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루 - 신라를 흔들다 *..역........사..*



이 포스팅은 엄밀한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포스팅이 아니라 막나가는 가정과 추리에 의거한 것입니다.



1. 허루, 알 수 없는 나라의 왕
삼국유사 왕력편 유리왕(고구려 유리왕이 아니라 신라의 3대 유리왕) 조와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왕 조에는 그의 장인이 허루왕許婁王이라고 나온다. 왕王. 왕이란 한 나라의 통치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어떤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었을까? 혹시 "허루"라는 나라를 다스린 왕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의 이름은 허루 말고도 두가지가 더 전해진다.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사요왕辭要王이라고 나온다. 삼국사기에서는 일지갈문왕日知葛文王이라고 나온다. 갈문왕이 무엇인지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는데, 이렇다할 정설이 아직 없다.

2. 일지국의 왕 허루?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또 다른 왕이 하나 더 존재한다. 지마 이사금 왕비의 아버지 마제국왕磨帝國王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 마제국왕의 경우 삼국사기에는 마제갈문왕이라고 나온다. 일국의 국왕이라고 표기된 사람이 갈문왕이라고도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혹시 신라 초기에 소국들을 병합하면서 그 나라의 왕들을 갈문왕이라는 이름으로 제도 안에 집어넣은 흔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허루왕이라 나오는 이의 또다른 명칭 일지갈문왕은 그가 일지국의 왕 허루였다는 방증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파사 이사금 때는 허루갈문왕이라고 나와 버린다. 쳇, 그렇다면 허루국?

3. 아버지와 아들을 모두 사위로
허루왕은 이미 말한 것처럼 유리왕의 장인이었다. 그런데 그는 유리왕의 아들인 파사왕의 장인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의 장인이 된 것이다. 유리는 24년에 왕이 되었고 유리의 둘째 아들 파사는 80년에 왕이 되었다. 삼국사기를 따르면 유리는 왕이 되었을 때 나이도 많았다고 하는데, 파사왕은 유리왕이 왕이 된 때로부터 56년 후에 왕이 되어서 33년이나 재위에 있었다. 대체 나이가 어찌되는 걸까? 이런 모순 때문인지, 파사왕은 유리왕의 아우 내로의 아들이라는 전승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봐야, 허루왕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더구나 허루왕에 대해서는 더욱 엽기적인 기록이 남아있다.

4. 허루왕의 아들이 신라 왕이 되었다?
134년에 왕이 된 일성왕은 유리왕의 맏아들이라고 하는데, 유리왕은 57년에 죽었다. 둘째인 파사도 있으니 56년에 태어났다고 가정해도 왕이 되었을 때 이미 78세. 그리고 21년간 재위에 있었다. 그런데 이 일성왕에 대해서는 일지갈문왕의 아들이라는 이설이 있다고 한다. 일지갈문왕은 바로 허루왕을 가리킨다. 허루왕의 아들이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에 또 새로운 왕 하나가 등장한다. 지소례왕支所禮王. 고대에는 참 왕들이 많다. 지소례왕은 일성왕 왕비의 아버지다. 삼국유사를 보면 일성왕의 왕비는 일지갈문왕의 딸이라고 나온다. 어라? 그럼 여기가 이집트도 아닌데, 남매 간에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냐?

아무리 신라가 막장이어도 그렇게 볼 수는 없고, 일성왕의 장인이 일지갈문왕, 즉 허루왕이고 그의 또다른 이름이 지소례왕이었던 것 같다. 즉 허루왕=일지갈문왕=지소례왕인 셈이다.

그러므로 허루왕은 유리왕과 그의 장남, 차남에게 모두 자기 딸을 시집보낸 딸부자 왕이었던 것.

5. 이번엔 손자
허루왕의 욕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파사왕의 장남, 즉 유리왕의 손자까지 사위를 삼고자 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마 이사금 조를 보면 허루는 이번에는 신라6부의 하나인 한기부의 이찬으로 등장한다.

파사왕이 사냥에 나갔다 한기부를 지나게 되자 그는 왕을 모시고 연회를 열었다. 파사왕과 태자(뒷날의 지마왕)가 취하자 허루의 아내가 소녀를 데리고 나와 선보였다. 소녀가 춤을 추며 지마왕을 꼬시는데, 이찬 마제(마제국왕이자 마제갈문왕으로 기록된 바로 그 사람)의 아내도 딸을 데리고 나왔다. 이쪽이 좀 더 예뻤던 모양이다. 태자는 마제의 딸에 꽂혔다.

허루가 성질이 난 것은 당연한 일. 기껏 판을 벌였더니 다른 놈이 먹이를 채간 것이다. 허루가 화가 난 것을 눈치챈 파사왕은 허루에게 주다酒多라는 벼슬을 만들어서 선사한다. 이찬보다도 더 높은 이 관직은 뒷날 서불한=각간이라는 이름의 최고 관직이 된다. 저 "酒多"라는 말은 "술이 많다"는 뜻으로 "술한"="서불한"으로 풀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해본다.

손자까지 사위를 삼으려는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내가 이런 포스팅을 하겠는가?

허루는 이번에는 유리왕의 장남인 일성왕의 장남을 노렸다. 7척 장신에 우뚝한 코를 가진 기이한 용모의 왕. 박씨 집안이라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음란한 왕으로 그 명성을 떨친 박아달라왕이 그 주인공 되시겠다. (하긴 사촌은 이름이 "박지마"니까...)

삼국사기 신라본기 아달라 이사금 조를 보면 왕비는 지소례왕(즉 허루왕)의 딸이라고 나온다. 154년에 왕이 되었으니 허루왕은 130년간이나 왕의 장인이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자, 이제 헷갈리는 분들을 위해서 가계도를 보여준다. 빨간 사각형 안의 왕들이 모두 장인으로 허루왕을 두었다는 것만 알면 된다.


6. 뜻밖의 반격
그런데 일성왕 때 기록에는 이상한 것이 있다. 삼국유사 왕력편을 보면 일성왕 조에 "일지갈문왕의 아버지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왕비 이름 뒤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여女"를 "부父"로 잘못 쓴 것이라 보통 여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일성왕이 일지갈문왕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적은 것이라면? 더구나 삼국유사 왕력편은 왕비 □禮夫人(앞 글자 결락)이 지마왕의 딸이라고 적어놓고 있다. 물론 일지갈문왕의 딸인데, 지마왕의 딸이라는 설도 있다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두자가 결락되었는데 앞의 자는 분명 "혹或"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지마왕의 딸이라는 설에서부터, 지소례왕이란 지마왕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읽을 수도 있겠다. 이런 경우 지마왕은 아달라왕의 사촌이므로 장인-사위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재미없으니 이 포스팅에서는 무시한다. (먼산)

7. 박씨야, 김씨야?
허루왕이 박씨인지 김씨인지 불분명하다. 기록들을 살펴보자

유리왕 : 삼국유사 김씨 / 삼국사기 박씨라는 설도 있음
파사왕 : 삼국사기 김씨 (삼국유사의 경우는 당연히 김씨)
일성왕 : 삼국사기 박씨 / 삼국유사 박씨
아달라왕 : 삼국사기 박씨 (삼국유사는 기록 없음)

그런데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다. 신라에는 김씨가 없다는 사실이다. 신라에 왜 김씨가 없느냐고? 아직 없다는 말이다. 김씨는 탈해왕 때 계림 숲속에서 알지가 발견됨으로서 등장한다. 그런데 유리왕은 탈해왕보다 먼저 왕이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왕비는 김씨?

유리왕 당대에 김씨 성을 쓴 집단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금관가야의 수로왕이다. 42년에 가야를 세운 수로왕의 성이 김씨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망상 한자락을 펴본다. 허루왕은 금관가야 쪽 세력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도 "허"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떠오른다. (무리한 비약을 거듭하고 있다!)

8. 한기부의 비밀
또 한 번 그런데를 동원하자. 그런데 허루는 한기부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한기부가 받은 사성이 배씨였다는 건 가볍게 무시한다)

파사 이사금 때 실직곡국과 음즙벌국이라는 두 나라가 영토 분쟁에 휩싸인다. 이들은 파사왕에게 조정을 의뢰하는데 파사왕은 이 일을 다시 가야의 수로왕에게 떠넘긴다. 수로왕은 음즙벌국의 편을 들어주어서 분쟁을 종식시키고 분쟁 종식을 기뻐한 파사왕은 6부에게 명해서 잔치를 베풀게 하는데...

한기부만 관직이 낮은 사람을 보내 수로왕의 분노를 산다. 왜 그랬을까? 본래 가야의 한 세력이었던 허루왕이 수로왕에게 한 수 접히는 것이 싫어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은 수로왕이 이 일로 한기부주 보제를 암살하는 과격함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설명도 될지 모른다. 암살범은 음즙벌국으로 달아났는데, 음즙벌국은 자기네 편을 들어준 수로왕을 생각해서 신라의 범인 송환 요구를 거부한다. 분노한 파사왕은 음즙벌국을 정벌해 버린다. 겁이 난 실직곡국은 물론 그 근처에 자리했던 압독국마저 엄마, 뜨거라 하며 신라에게 항복해버리고 만다. 일타삼피!

이렇게 영토를 넓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안 파사왕은 그 뒤에 비지국, 다벌국, 초팔국 등을 점령해버린다. 장인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정복왕이 된 사나이라고나 할까.



사실상 소설이나 다름없는 내용이지만 아무튼 역사에 기반해서 펼친 것이므로 역사 밸리로 보냅니다.

덧글

  • ⓧA셀 2009/08/04 22:50 #

    한 사람이 아니라 콘월 공작이나 웨일스 대공처럼 일종의 호칭 아니었을까요 'ㅁ';;;
  • 초록불 2009/08/05 07:24 #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역사적인 해석을 가하면... 일지갈문왕과 허루갈문왕, 지소례왕은 모두 별개의 인물로 기록이 후대에서 혼재되어버린 결과라는 것이 올바른 해석일 겁니다...^^
  • Allenait 2009/08/04 23:02 #

    ...복잡하군요(...)
  • 초록불 2009/08/05 07:24 #

    쉽게 쓴다고 썼는데도... 복잡하군요...^^
  • 한단인 2009/08/04 23:37 #

    아잇~! 이런 글을 떡춘에 올리셨다면 제대로 떡밥이었을 것을..(어?)
  • 초록불 2009/08/05 07:25 #

    오호, 그런 생각은 전혀 못했군요...^^

    떡춘에는 훨씬 참신한 글이 올라오리라 생각합니다.
  • draco21 2009/08/05 00:24 #

    역시 우리역사도 알아야 할 것이 아직 산더미같이 많네요.
    그건 그렇고.. 저렇게 위대한 왕의 이름을 몰랐다니.. OTL (도주... ^^:)
  • 초록불 2009/08/05 07:25 #

    ^^
  • 슈타인호프 2009/08/05 01:48 #

    이런 게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글자 그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까닭....-_-;;
  • 초록불 2009/08/05 07:27 #

    신라 왕들의 재위 기간에 따른 미스테리는 강제로 잡아늘린 것이라는 해석 이외에는 사실 다른 해석이 어렵죠.

    6부의 역사는 더 오래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들 하지만, 긍정적인 관점에서 본다 해도 결국은 초기 기록이 일부 유실 또는 고의 삭제가 있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 大望 2009/08/05 09:36 #

    갑자기 나비효과가 생각납니다.
    초록불님의 이 포스팅을 본 모 작가가 조만간 대하사(기)극으로 만든다에 100원 겁니다.^^
  • 초록불 2009/08/05 09:41 #

    제가 먼저 써야하겠군요...^^;;
  • 라세엄마 2009/08/05 13:17 #

    한족의 위대한 한국이 그린랜드와 남극대륙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었을 시간에 저런 작은 나라만 가지고 있었던 왕이 인류의 조상인 우리 배달민족의 피를 어디 감히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수 있단 말인가!
    ...
  • 라세엄마 2009/08/05 13:18 #

    아차. 한국 -> 대한민국으로 읽어 주세요
  • highseek 2009/08/06 18:52 #

    사실은 고대의 뱀파이어..(..)
  • 초록불 2009/08/06 19:50 #

    후후
  • stonevirus 2009/08/24 18:30 #

    읽다가 유리왕의 아들 파사왕? 어라? 대무신왕은? 하고 다시 살펴보니 맨 첫줄에 고구려 유리왕이 아닌 신라 유리왕이었던 거로군요.
    유리왕 하면 황조가의 유리명왕밖에 머리에 안떠오르는 고구려빠돌이라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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