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 *..역........사..*



한국 민족주의의 계보와 정치 - 8점
신기욱 지음, 이진준 옮김/창비(창작과비평사)


매우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이 책은 문제가 있다. 그 부분부터 이야기하고 가자.

이 책은 영문학자가 번역했다. 번역 자체에 상당한 의문이 있고 그다지 매끄럽게 번역되지도 않았다. 외래어 표기법 및 맞춤법에서 현행 맞춤법 표기법을 위반한 부분이 여러 군데 보이고, 가령 쿠바는 꾸바, 스탈린은 스딸린으로 표기하고 있는 등, 문장도 어색한 부분이 종종 보인다.

어떤 민족이든 '상상의 공동체'로서 신화, 허구, 혹은 왜곡의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중요한 결과를 요구한다. (286쪽)

국어를 좀 한다고 생각하지만 위 문장과 같은 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 파악이 되지 않는다.

오늘날 남한은 적어도 민족주의, 세계주의, 지역주의라는 세 얼굴을 지니고 있다. (347쪽)

위와 같은 어이없는 오탈자의 삽입은 이 책이 무려 2만원이나 하고 <창비>라는 한국의 대표적인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할 정도다.

이 책은 한국의 종족민족주의가 왜 발생했고 어떻게 강화되었으며 오늘날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를 진단하고 있다.

한국의 종족민족주의는 일제의 침략과 식민시대의 동화정책에 대한 반발로 발생했다.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일본의 범아시아론을 받아들여 한국식으로 포장하기도 했다. 일본의 범아시아론은 각국의 평등과 독립을 전제조건으로 가진다고 생각했으나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하면서 그런 착각은 끝이 났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아시아의 주도권을 한민족이 가지고 있었다는 변형된 범아시아주의로 발전했다.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이 그 대표적인 형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오늘날에는 환단고기로 대표되는 유사역사학에 이어지고 있다.

일제는 한국인을 동화시키고자 했지만 실제로 그들이 원한 것은 대일본제국의 "시민"이 아니라 "신민"이었다.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은 닛깐[日刊] 인종에서 내려왔으며 니혼진과 조센진이 같은 인종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같은 피, 문화, 언어에 의해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론을 바탕으로, 비록 한국인들은 “문명화의 정도”가 낮긴 하지만 일본의 보호 아래 진보하고 마침내 일본 제국의 신민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황인종은 모두 우월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으며 조선 인종의 현재의 쇠퇴는 오직 나쁜 정부와 제한적인 지리적 요인이 원인이기” 때문에 그런 변화는 가능했다. (81쪽)

3.1운동의 결과 얻어낸 약간의 자유 공간을 이용해 민족주의는 맹렬하게 퍼져나갔다. 역사학으로는 진단학회가 생겨나 일제 역사학과 대립했고, 조선어학회는 한글을 지키기 위해, 문학가들도 민족 정신을 고취시키는 작품들을 연일 내놓았다.

한글학자 권덕규는 중국 문화가 한국에서 기원했다는 설까지 내놓았다.

1926년 11월 <동광> ‘조선에서 잉태한 지나 문화> - 중국은 찬양할 전설적인 시조가 없는 반면 한국에는 단군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권덕규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고대로부터 농업을 “천하의 근본”으로 여겼으며 언어를 발명한 세계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그는 “고대에 문화가 조선에서 지나로 흘러간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최남선과 마찬가지로 문일평과 권덕규는 한국의 과거의 문화적 성취에 초점을 맞추어 더 큰 동아시아문화권에서 한국이 중심이었다고 주장했다. (94쪽)

그러나 이런 바꿔치기 주장이 먹혀들리는 없었다.

한국인들이 내세우는 어떤 범아시아주의 주장도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에 있었다. 그것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계획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식민주의자들에게 협력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99쪽)

민족주의자들은 계급 운동에 반대하는 점에서는 식민주의 논리를 받아들였지만 식민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들과 협력했다. 특히 국제사회주의의 등장은 민족주의 운동의 통합을 가져왔다. 유일한 합작 운동이었던 신간회가 실패로 돌아간 후,

안재홍 같은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은 이광수 같은 개혁주의자들과 협력해 종족민족주의 형태의 지방주의를 고취했다. (130쪽)

해방 이후 종족민족주의는 남북한에서 각각 파시즘과 공산주의와 결합해 권위주의 정치를 낳았다. (130쪽)


북한의 경우 김일성의 개인적인 경험(민생단 사건)으로부터 주체사상의 확립과 맑스 레닌주의의 폐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짚어나가며, 오늘날 북한은 민족주의 국가일뿐이라고 말한다.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은 자기들의 주장에 의한 나라가 어떤 꼴로 형성되는지 상상할 필요가 없다. 눈을 들어 북한을 바라보면 되겠다.

남한에서도 이광수 류의 민족주의가 계승되었다. 이승만은 일민주의라는 주의를 내세웠다. 이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한 사람이 안호상 초대문교부장관이다.

안호상은 “우리는 일민이다. 일민은 핏줄도 하나요, 운명도 하나요, 또 주의도 하나이다. 일민주의는 우리 민족의 새 역사와 인류의 새 평화를 창조할 지도원리이다”라고 선언했다. (165쪽)

그는 또한 한국인들은 공산주의에 대항해 싸워야 하지만 민주주의는 너무나 미약하고 일천하기 때문에 한민족의 지도원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일민주의는 분명히 식민지배 동안 출현했던 것과 유사한 종족민족주의의 한 표현이었다. 민족은 유기적이고 집단주의적인 용어들로 이해되었으며 같은 혈통과 선조를 특징으로 하는 선천적인 존재나 운명으로 여겨졌다. 한국인들은 단일민족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모든 개인적 이익과 새악은 민족이라는 전체의 이익과 생각에 종속되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신채호와 이광수 같은 초기 한국 민족주의자들이 주창했던 것들이다. (165~166쪽)


이후 분석은 한국 현대사와 북한 권위주의 정권 수립으로 이어진다. 특히 북한의 "일족사회주의"에 대한 비판과 바로 그 "일족사회주의"가 북한을 동구 공산권 붕괴로부터 지켜낸 힘이라는 점을 분석하고 있다.

8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의 사회 운동은 질적인 변화를 보이는데, 그 점을 아래와 같이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주로 박정희의 군사독재에 대한 중산층의 분노에 기반을 둔 서양 지향적인 운동”에서 1980년대의 “외국의 간섭으로부터의 독립과 궁극적인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민족주의 투쟁”으로 바뀌었다. (258쪽)

이럼으로써 우리 사회가 아직도 민족주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저자는 민족주의에 대해서 이렇게 분명히 말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민족은 남북한에서 인권과 시민권의 침해를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다른 정체성들을 억압하기 위한 비책으로 이용되었다. (345쪽)

하지만 그렇다고 민족주의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말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조직원리로 남아있을 종족민족주의를 어떻게 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할까? 종족적 민족 정체성을 무시하고 그것을 단순한 신화나 공상으로 취급하거나 단지 그것의 현재 역할에 만족하는 것이 그 답은 아니다. 그 대신 종족민족주의가 한국사회와 정치에서 무시하지 못할 세력이 되었으며그것이 인종주의나 다른 근본주의적인 이데올로기와 결합할 때에는 위험하고 억압적일 수 있음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348쪽)

우리사회의 근원적인 문제점을 저자는 이처럼 짚고 있다.

한국인들은 '한국에 살고 있는 종족적으로 비한국인'보다는 외국에 살고 있는 종족적 한국인들'에게 더 강한 애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351쪽)

가령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화교'는 외국인으로 인식하고 한국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재미교포 3세는 '한국인'으로 인식한다는 말이다. 유사역사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걸핏하면 "화교"라고 부르거나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비난을 하는 것에서도 이런 징후를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결론적으로 이런 제안을 한다.

한국은 한국인의 피를 지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부당한 행위와 차별을 완화하는 법체계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 한국인들은 단순히 종족적 한국동포로서가 아니라 민주적 정치조직의 평등한 시민으로서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해야 한다. 그것은 한국이 현재 겪고 있는 민주적 통합과정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351~352쪽)

그 날이 올 것인가? 우리 모두는 저자가 말한 부분에 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도 내 소설에서 이런 부분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무적기사단 3조>는 그 전체 주제가 위와 같은 것이다. 그 소설은 종족을 뛰어넘는 단합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역사 속으로 숑숑>에는 흑인 아버지를 둔 준이가 등장해서 다문화 가정 아이에 대한 차별에 대해서 살짝 이야기하고 있다.

덧글

  • Allenait 2009/06/28 02:36 #

    오탈자 및 오역이 아쉽군요...
  • 초록불 2009/06/28 02:47 #

    알라딘에 보니까 아예 틀린 부분에 대한 지적도 있더군요. 제가 능력이 안 되어서 원문을 일일이 확인은 못했지만 한국어 자료들도 영문으로 된 것을 재번역한 것은 아닐까 의심되는 것들이 좀 있었습니다. 뭐, 순전히 의심입니다. 특히 아마도 그냥 Korea라고 되어있는 부분을 기계적으로 한국이라고 번역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좀...
  • 홍월 2009/06/28 03:08 #

    첫문장의 경우는 앞뒤 문맥에 따라 옳은 문장일 수도 있으니...부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초록불 2009/06/28 03:17 #

    앞뒤 문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 홍월 2009/06/28 07:40 #

    ?(청자에게)나는~함을 명심하라. 가능하지 않나요? 일단 초록불님이 틀렸다니 틀렸을거라 생각은 하고 있지만 좀더 확실히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요....라고 적고 보니 독고구패님이 같은 말씀을 하셨군요;
  • 초록불 2009/06/28 09:44 #

    생각해보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좋은 번역이 아니라는 점은 마찬가지지만 해석의 여지가 있으니 본문에서는 내리겠습니다.
  • 독고구패 2009/06/28 04:20 #

    나는 한국인들이 실제로 같은 피와 선조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의 정당성을 증명하지 않으며 증명할 수도 없음을 (독자들은/ 너희들은) 명심하라.....라고 봐야되지 않을까요?
  • 초록불 2009/06/28 09:45 #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건 사실이군요. 본문에서는 다른 예를 들도록 하겠습니다.
  • 耿君 2009/06/28 09:59 #

    꾸바, 스딸린 등으로 외래어를 표기하는 것은 창비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것으로 압니다.
  • 초록불 2009/06/28 10:17 #

    자기들 편한대로 맞춤법을 쓰고 있다는 이야긴가요? 이 책에는 이또오 히로부미, 마오 쩌뚱, 신또오神道, 쪼오센진, 코꾸가꾸國學, 후꾸자와 유끼찌 등등 일본어나 중국어도 맞춤법을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 耿君 2009/06/28 10:39 #

    네 그것도 창비식 외래어 표기법입니다.
    '자기들 편한대로'라기보다는 나름의 표기체계는 있습니다.
  • 초록불 2009/06/28 10:52 #

    물론 자기들 나름대로의 표기법은 있겠지요. 저로서는 그런 경우라면 책의 어딘가에라도 표기 원칙에 대해서 알려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 BeN_M 2009/06/28 11:00 #

    한국인들은 '한국에 살고 있는 종족적으로 비한국인'보다는 외국에 살고 있는 종족적 한국인들'에게 더 강한 애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뜨끔한데요...
  • 나츠메 2009/06/28 17:50 #

    1. 신기욱이 미국의 교수이고, 역자도 사학자가 아니라 영문학 전공자라 번역에 문제가 좀 있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종족 민족주의"라는 명칭도 좀 마음에 안 듭니다. 미국 등의 이민자 국가가 아닌 한 다수의 사회에서 발견되는 민족주의는 혈연적 종족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도 민주주의와 시장원리 법치질서가 그들의 민족주의의 정수이긴 하나, 거기에도 백인 중심의 혈통주의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즉 민족주의 안에는 혈연적, 종족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굳이 "종족"민족주의라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2. 그리고 저자는 본서를 통해서 민족주의의 결함과 위험을 경고하기 때문에, 단순히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를 '독'으로서 인식하고 경계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점을 좀 더 명확히 하셔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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