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니시 류의 [신라사 연구] *..역........사..*



신라사 연구 - 10점
이마니시 류 지음, 이부오 옮김/서경문화사


1.
이마니시 류, 今西龍으로 더 잘 알려진 일제 식민사학자의 대표적인 역사가다. 우리나라에서만.

특히 이 사람은 유사역사가들에게는 한국 역사를 대표하며, 현재까지의 한국 역사를 모두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되는 이병도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2.
그 점에 대해서는 진성당거사님이 한 번 포스팅한 바도 있다.
두계 대마왕, 식민사학 추종한 과거를 자기 입으로 고백하다...?! [클릭]

진성당거사님이 인용한 내용 일부를 다시 옮겨본다.

그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당시 조선사편수회의 서무책임자인 오노(小野某)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불미한 일 때문에 파직을 당해서 밥줄이 끊어지자, 뭐든지 해야겠다고 해서 조선학회 (朝鮮學會)를 조직하고 今西龍을 고문으로 추대했어요. 그분 밑에 평위원으로 나, 이능화, 최남선, 그리고 일본 사람도 섞여서 『조선학보』를 내기로 했어요. 나에게 와서 원고를 하나 쓰라고 해서 우선 「삼한 문제의 신고찰」이란 논문의 제 1편을 써주었지요.

그런데 며칠 뒤 다시 찾아와서 대단히 미안하지만 다른 원고로 바꿔달라는 거야. 왜 무엇이 잘못되었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아닙니다. 우리 일본사람들 몇 사람이 돌려가며 읽었는데 이마니시 씨의 설과 정반대이니까 만약 이걸 그대로 내면 이마니시 씨가 고문을 그만두겠다고 할 겁니다." 그러니까 이마니시 씨가 그만두면 『조선학보』는 '만사휴의'가 될 터이니, 제발 다른 원고로 바꿔달라는 거에요.

매우 불쾌했지. 정치적으로는 일본놈의 노예 노릇을 하고 있지만, 진리 탐구에도 일본놈에게 굽힐 게 뭐 있냐는 생각이 들고 화도 나서 못써주겠다고 했어요. <『한국학보』4, 1976, 가을 >

- 진단학회 編, 「근대 한국사학의 발전 - 두계선생과 이기백 교수의 대담 (1)」, 『歷史家의 遺香』, 일조각, 1991.


물론 맹목에 빠진 유사역사가들은 이병도 자신이 한 이야기니 믿을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초적인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3.
이병도는 와세다[早稻田]대 사학과를 나왔고, 이마니시는 도쿄대 사학과 출신으로 쿄토제국대학과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다. 이병도는 해방 되기 전에는 경성제국대학은 커녕 대학에 교편도 잡을 수 없었다. 이것은 서울대 사학과와 서강대 사학과나 마찬가지로 거리가 한참 있는 사이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4.
그러나 물론 이런 기초적인 사실은 유사역사가들은 아무 이유없이 무시하기 마련이고, 그저 이마니시 - 이병도로 내려가 한국역사학이 만들어졌다고 기염을 토한다. 요즘에는 이병도로부터 뉴라이트가 나왔다고 설레발을 치기도 한다.

그럼 이마니시의 주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걸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을 보는 것이 마땅하다.

5.
이마니시 류는 1875년에 태어나 1932년에 죽었다. 오래 산 편이 아니다. 특히 역사학자로서는 더욱 그렇다. 그의 논문을 읽어보니 생각이 확실히 정립되지 않은 부분들이 보인다. 이런 정도로 유사역사가들에 의해 한국사의 대부 자리에 올랐으니, 이 아이러니를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이 책에는 쓰보이 구메죠의 서문이 붙어있는데, 통사적 시각은 여기서 읽는 것이 빠를 듯하다.

...한국사는 진辰부족의 발전을 기반으로 출발했으므로, 그 연구에 신중한 주의를 필요로 함은 물론이다. 더러는 한국사가 고구려사에서 일어났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구려사는 별도의 계통을 이루어 발해, 금, 청, 만주의 역사에 연결된다고 여겨진다. (1933년 5월)

매우 놀라운 주장이다. 유사역사가의 주장과 흡사하다. 유사역사가는 다만 "별도의 계통"을 인정하지 않고 "고구려-발해-금-청-만주"로 이어갈 뿐이다. 오늘날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 고구려를 "별도의 계통"으로 만들거나, "금-청-만주"를 고구려 계통으로 우리 민족으로 여기는 주장이 있는가? 유사역사가들은 이런 일제의 역사관을 비틀어 자기들의 역사관을 만드는데 이용해 먹고 있으면서 오히려 역사교과서가 잘못 되었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이마니시는 고구려에 대해서 따로 논한 바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저 이런 구절 정도다.

불교가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한국의 이른바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시대였고, 기원 후 4세기 중엽 즉 약 1550년 전이었다. (중략) 고구려는 신라를 보호했고, 일본은 임나의 나라들을 보호하고 백제를 거느렸다. 신라를 거느리는 고구려 세력과, 임나와 백제를 거느리는 일본 세력이 한반도에서 서로 대립하는 시대였다. (326쪽)

위 글로 보아 이마니시는 고구려가 한국의 국가였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임나일본부를 인정하고 있고 백제와 임나가 일본의 지배 아래 있었다고 파악하고 있다. 묻는다. 오늘날 역사교과서에 이런 부분이 반영되어 있는가?

6.
이마니시 류는 진흥왕 이후에야 믿을만한 기록이 나온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왕명의 경우는 허구가 아닐 것이라 추측하고 있는데, 그 추측의 근거는 역시 왕들의 세습과 수명 사이에 비합리적 결과가 많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것은 실제로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초기 연대에 이상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점에 근거해서 초기 왕대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취신할 수 있는 근거를 진흥왕까지 물러난 것은 물론 과한 추정이다.

그럼 여기서 다시 말해보자. 오늘날 역사교과서가 진흥왕 이전 기록을 무시하거나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7.
그런데 흔히 이야기하는 식으로 일제는 언제언제 이전 기록은 믿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에도 큰 오류가 있다. 가령 이마니시는 박혁거세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박혁거세가 기원전 1세기의 인물이 아니라 2세기 초의 인물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듯이 신라의 역사가 5세기에 시작되었다, 이런 식의 주장이 아니라는 말이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뭘 비판하려면, 비판할 글이 뭘 주장하는지는 알고 해야 하는 법이다. 다시 말하지만 유사역사가들에게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그러니까 이마니시는 이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고대의 편찬자가 가상으로 만들어 정리할만한 사실은 아니다. 반드시 옛 전승이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연대에서 착오가 있었을 뿐이다. (55쪽)

8.
일제의 역사가답게 이마니시는 일본을 우위에 놓고 기술한 부분이 많다. 잠깐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그렇더라도 양국은 결코 대등한 관계에 있지 않았다. 일본이 신라를 대하는 것은 삼한 복속시대의 심지를 잊지 않았고, 신라를 바라보는 데에 한 단계 낮은 나라로 삼아 그들 사절을 공조사貢調使라 불렀다. 실제로 일본에 대한 신라의 공포심은 대단하여 문무왕 김법민도 유언으로 동해의 큰 바위 위에 묻혔지만, 신라인은 이를 일본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 그 요충지에서 호국의 용이 된 것으로 전하고 있었다. 신라는 일본과의 분란을 피하기 위해 나라의 체면에 다소의 손상을 감내하더라도 일본에 대해 공조의 태도를 취한 것이다. (중략) 또한 신라로부터는 왕자에 필적할 만한 중신이 온 것에 비해 일본으로부터는 지위가 낮은 사람이 파견되었다. (69-70쪽)

공조사라는 말은 신라가 일본에 조공을 바쳤다는 이야기다. 나 역시 이 책에서 처음 보았는데, 신라의 무례함에 대해서 735년, 753년 일본에서 신라 정벌 논의가 있었다 한다. 753년의 논의는 매우 구체적이어서 군사 훈련까지 갔지만 신라 사절이 763년에 도착함으로써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마니시의 경우 반대 기록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삼대실록 정관 8년(866) 7월 비전의 산춘영이 반란을 일으킨 기사로 미루어보면 ... 당시의 일본은 문약에 빠져 지난날의 용기는 없어지고 신라를 깊이 두려워하게 되었다. (76쪽)

이마니시는 위의 사례를 여러가지 더 들고 있다. 그리고 이런 말도 남겨놓았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신라왕조와 일본의 교통이 상상하는 것보다 빈번했다는 점과 국제교통 외에 상인의 무역이 성했다는 점[다만 신라로부터 우리에게 온 것 같다]이다. 이 시대 당의 화물문화로서 신라를 거쳐 일본에 들어온 것이 당으로부터 직접 들어온 것에 비해 매우 많았던 것 같다. 일본이 신라로부터 수입한 문물의 자세한 내용은 분명치 않다. (77쪽)

9.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마니시는 신라가 일본의 조공국이라 주장하고 있는데, 오늘날 우리 역사교과서에 그런 내용이 적혀 있는가?

10.
한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그 나라를 좋아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유사역사가들의 한심한 주장 중에는 자국민만이 자국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것도 있는데, 그건 남의 나라 역사는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공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다른 나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그 나라 역사를 폄훼하기 위해서라는 그 단세포 사고를 어떻게 수정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마니시 역시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애정이 어떻게 발현되는가, 라는 점이지 애정 자체를 문제시 삼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도 프라이데이를 사랑했다. 노예로서 사랑했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지만.

다음 인용문은 이마니시가 1906년 처음 한국을 방문해서 경주로 찾아갔을 때의 이야기다.

마부에게 술값을 주고 같이 잤던 한국인 몇명에게 소고기 통조림을 주었더니, 참으로 좋은 일본 양반이라고 하며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서로 웃었다. "오늘은 꿈도 꾸지 마시고, 내일은 평안하시기를"하고 말하며 그들은 숙소 방으로 들어갔다. 사람의 정은 어디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나는 한국인을 좋아하고 한국인을 사랑한다. 가르쳐야 할 사람들이고 이끌어가야 할 사람들이다.
(중략)
나는 한국의 아이, 나그네이다. 촛불이 꺼져 창문의 윤곽만 알아볼 수 있고, 닭소리만 앞마당에서 크게 들려온다. 밖을 바라보니 조쟁종 벼 논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이 몸으로 느껴진다. 구름 사이에 별이 2~3개.
(중략)
경주여, 경주여. 십자군 병사가 예루살렘을 바라본 심정이 바로 지금 내 마음일 것이다. 나의 로마는 눈앞에 있다. 내 심장이 고동을 치기 시작했다. 열 살 때 산촌 마을의 학교에서 <사략>을 읽었을 때부터 바다 건너 서북 구름 안에 가려진 비밀의 나라, 보물의 나라를 보고 싶다, 가고 싶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 내가 다가간다, 그가 다가온다. 내 심장이 고동을 친다. 전세前世를 본 느낌이다. 나는 우리 신라로 다시 돌아왔다. (499-501쪽)


11.
이 책은 20세기 초 한국사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었던가에 대한 사적 의미와 일본 식민사학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읽어내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일반인이 읽을 필요는 없는 책이라 하겠다. 섣불리 별 지식도 없이 이런 책을 집어서 주화입마하지 않기를 바란다.

덧글

  • 아야소피아 2009/08/08 11:29 #

    그래도 저런 책이 번역되다니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편하겠네요. 좀더 많은 번역 작업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 초록불 2009/08/08 11:34 #

    네, 스에마쓰나 쓰다의 책들은 모두 번역되는 게 좋겠는데... 팔릴 가능성이 없으니 출판사가 나서기가 애매하겠죠.

    이런 게 나와야 식민사학이 뭔지 정체를 분명하게 일반인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 진성당거사 2009/08/08 11:42 #

    저게 번역되어 나왔군요. 그리고 미천한 제 글을 핑백 해 주시다니 그저 황공합니다.
  • 초록불 2009/08/08 11:48 #

    곧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의 폭탄이 투척되리라 예상합니다...^^
  • Allenait 2009/08/08 11:55 #

    그리고 유사역사학자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서겠군요
  • rumic71 2009/08/08 12:09 #

    이제 이마니시는 원래 한국 혈통이라는 주장이 나올지도.
  • 미스트 2009/08/08 12:17 #

    [십자군 병사가 예루살렘을 바라본 심정이 바로 지금 내 마음일 것이다. 나의 로마는 눈앞에 있다.]

    .... ... ....왠지 이 심정 알 것 같기도. (................)
  • 고어핀드 2009/08/08 18:25 #

    저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 dunkbear 2009/08/08 12:57 #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이 저 책을 단 한 줄도 읽지 않을 것이라는데 500원 겁니다. ㅡ.ㅡb
  • 고어핀드 2009/08/08 18:25 #

    읽는 친구들이라면 유사역사학 따위를 신봉하지도 않겠죠.
  • 민유하 2009/08/08 13:54 #

    본문과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민족사 되찾기 운동본부라는 데는 뭐 하는 단체일까요?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더니 글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질 않는데, 뜨는 지도만으로 움찔하게 만드네요.-_-;;
    재택 아르바이트 찾다가 도서관발전진흥본부->민족사되찾기운동본부까지 들어갔는데 이 둘은 또 대체 무슨 관계인 걸까요..;
  • 초록불 2009/08/08 13:57 #

    정신줄 놓은 동네인 건 분명하겠네. 누가 훔쳐갔는지, 잃어버렸는지 맨날 되찾는다더라...-_-
  • 민유하 2009/08/08 14:07 #

    표지만 보기에는 멀쩡한 철학서(!) 내는 데라서 우와~ 하고 다른 링크까지 누르러 갔지만 웬 복병이..
    협회가 요구한 도서를 도서관에 신청하면 책값의 얼마를 커미션으로 주는 아르바이트는 처음 봤어요. 졸업이 코앞이라 오래 하진 못하겠다 싶어서 그냥 포기했지만요. 세상은 넓고 알바 자리는 다양해요;
  • Lucifer 2009/08/08 13:58 #

    우기면 그만인 사람들이 저거 한페이지라도 읽을까요...
    저는 읽지 않는다에 붕어빵 한개 겁니다 -ㅅ-
  • 고어핀드 2009/08/08 18:25 #

    붕어빵 하나 받고 피자 한 판 추가!!
  • 액시움 2009/08/08 14:13 #

    그치들은 어차피 읽지도 않을 텐데 무슨 의미가 있으려나요.
    이마니시의 한국 사랑 부분은 그것만 떼어놓고 읽으면 참 그럴싸한데, 앞서 노빈손의 프라이데이 사랑과 같이 보니 참 거시기 합니다. ㅡㅡ;
  • 초록불 2009/08/08 15:25 #

    에... 그중 일부는 읽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제 블로그를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있는 줄 알거든요...^^
  • 2009/08/08 15:24 #

    오늘도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학부생 수준이라 주화입마률이 너무 높을 듯하네요 허허허;;;
  • 초록불 2009/08/08 15:25 #

    사학과 학부생이면 읽어도 괜찮습니다.
  • 매식자붙이 2009/08/08 20:17 #

    이마니시 류는 누군가염
  • 초록불 2009/08/08 20:46 #

    아니... 매식자붙이님이 그렇게 물어보시면... 당황스러운데요...

    금서룡입니다.
  • 치오네 2009/08/08 21:59 #

    5. 동북공정과 유사역사학의 뿌리로군요;
  • 초록불 2009/08/08 22:18 #

    그렇습니다...^^
  • 解明 2009/08/08 22:06 #

    그나마 이미나시를 비롯한 일본 학자들이 설정한 한국사의 시작 연대를 두계가 끌어내린 것을 생각한다면, 무턱대고 까는 것도 좀 그런 것 같아요. 일본 학자들 입장에서는 '이단아'나 다름 없었으니. 물론 두계를 엉뚱한 사람의 족보에 올려놓는 사람들한테는 그 놈이 그 놈일 것 같지만 말이에요. ^^;
  • 초록불 2009/08/08 22:18 #

    그놈이 그놈 맞습니다...ㅠ.ㅠ
  • acarasata 2009/08/09 15:42 #

    근데 이마니시 류란 者은 일본서기내용에 대해서는 사료비판을 하지 않았나요?
    신라나 백제에 대한 일본의 우월의식은 전적으로 일본서기내용에 근거한 것일텐데 말입니다.
    뭐 식민사학자한테 그런 걸 바라는건 무리겠습니다만,,,

    그리고 삼국사기에서 삼국을 공통의 선조로 다루고 있는 거나, 고려의 국호가 고구려를 계승한 점이랄지 고구려가 조선의 나라임을 모르지 않을텐데, 고구려를 굳이 별도의 계통으로 삼아서 한국역사에서 떼려고 했던 건 자기들이 군사적으로 깨졌던 고구려를 조선의 나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런 심보가 아니었는지 싶네요.

    주화입마까진 아니지만, 요새도 인터넷 으슥진 곳에는 이런 주장을 변형한 주장들이 많이 눈에 띄더군요.
  • 초록불 2009/08/09 15:51 #

    당시에는 일본서기에 대한 사료비판은 감히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죠. 이병도의 진짜 스승인 쓰다 소우키치가 유일하게 일본서기에 사료비판을 가했다가 굉장히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는 말은 들어보았습니다.

    고구려에 대한 이야기는 그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문제, 말하자면 단재의 책에 대한 비판으로 나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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