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은 시청하지 않습니다만, 소지섭이 나오나보죠?
아니면 알천이 나오는데, 소지섭의 조상이라고 화제가 된 것일지도...
아무튼 알천 공이라 하면...
선덕여왕 때 장군으로 636년 백제군이 독산성을 치고자 잠입했을 때 기습 공격하여 전멸시키고 다음 해에는 대장군의 지위에 오른 인물이며 638년에는 칠중성에서 고구려 군을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진덕여왕이 즉위했을 때 상대등이 되었으며 <삼국유사>를 보면, 알천 공, 임종 공, 술종 공, 호림 공, 염장 공, 유신 공이 국사를 논의했다고 하는 중요 인물이죠.
오지암에 모여서 국사를 논하던 중 갑자기 큰 호랑이가 뛰어들어 모두 놀라 일어나는 가운데, 알천 공만 태연히 담소를 나누며 호랑이 꼬리를 낚아챈 뒤 땅에 패대기쳐 죽여버렸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완력으로는 신라 제일이었죠.
김춘추 즉위 때 본래 왕이 될 순위는 알천이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김춘추, 왕위에 오르다 [클릭]를 참조해 주세요.)
진덕이 죽자 여러 신하들이 이찬 알천(閼川)에게 섭정을 청하였으나, 알천이 굳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저는 늙고 이렇다 할 덕행이 없습니다. 지금 덕망이 높기는 춘추공 만한 이가 없으니, 실로 세상을 다스릴 뛰어난 인물이라 할만 합니다.”
마침내 그를 받들어 왕으로 삼으려 하니, 춘추는 세 번 사양하다가 마지못하여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즉위년)
또한 김유신 열전에는 김유신이 알천과 상의한 뒤 김춘추를 왕위에 올렸다고 나옵니다. 이처럼 신라의 왕이 될 수도 있는 인물이므로 그가 당시 신라의 국성인 김金 씨였을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가 소蘇 씨의 조상이라 하는 걸까요?
그런데 한국사 시민강좌 24집(1999)에 이기백 선생님의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1979년의 일인데, 진주 소씨 서울 종친회의 한 분이 종친회보를 가지고 연구실로 필자를 찾아왔었다. 그러면서 진주 소씨의 시조는 신라시대 상대등이던 알천인데, 회보에 알천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알천은 김씨이므로 소씨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다른 구실을 들어 거절하여 보냈다. (중략) 그뒤에 필자는 신라 말기에 김해 지방에서 활약하던 김율회가 때로는 소율회라고도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김金과 소蘇는 서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金은 음이 '김', '금'이지만 그 뜻은 '쇠'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알천의 성이 소인 것이 잘못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 글에 나오는 소율회를 구산우 박사는 "쇠유리"로 읽고 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한 기록은 진경대사보월능공지탑비문(김율회), 진철대사탑비문(소율회) 등에 서로 성이 다르게 등장하는데, 동시대에 동지역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그가 김 또는 소로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진주 소씨가 알천을 조상으로 삼는 것 역시 이런 연유이리라 추측하는 것입니다.
진주 소씨 가문의 족보를 보면 알천에 그치지 않고 그 조상이 삼한시대로 올라가 후진한주 소백손이 등장하고 그의 29세손이 알천이라 나오는데, 이것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이 중간에 서라벌 육부 중 하나인 고허양산촌의 소벌도리 공도 조상이라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건대, 알천이 신라 김씨 왕족의 일원임이 너무나 분명하므로 그 이전의 기록은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알천은 여든이 넘도록 후손을 못 보아 걱정하다가 꿈에 나타난 선조(소벌도리:물론 알천은 신라왕족이므로 소벌도리가 조상일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후세의 뻥일 가능성 농후)의 명에 따라 태종무열왕 3년(656년)에 진주로 이사했는데, 여기서 손자를 보아서 후사를 잇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소지섭이 알천 공의 후손이라는 이야기의 전말입니다.
아니면 알천이 나오는데, 소지섭의 조상이라고 화제가 된 것일지도...
아무튼 알천 공이라 하면...
선덕여왕 때 장군으로 636년 백제군이 독산성을 치고자 잠입했을 때 기습 공격하여 전멸시키고 다음 해에는 대장군의 지위에 오른 인물이며 638년에는 칠중성에서 고구려 군을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진덕여왕이 즉위했을 때 상대등이 되었으며 <삼국유사>를 보면, 알천 공, 임종 공, 술종 공, 호림 공, 염장 공, 유신 공이 국사를 논의했다고 하는 중요 인물이죠.
오지암에 모여서 국사를 논하던 중 갑자기 큰 호랑이가 뛰어들어 모두 놀라 일어나는 가운데, 알천 공만 태연히 담소를 나누며 호랑이 꼬리를 낚아챈 뒤 땅에 패대기쳐 죽여버렸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완력으로는 신라 제일이었죠.
김춘추 즉위 때 본래 왕이 될 순위는 알천이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김춘추, 왕위에 오르다 [클릭]를 참조해 주세요.)
진덕이 죽자 여러 신하들이 이찬 알천(閼川)에게 섭정을 청하였으나, 알천이 굳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저는 늙고 이렇다 할 덕행이 없습니다. 지금 덕망이 높기는 춘추공 만한 이가 없으니, 실로 세상을 다스릴 뛰어난 인물이라 할만 합니다.”
마침내 그를 받들어 왕으로 삼으려 하니, 춘추는 세 번 사양하다가 마지못하여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즉위년)
또한 김유신 열전에는 김유신이 알천과 상의한 뒤 김춘추를 왕위에 올렸다고 나옵니다. 이처럼 신라의 왕이 될 수도 있는 인물이므로 그가 당시 신라의 국성인 김金 씨였을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가 소蘇 씨의 조상이라 하는 걸까요?
그런데 한국사 시민강좌 24집(1999)에 이기백 선생님의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1979년의 일인데, 진주 소씨 서울 종친회의 한 분이 종친회보를 가지고 연구실로 필자를 찾아왔었다. 그러면서 진주 소씨의 시조는 신라시대 상대등이던 알천인데, 회보에 알천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알천은 김씨이므로 소씨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다른 구실을 들어 거절하여 보냈다. (중략) 그뒤에 필자는 신라 말기에 김해 지방에서 활약하던 김율회가 때로는 소율회라고도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김金과 소蘇는 서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金은 음이 '김', '금'이지만 그 뜻은 '쇠'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알천의 성이 소인 것이 잘못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 글에 나오는 소율회를 구산우 박사는 "쇠유리"로 읽고 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한 기록은 진경대사보월능공지탑비문(김율회), 진철대사탑비문(소율회) 등에 서로 성이 다르게 등장하는데, 동시대에 동지역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그가 김 또는 소로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진주 소씨가 알천을 조상으로 삼는 것 역시 이런 연유이리라 추측하는 것입니다.
진주 소씨 가문의 족보를 보면 알천에 그치지 않고 그 조상이 삼한시대로 올라가 후진한주 소백손이 등장하고 그의 29세손이 알천이라 나오는데, 이것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이 중간에 서라벌 육부 중 하나인 고허양산촌의 소벌도리 공도 조상이라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건대, 알천이 신라 김씨 왕족의 일원임이 너무나 분명하므로 그 이전의 기록은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알천은 여든이 넘도록 후손을 못 보아 걱정하다가 꿈에 나타난 선조(소벌도리:물론 알천은 신라왕족이므로 소벌도리가 조상일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후세의 뻥일 가능성 농후)의 명에 따라 태종무열왕 3년(656년)에 진주로 이사했는데, 여기서 손자를 보아서 후사를 잇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소지섭이 알천 공의 후손이라는 이야기의 전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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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아무튼 일단 출세한 사람들이 자기 조상도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선전하는(일본인들이 구석기 시대 유물을 찾거나 자기네 전통문화를 서구에 열심히 홍보하는 식으로) 예의 하나라고 볼 수 있겠네요. 뭐, "저 넓은 땅이 원래 우리 조상님 땅이었다(그러니 소송을 걸어 되찾겠다. 3주 후면 영원히 우리 것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땅 열 마지기 정도 가진 자"의 그저 그런 소리보다는 덜 거시기하지만...
그래도 알천은 몰라도 그 위의 조상은 믿기 힘들군요.
그 중 후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에 관련해 소지섭이 연관이 된거지요.
본문에 써 놓으신 연관관계와는 정 반대..
그리고 알천 이전의 기록은 믿을 수 없음. 뭐, 이런 거지요.
알천이 조상인줄 알고 무척 새로워 했는데
결국 아닌건가요..ㅜㅜ
소씨 시조도 신화속에 나오는(조연 쯤..?) 사람이라
정확한 조상이 누구일까 갈피를 못잡겠어요ㅋㅋ
전 상산 김씨인데 시조가 신라 마지막 경순왕의 아들이랬나 손자랬나 뭐 그러더군요.
저도 선덕여왕을 보지는 않지만 가끔 가족들이 시청하는거 잠깐씩 보면 젊은김유신이랑
젊은선덕여왕이 같이 나오더군요.<삼국사기>를 참고해서 보면 김유신이랑 선덕여왕이랑
나이차이가 꽤 나는걸로 압니다.게다가 미실의 등장은 애들로 하여금 미실이 신라의왕으로 비춰지게 할수도 있어서 걱정이 되더군요.게다가 선덕여왕이 중국으로 망명해서 생활하는 부분에서는
무려'감자'까지 나오더군요.뭐 어린애들이 감자가 언제 들어왔는지 그것 까지는 어떻게 알겠습니까,다만 애들이 국사배울때 드라마선덕여왕과 다른 부분에 혼란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저도 그 드라마를 보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를 드리기는 어렵네요. 사극은 그냥 판타지로 이해해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