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 편집 *..잡........학..*

책이 예전보다 두꺼운 것들이 많은데, 읽어보면 술술술 책장이 넘어간다.

물론 저자가 글을 잘 쓴 탓일 수도 있지만, 알고보면 편집이 널럴해서 그렇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신국판으로 2001년에 나온 <고려무인이야기>는 한 페이지에 26줄이다.
신국판보다 약간 더 크게 나온, 그러나 그냥 신국판이라고 해도 될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의 경우, 한 페이지에 22줄이다.

1986년에 나온 <한국사신론>은 한 페이지에 27줄이었다.

좀 빡빡해보이던 <특강>(한홍구의 현대사 이야기>은 한 페이지에 24줄.

그리고 예전 책들보다 활자가 커졌다. 같은 신국판이라고 해도 <고려무인이야기>는 한 줄의 길이가 9.5센티미터, <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는 10센티미터고, <특강>은 10.2센티미터이다.

<한국사신론>은 10.3센티미터나 되는데, 1줄에 들어가는 글자 수가 한두 자 정도 많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글자와 글자 사이의 자간이 무시무시하게 넓어서 글자 자체는 한눈에 알 수 있을만큼 <한국사신론>쪽이 작다.

내 눈대중으로 보면 <특강>은 11포인트 이상이고 <한국사신론>은 8포인트 이하다. (편집디자인 경력 8년...)

이런 글자 크기가 가독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신문활자들도 70년대 신문과 요즘 신문의 활자 크기는 엄청나게 다르다. 그러고보면 처음 매킨토시로 편집을 하던 시절, 그러니까 1990년대 초반의 일이 생각난다.

당시 매킨토시 LC가 스타일라이터라는 잉크젯 프린터와 쿼크익스프레스라는 편집소프트웨어와 묶어서 250만원 정도에 구입이 가능했다. 충무로에 그거 하나 놓고 쪽편집에 뛰어든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당시 인쇄나 출판 쪽에서는 이 최신 "컴퓨터 편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컴퓨터 편집"을 하면 책이 바보처럼 보인다고 투덜댔던 것인데, 그 말이 정말이었다.

우리 인쇄에 쓰이던 활자는 최정호 원도라고 납활자본으로 된 것을 그대로 컴퓨터에 옮겨놓은 것이었는데, 이 때문에 편집을 하면 글자와 글자 사이 간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자간에 마이너스값(대개 10포인트 글자에서 -15에서 -18정도)을 주어서 글자들을 붙여야 했는데, 컴퓨터 편집에 대해서 고민도 없고, 공부도 하지 않았던(그리고 당시만 해도 배울 데도 거의 없었다) 오퍼레이터들은 그냥 100% 작업만 했기 때문에 편집면이 매우 엉성해 보였던 것이다. (글자에 "장"이니 "평"이니가 뭔지도 몰랐다.)

그나마 사진식자 경험이 있는 오퍼레이터들은 "칫수조절"이라고 말하면 바로 알아들었다. 물론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2년에 맥마당과 맥월드가 나오고 DTP라는 용어도 알려지고, DTP 편집 노하우가 잡지를 통해 소개되면서 아주 빠르게 매킨토시가 편집계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야기가 좀 엉뚱하게 흘러갔다. 당시에 "스캔"이라는 신기술을 접하면서, 분판과 라인아트를 구분하느라 낑낑대던 일들이 이제는 우습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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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Allenait 2009/05/01 09:59 # 답글

    하기야.. 예전 책 같은 경우에는 활자 크기나 장평 같은게 제멋대로인게 간혹 있더군요.
  • organizer™ 2009/05/01 10:50 # 답글

    요즘 책은 확실히 널널해졌습니다. 시원 시원하다고라고 할까.

    지금도 외국에서 나오는 책들은 여전히 빡빡하게 글자로 채워 놨던데 ... 그래서 눈이 아플 때가 많았는데 ... 책을 널널하게 편집할 수 있다는 것, 이게 혹시 '한글의 우수성'은 아닐까요??
  • 초록불 2009/05/01 11:38 #

    페이지 수를 늘려서 책값을 올리려는 출판사의 농간일 뿐입니다...-_-

    물론 점점 더 책을 안 읽는 문화풍토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 야스페르츠 2009/05/01 10:58 # 답글

    확실히 영어에 비해서 한글이 지면에 표시하기가 좋더라구요. 영어는 단어 중간에서 줄을 바꾸려면 하이픈으로 지저분하게 바꿀 수 밖에 없어서...
  • 에르네스트 2009/05/01 12:05 # 답글

    판타지 소설쪽만 보아도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요..... 드래곤 라자(98년판)당시만 해도 250Kb~300Kb가 1권이었는데 지금은 200~250Kb가 1권이 되고 몇몇 날강도급은 150~200Kb수준도 나옵니다. (책자체가 작아지고 자간은 2배로 늘고 줄간격도 2배~)
  • 초록불 2009/05/01 12:17 #

    오오, 이건 세대차이...

    저같은 구세대는 원고지가 아니면 계산이 잘 안 됩니다.

    예전에는 원고지 천2백이 한 권... 점점 줄어서 제가 <무적기사단> 낼 때는 천백매 정도되더니 요즘은 9백매로도 한 권을 만들 수 있다고 하더군요.
  • 카구츠치 2009/05/01 12:19 # 답글

    초기에는 장/평도 몰랐다는 일화는 재미있네요. 후후
  • 초록불 2009/05/02 07:03 #

    요즘에는 이런 일이 없죠...
  • 잠본이 2009/05/01 12:29 # 답글

    편집의 어려움이 절로 느껴지는군요.
    옛날 민서출판사에서 과레스키의 신부님 시리즈를 재판 낼때도 은근슬쩍 일부 내용을 들어내고 글자 크기와 자간을 키우고 책 판형도 바꿔서 더 비싸게 냈는데... 아니 다른건 그렇다치고 어째서 내용을 삭제한 건지 OTL
  • 초록불 2009/05/02 07:04 #

    글쎄말입니다.
  • 세실 2009/05/01 12:42 # 답글

    편집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군요~
    ...개인적으로는 최근 책들이 너무 널널하게 편집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된 것이 조금만 읽으면 어느새 페이지를 넘겨야 하니....-_-
    너무 빡빡한 것도 가독성이 떨어지지만, 너무 널널한 것도 짜증이 나서...;ㅅ;
  • 초록불 2009/05/02 07:04 #

    책이 잘 팔리는 세상이 오기 전에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 dunkbear 2009/05/01 12:56 # 답글

    그래서 번역소설은 툭하면 1, 2권 이런 식으로 나누는건지...
    (아니면 그냥 돈 더 벌겠다는 장사속???)
  • 초록불 2009/05/02 07:04 #

    장삿속이죠...
  • 이준님 2009/05/01 14:27 # 답글

    페이퍼백으로 1권 꽉꽉 8천원(싸구려로) 하는 책이 물건너 오면 4권에 32,000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런 경우는 대부분 일부러 장평 넓히기입니다

    요새 분들이 빽빽한 책을 보기 어려워 하는 것도 있긴 하지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경우 똑같은 사람의 번역본을 썼는데 70년대판과 지금판의 권수가 다른게 압박이긴 하지요

    ps: 빽빽판으로 900페이지 원서를 한번 읽으면 갑자기 인생이 달라보입니다. oTL;;;;
  • 초록불 2009/05/02 07:05 #

    3권으로 나왔던 것이 5권으로 나왔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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