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 *..역........사..*



1.
때로 유사역사학과 역사학 사이에서 중립적인 척 하는 사람들이 내게 훈계한다.

2.
유사역사학의 공을 인정해야 한다라거나.

대체 무슨 공功이냐 하면, 동북공정에 대항한다거나 일제식민사학에 대항한다거나,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지게 한다거나 등.

웃기고 있다.

또는 유사역사학을 신봉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거나.

그게 선의면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를 파야한다고 말하거나 시장상인들도 인터넷으로 대형마트와 경쟁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산간에 드문드문 사는 사람들을 한군데 모여살게 해야한다는 말도 다 "선의"에서 나온 말이니까 용인해야하겠다.

3.
훈계는 때로는 질책성으로 나아가는데.

가령, 유사역사학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까칠하다거나  비난조라고 말하거나 그래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하는 그런 것들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드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이란 알고 보면, 자신과 입지가 같은 사람들이 좀 까칠하게 말하거나 심지어는 상당한 강도로 빈정거려도 대체로 용납되는 반면 자신과 입지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면 바로 죽일 놈, 살릴 놈 소리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다. 결국은 저런 말은 서로 입지가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에 불과한 것이다.

4.
그런 끝에 대안처럼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는 일도 자주 있다.

그 재주를 동북공정 비판하는 데 써라, 그 재주를 역사학계 비판에 써라 등의 주문이 그것이다. 착각의 정도가 너무나 높아서 뭐라 이야기해주기도 어렵다.

그나마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몇 편의 포스팅을 하기도 했지만, 역사학계로 문제가 옮아가면 이건 참 난감한 이야기다. 무엇이건 무엇에 대한 비판이라는 건 그에 대해서 잘 알아야 가능하다. 대중음악에 대해서 가요나 몇 개 듣고 대중음악계를 비판한다면 그게 가능한 노릇인가? 헐리웃 영화를 몇 편 보지도 않고 헐리웃 영화계를 비판한다는 건 또 가능한가? 아니, 근본적으로 그런 "界"를 비판한다는 것이 그 "생산물"만 보고서 가능할 줄 아는가?

유사역사학으로 말하자면,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학문"이 아니다. 따라서 나처럼 역사학을 전공한 "학사"만 되어도 비판이 충분히 가능한 저급한 수준의 언설들에 불과하다.

유사역사학에 빠진 사람의 눈에는 역사학계라는 것이 "이병도와 똘마니"로 간단하게 정리되는 집단이겠지만, 오호 통재라,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말씀.

5.
더구나 내게 있어서 역사학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정의감으로 뛰어들 일도 아니고, 이해관계도 없으며, 내게 이득을 주는 부분도 없다. (심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유사역사학에 대해서는 17년을 이 책, 저 책 뒤져왔으며 작은 시간이나마 꾸준히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나같은 게으르고 무능한 인간도 비판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민족주의적인 시각을 벗고 역사학 자체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등의 부수적인 이득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역사학", 크게는 "인문학" 자체가 어떤 학문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아무렇게나, 그야말로 손쉽게 일어날 수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마치 나같은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역사학계를 비판할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한다. 물론 그 착각의 기저에는 나를 이용하여 역사학계 비판의 반사이익을 받고 싶은 저의가 숨어있겠지만.

6.
저의가 있건 없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참 세상을 쉽게 사는 사람들이라 하겠다. 어떤 학문이건, 학문에 대해서 그렇게 쉽게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유사역사학은 학문이 아니지만, 나는 그조차 그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말하지 않는다.

다행히 그간 내놓았던 글들을 그럭저럭 정리해 놓았고, 나보다 재주가 열 배는 뛰어난 분들이 더 넓은 시야와 더 풍부한 자료들로 반론의 벽을 쌓았기 때문에 나는 이 분야에서 그다지 더 할 말이 없는 셈이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건 그들의 "착각"은 멈추지 않으리라. 나는 다만 "착각"에 빠져드는 사람들을 지키는 "호밀밭의 파수꾼"이고자 할 뿐이다.

덧글

  • 아브공군 2009/07/17 11:02 #

    원래 공격하고 싶은데 제대로 된 공격 수단이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엉뚱한 것으로 공격하는 법이죠.
  • Allenait 2009/07/17 11:07 #

    할 말은 없고 까고는 싶으니까 하는 것 같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07/17 11:18 #

    대기업총수나 소설가 따위가 유사역사학을 말하거나 역사학계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면 "오오!! 역시!!" 하는 현실이 암담하지요. 대기업총수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비판하면 "뭥미??" 할 사람들이...
  • 초록불 2009/07/17 11:37 #

    뭐, 그 동네도 있기는 하죠. 지하철 환풍구를 통해서 전기를 생산한다거나...
  • 을파소 2009/07/17 12:26 #

    달착륙 조작설 말해도 "오오!! 역시!!"라고 할 겁니다.
  • 말코비치 2009/07/17 12:09 #

    "학사" 진입하기 전에는 1번 입장이었던 것이 새삼 부끄럽군요 ㅠㅠ
  • 아야소피아 2009/07/17 12:55 #

    1. 그 중에는 사실 '환빠'인데 자신들의 빈약한 논리가 허무하게 무너지니까 '한숨 돌리려고' 중립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학교에서 여럿 봤음) 아니, 이런 희대의 거짓말에 웬 '중립'입니까?
    2. 저딴 거짓말이 제국주의에 대한 무기로 사용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속세에서 벗어나 은거하는 삶을 사는게 낫습니다. "외부에 적이 있으니 우리는 국가가 무슨 잘못을 하든 비판하지 말고 대동단결하자"랑 뭐가 다르겠습니까?
    4. 뭘 비판하든 그건 개인의 몫이거늘 저런 강요는 그야말로 폭력이죠.. 누구나 각자의 관심분야, 전문분야가 있는데 말입니다. 과연 서양사 전공자들에게도 저런 강요할지 궁굼하네요. 비판적 논증의 내용은 전부 무시한채 그 비판 행위 자체를 비난하고 위와 같은 강요를 하는 의도는 뭐 뻔하죠... "'우리 세력' 그만 건드려라" 이거죠..
  • dunkbear 2009/07/17 13:10 #

    우리 조상의 근원을 안드로메다까지 더듬어
    가는 그 '재주'를 진짜 역사 연구에 쓰라고 하십시오... ㅡ.ㅡ.++
  • fervent 2009/07/17 13:29 #

    초록불님 블로그에 올때마다 유사역사학의 독성이 얼마나 넓게 퍼졌는지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신기한 일이에요.
  • asianote 2009/07/17 13:38 #

    정말 학계가 유사역사학에 대해서 지나치게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 강남교보문고에 갔을때 한국고대사 관련 서적의 대다수가 유사역사학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습니다. 아예 따로 구역이 있더군요.
  • 聖王 2009/07/17 15:47 #

    한국 고대사 베스트 셀러 10위가 모두 환단고기류의 국수주의적인 책인데요, 뭐...
  • raw 2009/07/17 17:14 #

    신념이란게 그래서 무서운듯 싶더군요.
    진위여부를 떠나서 일단 자기가 옳다고 믿고있으니 남이 뭐라고해봐야 적으로 단정지어 버리고 귀를 막아버리니;;
    주위에 그런사람들 몇 있지만 사이가 틀어질까 두려워 차마 유사역사학 주제로는 그냥 웃으면서 넘기는데 그때마다 부끄럽더군요;
  • 온푸님 2009/07/17 20:39 #

    유사역사학 뿐만 아니라, 충분히 일반화할 수 있는 격언이군요.
  • 소하 2009/07/18 15:29 #

    저도 요즘 이런 일로 골머리를~~~ 이런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법인가 봅니다. 맹자도 시경의 의미를 바로 보라는 말을 했는가 하면, 사마광도 그러한 풍조를 한탄했으니 말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마광의 "구전(소문)만 듣고서 따라함"의 구절을 떠올리며, "나는 어떠한가?"라고 저 자신에게 되묻게 되는군요. .


    -----------------------
    신진후생들은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고, 구전(소문)만 듣고서 따라함이 하나의 풍조를 이루었다.
    《주역》을 읽고도 『괘』와 『효』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십익>은 공자의 말이 아니라고 한다. 《예》를 읽고도 그 편수도 모르면서 <주관>은 전국시대에 지은 책이라 한다. 《시경》을 읽고도 <주남>과 <소남>도 모르면서 모시와 정현의 주는 장구지학이라고 한다. 《춘추》를 읽고도 12공도 모르면서,《삼전》은 모두 묶어서 고각에나 보존시켜야 할 책이라고 한다.
    주소자(고증가)들을 썩은 유학자라 하고, 천착(이치에 맞지 않는 말)하고 억측하는 사람들을 정의라고 일컫는다.

    ---《온국문사마정공문집》(사마광의 문집)
  • 초록불 2009/07/19 00:41 #

    고등학교 시절에는 왕안석은 착한 사람, 사마광은 나쁜 사람... 이라는 식으로 알고 있다가 대학에 와서 혼란스러웠던 생각이 듭니다. 그때서야 직접 내 손과 발을 사용해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죠.
  • JuRo 2009/07/18 22:03 #

    애들 특징이 반박할 근거나 껀덕지가 없으면 말투를 잡고 끝까지 늘어지더군요._-_
    유치원생들도 아니고 왜그러는지원 _-_
  • 다복솔군 2009/07/19 21:41 #

    정말 지적설계론도 그렇고 이런 것도 그렇고 "중립"하겠다는 사람들 보면 뭐라고 해야하는지 할말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ㄷㄷ
  • sinis 2009/07/19 22:54 #

    유사역사학은 오히려 동북공정이나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힘들게 할 뿐입니다.

    "보라, 너희들도 이런 엉터리 없는 주장을 하고있지 않는가?"
    "한국은 이런 엉터리 없는 주장을 하는 나라이다, 따라서 한국의 역사관련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
    .
    .
    .
    결국 "유사역사학의 공"이란, 1도 안되는 것을 얻고자 100, 1000을 내다버리는(그리고 그 과정에서 '1도 안되는 이득'이란 것은 저자만의 개인이득이 되어버리는) 그러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진성당거사 2009/07/20 13:50 #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남느니, 차라리 진실과 더불어 미치고 싶다." - 버트런드 러셀의 자서전 프롤로그에 쓰여있는 문장이죠. 문득 저 말을 환빠 잡놈들에게 던져주고 싶었습니다.
  • 환빠타도 2009/07/23 17:53 #

    초록불님 궁금한게 잇는데 어디다가 써야될지 몰라 여기에 궁금증을 남깁니다...
    사실 네이버 지식인에서 어떤 환빠가 대단한 지도를 올려놧길래 반박 햇다가
    골머리 앓고 잇는사람입니다
    대륙백제를 믿고잇는 환빠가
    동성왕때 기병 수십만이 백제에 처들어온 기록이잇으니 대륙백제는 진짜라고 합니다
    이 글을 반박해야겟는데 전 역사지식이 짧아 어떻게 반바을 해야될지 모르겟네요
    도와주십시요
  • 초록불 2009/07/23 18:35 #

    http://orumi.egloos.com/1779098 포스팅의 45번 항목이 그 내용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중증 유사역사학 신봉자에게는 먹히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경우 굳이 상대를 하시겠다면 역으로,

    http://orumi.egloos.com/2657391 포스팅을 읽으신 후,

    이걸 해명하라고 하나씩 던져주시면서 논쟁을 벌이시면 됩니다. 대체로 눈이 먼 신봉자들과는 논리적인 이야기 자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것보다 그 논전을 지켜보는 일반인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 sinis 2010/07/26 14:09 #

    [유사역사학으로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항하겠다]는 주장은, [일본이 한국 여성들을 정신대로 끌고 갔으니, 우리도 일본 여성을 강간하여 정신대에 끌려간 여성들의 넋을 위로하겠다]는 주장과 별다른 차이점을 못느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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