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의 암살범 - 홍종우 *..역........사..*



그래서 나는 김옥균을 쏘았다 - 10점
조재곤 지음/푸른역사


포스팅 순서가 바뀐 것 같군요...^^;;

홍종우洪鍾宇는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을 암살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단지 그뿐인 인물은 아닙니다.

그는 남양홍씨 남양군파 32세손으로, 이 남양군파는 노론이었으며, 대원군 시절의 영의정 홍순목, 갑신정변 때 개화파로 죽게 되는 홍영식, 을사조약 때 자결한 홍만식 등도 남양군파에 속합니다. 하지만 홍종우의 집안은 완전 몰락한 상태라 이런 권력가와는 아무 인연이 없는 상태였지요. 홍종우는 안산 혹은 수원 사람이라고 했는데 어린 시절은 전남 강진의 고금도라는 섬에서 컸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는 1850년생으로 김옥균보다 한 살 많았습니다.

홍종우는 1886년 3월 어머니 경주김씨가 사망한 후 프랑스 유학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무렵 한불수호조약이 있었는데, 홍종우가 이때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프랑스 전권대신 꼬고르당Georges Cogordan과 조선전권대신 김만식 사이에 체결되었던 때에 홍종우는 비서 자격으로 참여했다고 합니다.

홍종우는 외무대신 김윤식으로부터 여권을 발급받고 프랑스에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떠나려고 했습니다. 1888년 우선 일본으로 건너가서 서화를 팔며 여비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아 일본에 2년간 체류하게 됩니다. 이때 연설도 하고 한국의 정객으로 제법 인기를 끌었던 모양입니다. 또한 아사히 신문의 식자공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프랑스 선교사 링구의 도움으로 1890년에 프랑스로 떠나게 됩니다. 뱃길로 40여일이 걸려 마르세이유에 도착하지요. 홍종우의 나이 38세 때의 일입니다. 훗날 홍종우는 마르세이유에서 본 커다란 말들이 프랑스에서 본 것 중 가장 인상적이라는 말을 합니다.

1890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파리에 도착합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뮈텔Gustave Charles Marie Mutel(조선 주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뮈텔은 프랑스를 떠난 상태였습니다. 홍종우는 소르본느 대학 근처인 세르빵드 거리 11번지에 숙소를 정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 홍종우는 제법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민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로 유명한 에른스트 르낭도 만나고, 조선에서 보았던 꼬고르당도 다시 만납니다.

홍종우는 화가 레가미Felix Regamey를 만나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그와 한 집에 살면서 사교모임에 나가는 등의 일에 모두 도움을 받았습니다. 레가미는 홍종우의 초상화와 그가 늘 가지고 다니던 고종과 대원군의 사진도 그려놓았습니다.

홍종우는 파리에서도 늘 한복을 입고 다녔습니다. 그는 국왕을 중심으로 유럽 문명을 조선에 이식하는 절대왕정을 꿈꾼 것 같습니다.

홍종우는 볼테르를 인용하곤 했다는데, 볼테르가 한국에 대해서 언급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는데, 볼테르의 <중국의 고아>라는 희곡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칭기즈칸의 위협 속에서 한국의 원군을 기다리는 송나라 사람들의 바람입니다.

한국인들이 군대를 모은다 하오.
그러나 우리는 소문으로밖에 들은 것이 없네.
모두들 우리를 파괴자의 손에 버려두네.
맙소사! 왕의 아들에게 은신처도 없다니!
나는 한국인들을 기다린다. 그들은 분명히 오겠지만 때는 늦으리.
(생략)
바닷가의 한국으로 가자.
대양이 그 슬픈 세계를 두르고 있는 곳.
대지에는 불모지와 동굴이 있네.
이 아이를 그곳으로 데려가서
성스러운 은신처에는 파괴의 손이 닿지 않았네.
적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적들이 알지 못하는 곳.


홍종우는 파리의 기메 박물관에서 촉탁으로 근무했답니다. 100프랑을 월급으로 받았다는데, 1890년대의 파리에서 이 돈이 어느 정도 가치를 지녔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그곳에서 그는 춘향전을 프랑스 소설가와 함께 번역했고, 심청전을 기반으로 하는 소설도 하나 썼습니다. 한국학 연구를 위한 물품 수집에도 도움을 주고 다른 책도 번역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귀국을 위한 모금 활동도 했습니다. 1893년 귀국길에 오릅니다. 본래 법학을 공부하겠다고 온 것이지만 법학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는 없군요.

일단 동경으로 돌아간 홍종우는 여독으로 누웠다가 회복할 즈음 이일직이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민씨 일족의 암살대장이죠. 그로부터 김옥균과 박영효 암살 계획을 듣고 김옥균 암살을 맡게 됩니다. 근왕파인 홍종우의 입장에서는 친일파 매국노인 김옥균의 처단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김옥균에게 이홍장과 만나라 꼬셔 상해로 유인한 홍종우는 그를 죽입니다. 그리고 조선으로 금의환향하게 되죠. 고종은 홍종우를 위해서 과거를 열어 그를 홍문관 교리로 특채합니다. 그러나 점차 일본의 힘이 강해지면서 홍종우는 점점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결국 제주도 목사로 좌천되고 그는 아마도 망명자금을 마련하고자 무리한 일을 저지르는 것 같습니다. 이후의 처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해오는 이야기는 비참하게 굶어죽었다고 합니다.

특기할만한 사항은 그가 황국협회 일원으로 독립협회와 사사건건 충돌했었는데, 1899년 평리원 재판장으로 있을 때, 이승만의 재판을 맡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이승만에게 사형을 언도할 수도 있었지만 무기징역으로 형을 낮췄고 태 100대도 집행하는 척만 했습니다. 볼테르의 사상이 홍종우에게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짐작이 가능해지는 대목입니다.

그는 외세를 혐오했고 종교는 제국주의의 첨병이라 여겼으며(이 때문에 프랑스에서도 충돌이 있었다고 합니다.) 홍종우는 민선의회 설립도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외국군의 철수, 쌀 수출의 중단(방곡령 주장), 도성 내 외국 상점 철수, 홍삼 전매로 국부 증가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했습니다. 그가 근왕자주개혁파라는 점이 분명하죠.

과거의 인물, 과거의 사건이 단순하게 결정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홍종우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민씨 척족의 사주를 받아 김옥균을 암살했으므로 친일파라 여기기 쉽지만 그는 사실은 근대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역적이라 여긴 김옥균을 죽인 것이며 후일 이 일로 일본의 배격을 받아 비참하게 죽게 됩니다. 그를 친일파로 모는 것은 완전히 정반대로 그를 평가하는 것이죠. 그가 남긴 다음과 같은 글은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거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 사이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나는 기대한다. 프랑스인들이 코리아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나라는 그들에게 더 이상 세계 끝에 있는 나라로 비춰지지 않을 것이다. 양국이 서로 잘 알고 가까워지게 하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었다면 나로서는 나 자신이 가장 행복한 사람들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 1894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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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asianote 2009/07/12 12:26 #

    어떤 인물에 대해 안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저도 어릴적에는 홍종우는 천하영웅 김옥균을 죽인 대악마로 인식했으니까요. 이 책 읽어서야 조금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사람은 자신이 한 행위에 따라 평가받게 되는 법이라 생각합니다.
  • Allenait 2009/07/12 13:52 #

    아.. 이럴 줄이야.

    역사 속의 한 인물을 파악하는거 매우 어려운 일이군요
  • 들꽃향기 2009/07/12 13:56 #

    볼테르의 중국의 고아 중에 그런 내용이 있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그러고보니 일본의 언론에서는 김옥균 암살을 그린 삽화 혹은 니시키에에서 홍종우를 대부분 한복에 도포를 갖춰입고 수염이 덥수룩한 '전통주의자'로 그리곤 했었죠. 그리고 지금의 우리 다수의 홍종욱에 대한 인식도 큰 차이가 없는 듯 합니다.
  • SAGA 2009/07/12 13:57 #

    이런 사람이었군요. 흐음...... 확실히 한 사람을 파악하기란 어려운 거 같습니다. ㅡㅡ;;;
  • dunkbear 2009/07/12 14:03 #

    암살자라고 알려졌지만 단순한 '암살자'는 아니었군요...
  • 유로스 2009/07/12 14:42 #

    그가 "이승만 사형 땅땅땅" 했으면 향후 역사는 어땠을까요...(...)
  • 원래그런놈 2009/07/12 14:57 #

    예전에 본 홍종욱에 관한 다큐가 생각이 납니다.
  • 아브공군 2009/07/12 15:11 #

    아주 복잡한 인물이었네요..... 구한말의 혼란을 상징하는 인물이 아니었을까요.
  • 迪倫 2009/07/12 15:46 #

    혹시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요. 책이 나오고 난 후 하영선교수가 이끄는 '전파연구' 모임에서 강상규 선생의 발제로 해당 책의 내용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해당 토론의 내용 링크입니다:
    http://plaza.snu.ac.kr/~ysha/bbs/view.php?id=study&page=3&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73
    저자인 조재곤 박사는 워래 보부상(황국협회)을 연구하다 그 배후(?)세력인 홍종우에게 관심을 갖게되었다고 하면서, 상당히 기존의 해석들과 다른 해석들을 시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초록불 2009/07/12 16:00 #

    잘 보았습니다...^^

    저도 저자의 시각에 다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이 책의 경우 쓸 데 없이 가상대담 같은 것을 넣어서 역사책으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말았다고 생각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일관된 시각을 상실하고 있는 부분이 눈에 띠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편적인 인식이 홍종우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이 시대의 이해의 폭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이준님 2009/07/12 16:13 #

    ...어떤 사람은 뭐 대한민국 방송에서 이순신 "따위"보다는 홍종우의 자랑스런 일대기도 드라마화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도 할 정도니까요.

    사실 그렇지요. 그때 대악마로 여겨진 사람중에 알고보니 아니었다부터 그런데 그 사람이 소싯적에 외국물을 먹었다라고 하면 무조건적으로 재평가 되는 경향이 적어도 90년대 이후부터 대중 역사서에 자주 나오던 이야기였습니다.(충선왕의 개혁정책을 반대한 친원파를 "외국물 먹으면 백안시하는 한국의 전통으로 몰았던 이인화가 대표적인 부류입니다.)-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는 세계화를 앞장세운 김빵삼 시절의 안 좋은 경향으로 봅니다만
  • 초록불 2009/07/12 16:27 #

    홍종우에 대한 이야기는 대학 때 이광린 선생님한테도 들었던 거라...^^;;

    자객의 배후라는 건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라 저는 늘 좋아하는 편입니다. (본업 정신이 나오는...)
  • 이준님 2009/07/12 16:16 #

    홍종우의 경우는 그 사람의 입장 자체보다도 그 사람이 살해한 사람의 업적이나 영향으로 봐서는 그렇게 좋게는 보기가 극히 어렵습니다. 동일 입장이라면 배정자 같은 경우도 얼마든지 미화가능한 타입이니까요. 이 책 자체의 저자도 사실상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홍종우라는 인물에 너무 투영한 냄새가 납니다.

    사실 이런 타입으로 은근히 미화되었던 사람중에서 "우범선"이라는 사람도 있지요. 모 농학박사의 아버지이고 충분히 홍종우 타입으로 미화가능한 사람이지만 이 아저씨가 을미사변에 한 "짓"이나 그걸 얼마나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는지 보면 찝찝한것과 같은겁니다.
  • 이준님 2009/07/12 16:19 #

    ps: 김옥균이 말년에 일본에 박대 받고 그런 박대가 결국 상해에서의 암살에 중요한 원인이 되었지만 일제 연간에는 "한국의 사이고 다카모리"급으로 칭송받았습니다. 시중에서 도는 상당수의 김옥균 예화집이나 어린이 전기에 나오는 이야기가 일제 친일 작가들의 김옥균 미화동화 --;;에 나오는 이야기이듯이요. 김옥균 일가의 고난기가 출판되기도 하고 김옥균 일가의 생존자가 당시 총독면담까지 할 정도였으니까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춘사 나운규의 김옥균 영화는 걸레 필름이 되버립니다. --)

    이럴 정도니 홍종우에 대한 처우가 엉망인건 당연하지요. 일설에는 "실종"설까지 돌았을 정도니까요.(프랑스 실종설부터 조선내 실종설까지 있습니다) 홍종우가 휴거되거나 양계장 닭모이가 되지 않은 이상이야. "굶어죽었다"는 설이 도는 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 진성당거사 2009/07/12 16:38 #

    나운규의 김옥균 영화라면 1931년의 "개화당 이문"을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한데 걸레 필름이 되었다는 말은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에게는 1935년에 변사 육성으로 녹음된 그 영화의 영화해설 레코드 음반이 있는데 무슨 일제의 지시 때문에 플롯이 수정되었다거나 했던 흔적은 이 녹음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이준님 2009/07/12 16:47 #

    1932년에 삼천리지에 나운규가 발표한 이야기에 의하면 원래 그 영화는 개화당의 흥망성쇠를 다룬 "개화당"이라는 영화로 기획되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서 "갑신정변의 며칠"과 "갑신정변의 송공"으로 끝나는 지금의 "개화당 이문"으로 바뀌어서 1년만에 극장에 걸었다고 하지요. 많은 나운규의 전기, 그리고 이덕화가 나운규로 열연한 전기 드라마에서는 이걸 일제의 검열에 의한 것으로 봅니다. 저도 거기에 바탕을 두어서 덧글을 남겼습니다.
  • 이준님 2009/07/12 16:24 #

    이승만 자체의 사형이 낮추어진건 홍종우가 볼테르 사상을 받았기보다는 이승만이 탈옥 사건 --;때 총 들고 사람을 살상하지 않았고 "망만 봤다"는 점이 더 큰 요인입니다.-사실 무기형도 좀 심한 편이었습니다.- 실제 당시 탈옥사건때 총으로 간수들을 살상한 케이스는 참수형 --;;을 받았지요. 이승만 자신이 나중에 미국인들이 보기에 "후들후들 몸이나 떨고" "손가락을 입에 대고 훅훅불고" "하와이 구석에서나 쓸수 있는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가 사실 이때 얻어맞고 손가락 돌리기를 당한 후유증이 큽니다.(이승만으로서는 그런 고문을 하필이면 홍종우에게 당했다는것에 이를 갈지요.--;;)

    위의 이야기야 뭐 90년대 말에 DJ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아아. 저는 사실 김대중 선생님을 안 때리고 일부러 고문하는 척만 했어요"라고 자백?하는 대한민국 수사관들이 늘어난거나 같은 이치의 변명이지요.
  • 초록불 2009/07/12 16:29 #

    뭐, 이 경우는 수사관이 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승만이 직접 한 이야기라서...
  • 진성당거사 2009/07/12 16:33 #

    홍종우의 인생에 대해서는 정말 이 책 이외에도 다른 몇가지 책들, 특히 그의 불어 저작들을 읽다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김옥균 암살에 연루되지만 않았다면 충분히 당대의 선각자로 여지껏 이름을 날렸을법한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홍종우가 말년에 대한자강회에 몸을 담았다는 기록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

    아래 글에 대해서 좀더 부연하자면 하야시의 '조선사'를 홍종우가 봤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조선사'를 읽은지 오래돼서 지금 확실한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저것과 유사한 내용들이 이것저것 들어있었던 것 같거든요.

    여담이지만 1894년의 월급 100프랑이면 계산기를 돌려볼 때 현재의 180만원 정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초록불 2009/07/12 16:38 #

    그렇게나 됩니까? 대단하군요.
  • 초록불 2009/07/12 16:41 #

    아무튼 김옥균 암살에 나선 것은 어찌 되었든 공명심이 크게 작동한 결과겠지요.
  • 진성당거사 2009/07/12 16:45 #

    물론 그랬을 겁니다. 다만 김옥균을 쐈다는 사실이 없었다면 최소한 서재필이나 윤치호 쯤의 평가는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 둘과는 전혀 반대되는 입장에 섰던 인물이지만요.
  • 초록불 2009/07/12 16:54 #

    그나저나 하야시의 조선사는 1892년에 나왔네요. 홍종우가 프랑스에서 이 책을 보았을까요?
  • 어릿광대 2009/07/12 16:35 #

    홍종우에 대한 또다른 면을 보게되는것 같네요.. 음음..
  • 아롱쿠스 2009/07/12 17:26 #

    김옥균씨도 사후에 일본인들에게 실컷 이용을 당했죠...
  • Gejo 2009/07/12 18:52 #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들에게 이용을 당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에게 이용을 당하죠.
  • 키르난 2009/07/12 20:22 #

    홍종우란 이름이 익숙해서 어디서 많이 들었다 했더니 엉뚱하게도 삽화가 떠올랐습니다. 신경숙이 쓴 <리진>에서 홍종우의 이름이 등장하더군요. 콜베르와 함께 프랑스로 떠난 리진이 파리에서 홍종우와 만나는데, 홍종우가 리진을 쫓아다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소설 속에서의 이미지는 권력지향적인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튼 그렇게 연결되었군요.-ㅁ-;
  • 꽃루카 2009/07/12 21:41 #

    아깝다... 저때 만승이 사형시키고 광복되고 난 후, 반민족특별법만 제대로 시행됐으면..... 찍찌기가 이러고 있지 않았을지도...
  • Kaijer 2009/07/12 23:12 #

    인간이란 정말로 모순적인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잘 봤네요^^
  • 네비아찌 2009/07/12 23:20 #

    어쩌면 홍종우는 김옥균을 죽여 줌으로써, 김옥균이 나중에 박영효 같은 친일파가 되는 것을 미리 막아주고 "비운의 영웅"으로 만들어준 김옥균의 은인인지도 모르죠.

    홍종우의 사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소개해 주신 바로 봐서는 잘만 풀렸다면 김옥균보다 더 뛰어난 위인으로 남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 섬제주 2011/12/07 22:01 #

    어떤 인물을 검색하다 보면 가끔은 꼭 이곳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럴때마다 와서는 좋은 글 많이 읽고 갑니다.
    예전에 제가 고딩때 생물선생님이 홍종우 손자셨어요.
    다른 건 하나도 기억안나고 자기 할아버지가 김옥균을 죽인 사람이었다고했던,,,,
    ㅡ홍종우라는 이름은 나중에 다시 찾아봤죠ㅡ
    그래서 자기 아버지가 아기때였는데 김옥균 피살때 김옥균쪽에서 자객들 보내어 죽을 뻔했고 몰래 누가 다른 곳으로 피신시켜 집안이 살아남았다는 얘길 하셨어요.
    그리고 그 생물선생님은 전두환,노태우 욕하다가 남영동에도 다녀오신 분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고문 안당하고 그래도 어떻게 처벌대신 계속 생물을 가르칠 수 있었나 싶습니다. 아마 연세도 많으셔서 그랬었던 것 같아요. 88년이었는데 머리가 백발이셨으니까요.
    아무튼 기억나서 주저리 쓰고 갑니다...
  • 섬제주 2011/12/07 22:03 #

    88년 노태우 때였는데도 수업시간에 전두환 개새X, 노태우 개새X 하고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셨으니까요... 참 지금 생각하면 카리스마가 넘치던 분이셨습니다^^
  • 초록불 2011/12/07 22:16 #

    놀라운 이야기네요. 홍종우의 손자가 살아있었군요. 섬제주님 닉을 보니 제주도에 손자가 살았던 건지 궁금해집니다.
  • 2012/01/11 20:4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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