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사화 - 조의제문 *..역........사..*



이 포스팅은 중3 딸아이를 위해서 작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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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들이 중앙정부에 진출하면서 겪은 사화.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오사화(1498 연산군4)
자사화(1504 연산군 10)
묘사화(1519 중종 14)
사사화(1545 명종1)

사화는 본래 士禍라고 쓰는데, 사림과 훈구의 대립으로 사림들이 화를 당한 일이라 그렇게 쓴다. 훈구勳舊란 훈장을 받은 구세력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을 때 공훈을 인정받아서 정란공신이 된 사람들이 훈구파의 주된 세력이기 때문.

그런데 무오사화만은 史禍라고 해서 선비士가 아니라 역사史자를 쓴다. 그것은 이 일이 사초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사림은 고려가 망할 때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말하며 낙향하였던 선비들의 제자들이었다.

그 중 고려말 충신 길재의 제자의 제자되는 김종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단종이 살해된 소식을 듣고 꿈에 느낀 바 있어 글을 하나 지었는데, 그것이 조의제문弔義帝文(의제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었다.

항우가 왕이 되려고 모시던 군주 의제를 죽인 것을 비난하는 글인데, 목적은 물론 세조가 단종을 죽인 것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모르는 단어는 그냥 넘어가도 됨)

정축 10월 어느 날에 나는 밀성(密城:지금의 밀양)으로부터 경산(京山:지금의 성주)으로 향하여 답계역(踏溪驛)에서 자는데, 꿈에 신(神)이 칠장(七章)의 의복을 입고 헌칠한 모양으로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초(楚)나라 회왕(懷王=의제) 손심(孫心)인데, 서초 패왕(西楚霸王=항우)에게 살해 되어 빈강(郴江)에 잠겼다.」 하고 문득 보이지 아니하였다. 나는 꿈을 깨어 놀라며 생각하기를 「회왕(懷王)은 남초(南楚) 사람이요, 나는 동이(東夷=조선) 사람으로 지역의 거리가 만여 리가 될 뿐이 아니며, 세대의 선후도 역시 천 년이 휠씬 넘는데, 꿈속에 와서 감응하니, 이것이 무슨 상서일까? 또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강에 잠겼다는 말은 없으니, 정녕 항우(項羽)가 사람을 시켜서 비밀리에 쳐 죽이고 그 시체를 물에 던진 것일까? 이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고, 드디어 문(文)을 지어 조문한다.

하늘이 법칙을 마련하여 사람에게 주었으니, 어느 누가 사대(四大) 오상(五常) 높일 줄 모르리오. 중화라서 풍부하고 이적이라서 인색한 바 아니거늘, 어찌 옛적에만 있고 지금은 없을손가. 그러기에 나는 이인(夷人=조선인)이요 또 천 년을 뒤졌건만, 삼가 초 회왕을 조문하노라. 옛날 조룡(祖龍=진시황)이 아각(牙角)을 농(弄)하니, 사해(四海)의 물결이 붉어 피가 되었네. 비록 전유(鱣鮪), 추애(鰌鯢)라도 어찌 보전할손가. 그물을 벗어나기에 급급했느니, 당시 육국(六國)의 후손들은 숨고 도망가서 겨우 편맹(編氓)가 짝이 되었다오. 항양(項梁)은 남쪽 나라의 장종(將種)으로, 어호(魚狐)를 종달아서 일을 일으켰네. 왕위를 얻되 백성의 소망에 따름이여! 끊어졌던 웅역(熊繹)의 제사를 보존하였네. 건부(乾符)를 쥐고 남면(南面)을 함이여! 천하엔 진실로 미씨(芈氏=초나라의 성)보다 큰 것이 없도다. 장자(長者)를 보내어 관중(關中)에 들어가게 함이여! 또는 족히 그 인의(仁義)를 보겠도다. 양흔 낭탐(羊狠狼貪=항우)이 관군(冠軍)을 마음대로 축임이여!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에 기름칠 아니했는고. 아아, 형세가 너무도 그렇지 아니함에 있어, 나는 왕을 위해 더욱 두렵게 여겼네. 반서(反噬)를 당하여 해석(醢腊=젖갈과 육포)이 됨이여, 과연 하늘의 운수가 정상이 아니었구려. 빈의 산은 우뚝하여 하늘을 솟음이야! 그림자가 해를 가리어 저녁에 가깝고. 빈의 물은 밤낮으로 흐름이여! 물결이 넘실거려 돌아올 줄 모르도다. 천지도 장구(長久)한들 한이 어찌 다하리 넋은 지금도 표탕(瓢蕩)하도다. 내 마음이 금석(金石)을 꿰뚫음이여! 왕이 문득 꿈속에 임하였네. 자양(紫陽)의 노필(老筆)을 따라가자니, 생각이 진돈(螴蜳)하여 흠흠(欽欽)하도다. 술잔을 들어 땅에 부음이어! 바라건대 영령은 와서 흠항하소서.


이 일은 이극돈이 실록을 편찬하다가 김종직의 제자 김일손이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기록한 것을 보고 보복하고자 일어났다고 한다. 김일손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의 사초(史草)에, 이극돈(李克墩)이 세조조에 불경(佛經)을 잘 외운 것으로 벼슬을 얻어 전라도(全羅道) 관찰사(觀察使)가 된 것과, 정희 왕후(貞熹王后)의 상(喪)을 당하여 장흥(長興)의 관기(官妓) 등을 가까이한 일을 기록하였는데, 듣건대 극돈이 이 조항을 삭제하려다가 오히려 감히 못했다고 한다. 《실록》이 빨리 편찬되지 못하는 것도 필시 내가 상에 관계되는 일을 많이 기록해서라고 핑계대고 비어(飛語)를 날조하여 상께 아뢰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니, 지금 내가 잡혀가는 것이 과연 사초(史草)에서 일어났다면 반드시 큰 옥(獄)이 일어날 것이다."

김일손은 성종17년에 출사했다. 그런데 사초에 세조 때의 일을 들은 대로 이것저것 기록해 놓았던 것이다. 특히 조의제문을 쓴 것은 최맹한崔孟漢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내용에 비분강개했기 때문이었다. 최맹한은 단종의 죽음을 이렇게 전해주었다고 한다.

노산(魯山=단종)의 시체를 숲속에 던져버리고 한 달이 지나도 염습(斂襲)하는 자가 없어 까마귀와 솔개가 날아와서 쪼았는데, 한 동자가 밤에 와서 시체를 짊어지고 달아났으니, 물에 던졌는지 불에 던졌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대목이 언제 쓰였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현재 성종 실록에는 이 대목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 사관은 직급이 낮았을 때 지내는 경우가 많았으니 아마도 급제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기록한 것일 가능성이 높긴 하겠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단지 이극돈과 김일손이라는 두 사람의 감정 대립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당시 정권 주도 세력이었던 기득권 훈구파와 도의로 무장한 새로운 정치 세력이었던 사림파 간의 권력 다툼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일단 이 사건으로 사림 세력은 한 방 얻어맞고 주춤하게 된다.

사화라고 하면 훈구파가 무조건 사림파를 두들겨 팬 사건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갑자사화는 그 양상이 좀 복잡하다. 이 건은 다음에...

덧글

  • 아롱쿠스 2009/04/04 17:44 #

    사실, 당사자로 유명한 이극돈도 별로 재미를 못봤죠~

    재미를 본 인간은 연산 자신과 유자광...
  • 子聞之曰是禮也 2009/04/04 18:02 #

    사림이 고려가 망할 때 충신은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다고 말하며 낙향하였던 선비들의 제자들이라면요.

    황희 일가 같은 케이스는 어떻게 봐야 하지요?
    두문동 출신이지만 본인과 그 아들도 공신이되었는데요.
  • raw 2009/04/04 18:40 #

    대체적인 흐름이 사림은 고려때 낙향한 선비이고 훈척은 공신, 척신들이라는거지 절대적으로 가를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여말의 조준이 출신은 분명 권문세족임에도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이 된것처럼요.
  • 子聞之曰是禮也 2009/04/04 20:59 #

    황희가 공신은 아니었습니다.
  • 초록불 2009/04/04 23:14 #

    훈구파의 대부분은 앞서 쓴 것처럼 세조의 계유정난에 참여한 공으로 공신이 된 집단을 가리킵니다. 황희는 두문동에서 조정에 출사시킨 특수한 케이스로 알고 있습니다. 어려서 들은 이야기라 뭐 별 신뢰성은 없습니다만...
  • raw 2009/04/05 01:57 #

    '조선초에 전부다 출사하지 않았다.' 라는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출사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라는걸로 알고있습니다.
    또 출신도 중요하겠지만 당시의 어울리는 물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보면 된다 생각합니다만. 즉, 훗날 사림이라고 불릴 지역의 출신일지라도 당시의 위치에 따라서 훈척과 함께한 사람도 있었다라는거지요. 조준처럼 출신을 떠나서 당시의 위치에 따라서 갈라진것처럼 말이죠.
  • 子聞之曰是禮也 2009/04/05 19:23 #

    raw 님/

    대충 보면요.
    훈구파는 많이 생산하자, 많이 만들자. 이런 사람들이고
    사림파는 너만 갖냐? 나눠갖자. 이런 사람들이 아닌지요?

  • raw 2009/04/05 22:42 #

    저도 공부를 하다말다해서 확답을 드릴수는 없지만 대충 아는만큼만 말씀드리면
    많이 생산하자 vs 나눠갖자 라는 개념이 크게 틀린말은 아닌데 중앙집권 vs 지방분권 쪽이 더 가까울껍니다.
    여기서 중앙집권이라는 개념은 아시겠지만 지방분권은 지금의 개념이 아니라 지방 사림들의 의견이 중앙으로 적극반영되는 언론정치를 의미하는 겁니다. 즉, 사림 자체가 거대한 언론기관이 되어 국왕이나 신료들의 참모가됨과 동시에 그들의 견제기구가 되는거지요.
    예를 들면 사극같은데서 보면 간관들이나 재야선비들의 상소문들을 중앙에 올리는 행위같은게 사림이 지향하는 언론정치가 되는거구요.
  • 레드칼리프 2009/04/04 18:12 #

    이 부분은 의외로 고등학교에서도 자세히 가르쳐주는 부분이더군요.
    물론 중딩은 조의제문 앞부분만 면식이 있으면 패스.
  • 초록불 2009/04/04 23:15 #

    중학교에서는 너무 소략하게 넘어가는 모양이더군요. 잘 이해를 못하기에 따로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 catnip 2009/04/04 18:56 #

    사화에 대해선 많이 들었는데 그 한자가 뭔지에 대해선 생각조차 안해봤었네요.
  • 초록불 2009/04/04 23:15 #

    재미로 하는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 Allenait 2009/04/04 22:12 #

    무오사화가 史 자를 쓴다는거 처음 알았습니다.
  • 초록불 2009/04/04 23:15 #

    ^^
  • dunkbear 2009/04/05 00:09 #

    근데 최맹한이 묘사한 단종의 죽음은 정확한 것인가요?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 초록불 2009/04/05 00:38 #

    이래서 역사는 파고 들어가면 감자알 캐듯이 끝이 없다능...
  • 聖王 2009/04/05 10:57 #

    헉..
    제가 배운 바로는 저 4개 모두가 선비 士자 였는데 문제집이 틀린 겁니까?
  • 초록불 2009/04/05 10:59 #

    선비士로 썼다고 꼭 틀렸다고 할 것이야... 전통적으로 역사史자를 많이 쓴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할 겁니다.
  • raw 2009/04/05 16:56 #

    士자를 쓰지만 무오사화의 경우 사초로 터진 사건이라 별칭으로 史를 쓰기도하는데 오히려 지금은 史를 더 많이 쓴다는걸로 알고있습니다.
  • 루드라 2009/04/06 21:49 #

    raw님 말씀처럼 원래는 士를 씁니다만 士와 史의 한국 발음이 같고 사초가 그 발단이었기 때문에 史禍라고도 부르게 된 겁니다. 4대사화라고 할 때는 士禍라고 해야겠지만 개별적으로는 士禍라고도 史禍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겁니다.
  • SAGA 2009/04/05 20:33 #

    조선 전기에 일어난 사화들 때문에 골머리 썩힌 적이 있었죠. 이거 은근히 잘 안외워지더라구요. ㅡㅡ;;; 사건 전후를 파악해서 왜 일어났는지를 알아야하는데...... 이유들이 제각각이라...... ㅡㅡ;;;
  • 어릿광대 2009/04/06 11:15 #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네요
    왠지모르게 역사는 한번 빠져들면 영영 빠져나오지 못하는것 같네요..
  • 나루 2009/04/07 18:01 #

    오오..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셔서 이해하기 쉽네요...
    제가 고등학교때 ebs강의 국사를 한 번 들어본 일이 있는데, ('전한길' 이라고 하는 분의 강의였습니다.)그 강사님은 연산군 엄마 원수'갚자 사화' '조광조가 기묘하게 날라간 사화' 외척이 정권을 잡으니 '얼싸 좋구나' 이런식으로 설명했었지요... 정말 맥락도 없지만 나름대로 외우기에 좋은 방법이랄까요.
  • 초록불 2009/04/07 18:18 #

    네... 저도 아이한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무오 사화가 제일 처음 일어난 거라서...

    무어? 사화라고? (먼산)
  • 이야타 2009/04/09 21:53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외우는 방법이 잼나네요^^
  • 금강불괴 2009/07/28 08:12 #


    이극돈은 즈그 선대에 개국공신 둔촌 이집의 깔아 놓은 방석위에서 호사를 누린 한 마디로 세조조에 불경을 앵무새 처럼 잘 외웠기 땜세 벼슬을 얻었고 실록청에 근무하다 보니 김일손을 죽이려 작당심 한 것으로 사료되오이다.

    작금의 세태나 다를게 뭐 있단 말이오 안타까운 인물들 다 죽였어 아쉽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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