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에 걷다 - ![]()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로크미디어 |
이 책의 의미는 밀실살인 트릭의 대가 존 딕슨 카의 등장을 알리는 작품이라는 것.
전반적인 내용은 데뷔작이지만 대가의 작품답게 읽을만 하다.
하지만 트릭으로 이야기하자면 60점 정도? 일단 공정하지 않은 방법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감점이다.
추리소설에서 독자가 꼭 소설 속의 탐정과 같은 방식으로 해답에 도달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독자는 정황적인 추리에 의해 범인을 유추해낼 수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독자와 탐정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 범행을 증명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독자를 속여야 한다는, 반전에 너무 목을 매다 보면 개연성이 부족한 트릭을 내놓기도 하는데,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1930년대에 나온 추리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본다면, 그리고 이 작품이 가진 다른 미덕과 비교해서 본다면 이 책을 보는 것이 나쁜 선택은 아니라 하겠다.
특히 이 소설의 탐정인 방코랭이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는 이른바 "통섭"으로 대표되는 생각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흥미롭다.
"하지만 이제 주어진 사실의 연결 관계를 알기만 하면 아마도 제가 말하는 것보다 더 빨리 사건의 진상을 깨달으실 수 있을 겁니다. ... 여기 프랑스에서 제가 하는 일이란 상당히 다양한 재능을 요구합니다. 물론 '요구한다'는 건 수사에 필요한 기술, 화학, 탄도학, 심리 분석, 의학, 과학적 분석 등등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 하지만 전문가들에게 뭘 찾아야 하는지 말해 줄 수 있는 정도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뭔가를 찾아냈을 때 그걸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요. 저는 경찰청의 많은 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가능한 한 낭비 없이 이용해야 합니다. 무작위로 하는 조사도 없어야 하고 목표 없는 검사도 곤란하죠. 결국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얻어낸 정보들을 연결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제가 하는 일입니다." (233-234쪽)
요즘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을 보고 있는데, 여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양한 것들의 연결 - 그 통합과 통찰력으로부터 어떻게 창조가 이루어지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80년 전의 소설에서 같은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 소설은 어렸을 때, 아동문고로 본 기억이 있는데 다시 읽는 동안 전체적인 윤곽 이외에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아서 처음 읽는 것처럼 읽을 수 있었다. 점점 기억력이 떨어지는 게 책 읽는 즐거움을 돌려주는 의외의 기쁨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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