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립, 나철 음해의 현장 만들어진 한국사



이유립이 대종교를 어떻게 음해하고 다녔는지는 월간 <자유>지에 잘 나와 있다. 월간 <자유>지 78년 12월호를 보자. 저 글에 나오는 나인영이 바로 대종교를 창시한 "나철"의 본명이다.

신시개천 5802년=곧 대한제국 광무 9년(을사 서력 1905년)에 해학 이기 대종사는 나인영 등 몇몇 동지들과 함께 일본 도교(闍橋)로 건너가 왜왕 목인(睦仁)과 일본정부 요인들에게 제각금 장서(長書)를 보냈다. (장서 내용 중략) 본국으로 돌아와서(광무 11년) 참요장(斬妖狀)을 초하여 또한 나인영 등 십여 명과 함께 을사오적=박제순,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등을 암살하려 하다가 실패하고 동지 나인영의 자현(自現=자진고발)하기 때문에 모두 체포되어 진도에 귀향가게 되었다.

나철이 자수한 것은 사실인데 그것은 일을 계획했던 서창보(徐彰輔) 등의 체포로 인해, 엉뚱한 이들이 고문 당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나철 [클릭]) 서창보는 이 사건 이후 친일파로 전향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유립은 나철 때문에 모두 체포된 것으로 그 책임을 나철에게 덮어씌우고 있다.

이유립이 나철과 대종교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지 계속 읽어보자.

(이기는) 나철(초명 나인영) 선생과의 국사광복의 기본원칙에서부터 의견의 귀일(歸一)을 볼 수 없고 단군교의 환인, 환웅, 환검을 일체로 하는 삼신설과는 달리 우주 유일신으로서의 작용삼신(作用三神)을 받들게 되고 단군교의 단군개천과는 달리 환웅천왕의 신시개천을 내세움으로써 국사의 상한을 환웅천왕의 태백산 천강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확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 <태백진훈>의 미언대의(微言大義)를 보충설명하는 기본자료로서 <증주태백진경>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그 문인 계연수님에게 위탁하여 <환단고기>을 모아 발간하니 그 편차 내용과 볌례는 이러하다. (이상의 내용은 <자유> 1978년 12월호에 실린 이유립의 "국사 바로잡기 천년의 혈맥"에서 인용)

나철의 대종교와는 시작부터 의견이 달라 갈라져나왔다는 이야기다. 이기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유립이 만든 종교는 태백교=단단학회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위 글을 보면 1978년에 이미 환단고기의 목차와 범례까지 소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용문의 맞춤법 오기는 이유립이 한 것임)

이유립은 남하한 후에 대종교에 가입하여 대전시교당 전무로 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들의 일대종사를 이처럼 모함하고 다녔다니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댓글에 의해 수정)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렇게 나온다.

고종 48권, 44년(1907 정미 / 대한 광무(光武) 11년) 7월 6일(양력) 3번째기사
조중응이 나인영 등의 공술에 대해 보고하다

피고 나인영은 공술하기를, 「광무(光武) 9년 11월에 우리 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양여한 새 조약이 협박을 받았다고 하나 황제 폐하가 윤허한 것이 없고 또 참정대신(參政大臣)이 날인한 것이 없습니다. 아! 저 5적 이지용(李址鎔), 이근택(李根澤), 박제순(朴齊純), 이완용(李完用), 권중현(權重顯)이 제멋대로 가(可)자를 써서 승인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정권과 전국의 이권을 모두 양여함으로써 2천만 민족을 내몰아 남의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국권을 손상시킨 자에 대한 형률(刑律)이 이미 법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근심과 울분이 치밀어 사람마다 역적을 처단하려는 의리를 이룩하려 하였습니다.


나철은 이처럼 자신이 하려던 일의 의의를 설명하고 동지를 모은 과정과 처단 대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기호, 김인식과 함께 같은 마음을 가지고 협력해온 김동필, 박대하(朴大夏), 이홍래(李鴻來), 이용채(李容彩)를 지휘하겠다고 약속하고 시골 의병의 나머지 무리를 불러들였습니다. 그런데 탁지부 대신(度支部大臣) 민영기(閔泳綺)와 법부 대신(法部大臣) 이하영(李夏榮)도 새 조약에 대하여 뒤에서는 동의하고 앞에서는 부인하였으니 하나같이 모두 처단하는 것이 옳다고 하여 간신을 처단할 7장의 글을 만들어 김동필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민영기, 이하영은 이미 부인한다는 글자를 써서 표시하였으니 같이 논할 수 없다고 하여 서로 의논하여 그냥두기로 하였으나 그 간신 처단장〔斬奸狀〕 2장을 없애지 못하였습니다.

거사 시행이 지체된 이유가 뒤를 이어 나온다.

음력 12월 그믐날 거사를 하려다가 모집한 무리들이 기한이 지나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단행하지 못했고, 음력으로 본년 2월 5일에 5적의 각 집들에 모집한 무리 각각 30명씩 각기 권총을 가지고 문이 열리자 곧장 들이닥치기로 약속하였다가 해당 무리 가운데 지레 놀란 사람들이 생겨 단행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달 8일 태자 전하(太子殿下)의 생신날 5적이 대궐에 들어가는 길에서 일시에 모두 처단하기로 다시 기도하였다가 5적들이 대궐에 들어가는 것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어 같은 달 12일 5적들이 출근하는 길목에 무리들을 갈라서 매복시키고 동시에 저격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몇차례에 걸친 일이 손도 못 쓰고 실패로 돌아갔는데, 이번에는 일단 시도는 하게 된다.

사동(寺洞) 길에서 권중현을 사격하였으나 맞히지 못했고 다른 곳들에서는 미처 손도 써보지 못하고 놀라서 흩어지는 통에 며칠간 종적을 감추었다가 다시 거사할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같은 무리 강상원(康相元) 등이 차례로 체포되는 바람에 무고한 사람들이 일망타진될 우려가 없지 않아 같은 달 19일에 오기호, 김인식과 함께 간신 처단장과 각 증거서류들을 가지고 스스로 본 원을 찾아갔습니다.」 하였습니다.

이때 총을 쏜 사람이 바로 강상원. 본래 의병 운동 출신이다. 권중현을 노리고 발포했으나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체포되면서 엉뚱한 사람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자수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기는 무슨 일을 하였을까? 실록에는 이렇게 나온다.

피고 이기는 나인영 등이 음모한 일을 알고 나인영의 청에 의하여 일이 성공한 뒤 자수할 글과 자신회(自新會)의 취지서를 지어주었으나 일이 필경 성공되지 못할 것이라고 하여 여러번 그만두라고 권고하였다고 하며,

이기는 이 일에 그다지 주도적인 입장도 아니었고 글을 써주는 일을 한 정도에 심지어 그만두라고 여러차례 권고한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이기는 감형이 되었다.

피고 이기는 같은 조항 같은 법조문에 처할만하나 자수장과 취지서를 지어준 것은 방조한 것이 범죄를 미리 준비하는데 관계가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여러 번 만류하였으니 용서할 것이 없지 않습니다. 그 정상을 참작하여 원래의 법조문에서 한 등급을 감하여 유배 7년에 처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배 10년형에 처할 것을 감형해서 7년형에 처한다는 이야기. 나철은 자수한 때문에 감형이 되어서 유배 10년형을 받았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일이 성공해도 나철은 자수할 생각이었고 이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유립은 그 모든 책임이 나철에게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 것이다.





덧글

  • 초록불 2009/09/02 10:01 #

    쓰레기 댓글 단 친구에게 - 내 블로그는 너희 유사역사학 신봉자의 선전장으로 사용할 수 없어.
  • LVP 2009/09/02 10:04 #

    톅샤뽕큐를 포함한 환빠는 그저 탁탁탁의 달인 'ㅅ'

    예전에 초록불님이 써주신 글 잘봤습니다. 예전에 호기심에서 환단고기 함 읽어보긴 했는데, 구라주제에 내용이 쓸데없이 복잡하고, 서로 아귀도 안맞아서 내다던졌지요..'ㅅ'

    그나마 다행인 건 돈주고 산 게 아니라, 미국 오기 전에 도서관에서 읽어봤다는 것 뿐이랄까요 'ㅅ';;;

    ※P.S 1 : 아니 딴 건 그나마 좀 이해가겠는데, 환빠가 일본 순사놈 코스질하는 건 뭔 심보인지..'ㅅ';;;;

    ※P.S 2 : 내 환빠새퀴들때문에 포스팅장사 망친 걸 생각하면, 총기면허를 따고 싶어집니다. 'ㅅ'^
  • 매식자붙이 2009/09/02 10:40 #

    아, 이유립은 6·25 이후에 남하해서 대종교에 가입, 대전시교당 전무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대종교가 완전히 전멸(...)한 이후라 세를 불리기 위해서 개나소나 받아들인 게 문제였지만.

    이때 무당, 前단군교인, 유사단군신앙단체들이 대종교의 간판을 걸고 국내 단군신앙의 막장화(...)를 야기했습죠.


    뭐 그것과는 별개로 태백교주는 대종교에 대한 음해로 일관한 분이죠.
  • 초록불 2009/09/02 10:52 #

    아, 그렇습니까? 본문에 넣어두어야 하겠네요.
  • 초록불 2009/09/02 10:56 #

    본문 수정했습니다. 소름이 쫙 끼치는군요. 이유립이 그 당시에 영향력이 얼마나 있었을지 측정이 되지 않기는 하지만...
  • 매식자붙이 2009/09/02 11:25 #

    애초에 나철 계열의 인물이 아니니까요.


    여담입니다만 대종교가 환단고기가 등장했을 때 자신들의 역사관과 큰 차이가 있음에도 싸고 돌면서 환단고기 밀면서 날조사학운동에 동참했던 건 역시 한때 이유립이 대종교의 지방시교사로 있었던 것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때도 태백교주란 건 모르고 대종교인으로 알고 있었...을지도.


    뭐 덕분에 대종교의 위대한 선인들은 외려 역사축소하고 우리 민족의 진정한 역사를 지켜온 전승자들을 모함한 모리배들이 되어버렸지만..

    완전히 몰락한 지금에 와서 이딴 얘기를 해봤자 이미 늦었죠. 자기들이 살무사새끼인지 모르고 싸고 돌아서 자초한 일인데.

    http://www.daejonggyo.or.kr/modules/board/bd_view.html?no=26&id=notice&p=1&or=bd_order&al=asc
  • 초록불 2009/09/02 11:30 #

    호, 그나마 정신이 돌아오긴 했나봅니다.
  • 매식자붙이 2009/09/02 11:52 #

    어거지로 비슷한 예를 들자면...

    朴皇軍이 해방 후 광복군지대에 편입되었으니 독립운동가

    ...라는 것 쯤이 되려나요.
  • 진성당거사 2009/09/02 18:10 #

    대전시교당 전무 노릇 했다는 얘기보다 더 무서운 전력도 들은 바 있습니다만..........;;

    여하튼 갈수록 저 책사풍후인가 하는 새끼는 미친 소리만 실컷 떠들고 다니는군요.
  • Allenait 2009/09/02 10:49 #

    ..한숨만 나옵니다
  • 슈타인호프 2009/09/02 10:59 #

    일단 환빠들은 내전(...)을 치러서 자신들의 이념부터 통일할 필요가 있습니다-_-
  • 초록불 2009/09/02 11:00 #

    현재 범민주 세력들보다도 "연대" 개념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라서...^^
  • 아야소피아 2009/09/02 11:43 #

    '사상누각', '자기 무덤 파기'... 환빠들에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은 없을 것입니다(..)
  • 세실 2009/09/02 13:57 #

    환빠에게 관심을 주시면 아니되옵니다.... 그나저나 정말 답이 없는 친구입니다...에휴...
  • 2009/09/02 21:2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09/02 22:07 #

    이기 선생이 1909년 돌아가셨고 이유립은 1907년생이니 이유립과 직접 대면하거나 무슨 도움을 요청하거나 하는 것은 좀 알 수 없는 이야긴데요. 이기 선생 집안으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 아닐까요?
  • 테일즈오브베스페리아 2009/09/02 22:51 #

    책사풍휴 쟤는 그냥 정신병자 아닐까요?
    허경영이랑 동급 혹은 그 이상같은데.....................................
  • 2009/09/03 01:1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李相勳 2009/09/22 01:59 #

  • 초록불 2009/09/22 06: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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