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찾기협의회의 행정소송 내용 *..역........사..*



1978년 9월 29일 국사찾기협의회는 문교부장관 앞으로 행정소송을 내었다. 국사교과서를 폐지하고 전면 개정하라는 소송이었다.

경향신문 9월 29일자 보도 내용


그리고 10월 11일에 보충 자료를 문교부장관 앞으로 제출햇다.

길고도 쓸 데 없는 내용은 생략하고 핵심적인 마지막 부분을 보자.

국정국사의 교과서 사용금지 및 정사편찬기구의 재구성촉구에 관한 요구서

(전략) 본인 등은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국정교과서가 그릇 편찬된데 대하여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으며 또 국사를 전공하는 역사학도로서 심한 모욕감과 자존심에 대한 상처를 느끼는 것이며 명예감에 크나큰 충격을 느끼고 있읍니다. 이하에 객관적 진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와 근거 및 정사편찬의 긴급성, 현행 국사교재의 사용금지 타당성을 주장하는 본인 등의 서면요구 사항을 표명하거니와 자료 7의 (8)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괴 괴뢰정권은 고조선의 영토를 중국 영토 깊숙히 있었던 것으로 주장하고 있어서 본인 등은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하여도 귀하의 깊은 배려가 있기를 바랍니다. (끝)


소송을 제기한 인물은 국사찾기협의회 안호상과 동방사상연구원 김득황 원장. 그리고 정사학회장이라는 임승국, 알타이문화연구원의 박시인 등이 관련되었다.

이미 전 포스팅 국사찾기협의회의 주장 12개조 [클릭]에서 보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들의 대변지인 자유 지가 협의회 발족 1년 동안 주장해왔던 것들을 말끔히 포기한 것이다. 이유립 지못미. 그럼 새롭게 나온 주장은 무엇인지 한 번 간략하게 알아보자.

[1] 건의이유
   (1) 국정 국사의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
       (가) 국정 국사는 반도사관으로 기술 되었다.
       (나) '고조선은 B.C. 4세기를 전후하여...출발했다'라고 되어 있다. 
       (다) 국사연표에 위만이 B.C. 194년에 고조선 왕이 된 것으로 써서 구체적인 한국사가 이때 시작된 것처럼 서술했다.

한마디로 엉터리 주장들이다. (나)항을 보자. 당시 국사교과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기들이 제출한 자료에도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고조선 사회의 발달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나라는 대동강 유역의 고조선이다. 고조선은 서기전 4세기를 전후하여 남만주와 한반도에 걸친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동방사회의 중심세력이 되었다.

보다시피 "출발했다"라는 말이 없다. 없는 글을 읽는 능력은 유사역사가들의 신비한 능력으로 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유사역사가에 끼지를 못한다.

(다) 항목도 마찬가지. 한국사가 위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서술은 아무데도 없다. 그런데도 이 떡밥은 지금도 살아서 종종 유사역사학 신봉자들의 입에서 되풀이 된다.

   (2) 국정 국사는 패배주의적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서술한 조선총독부 발행 <조선사>(35권)의 범죄를 충실히 되풀이 하는 사상점 범죄를 범하고 있다.
       (가) 국사연표에 위만 침입 탈취 사건부터 시작하여 한국사가 외국 식민지로부터 시작된 인상을 짙게 함
       (나) 국사 교과서 대표집필자 김철준 교수의 <국사개론>에도 "한나라의 식민지로부터 한국사가 시작되었다"고 망언.
       (다) 왜색식민사학 <조선사>가 만든 한사군 이론을 그대로 답습하여 한사군을 비정. 한사군 위치는 <사기>에도 나오지 않음.
       (라) 통일신라의 영토를 대동강 - 원산만 이남으로 축소. 그나마 당의 승인을 받은 것으로 나옴.

역시 순 엉터리다. (가)항은 자기들이 받은 인상을 이야기하는 것 뿐이다. 실제 연표에는 구석기-신석기부터 시작하고 있다. 심각한 질병이다. (나)항도 없는 글을 만들어서 읽었다. (다)항 역시 없는 내용을 상상해서 만들어냈다. (라)항의 경우, 당시 국사교과서에는 "이후 8년 간의 나당전쟁의 결과로 비로소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의 지역을 확보하여 삼국의 통일을 이룩하게 되었다."라고 하여 전쟁의 결과 획득한 영토로 나와 있다.

[2] 반증자료
   (1) 반도사관
       (가) 고구려 : 고구려의 영토는 대륙이다. 고죽국(현 북경)과 삼국사기 모본왕 조를 보면 어양, 상곡, 태원 등 중국 산서성까지 고구려 영토였음.
       (나) 백제 : 통전, 양사, 북사, 주서를 따르면 백제는 양자강 북쪽과 요서 지방 등 중원대륙을 점령하고 있었음.
       (다) 신라 : 만주원류고를 따르면 신라는 만주까지 차지하고 있었음.


고구려가 고죽국이었다는 이야기는 삼국유사 배구전에 나온다. 달랑 그 한마디. 반증 따위는 물론 없다. 모본왕이 습격한 지명(이것은 해석에 따라 습격하려 했다로 볼 수도 있다.)을 영토로 이야기하는 똥배짱. 습격 한 번 하면 영토가 되어버리면 조선 땅은 일본 것이겠다. 백제의 요서점유설은 그나마 논란이 있는 부분으로 요즘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다)항의 경우, <만주원류고> 자체가 신빙성 없는 사서라는 점을 이들은 알지 못한다.

   (2) 한국사의 시폭
   조선이라는 국호는 동양사 최초의 국호이다. 중국 최초의 지리서인 <산해경>(하나라 우임금의 저서, 또는 그 신하 백익의 저서라 함)에 이미 조선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동양사 최초의 국호인데, 그 국호를 적은 책은 하나라...왕이거나 신하란다. 어쩌라고?

   (3) 한사군 문제
      (가) <사기>에 한사군이 나오지 않고 반대로 조선인4군이 나온다.
      (나) <증보문헌비고>에도 한사군을 한반도에 비정하지 않는다.
      (다) 북괴는 김석형, 이지린에 의해 한사군을 요하 하구로 비정하고 있다. 민족사의 정통성은 오류 시정부터.

(가)항, <사기>에는 제후로 책봉된 사람이 다섯으로 나온다. 그것부터 사실 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 확인도 않고, 제대로 읽지도 않고 우겨대기만 한다. (나)항,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사료는 다 끌어다 해석하는 아전인수식 해석. 평양 유역의 낙랑 유적, 유물은 끊임없이 출토되고 있다. 사실 북한도 골머리를 앓고 있을 거다. 

   (4) 통일 신라의 왜곡 : 만주원류고에 따르면 신라가 만주를 점령했음

국사편찬위는 "우리의 사서인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전혀 무시하고 이러한 단쳔적인 기록들을 가지고 함부로 민족의 고대사를 허구함은 잘못임"이라고 답변해 주었다. 나도 그것밖에 할 말이 없다.

[3] 결언
    (1) 그릇된 국정 국사는 국민의 조국관을 흐리게 하고 결과적으로 국민의 정신전력을 약화 저해한다.
    (2) 조선사편수회에 관련된 학자가 물러나는 것은 물론, 그 학자 밑에서 수학하고 식민사학의 제원칙을 믿고 있는 학자와 국정 국사 편찬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학자는 모두 퇴진시킨 후 '정사편찬기구'를 즉각 구성토록 하라.


결국 목표는 자기들이 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것.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번 요구에서는 환단고기를 중심으로 했던 국사찾기협의회의 12개요령은 사라져버렸다. 고구려 관련으로 약간 흔적을 남기긴 했지만 그것은 이 주장을 환단고기가 가져갔던 것 뿐이므로 실질적으로 환단고기의 영향은 완전 배제되었다고 보아야 하겠다.

유사역사학에는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두 갈래 흐름이 있다. 하나는 환단고기를 중심으로 하는 무리들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의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우리 역사가 축소되었다고 주장하는 무리다. 내 판단으로는 이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임승국인데, 그는 본래 "자료파"였는데, <한단고기>를 내놓으면서 이 두가지 계통이 섞이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아직 완전히 뒤섞인 것은 아니어서 유사역사학 신봉자임이 분명한데도, 자기는 환단고기는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간혹 보이곤 한다. 아무튼 이유립 당대에는 힘을 쓰지 못하던 환단고기는 그의 사후 유사역사학의 대세를 휘어잡게 된다. 결정적인 이유는 임승국의 <한단고기> 출간이다.

이유립은 1986년 4월 18일에 죽었고, 임승국의 <한단고기>는 1986년 5월 1일에 나왔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이유립은 환단고기 번역본을 내놓으려고 준비 중에 미처 발간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지만 확인되지 않은 의심은 일단 접어둔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행정소송 건은 국사찾기협의회의 실패로 끝났다. 1980년 6월 27일 재판부가 소를 각하했기 때문이다.

소 각하를 전한 1980년 8월 14일 경향신문


국사찾기협의회 측은 항소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항소하지 못했거나 항소 결과도 똑같이 기각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이들은 또 다시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이 역시 차회를 기약하며....

덧글

  • 회색인간 2009/08/26 14:56 #

    ㅎㅎ 마치 격동 50년의 말투 같아서 재밌네요.....
  • 아브공군 2009/08/26 14:56 #

    한 마디로 "내가 믿고 있는 역사만이 진실이다" 라는 거군요.... 증거나 다른 주장은 다 무시해도 좋다는.
    .....나치나 일제가 했던 말과 다를게 하나 없잖아?
  • 매식자붙이 2009/08/26 15:00 #

    덕선생의 사실접근방식에 의하면 임승국이 태백교주를 독살했을겁니다.

  • 萬古獨龍 2009/08/26 16:29 #

    ............ 이건 뭐 더 할말이....
  • 기그젊 2009/08/26 16:32 #

    나 빼고는 다 틀린거라능!!!!!

    ....이런 건가요...깔깔깔...
  • Ezdragon 2009/08/26 16:36 #

    이 정도의 배짱과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유사역사학 따위는 못해먹는거죠.
    어떠한 증거를 들이대도, 아무리 자신의 주장이 논파되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당당히 자기 주장을 외칠 수 있는 배짱을 보면 참...
  • catnip 2009/08/26 17:51 #

    아래글도 그렇고 세상은 요지경...이란 말만 떠오르네요.
  • Niveus 2009/08/26 18:10 #

    이런 원류가 있으니 요새 하류도 이모양인게로군요...
  • 현재시제 2009/08/26 19:04 #

    각하당한 걸 보니 초록불님이 말씀하신 본안판단 내용은 재판부에서 검토도 안했군요.

    소송의 종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깜'도 안되는 걸 밀어붙였으니 변호사도 골치가 좀 아팠을 듯 하네요. ^^
  • asianote 2009/08/26 19:11 #

    변호사가 같은 파였다면요?
  • 현재시제 2009/08/26 19:13 #

    사법시험을 보면서 소송법을 공부한 이상 '각하'와 '기각'의 차이는 분명히 알텐데, 설마 그랬으려구요.
  • 초록불 2009/08/26 19:52 #

    네, 역사적인 내용은 사법부가 판단할 내용이 아니라는 요지였습니다.
  • 모모 2009/08/27 00:28 #

    <한단고기>가 정말 대세는 대세였지요. 제가 다니던 중학교 도서실에도 있었으니까요. 도서관도 아니고 무려 도서실에(...) 그것도 추천도서인가 그랬죠... 허허.
  • 진성당거사 2009/08/27 11:41 #

    할말이 없군요.........하하하하하하............;
  • 라인하르트 2009/08/27 13:13 #

    저쪽 분들은 갈수록 '발전'한다고 해야할지 '퇴보'한다고 해야할지...;; 음의 방향으로 꾸준히 전진하고 계시니...;
  • 초록불 2009/08/27 15:09 #

    퇴보...^^
  • Allenait 2009/08/27 22:37 #

    여러모로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려.
  • Gejo 2009/08/28 21:25 #

    그리고 성공했다 인가요? - 뉴라이트
  • 초록불 2009/08/28 21:34 #

    차 회를... 그리고 뉴라이트는 이쪽 계통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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