 인식이 앞서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pp140-141

<실록 친일파>에서 임종국 선생은 친일파들에 대해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준엄한 어조로 이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이 쓴 글입니다.

저는 일제강점기라는 그 어려운 시기에 절개와 지조를 지킨 이들을 기리는 노력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친일의 그늘이 깊을수록 빛나는 것은 그 시절에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싸운 사람들이 더 조명받아야 하는데, 아예 이 분들은 언급도 되지 않는 경우를 보며 서글퍼집니다. 그러므로 민족대표 33인, 그리고 그들을 지원했던 15인의 행적을 간략하게나마, 3.1절에는 되새겨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관심을 가지신다면 아래 포스팅을 클릭해 주십시오.

민족대표 48인... [클릭]



친일의 기준도 모른 채 무례한 댓글을 달아놓은 블로거를 차단합니다. 자기들 주장은 자기들 블로그에서 하기를. 이 블로그의 친일파 태그만 보아도 그런 유치만발한 친일 기준 따위는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친일파 문제는 기준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되지요. (내지는 의견을 교환하고 싶다면 기본적인 예의는 가지고 말을 하든지...)

기억을 둘러싼 투쟁 - 친일파 문제에 대한 고민 [클릭]

기왕 나온 문제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 포스팅도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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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Æterna 2009/02/28 21:51 #

    지금 윗사람들이 친일인데 이런 걸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신경쓴다 하더라도 국민들을 속이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 초록불 2009/02/28 22:01 #

    카에사르의 것은 카에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말하자면 정부는 정부고, 블로거는 블로거죠...^^
  • 을파소 2009/02/28 21:56 #

    그런데 어쩌다 한용운을 제외한 민족대표 모두 변졀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졌을까요?
  • 초록불 2009/02/28 21:57 #

    그거야 한용운이 독립운동가로 매우 유명하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유사역사학 신봉자는 한용운이 한국 역사를 축소 말살했다고 당당히 써제끼기도 했었죠...^^
  • rumic71 2009/02/28 22:12 #

    그보다도 최남선과 최린이 유명해서가 아닐지.
  • 을파소 2009/02/28 22:40 #

    한용운은 독립운동가로 유명하고, 최남선과 최린은 변절자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면 되겠군요.(...)
  • 오스발 2009/03/01 19:15 #

    "33인 중 대다수가 기독교인이랍니다. ^^"(기독교측)

    "까고 있네, 불교였던 한용운님 빼고 죄다 변절했거든?!(안티측)


    ......이런 이유도 있죠.
  • tore 2009/02/28 22:02 #

    민족대표 48인 보고 다시 눈물 흘리고 갑니다. 훌쩍-.
  • 초록불 2009/03/01 00:05 #

    ㅠ.ㅠ
  • Allenait 2009/02/28 22:04 #

    ...어째 세상은 이상한 떡밥이 난무하는 곳이 되었군요.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그걸 너무 축소한다거나 너무 확대하는 일이 횡행하는 것이 슬프군요.
  • 초록불 2009/03/01 00:05 #

    뭐든 제대로 안다는 건 어려운 일이죠.
  • 어릿광대 2009/02/28 22:13 #

    네이버 지식인 등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변절하지 않은 사람은 만해 한용운 뿐이다라는 거짓 이야기가 횡행하고 있으므로 재탕이라도 다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왠지 가슴속으로 찔끔거리네요;;
  • 초록불 2009/03/01 00:06 #

    친일파 떡밥이 하도 돌아다니고 걸핏하면 "모든 게 일제 탓" 신공도 난무하니까요. 정작 소중한 게 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죠.
  • 아브공군 2009/02/28 22:37 #

    저도 찔끔 했습니다.....
  • 초록불 2009/03/01 00:06 #

    ^^
  • Niveus 2009/02/28 23:22 #

    후우 어째 독립운동한사람들중 끝까지 절개를 지킨분들 자손들이 왜 저렇게 살게끔 만든건가 싶은 사례가 참 많은거같습니다 ㅠ.ㅠ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없던게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한 사람들 후손들이 몰락해서 없는것보다 더한것같은 느낌이 -_-;;;
  • 초록불 2009/03/01 00:07 #

    당대 사람들도 기리지 못하는데 후손을 기릴 수가 있겠나요.
  • 아롱쿠스 2009/02/28 23:27 #

    최린은 나중에 반민특위 재판때 '광화문 네거리에서 능지처참해달라'며 후회의 눈물을 뿌려, 재판정을 숙연케 했다고 하죠. 재판정에서 큰소리쳤다는 사람은 아마 '이종형'이라는 자일 것입니다.
  • 초록불 2009/03/01 00:07 #

    최린의 반성에 대한 이야기도 <실록 친일파>에 실려 있지요.
  • 나츠메 2009/02/28 23:30 #

    최린, 정춘수, 박희도, 최남선만 친일을 했을까요? 우리의 훈남 한용운 쎈세-는 "자신의 지조를 지키고" 정녕 친일을 안 했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
  • dunkbear 2009/02/28 23:50 #

    저도 초록불님 포스팅 읽기 전에는 민족대표
    대부분이 변절한 줄 알았답니다... 바보 같으니... ㅠ.ㅠ

    (근데 왜 내가 누르면 이미 추천했다고 나오느냔 말이닷!!!)
  • 초록불 2009/03/01 00:08 #

    그러니만큼 포스팅한 보람이...
  • 피그말리온 2009/03/01 00:01 #

    애초에 33명 중에 아는 사람이 다섯 손가락 안이니.....누가 그렇다드라 하면 그런가보다 해버린.....-_-a
  • 초록불 2009/03/01 00:09 #

    아무래도 잘 말하지 않으니까요.
  • 海凡申九 2009/03/01 00:11 #

    http://historykr.com/bbs/view.php?id=blog&no=271#271

    제발 좀 웃게 하지 마세요...
    "한위시기 만리장성->대동강까지~푸르게푸르게 초록불킴벌리" 이후로 또 도지신 겁니까?!!

    적당히 하죠...

    "김일성=어린시절 부터 솔잎으로 기관초 만들어 투쟁한 독립투사"說이 현실적입니다요....
  • 海凡申九 2009/03/01 00:13 #

    그 놈의 잘나신 "가카"도 보시면 웃을 겝니다
    환단야설을 아예 근대사에서 한 편 쓰시죠....


    김일성이 축지법하고 한용운이 대쪽이고 여운형이 討"일제"격문 쓴 거라고요...
  • 초록불 2009/03/01 00:17 #

    쯧쯧...
  • 액시움 2009/03/01 00:21 #

    저 링크에 들어가니까 왜 차단당한 IP 주소라고;;
  • 아롱쿠스 2009/03/01 00:25 #

    보기 좋지 않군요...

    민족대표 분들은 좌우 모두에게 외면당하는 건가요?
  • 초록불 2009/03/01 00:30 #

    아롱쿠스님 / 과거 진명행님이 저 포스팅을 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는 기계적인 친일잣대에 대한 비판이고, 다른 하나는 우파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무차별 친일 공세에 대한 비판이었지요. 물론 한용운도 좌파는 아니지만 아롱쿠스님 말씀처럼 좌우파 모두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에, 그런 무분별한 기준 설정에 대한 적절한 반론으로 존재한 것이지요. 그러나 진명행님의 뜻과는 달리 저 포스팅 이후 한용운도 친일파래, 라는 비웃음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친일파의 기준에 대해서는 한홍구 교수도 무차별하고 광범위한 친일의 기준은 의미가 없다고 말할 정도라는 것을 알아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아롱쿠스 2009/03/01 00:34 #

    결국은 글의 원래 의미를 왜곡하여 이용해먹는 자들이 문제인거군요.
  • 초록불 2009/03/01 00:35 #

    글의 의미를 왜곡해서 이용한다는 말은 좀 의미가 다를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왜곡이 아니라 그냥 이해를 못하는 거지요.
  • 상규니 2009/03/01 02:08 #

    민족대표 48인에 대한 포스팅 잘 보고 가며, 링크 걸어두겠습니다.
    후에라도 다시 볼수 있게요.

    언젠가 33인에서도 중요한 인물의 자제분들께서 방송에 나오는 것은 본 기억이 납니다.
    ( 물론 다 중요한 분들이지만 맏으셨던 직책때문인거로 기억이... )
    형제라곤 하지만 나이가 꽤 많으신(기억상으로는 60이 넘으셨던거 같은데 ) 두분이였는데
    아마 형님께서 불편한 몸에 정신적으로도 좋지 않으셔선 불편한 몸의 동생분께서
    고철을 모으시던가 했던거 같네요.
    너무 가슴이 아파선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잊어버릴수가 없어 기억하려고 합니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에 대해 많은 부분에서 부족한거 같습니다.

  • 2009/03/01 04:1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새벽안개 2009/03/01 06:07 #

    민족대표 48인을 보고 다시한번 눈물흘립니다. ㅠ ㅠ
  • 이준님 2009/03/01 06:39 #

    1. 한용문만~ 버젼이라는게 사실 중일전쟁 이후에 한용운 선생이 뚜렷하게 친일이나 반일활동 없이 살았다는 일때문이기도 하지요(물론 애정 소설이나 여러 불교 개혁활동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그러니 위인전에서 "아아. 한용운 선생은 얼마나 당대 일본을 싫어했는지 총독부 보기 싫어서 북향을 지었고 국방헌금도 안내고 꼬장 부렸다"식의 강골 이미지"만" 보여준겁니다

    그러니 "강골" 이미지와 일부 "변절" 이미지가 결합되서 "한용운"만" 절개를 지켰다로 바뀐거지요

    2. 한용운 친일파~의 논쟁 시발은 고은 선생이 발표한 어느 연구글때문일겁니다. 지나 사변에 대한 한용운의 글 이야기지요. 한용운 자체가 현재 정권과 무관해서인지 이 이야기는 좀 묻혔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이모씨의 소설을 들먹이면서 고은 선생에 대해서 반론을 했다는 OTL

    3.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홍구가 그따위 말을 하는게 개그군요. "우리와 정치적 이념 노선이 다른" 사람이라면 그런 무차별 기준을 퍼뜨린게 바로 그 사람 아닙니까? -_-;;;; 일제 연간 박정희 인간 쓰레기설류의 글도 대부분 한홍구-정운현 버젼으로 나왔습니다. 근데 인제와서 두 사람 다 그런식으로 발을 빼면 이명박이나 다를게 뭐가 있는지,한홍구 교수가 "왜" 그런 이야기를 펼쳤는지는 뭐 상상에 맡기겠습니다만
  • 초록불 2009/03/01 10:03 #

    한홍구 교수의 박정희와 김일성 평가는 난감한 면이 있다고 저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홍구 교수는 <대한민국사> 1권에서 친일파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설정되었다고 말하면서 - 읽는 이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좀 있긴 하겠지만,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대해서도 무작정 친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죠.

    한교수의 친일 문제와 박정희-김일성에 대한 잣대 문제는 일괄적으로 논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 이준님 2009/03/01 06:42 #

    4. 사실 민족대표 변절설보다 우리 나라에서 진짜 말이 많았던건 신복룡 교수의 모 글때문이기도 하지요. 손병희 선생이 천도교쪽이기 때문에 이건 무려 "종교단체"까지 들고 일어난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글도 글이지만 삽화가 무척 인상(?)적이기도 했지요, 하기야 일제 연간 기록을 보면 "3.1 소요, 엽색 괴승 손병희의 실체" -_-;;같은 흑색선전도 있었으니까 천도교에서는 더 강하게 항의했을겁니다만
  • 초록불 2009/03/01 10:04 #

    신복룡 교수도 안 끼는 곳이 없군요. 무슨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궁금하지도 않습니다...-_-;;
  • versilov 2009/03/01 10:32 #

    최린... 그나마 있는 우리 족보의 유일한 독립운동가이신데, 변절 ㅠㅠ 엉엉
  • SANGMIN 2009/03/01 11:38 #

    좋은글 감사합니다^^
  • 타누키 2009/03/01 12:17 #

    잘봤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지만 과거에 대해 설로만 접하는 사람이 많으니 재탕같아도 꾸준히 써주셔야 합니다;;;;;
  • Lucifer 2009/03/01 13:09 #

    예전에 어느 분한테 "한용운도 변절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이 근거로 드신 자료는 1930년대 후반부터 불교계 잡지들에 한용운이 기고한 글들인데요.
    조선은 자치로 만족해야 한다는 요지의 글들이 많다고 합니다.

    사실확인이 안되서 믿지는 않고 넘어갔습니다만... 뭔가 아시는게 있는지요 =ㅅ=;;
  • 초록불 2009/03/01 13:29 #

    저도 별다른 자료는 본 적이 없습니다. (위에 과거 진명행님이 쓴 글이 링크되어 있는데, 물적 증거로 제시된 것은 그것 뿐입니다.)

    한용운 선생에 대해서는

    http://www.manhae.or.kr/

    만해기념관 사이트를 이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子聞之曰是禮也 2009/03/01 13:41 #

    위의 海凡申九이 걸어 준 링크
    (http://historykr.com/bbs/view.php?id=blog&no=271#271)에 있습니다.
  • 子聞之曰是禮也 2009/03/01 13:41 #

    민족 대표 33분이 다 변절했다 하더라도 3.1절의 의미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3월 1일 봉기를 일으키도록, 불씨를 마른 들판에 던진 것으로 역할은 끝났습니다.
    훗날 변절을 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1919년 3월1일 그분들은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 초록불 2009/03/01 13:47 #

    옳은 말씀입니다.
  • 土龍 2009/03/01 13:41 #

    귀신 씨나락 까먹는 역사를 가지고 힘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
    요는 잃어버리기 전에 정신을 잘 찿자 아닌가! 답습도 아닌 내 정신이 가장 중요하다!
  • 초록불 2009/03/01 13:48 #

    뉘신지요?
  • 틱택토 2009/03/01 16:36 #

    혼자 정신이 나간듯.
  •   2009/03/06 13:34 #

    님 정신이 제일 중요 ㅇㅇ
  • seavil 2009/03/01 14:27 #

    종교계 인사가 주로 인데, 천주교는 왜 없을까요?
  • 초록불 2009/03/01 14:39 #

    그 문제에 대해서는

    http://www.catholictimes.org/news/news_view.cath?seq=16637&

    를 참고하세요.
  • seavil 2009/03/01 15:10 #

    저도 분명히 카톨릭 신자들은 참여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계의 배제 정책이라고 카톨릭 쪽에서는 이야기하는 군요. 잘 알았습니다.
  • 초록불 2009/03/01 15:17 #

    본래 3.1운동은 천도교와 기독교 학생단체가 따로 준비하다가 합쳐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불교-유교-천주교 등은 애초에 참여가 쉽지 않았던 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 소시민 2009/03/01 15:39 #

    저도 예전에 이갑성씨가 변절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직 확실히 입증된게 아니었군

    요.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 초록불 2009/03/01 20:27 #

    고맙습니다.
  • 셰이크 2009/03/01 17:14 #

    설령 33명 중에 33명 전부가 변절했더라도 독립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거국적운동이었다는 의미는 변하지 않겠죠.

    그나저나 29분은 정말.....
  • 초록불 2009/03/01 20:27 #

    그렇습니다.
  • leanna 2009/03/01 17:51 #

    흔히 '모두 변절했다' 라고 말하고,
    제가 역사를 배울 때도 그들이 보통 민중들 보다도 소극적이였다고 들어서 ( '요리집에서 선언문 한번 읽어주고 자진해서 잡혀간게 전부지 끌끌 ' 이런 식으로 소개했던...)
    안타깝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초록불 2009/03/01 20:27 #

    고맙습니다.
  • 누운 2009/03/01 20:17 #

    저도 독립선언서 33인에 대해 전혀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윗분 말씀처럼 딱 저 정도로 알고 있었던;; 부끄럽네요...
    가끔 방문하는데 댓글 다는 건 처음인 것 같네요^^;; 올 때마다 항상 많이 배우고 깨닫고 간답니다. 감사합니다.

  • 초록불 2009/03/01 20:27 #

    고맙습니다.
  • black_H 2009/03/01 21:17 #

    솔직히 변절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뭐 사람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용기있는 행동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다만 변절을 했는데 적극적으로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자기배를 불렸냐. 아니면 정말 생명보존을 위해서 자신의 이득없이 그냥 그들을 따랐냐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저는 무지해서 그런지 저 33명 중에 변절한 사람이 있다는 소리조차 몰랐네요;;
    어쨌든 저들이 독립을 위해서 노력을 하신 분들이니까요.
  • 초록불 2009/03/01 21:27 #

    맞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누명을 씌워선 안 되니까 이런 포스팅도 필요하겠죠.
  • 진성당거사 2009/03/01 21:38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 '인민봉기'(*북한에서 들었던 용어입니다.)가 벌써 90년이 되었네요. 북에서 인민봉기라는 단어를 듣기만 했지 실제로 그들이 3.1 운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접하지 못해서 그게 항상 궁금합니다. 혹시 관련 자료가 있으신지요?

    평소 1919년 당시 33인들의 현실 감각이 당시 국제 정세를 너무 이상적으로 보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가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정책에 대한 응답이겠지만) 새 시대가 눈앞에 전개된다고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다소 씁쓸한 기분이 들었죠. 하지만 그건 그들의 어쩔수 없는 한계였겠지요.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저 변절자 4인 가운데 박희도는 사실 정말 막장을 탔었죠. 언젠가 카이스트의 전봉관 교수가 글도 썼던 것 같지만, 1930년대 중반 신문지상과 잡지지상을 한동안 떠들썩하게 만든 여제자 추문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죠. 다른 세 사람은 인간적으로 이해라도 할 수 있겠지만 인간 박희도를 이해해 주기는 정말 힘들 듯합니다.

    지금은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정재용 옹이 1955년에 녹음한 '독립선언서' 낭독 레코드를 듣고 있습니다. 뭔가 뭉클해지네요.
  • 초록불 2009/03/01 21:40 #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얼핏 생각나기론 위대한 김일성 가문의 선조께서 지휘한 일대 사건으로 나오지 않던가요...-_-;;
  • 들꽃향기 2009/03/02 03:07 #

    잘 읽고 갑니다.^^

    과연 댓글을 차단 분들이나, 몇몇분들이 가볍게 쪼개는 것처럼, 33인의 운동가 중 '적극적 협력'이라고 할만큼 '변절'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네요.
  • 초록불 2009/03/02 09:10 #

    그런 건 친일파 논란 물타기일 뿐이죠. 모든 게 일제 탓이라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친일파라는 주장도 말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 Borntokill 2009/03/02 11:18 #

    예전에 자주가던 사이트에서.. 한용운 선생 빼고 다 변절했다는 소리를 하던 사람을 만난적이 있었어요. 물론 그분도 나중에 알고는 잘못을 인정하셨지만..

    양한묵 선생이 먼 친척할아버지뻘 되시고, 제 조부와 같은 동네에 사신 터라 변절이 아니라 옥사한걸 뻔히 들어서 아는 저로써는 벙찐 경우였죠. -_-;

    아무튼 잘 읽고 갑니다.
  • 초록불 2009/03/02 11:31 #

    훌륭한 분을 알고 계시군요. 이런 잘못된 인식은 언제 고쳐질지 답답합니다.
  • DK紅炎卿 2009/03/03 07:04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문득 "간디도 한국에서 그랬으면 친일파"라고 하시며 씁쓸히 웃으시던 역사 교수님 말씀이 생각나네요.
  • 초록불 2009/03/03 08:53 #

    맞는 말씀입니다. 고맙습니다.
  • 김태 2009/03/03 12:40 #

    제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수주 변영로 선생이 독립선언서 영어 번역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중에 취중에 최린 아저씨한테 시비걸었던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확인을 어떻게 해야할는지요.
  • 초록불 2009/03/03 12:41 #

    그, 글쎄요...^^

    저도 시간 날 때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시간이 언제 날 지가 문제군요...)
  • cryingkid 2009/03/04 10:37 #

    전에 친일파 레폿 쓸 때 관련 서적을 두루 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친일 연구의 효시격인 임종국 선생의 서문이나 발문이 후대의 역사가들에 비해서도 상당히 친일에 '유연'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슷한 예로, 1961년에 상영된 김기영 감독의 [현해탄은 알고 있다]를 본 적이 있는데, 극중에서 일본이 그려지는 방식 역시 현재의 기준으로 봐서도 다분히 깨인 면모가 있기에 감탄한 적이 있었구요. 그런 걸 보면 '친일'이라는 기표도 후대의 주석과 첨삭으로 엄연히 "구리게 재탕"돼온 게 확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 초록불 2009/03/04 10:54 #

    좋은 말씀입니다. 사실 반민특위의 위원들도 지금 논의되는 친일수준을 보면 경악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 2012/11/30 21:1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01 08:5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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