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 (2) *..역........사..*



2. 근대와 황제

변법자강파의 등장 - 청 광서제와 개혁 추진
강유위康有爲 (1858-1927)
양계초梁啓超 (1873-1929)

국수파의 등장 - 종족혁명 주장 (한족 중심)
장태염章太炎 (1869-1936)
황절黃節 (1873-1935)
유사배劉師培 (1884-1919)
장유壯游 - '국민신영혼'에서 "황제 종족을 이끌고 다른 종족과 싸우니..." 운운

* 노신魯迅 (1881-1936) - 1903년 "나는 나의 피를 헌원황제에게 바치노라"는 시를 지음 - 이 시기에 이르면 황제는 중화민족의 상징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역사학의 움직임
1901년 양계초 <중국사서론>을 발표하며 '신사학'을 제창함
국민 주체의 새로운 역사에 대한 열망은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국혼'을 일깨우자는 주장으로 발전
국혼을 일깨울 인물을 끌어내서 민족자존심을 드높이고 민족 동일성을 획득하고자 함

민족영웅의 탄생 - 악비의 탄생
양계초 - 장건, 반초, 무령왕, 정화 전기
황절 - <황사黃史> 열사 180명 선정
도성장陶成章 - <중국민족권력소장사> 황제에서 악비, 문천상에 이르는 영웅 계보 작성
유사배 - "국민은 무리의 힘을 합쳐 외족을 막아야 한다. 이족異族을 배척하고 동종同宗을 보위하면 그보다 큰 공이 없으며, 이족을 도와 동종을 해치면 그보다 큰 죄가 없다."
장태염 - 이민족 왕조를 배제하고 한족의 역사만 기술하자!

악비가 민족영웅으로 떠받들어진 것은 청조 말기부터.
새로운 중화민족의 개념에서 악비의 지위는 흔들리는 중 - 다민족일체론에 의해서 악비가 배척당하고 있음

대민족주의(강유위, 양계초)와 종족혁명론(장태염, 유사배)
강유위 - 한족, 만주족, 몽골족, 회족, 장족이 모두 중화국의 국민이라는 대동사상을 주창.
양계초 - 중국이라는 영역 안의 모든 민족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민족 영웅이란 국가 영역을 넓힌 인물 - 장건, 반초, 정화(1905년 <조국 대항해가 정화전> 집필) / 1904년 <중국 식민 8대 위인전> - 동남아 화교를 동남아 중국 식민지로 파악한다. / 1897년 <논중국지장강> "인도가 창성하지 못한 것은 종족의 한계 때문이다. ... 황인종만이 백인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래서 백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황인종도 못하지 않는다. 일본이 서방을 모방하는 것을 잘하는데 일본의 종족은 본래 우리 중국에서 나온 것이다." / <역사여인종지관계> "역사란 무엇인가? 인종의 발달과 그 경쟁을 서술한 것일 뿐이다" (이 대목은 신채호의 말을 연상케 한다)

양계초는 역사를 인종 간의 투쟁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강해져야 한다고 보았으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사고를 갖고 있었다.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楡吉) 역시 동일한 주장을 한 바 있다. 또한 양계초는 국가를 위해 개인의 이익을 희생해도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양계초는 국가주의자라는 이야기.

장태염 - 화이유별華夷有別을 주장. 만주족과 한족은 언어와 정교, 음식과 거주지가 모두 다른데 어찌 동종이라 하겠는가? 민족이란 천연민족을 가지고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민족을 가지고 구분하는 것이다. (장태염의 이 말은 종족과 민족의 개념이 불분명한 때문에 나온 것이다) 장태염은 1900년 쓴 <구서>에서 한족만이 인간이고 한족 이외의 민족은 짐승이라고 멸시. 이런 극단적인 사고는 1907년에는 누그러 든다.

장태염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의 순수성"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임승국도 <한단고기>에서 이런 주장을 한 바 있다.) 문화가 같으려면 혈통이 같아야 한다. 그리고 조선과 베트남은 한족과 같은 혈통이므로 회복해야 하는 나라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 두 군郡은 한나라 때 중국의 영토이며, 일본학자 오카모도 간스케(岡本監輔)가 조선을 달단의 후예라고 한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 티베트 장족과 회족, 몽골족 등은 그냥 내버려두거나 미국의 흑인 대하듯이 해야 한다고 주장. 중국 역사에서 금-원-청을 배제. (임승국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조선을 배제한 바 있다.)

유사배 - <중국민족지> "민족이란 같은 혈통의 가족이 다른 혈통의 이족異族과 합쳐져 단체가 된 것. ... 한 무리의 행복을 위해 세력을 확장하다보면 다른 무리를 해칠 수도 있으니 이것이 바로 민족 경쟁의 시작이다." 국가를 가족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고 있는데 이것은 천황을 중심으로 나라를 한 가족으로 본 일본의 시각과 동일. (또한 단군을 중심으로 한 가족이라 보고 있는 유사역사가들의 시각과도 일치한다.) "동종이란 무엇인가? 바로 우리 한족이다. 조국이란 무엇인가? 바로 우리 중국이다. ... 중국이라는 것은 바로 한족의 중국이다. 한족을 배신하는 자는 바로 중국을 배신하는 자고, 한족을 지키는 자는 바로 중국을 지키는 자다."

도성장 - "이족異族은 속여도 신의없다 하지 않고, 죽여도 어질지 않다 하지 않으며, 그들의 것을 빼앗아도 의롭지 않다 하지 않는다."

황제기년의 문제
황제기년을 4625년으로 보는 것은 송나라 소옹의 <황극경세>에 바탕.
<황극경세>는 황보밀의 <제왕세기>를 베낀 것이고 <제왕세기>는 현전하지 않음.
양계초는 "황제기년"은 날조 . <죽서기년>의 신뢰도 낮음. 서주 공화 원년을 기년으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 양계초는 연대를 밀어올리려는 것은 한나라 유흠 일파의 독에 중독된 것이라며 맹비난. 그러나 그 역시 <중국사서론> 제5절 '인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한종漢種이라는 것은 우리들 현재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소위 문명의 후대로, 황제의 자손이다. 황제는 곤륜의 대산맥에서 나와 파미르 고원에서 동으로 향해 중국에 들어오고, 황하의 연안에 거주하며 사방으로 번성해 수천 년 내내 세계에 빛나는 명성을 넓혀갔다. 이른바 아시아의 문명은 모두 우리 종족이 스스로 씨 뿌리고 스스로 수확한 것이다. (이 대목을 보면 우리나라의 유사역사가들이 누구 것을 베껴왔는지 확연히 알 수 있다. 이런 걸 신봉하는 무리들이 제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2006년 12월 CCTV에서 <대국굴기> 방영 후 황제기년을 사용하자는 논의가 거세어짐. 기원전 2698년을 황제기년으로 잡는다.

비판 : 상해 복단대학 사회학과 교수 우해于海 - 온 세계가 공용으로 사용하는 기년을 황제 기년으로 바꾼다고 해서 민족 자신감이 더 생기고 서방 문화의 내습을 맏을 수 있는 것이냐? 황제는 전설이고 그 자체가 허구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중국인이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것은 자강, 인격수양, 자존심 같은 것들이지, 이미 사라진 제사 따위가 아니다.

손문의 노선
손문은 신해혁명까지는 "구제달로, 회복중화" - 달단 오랑캐(만주족)을 몰아내고 중국을 회복하자는 구호로 어필했고, 정권을 잡은 뒤에는 '오족공화론=오족일가론'을 내세운다. 그리고 1920년 오족공화보다 더 나아간 개념인 "중화민족론"을 들고 나온다. 중화민족론은 한족을 중심으로 해서 "장몽회만"족을 동화시킨다는 개념. 손문은 장, 몽, 회, 만족에게는 자위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한족이 나서야 한다는 이야기.

1924년 손문은 광주 연설에서 민족의 구성 요소는 혈통, 생활, 언어, 종교, 풍속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혈통이라고 주장.

황제 - 개량파와 혁명파 모두의 영웅
청말 마군무의 시 - 서쪽에서 온 황제가 치우를 이겼네, 삼림을 향해 자유를 묻지 마라.
여성혁명가 추근(1875-1907)의 시 - 아득한 옛날 우리 헌원황제께서 곤륜에서 일어나시어 황하와 장강을 개척하고 큰 칼 휘둘러 중원을 장악하셨네.
양계초의 시(1904) - 위대하신 우리 조상 그 이름 헌원, 곤륜산에서 내려오셨네. 북으로 훈육을 몰아내고 남으로 묘만을 몰아내며 전쟁터를 치달리셨지. 이민족을 몰아내고 주권을 정하여 우리 자손들에게 남겨주셨네. 아! 우리 자손들이여 조상의 영광을 잊지말자. / 온화하신 우리 조상 그 이름 헌원, 세계 문명의 시작이라네. 인문과 천문과 역법을 세우시고 의술과 약을 전해주셨네. 과학과 사상도 그 근원을 찾아가면 모든 문명 우리가 맨 먼저 시작했지. 아! 우리 자손들이여 조상의 영광을 계속 이어갈지어다. / 위대하신 우리 조상 그 이름 헌원, 밝으신 그 덕이 얼마나 멀리 미치는가. 손수 아시아의 첫째가는 나라를 여니 땅에 찬란함 가득하네...(하략. 이 시는 <환단고기>의 사상과 매우 유사하다. 구한말에 양계초의 서적은 엄청 읽혔으니 그 영향이 우리나라의 유사역사가들에게 깊이 파고들었던 것이다.)
손문의 <황제찬> - 지남차를 만드시어 치우의 난을 평정하셨지. 세계의 문명 중 오직 우리가 가장 빠르도다.
모택동 <제황제릉> - 위대하신 시조, 우리 중화를 시작하셨다. ... 위대한 창업을 이루시니 동방에 우뚝 서도다.

라쿠페리(A. T. de Lacouperie)의 등장
1880년 <고대 중국 문명의 서아시아 기원론, 기원전 2300~기원후 200 Western Origins of the Early Chinese Civilization from 2300 B.C. to 200 A.D.>
이 책에서 황제는 서아시아 바빌론 일대에 거주하던 바크Bak족의 우두머리 쿤두르 나쿤티(Kundur Nakunti)라고 한다. (저 Bak을 나중에 박朴씨로 바꿔놓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가 자기 부족을 거느리고 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카슈가르를 지나 타림 분지와 곤륜산맥을 넘어 감숙성 일대로 들어와 토착 민족을 몰아내고 황하 유역까지 영역을 넓혀 마침내 나라를 세웠다는 것. 현대 중국학자들은 제국주의적 발언으로 보고 있음. 그러나 20세기 초에는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바보들도 낚고 있다!!!) 장태염, 유사배, 황절이 적극 동조했고 양계초도 받아들였다. 양계초는 갑골문자가 이 사실을 증명하는 문자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장태염은 사르곤은 신농, 칼데아는 갈천이라고 주장. 그러나 양계초와 장태염은 훗날 이런 입장을 철회한다.

[추가]
라쿠페리가 국내에 알려진 이야기는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친일파의 대물림 - 재야사가 최동에 대하여 [클릭]

--------------------------------------------------
다음 편에서는 현대 중국의 민족주의 문제가 다뤄집니다.

덧글

  • 2009/04/24 18:2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04/24 19:50 #

    묘한 데서 오타를 냈군요...^^
  • Allenait 2009/04/24 20:54 #

    ..뭐 이거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말이죠..
  • 我行行 2009/04/24 21:33 #

    DC 역갤에서 최X석님께서 황제헌원, 염제신농 어쩌고 저쩌고 하시다가
    경주최씨의 시조는 중국인이라고 합디다.

    전곡리에서 석기를 만든 분들이 우리 조상인지조차 불분명한것이 현실이고 또 황제를 살려서 후손이 누구냐고 물어봐도 누가 후손인지 모른다고 할 것같습니다.
  • 을파소 2009/04/24 21:49 #

    고조선이 지중해에 있었다는 것도 마지막 것의 변형 같네요.
  • 聖王 2009/04/24 22:43 #

    오, 외국의 유사역사학에 대한 사례도 연재하시는 겁니까? 참 좋은 기획이라 생각합니다.
    아시아뿐 아니라 서양 쪽도 많이 다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진성당거사 2009/04/24 23:41 #

    글 잘 읽었습니다. 중국의 국수주의적 역사관에 대해서는 관심만 많지 정작 체계적인 지식이 없어서 이곳저곳 모르는 부분이 많은데, 정리를 확실하게 잘 해주셨네요.
  • Niveus 2009/04/25 09:49 #

    흐흑...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 시궁창이로군요 ㅠ.ㅠ
  • 들꽃향기 2009/04/25 13:27 #

    저 라쿠페리의 서아시아 기원론이 앙리 마스페로와 같은 학자들에게 받아들여졌고, 일본인 중국 연구가들에게도 어느 정도 수용이 된 듯 합니다.
  • 초록불 2009/04/25 13:40 #

    http://orumi.egloos.com/3223962

    에 라쿠페리가 국내에 소개된 유래가 적혀있습니다.
  • 어릿광대 2009/04/26 17:53 #

    * 노신魯迅 (1881-1936) - 1903년 "나는 나의 피를 헌원황제에게 바치노라"는 시를 지음 - 이 시기에 이르면 황제는 중화민족의 상징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이 왠지 모르게 충격이네요;;
  • 초록불 2009/04/26 20:49 #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고, 그때는 그때 나름 유용했던 것이니까요. 중국도 상황은 비슷했다고 봅니다. 이 시기의 중국을 반식민지라고도 배우죠.
  • 이야타 2009/05/01 19:35 #

    뭐가 뭔지;;;; 머리가 지끈지끈하네요 -_-;;;;;;;;;;;
  • 파랑나리 2012/04/21 17:51 #

    박노자가 쓴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에서 양계초는 1차대전 뒤 유럽의 참상을 보고 자신의 국가주의 이론을 반성했는데 안타깝게도 당시 조선에는 이게 알려지지 않았답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