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4월 19일 *..자........서..*

우리는 스크럼을 짰다. 교문을 나섰다. 학교 앞 도로는 이미 경찰에 의해 신촌로터리 쪽과 대흥동 쪽이 모두 막혀 있는 상태. 우리는 걸어가 전경의 방패 앞에 섰다. 페퍼포그 차에서 경고방송이 나왔다.

"친애하는 서강 학우 여러분.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것입니다. 어서 학교로 돌아가십시오. 여러분과 충돌하기 싫습니다. 어서 학교로 돌아가십시오."

긴장이 흘렀다. 방패 뒤의 전경들은 이미 45도 각도로 유탄발사기를 올린 상태였다. 사과탄도 이미 손에 들려있을 것이다. 짧은 적막.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폭력적인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수유리까지 평화행진을 하겠다고 했을 뿐이다. 사실 그 먼 거리를 과연 갈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지만, 우리는 그것을 요구하고 길을 비켜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대답으로 방석복에 방패에 곤봉과 방패. 그리고 유탄발사기와 페퍼포그 차량이 우리 앞에 서 있는 중이었다.
그 날을 기록한 일기


선두의 제일 앞에 서 있던 삼민투 위원장은 다시 말했다. 비켜달라고. 그러나 그 벽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몇 개의 돌이 전경들에게 날아갔다. 꿈 속처럼 그 장면이 선명하다. 그날이 내 첫 시위였기에. 다음 순간 삼민투위원장이 돌아섰다. 돌을 던지지 말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머리 뒤로 불꽃들이 파바방 피어올랐다. 펑, 하는 소리가 내 주변에서 쉴 새 없이 터졌다. 나는 잠시 멍하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그곳에 서 있었다. 현실의 소음은 그 다음에 들려왔다. 내 기도를 찢어버릴 것 같은 최루가스와 함께.

지금도 전경들이 대열을 해체하고 달려들었는지 그대로 저벅저벅 진군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잠시 후 나는 본관 앞 솔밭에 쓰러져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본관 앞에 있는 작은 농구 코트 옆 수돗가에는 물로 얼굴을 씻는 사람들이 엉켜 있었다. 이후 3년을 거의 늘상 보게 될 광경의 시작이었다.

첫 시위. 그러니만큼 돌을 먼저 던진 것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돌을 던진 것은 잘못이 아닐까? 그러나 그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돌을 던지건 던지지 않건 그들은 우리에게 최루탄을 쏘고 곤봉을 휘둘렀다. 아니, 그렇다치더라도 우리는 폭력적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다. 문제의 초점이 잘못 되었다. 10만8천리는 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1980년대라는 폭압적 상황에 대해서도. 그리고 폭력이 일상화 되어 있던 그 시절에 대해서도.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다. 언제나 상관없는 진실이 있다.

무장한 공권력에 대해서 돌을 던졌다고 해서 그 옆에 서 있는 사람의 머리가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돌을 던진 사람에게 법의 심판이 떨어지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전에 그의 머리가 깨어져서는 안 된다.

당시 학생운동의 숨겨진 목표 중 하나는 분명히 무고한 누군가가 머리가 깨지는 것이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학생이 희생하지 않고 사회가 어떻게 깨어날 수 있는가라는 "신념"들이 가슴속에 있어서 머리통 깨지는 것이 내가 아니길 바라지만, 그야말로 "나의 원대로 하지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깨지기 위해서, 상대를 도발하기 위해서 먼저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할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 대신 자네가 머리통이 깨져주게."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히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시위대 역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옳지 않은 것은 시민의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막으려는 공권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개인의 폭력 역시 잘못된 것이지만, 그 개인들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으로 행사하는 폭력은 더욱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국가폭력이 국민을 학살하는 정권 아래서 컸고, 그만큼 국가 공권력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만들어졌다. 그런 시대로 회귀하려는 작은 움직임조차 내게는 참을 수없이 불쾌하게 보인다. 이것은 내 자신의 트라우마이다. 이런 트라우마가 내 아이들에게 다시 생겨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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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아브공군 2009/05/02 21:23 # 답글

    맞는 말입니다.
  • 초록불 2009/05/02 21:30 #

    고맙습니다.
  • 유월 2009/05/02 21:27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어제부터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 초록불 2009/05/02 21:30 #

    저도 여러모로 답답해서 써본 글입니다. 글을 쓰다보면 아무래도 좀 정리가 되니까요.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 catnip 2009/05/02 21:52 # 답글

    ................또 한편으로는 막막한 기분이 더해가고 있습니다.ㅠ_ㅠ
  • 초록불 2009/05/02 21:57 #

    ㅠ.ㅠ
  • 온푸님 2009/05/02 22:04 # 답글

    이오공감 올려도 될까요??
    정부에서 담화문이라고 발표한걸 보니 어제 왜그렇게 오버했나 어림짐작이 되더군요.
  • 초록불 2009/05/02 22:13 #

    이오공감에 오르고 내리는 것은 포스팅한 당사자의 권한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올리고 싶지 않은 글은 올리지 말라고 포스팅에 달아놓겠지요. 일단 포스팅한 글은 외부에 공개된 것이므로 그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어떤 조건을 달지 않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05/02 22:15 # 답글

    그날의 생생한 기분을 간접적으로나마 생각하게 하네요...

    시위대 일부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면서 시위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려 하는 그들의 잣대야말로 진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국민의 기본권이 과연 언제나 지켜질 수 있으련지...
  • 초록불 2009/05/03 11:14 #

    여러가지 생각을 해봐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 어릿광대 2009/05/02 22:34 # 답글

    일기장 사진보니까 글씨 잘쓰시는것 같습니다..
    요즘 돌아가는거 보면 거꾸로 가는것 같다는 느낌이 자주 들어서 슬프네요..
  • 초록불 2009/05/03 11:14 #

    그냥 사진이 그래 보이는 거지요. 저는 대단한 악필입니다...^^
  • Niveus 2009/05/02 23:15 # 답글

    시대가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역사를 보면서 느끼는건 인간은 항상 진보만 하는게 아니라 퇴보도 그만큼 많이 하는 종족이라는거로군요 -_-;;;
  • 초록불 2009/05/03 11:14 #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는 말도 있지요...
  • Niveus 2009/05/03 19:42 #

    나선! (...죄송합니다 드릴을 떠올렸습니다...;;;)
  • 나야꼴통 2009/05/04 12:33 #

    저도.. 드릴을.. ㅡㅡ;;
  • 애프터스쿨 2009/05/02 23:23 # 답글

    기본적인 집회, 시위의 자유조차 '종북좌파'로 몰며 '악'으로 규정하는 현실과 20여년 전 저 상황이 묘하게 매치가...
  • 초록불 2009/05/03 11:14 #

    저는 북한이 참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집단이라 생각합니다.
  • Allenait 2009/05/03 03:03 # 답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느는군요.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 초록불 2009/05/03 11:15 #

    그렇습니다. 공부라는 게 이래서 필요한 것이겠지요.
  • 2009/05/03 03:43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05/03 11:15 #

    고맙습니다.
  • 루치까 2009/05/03 07:34 # 답글

    당연하게 요구되어야 할 권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를 슬프게 만드네요. 또다시 돌을 들어야 할까요. 하지만 구글 관련 얘기도 그렇고, 우리는 보이지 않는 억압에 대해서 너무 익숙해있는 듯 싶습니다. 그 '틀'이 깨져야 할텐데요.
  • 초록불 2009/05/03 11:16 #

    저는 돌을 드는데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폭력과 저항이라는 문제는 참 풀기 어려운 과제인 것에는 틀림없습니다. 이런 고민은 안 해야 정상인데 말입니다.
  • 노란병아리 2009/05/03 08:01 # 답글

    나는 국가폭력이 국민을 학살하는 정권 아래서 컸고, 그만큼 국가 공권력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만들어졌다. 그런 시대로 회귀하려는 작은 움직임조차 내게는 참을 수없이 불쾌하게 보인다. 이것은 내 자신의 트라우마이다. 이런 트라우마가 내 아이들에게 다시 생겨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 문장 정말 좋네요.그리고 동감합니다. 저 역시 겪는 일이기에
  • 허안 2009/05/03 08:54 #

    ditto
  • 초록불 2009/05/03 11:17 #

    고맙습니다. 허안님께도.
  • 자그니 2009/05/03 10:12 # 답글

    1985년의 글에 왜 지금, 공감을 느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을까요....
  • 초록불 2009/05/03 11:17 #

    쩝... 할 말이 없습니다.
  • 아메바정 2009/05/03 10:59 # 답글

    안녕하세요, 밸리에서 보고 왔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저를 포함해 젊은 10, 20대들이 국가에 지쳐 냉담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초록불 2009/05/03 11:17 #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내버려두지 않는 법이지요. 냉담해지려야 냉담해질 수 없는 날이 올까 두렵습니다.
  • 2009/05/03 11:31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05/03 11:46 #

    당매 블로그에서 학교 이야기는 가끔 봅니다만 사실 어떤지는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80년대에도 소닭보듯 지나치는 학생들이 더 많았답니다.
  • 히류 2009/05/03 13:26 # 답글

    아마도 90년대쯤? 한창 서강대가 데모하던 무렵 서강대 뒤쪽에 살고 있었어요.:)
    학교 벽에는 온갖 현수막이 걸려있고 학생들은 끊임없이 데모.
    걸핏하면 허공에 최루탄인지 뭔지가 궤적을 그리면서 날아가는게 보였죠.
    그때 아마 어떤 학생이 죽었다던가,그런 이유로 데모를 했던 것 같아요.
    잘은 모르지만 그때 전단지도 나눠주고 그랬었거든요.(...)
    그 이후로는 거의 데모를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만...

    ...요새들어 갑자기 저도 어릴 적 무렵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분명히 시대가 더 좋아졌다,라고 말 할 만큼 발전한 건 맞긴 한데 말이죠...
  • 초록불 2009/05/03 19:54 #

    아무래도 그 시절보다야 좋은 시절이죠...^^

    절차적 민주주의라도 있는 세상인걸요.
  • 빌리밥 2009/05/03 14:01 # 답글

    제가 태어나고 일주일 뒤의 사건 이었군요..
  • 초록불 2009/05/03 19:55 #

    ^^
  • FINA 2009/05/03 14:13 # 답글

    진중한 주제, 옳은 생각에 좋은 구절이였습니다.
  • 초록불 2009/05/03 19:55 #

    고맙습니다.
  • 미스트 2009/05/03 14:45 # 답글

    [ 언제나 상관없는 진실이 있다.
    무장한 공권력에 대해서 돌을 던졌다고 해서 그 옆에 서 있는 사람의 머리가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돌을 던진 사람에게 법의 심판이 떨어지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전에 그의 머리가 깨어져서는 안 된다. ]

    정말 좋은 말입니다.
    공권력은 국민에 의해 위임된 폭력을 행사하고, 그러므로 더욱 더 법이나 규율 등을 철저히 지켜야 할 것인데, 공권력이 자기 입맛대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어휴.
  • 초록불 2009/05/03 19:55 #

    네, 공권력의 남용이 많이 걱정스럽습니다.
  • Silverwood 2009/05/03 15:01 # 답글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무엇보다 희망이 가물어 슬픈 현실입니다.
  • 초록불 2009/05/03 19:55 #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 신구름 2009/05/03 15:35 # 답글

    요새 리영희 선생님의 '대화' 를 읽고 있습니다. 4.19 혁명 당시 군대와 학생들간의 충돌을 막기 위해 시위 한복판에서 확성기를 들고 자제를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직접 겪어보지도 않은 모습이 어쩐지 생생하게 떠오르더군요.

    어린 시절 건대입구 근처에 살고 있던 제 기억속에 어렴풋이 최루탄을 맡았던 기억이 납니다. 매캐한 그 냄새... 자라서 다시 맡게 될 줄은 몰랐네요.

  • 초록불 2009/05/03 19:56 #

    화양리에 사셨나요? 저는 중곡동 출신입니다...^^
  • 루댜 2009/05/03 16:01 # 답글

    잘 읽었습니다...
  • 초록불 2009/05/03 19:56 #

    ^^
  • eternium 2009/05/03 16:22 # 답글

    아,진짜......이런 일들은 역사 교과서나 제가 고 1때 처음으로 읽은 조정래 선생님의 한강에서나 나오는 일들인 줄 알았습니다.비참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진짜로......
  • 초록불 2009/05/03 19:56 #

    고맙습니다.
  • leopord 2009/05/04 01:36 # 답글

    그 당시의 긴장감이, 두근거림이 느껴지는데요? :) 누구라도 그랬듯이, 전경 앞에 설 때의 그 떨림이란... 예전에 전경방패 앞으로 오리걸음으로 기어가며 몸으로 밀던 때도 생각나고요.

    아이들에게 트라우마가 반복되지 않길 간절히 바랍니다.
  • 초록불 2009/05/04 14:35 #

    네. 그렇죠.
  • 열대야 2009/05/04 06:51 # 답글

    정말 공감하네요. 그런 트라우마가 지금 반복되고 있군요. 답답합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초록불 2009/05/04 14:35 #

    답답합니다.
  • 나야꼴통 2009/05/04 12:35 # 답글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하지만..
    이런 시대 상황까지 돌고 돌 필요가 있는것인지
    이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간것인지.
    아니면 강제로 끌고 간것인지 는 고민해 봐야할 문제 겠지요

    누군가의 말처럼 시시각각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이는가.. 거부 하는가 의 문제 가.. 이렇게 크게 비춰질줄이야..
  • 초록불 2009/05/04 14:35 #

    지나간 일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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