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는 드물다 *..만........상..*




진짜배기는 드물다. 만나기 쉽지 않다. 그건 만나도 진짜인지 알만한 안목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추사의 세한도는 그저 그렇다. 나는 확실히 다른 예술 분야에는 그다지 안목이 높지 않은가 보다. 처음 세한도를 보았을 때, 이게 그 유명한 그림이란 말인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게 감동을 준 것은 세한도의 그림이 아니라, 세한도의 글이었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날이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알 수 있다는 말은 참으로 그럴 듯하다. 저 그림이 김정희의 유배 기간, 그를 위해 애쓴 제자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역시 남다르다.

나 역시, 인생으로 말하자면, 면전에서 살이라도 베어줄듯이 굴다가 뒤에서 차마 인간이 저럴 수가 있나 싶은 욕을 하는 것을 본 적도 여러 번. 그런 후에도 태연하게 내 앞에서는 여전히 만면에 웃음을 띠고 안부를 묻고 걱정하는 '척'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려움이 닥쳐오지 않았다면 그런 일도 생기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진짜는, 나처럼 둔한 사람에게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진가를 보여준다.

하긴 글도 그렇다. 그냥 재미로 읽는 글이 있고, 씹을수록 진한 맛이 우러나는 글이 있다. 마치 어떤 유행가의 후렴구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진짜가, 진짜로 반짝이는 글이라는 것이 드물기는 하지만, 존재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삶의 위안이라 하겠다. 그런 글은 또한,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나 역시 누군가에게 진짜배기로 느껴지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그럴 때면, 윤동주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

덧글

  • 러움 2009/07/14 09:47 #

    딴소리지만, 보고 있는 것이 진짜가 아니라도 보는 자에게 진짜 이상의 감흥을 준다면 그 사람이 보는 것은 진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긍정적인 효과에 한해서요. :)
    더불어 세한도의 한문을 풀어 제게도 남다름의 기쁨을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한자 자격증 같은 건 정말 쓸모 없는 것 같아요. 기억나는게 하나도 없는데 평생증이라니 원.(..)
  • asianote 2009/07/14 10:09 #

    진짜가 많으면 그것도 곤란하지 않을까요? 가치가 떨어지게 될터이니.
  • dunkbear 2009/07/14 10:49 #

    갑자기 생각나는데 영화 'Leap of Faith'에 나오는 대사 중에 이런 얘기가 있죠.
    '사기꾼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진본(Genuine Article)이다'라고...

    가짜라서 진짜를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진짜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가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진짜를 만날 수 있으므로 사기꾼은 항상 경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만나기 쉽지 않아도 진짜의 가치는 줄어들지 않는게 아닐지...
  • 푸른도화선 2009/07/14 13:45 #

    가끔 생각하는 문제인데...
    우리나라의 예술교육(미술,음악등..)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참 많습니다.
    그냥 암기식이거나 아니면 입시위주.
    실생활과 예술이 융화되어 자연스럽게 보고 들을수 있는 감성과 안목이 키워져야 하는데
    여태까지의, 또 현재의 교육으론 불가능인듯 합니다.

    미대나온 사람들 대부분도 피카소나 고호, 달리등에 대해서 아는것은 있지만 느끼는것은
    별로 없답니다.

    시간나실때 '쇳대박물관' 검색해서 소장품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탐나는 것이 분명히 있을겁니다. ^^

    흠...써놓고 보니 블로그 글과 또 거리가 멀어졌군요...
  • 초록불 2009/07/14 13:58 #

    쇳대박물관은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 아야소피아 2009/07/14 17:34 #

    《논어》<자한>에 나오는 저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가 <세한도> 보고 '아! 그렇구나..'하며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글이 그림과 저렇게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다니..오..(김정희는 정말 대단합니다;; 그의 학문과 품위는 도대체 얼마나 깊고 고귀한 건지..)
    덧. 이왕 미술 얘기 나왔는데, <르누아르 전시회> 추천합니다. 꼭 가보세요^^ (그림이 너무 화사하고 아름답습니다..성인 12000원)
  • 초록불 2009/07/14 17:36 #

    아이들 방학하면 같이 가려고 생각하고 있던 중입니다. 고맙습니다.
  • 소하 2009/07/14 18:45 #

    저도 저 세한도를 보고 가찌인줄 알았습니다. 초딩티가 나는 집을 보고 말입니다. 하지만 저 그림이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하니, 저에겐 그림에 대한 미학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초록불 2009/07/14 19:37 #

    동병상련입니다...
  • 홍월 2009/07/15 11:13 #

    요는 관점이라고 봐야하나요
  • BeN_M 2009/07/18 13:35 #

    공부해서 아주오랫동안 봐야 하는 예술작품도 있으니까..뭐....
    (단순히 관련자료를 공부한다는게 아니라 만든 사람, 만들어진 시대등에 대한 깊은 이해를 수반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더군다나 저렇게 뜻을 담은 그림은 왠만큼 그 쪽에 조예가 있는 사람도 한참 들여다보고 알아봐야 안다더군요. 예가 좀 조야하긴 하지만 절에 뭐가 왜 있는지 공부한 사람과 안한 사람이 보는 절은 말만 같은 절이지 완전 다른 것처럼)




    염량세태....
    군대 한 번 다녀와도 그동안의 사귐의 깊이를 알 수 있는데
    인생에 역경을 겪으면 얼마나 제대로 가려질지...
    그래서 두려운 부분도 있는.
  • 초록불 2009/07/19 00:43 #

    맞는 말씀입니다. 요새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이라는 책을 보고 있는데, 말씀하신 문제를 잘 다루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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