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동생 팔아 출세하기 - 첫번째 *..역........사..*



때는 바야흐로 15세기초. 저 멀리 구라파에서는 백년전쟁이 후반기로 접어들어 그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한 꼬마가 밀밭을 달음박질 치고 있었다. 그 다섯살 아이의 이름은 잔다르크.

이때 동쪽 끝 조선 땅에서는 때 아닌 눈물의 이별길이 펼쳐지고 있었다.

명나라에서 온 내시 황엄黃儼이 처녀 둘을 공녀로 데려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때는 한달 전. 1417년 7월 16일.

혼인금지령을 내리고 조선 팔도에서 뽑아올려 의정부와 육조, 대간에서 예심을 통과한 미녀 10여인을 경회루에 모아놓고 본심을 잔치를 벌였다. 이 중 최고의 미녀로 뽑힌 사람은 한씨韓氏. 그 이름은 사서에 전해지지 않으나, 지순창군사知淳昌郡事 한영정의 큰딸이오, 부사정 한확의 누이였다. 부사정이란 오위의 종7품 벼슬로 현직이 없는 이름뿐인 잡직이었다.

두번째로 뽑힌 처자는 17세의 황씨黃氏로 종친부 부령 황하신黃河信의 딸이었다(부령은 종5품 벼슬). 집이 청주였던 한씨도 황씨의 집에 머물게 했다.

황씨는 용모가 미려했으며 한씨는 용모가 선연嬋娟했다고 한다. 선연이란 품위가 있는 아름다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7월 21일 황엄은 돌연히 황씨의 집으로 쳐들어가 불시검문을 실시했다. 황씨의 형부 김덕장이 황씨 방 창문 아래 앉아있다가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황엄은 무례하다고 김덕장을 꾸짖은 뒤, 방에 들어가보니 황씨는 화장도 하지 않고 울고 앉아 있었고 상심한 나머지 병색이 완연했다. 당연히 노발대발!

"조선 왕은 정성이 갸륵하지만 당최 밑의 것들이 알아먹지를 못한다."라고 하자 놀란 태종은 내의와 내시를 보내 황씨를 보살피게 한다. 이 아가씨가 울었던 이유는... 잠시 후 밝혀진다.

8월 6일 드디어 북경을 향해 출발. 한씨의 오라비 한확과 황씨의 형부 녹사 김덕장이 동행했다. 녹사도 하급관리이다. 이 두 처녀의 아버지들은 모두 사망했으므로 물론 쫓아갈 수 없었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났을지 모르겠지만.

북경으로 가던 중 황씨는 자주 배가 아프다고 하고 백약이 무효했다. 황씨는 그저 김치국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요동의 황무지에서 그것을 만들 방법이 없었다. 결국 몸종을 시켜 배를 문지르게 하는 민간요법밖에 쓸 수가 없었다. 하루는 황씨가 배가 아프다고 말하고 부끄러워하며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는데, 이때 사산을 했다. 으잉? 처녀가 사산을?

아마도 배가 아픈 것 자체가 낙태를 위해 뭔가 몹쓸 약을 먹었던 것이리라. 몰래 변소에 버려버렸는데, 이 일을 중국 사신들은 알지 못했다.

이들이 누이와 처제를 명에 바치자 황제는 사은품을 내렸다. 물론 이 사은품은 돌아와 나라에 바쳤는데, 관대하신 태종은 그 중 일부는 이들에게 돌려주었다.

한확은 금 25냥쭝과 백은 50냥쭝을 받았고, 김덕장은 백은 50냥쭝을 받았다. 하지만 이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 여인들은 보통 공녀가 아니라 황제가 첩으로 삼기 위해 데려간 여인들이었다. 이제 이들의 출세문이 활짝 열린 셈이었다.

그러나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황씨는 처녀가 아닌 몸. 다른 사람들이야 속일 수 있었겠지만 같이 잔 영락제는 속을 리가 없다. 여자 경험이 하나둘인 몸도 아니고...

조사를 시작하니 김덕장이 정표로 나무빗을 준 사실도 밝혀졌다. 말 그대로 엿먹게 된 영락제. 노발대발해서 태종을 문책하는 칙서를 일필휘지 내갈기기 시작했다.

이때 조선에서 온 궁인 양씨楊氏가 이 사실을 알고 총애받던 한씨에게 달려가 전후사실을 고했다. 한씨는 한달음에 영락제에게 가서 말했다.

"우리 임금이 민간에서 일어난 사사로운 일까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말을 듣고보니 그것도 그럴 듯한데다가 자기가 엿먹었다는 이야기를 널리 공표한다는 것도 쪽팔린 일. 영락제는 황씨의 처벌을 한씨에게 일임했는데, 한씨는 뺨싸대기 한대 날리는 것으로 처벌을 마무리했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그나저나 황씨는 미모가 대단하긴 대단했던 모양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여인들의 선발은 실로 대단했던 것으로 이미 이 두 여인 이전에도 1408년과 1410년에도 선발이 있었다.

1408년에는 모두 다섯 여인이 뽑혔는데, 13세 이상 25세 이하의 여인들의 결혼을 금지시킨 뒤 선발에 들어갔다. 4월에 미녀를 바치라는 명이 떨어져 두 달간 선발 과정을 거쳐 전국에서 30명의 처녀가 끌려왔다. 의정부는 다시 이들을 심사해서 최종적으로 7명을 뽑았다. 그러나 환관 황엄은 이들을 보고 노발대발!

"이제 미녀를 보여줘."

경상도 경차내관 박유는 결박 당해서 곤장을 맞을 뻔 했다.

"경상도가 나라의 반인데, 미녀가 없다고? 눈깔은 폼이냐?"

황희가 나서서 간신히 황엄을 달랬다. 같은 황씨라 통했던가?

"애들이 집에서 떨어져서 근심걱정 때문에 이런 거임. 잘 먹이고 화장하면 해결됨."

역시 이 시대나 저 시대나 화장빨이 정답... (퍽!)

여자들은 중국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입을 일부러 비뚤게 하거나 다리를 절거나... 그리고 그 덕분에 그녀의 부모들은 자식 교육 잘못 시켰다고 다 유배형에 처해졌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황엄의 불만이 드높아서 2차 선발을 해야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음에 드는 미색이 없었다. 이젠 황엄은 다 필요없다, 돌아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하여 3차 선발전 개시.8월부터 10월까지 뽑혀온 처녀는 6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심사를 사신들이 직접 해서 이중 100여 명을 뽑았고 10월 11일 태종까지 합세해서 5명의 미쓰 조선을 선발했다.

뽑힌 여자들은 14~18세의 여자로 서울 출신이 셋, 인천과 수원이 각기 하나로 수도권 집중현상이 이때에도 보였음을 알 수가... (퍽!)

이 선발에는 1등부터 5등이 정해졌는데, 요즘도 그렇다시피 선발 결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태종은 특히 2등과 4등 처녀가 못생겼다고 투덜댔다는...

1등을 한 권집중의 딸 권씨는 미모가 출중했던 모양이다. 영락제에 의해 현인비顯仁妃에 봉해졌고, 다른 처녀들도 다 후궁의 지위에 올랐다.

1410년에도 미색을 요구받아서 전국에서 42명의 처녀를 뽑아 두 명의 여자를 뽑았다. 다행히 불과 열셋이었던 송경의 딸은 사신들 눈밖에 나서 지선주사 정윤후의 딸만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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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한확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했는데 이야기가 줄창 길어지는군요.

다음 편은 나중에...

덧글

  • 악희惡戱 2009/03/15 11:50 #

    오옷! 영락제의 그녀, 한씨!!!
  • 초록불 2009/03/15 11:55 #

    에... 역시 먼저 해치웠습니다. (으잉?)
  • 아야소피아 2009/03/15 11:50 #

    에휴..딱하네요..
  • 나아가는자 2009/03/15 12:01 #

    그런데 영락제의 후궁들은 다 죽지 않나요? 왠지 이 처녀들의 미래가 걱정스럽군요.
  • 초록불 2009/03/15 12:06 #

    앗... 이래서 한 번에 다 썼어야 하는데...
  • 초록불 2009/03/15 12:09 #

    어쨌든 사람은 다 죽습니다... (먼산)
  • 나아가는자 2009/03/15 12:33 #

    이거 제가 괜히 복선을 깔아버린 기분이네요. 죄송합니다. ㅠㅠ
  • 초록불 2009/03/15 13:02 #

    아니, 뭐 다 점심 먹으러 간 제 죄라능...
  • 死海文書 2009/03/15 12:09 #

    우와......
  • 소시민 2009/03/15 12:17 #

    한확이라면 인수대비의 아버지군요...
  • 초록불 2009/03/15 13:01 #

    앗... 여기도 스포일러가... ㅠ.ㅠ
  • park.kid 2009/03/15 12:44 #

    여동생 팔아 출세하기의 또다른 대표적인 인물로 체사레가 있지요. 지못미 루크레치아
  • 초록불 2009/03/15 13:02 #

    오옷... 그것은 서양사... (엥?)
  • rumic71 2009/03/15 13:04 #

    이래서 고자는... (잉?)
  • 斷月劒極 2009/03/15 13:17 #

    후...안습 특히 배가 아파하길래 설마설마 했거늘...
    역시 옛날에도 막장은 있엇던건가...;;
  • 斷月劒極 2009/03/15 13:18 #

    그런데...중국사에서 원때까지는 좀 알겠는데...명때부터 기억이 가물가물...;;
  • 초록불 2009/03/15 16:39 #

    그것이 인간의 본능...(으잉?)
  • 검투사 2009/03/15 13:26 #

    결국 끝은 장영실이 폭죽 쏴 올리는 거라능... =_=;
    그 장면 본 뒤 <대왕 세종>을 더 이상 안 봤더라능... =_=;;;
  • 초록불 2009/03/15 16:39 #

    하하...
  • 네비아찌 2009/03/15 13:38 #

    양반의 17세 따님이 그것도 형부랑 통정하고 애까지 갖다니, 영락제가 아니라 누구라도 당장 목을 베어버렸을거 같은데 살려둔 걸 보면 대체 황씨 아가씨는 얼마나 미인이셨길래....
    미인들이 다 원나라 명나라에 잡혀가버려서 우리나라에서 자연미인의 유전자 풀이 말라버린 걸지도 모르겠네요....
  • Shooting군 2009/03/15 14:02 #

    음? 저는 한국에서 길거리 다닐때 어린 처자들 보면 다들 아름답기만 하던데요. 물론 고친 분들도 많지만, 안 고친 분들도 많구요. 사실 고쳤다는 것도, 사회에서 미를 요구하니까 여성들이 고친다고 생각하기에, 별로 비난 하고 싶지도 않고..

    여튼 자연미인 유전자가 말라버렸다는 말씀은 뉘앙스가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마치 현재는 미인이 없고, 미인들은 다 고친 사람들이다...라는 듯한..)

    불쾌하시다면 죄송합니다. 사과 드리겠습니다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 초록불 2009/03/15 16:40 #

    얼마나 미인에 공감하고...

    뭐, 사실 잡혀간 여인네들은 대체로 못사는 집 여인들입니다. 그러니 자연미인 풀이 메말라버렸다고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 네비아찌 2009/03/16 10:39 #

    Shooting군님// 아닙니다. 제가 농담조로 말하다 보니 말씀하신 것처럼 좀 지나치게 말한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 한단인 2009/03/15 14:02 #

    ["경상도가 나라의 반인데, 미녀가 없다고? 눈깔은 폼이냐?"]

    이 말을 북악산 답사 때 김용만 선생님께 들었는데 이때의 일이었군요.
  • 초록불 2009/03/15 16:40 #

    설마 김용만 선생님이 저처럼 이야기하시진 않았겠죠.
  • 마법의활 2009/03/15 14:20 #

    제가 아직 철이 덜 들어서인지, 읽는 내내 재미있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속이 답답하군요. 이런게 약소국의 설움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 초록불 2009/03/15 16:37 #

    아무래도 그렇지요. 세종대왕이 분통을 터뜨리는 대목이 여러군데 있으나 그런 느낌만 강화시킬 것 같아서 적절히 커트했습니다.
  • 을파소 2009/03/15 14:23 #

    제목 보니까 한확이 생각났는데, 역시 나오는군요. 더이상의 스포(?)는 방지 차원에서 생략.
  • 초록불 2009/03/15 16:38 #

    헉헉... 다 썼습니다... 유명한 이야기가 아니라 악희님처럼 참신한 이야기를 발굴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ㅠ.ㅠ
  • 야스페르츠 2009/03/15 16:25 #

    이래저래 미녀는 괴롭군요. ㅡㅡ;
  • 초록불 2009/03/15 16:38 #

    미녀는 괴롭습니다.
  • ghistory 2009/03/15 17:03 #

    집이 청주였던 한씨도 황씨의 집에 머물게 했다: 도망치지 못하게 몰아서 감시하려 했나 보군요.
  • ghistory 2009/03/15 17:08 #

    질문들입니다:

    1. 백은: 백금인가요?

    2. 입을 일부러 비뚤게 하거나 다리를 절거나: 장애인을 만든 건가요?
  • 초록불 2009/03/15 17:13 #

    1. http://kordic.nate.com/dicsearch/view.html?i=29985600

    2. ghistory님도 바로 해보실 수 있습니다.
  • ghistory 2009/03/15 17:24 #

    감사합니다.
  • 진성당거사 2009/03/15 18:39 #

    아........드디어 이 훈훈한 막장 스토리가.........;;
  • BigTrain 2009/03/15 23:18 #

    능지... 하니 몇 달 전에 포스팅했던 제 글이 생각나는군요. "혹형"이라는 책을 리뷰했었는데...

    믿어야할 지 말아야 할 지 모를 정도로 기괴한 사연들이 많더군요. 트랙백을 한 번... ^^;
  • 초록불 2009/03/15 23:21 #

    그 책... 아직도 팔리나 보군요.
  • Allenait 2009/03/16 01:35 #

    참. 진짜 미인은 괴롭군요. 이지만 주변에서 미인을 가만히 두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 이야타 2009/03/16 09:20 #

    헐, 이 못땐 노무 시키-_-^ 한확이 드뎌 초록불님 포스팅에도 나오는 군요!

    작년 드라마 대왕세종을 매주말 챙겨보면서 디시 드라마갤에서 한씨네 집안 이야기를 듣는데

    어찌나 화가 나던지!! ㅜ.ㅠ 그리고 황씨도 참 불쌍하네요...

    형부한테 성폭행당했다가(그래도 사랑이라 믿었을지도???) 그 형부의 출세를 위해

    바로 버림받는 여인. - 제가 드라마를 좀 많이 봤습니다 ㅎㅎ

    황씨는 김덕장한테 철저하게 이용당했군요 ㅆㅂ

    한확이나 김덕장이나 정말 그 시대로 타임워프해서(시간을 달리는 소녀처럼??????????ㅋㅋ)

    몽둥이루 마구마구 때려주고싶네요!!!!! 나아쁜 넘들!!!!!

    역시 부모님의 존재는 소중한 겁니다. 한씨와 황씨 두 여인의 부모가 건강히 살아계셨다면

    몬땐 오라비와 형부에게 그리 당하게 놔두지 않았을텐데...

    지금 한창 떠들석한 고 장자연님 사건도 생각나고... 역시 부모님만한 울타리가 없군요.

    부모님 건강 잘 챙겨야할 것 같아요. ㅜ.ㅠ 흑.
  • 초록불 2009/03/16 09:27 #

    저 빌어먹을 형부 김덕장은 인녕부(정종을 모시는 부서)의 승丞이 되었고, 그후 기록은 없습니다. 승은 하급관직이니 처제를 탐한 이후 별 나쁜 짓은 안 한 모양입니다...-_-;;
  • 어릿광대 2009/03/16 09:54 #

    황엄은 어느정도 그럴수있다고 하는데 태종의 반응이 좀 압박이네요(쿨럭)
  • 애프터스쿨 2009/03/25 14:41 #

    잘 봤습니다.. 한확과 김덕장이 이 두놈을 그냥..-ㅅ-;;

    방원이 이놈-ㅅ-.. 하늘로 모셔야할 백성을 중국에 보내면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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