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그람시의 <대중문학론> *..문........화..*



대중 문학론 - 10점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박상진 옮김/책세상


그람시(1891-1937)는 계급 지배가 경제적, 물리적 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신념 체계를 받아들이고 지배 계급의 사회적, 문화적, 도덕적 가치를 공유하도록 피지배자들을 설득하는 데 더 의존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것이 유명한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의 핵심이다.

그람시가 볼 때 자본주의 국가에서 부르주아지는 다른 계급들에게 헤게모니를 행사한다. 그런데 부르주아지는 사회 전체를 지배할 때는 정치와 사법제도를 이용하는데 반해, 개인을 지배할 때는 헤게모니를 통해 사회의 전반적인 진보의 대표자로 부르주아지를 내세움으로써 동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을 사용한다. (해제 150쪽)

그람시는 수감되어 있으면서 대중소설들을 읽었다.

그건 도서관에 가서 서가에 아직 꽂히지 않은 책들이나, 어떤 정치적 도덕적 냄새 때문에 모두에게 개방되지 않은 책들을 살펴보는 것을 간수가 내게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17쪽)

그러면서 그는 대중소설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떠올렸다.

이런 문학은 왜 늘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많이 출판되는가? 이것은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는가? 어떤 열망에 부응하는가? 어떤 느낌과 관점이 이 조잡한 책들에 표현되어 있기에 이것들은 이렇게 사랑받는가? (17-18쪽)

그람시의 대중소설에는 지금에 와서는 대중소설에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 장르소설(물론 분리하지 않는 평론가들도 다수 있다)과 일찌감치 떨어져나간 "연재소설"이 포함되어 있다.

연재소설. 즉, 신문 연재소설인데 이것만 가지고 대중소설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없을 것이다. 신경숙의 <리심>, 김영하의 <퀴즈쇼> 등도 연재소설이었는데 이걸 대중소설이라고 부르면 그 팬들이 발끈할 거다. 하지만 20세기 초반의 조선문단에서도 연재소설은 대중소설이었다. 김동인은 이광수를 연재소설이나 쓴다고 까기도 했다. (그런 본인도 돈 떨어지자 연재소설을 쓴다.)

연재소설은 대중의 공상을 대체하는 (동시에 조장하는) 하나의 백일몽이다. (중략) 이 경우 대중의 공상은 (사회적) '열등감의 콤플렉스'에 따라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콤플렉스는 금지된 죄악을 저지를 사람들에 대한 형벌과 복수를 꿈꾸는 오랜 공상을 받쳐준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이러한 공상을 부추기고, 그래서 악의 감각을 달래고 누그러뜨리는 마취제를 마시게 하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75쪽)

이 대목은 꽤나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주류문학으로부터 쉴 새 없이 들어왔는데, 국내의 주류문학은 그 뿌리 중 하나가 "반공"에 있는 우파 문학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주류문학계의 카프시절부터 참여-순수 논쟁까지 즐비하다. 결국 내가 주류문학에서 들었다고 알고 있었던 것은 생각해보니 문단의 좌파들로부터 들은 셈인가? 아니면 주류문학이 좌파로부터 저것만 들고 와서 대중소설을 까는데 이용해먹고 있는 것일까? 시간 나면 주류문학의 논쟁도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어떤 이에게는 세계명작 중 하나인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가열차게 까였는데, 그람시의 독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대중소설의 현대적 유형은 범죄소설과 추리소설이며, 이런 쪽에서는 볼만한 것이 전혀 없다. 그래서 런던 류의 스티븐슨, 콘래드든 마크 오를랑, 말로의 현대 프랑스 류든, 넓은 의미에서 모험소설에서는 볼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96쪽) (문장은 번역이 이상하다고 판단하고 조금 수정했음)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스티븐슨)라든가 <인간의 조건>(말로)와 같은 작가도 대중소설가로 볼 것 없다는 평을 받고 있는 중. 아래 보면 <레 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 역시 대중소설가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람시는 대중소설을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나눴다. 분류가 대단히 정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 빅토르 위고 유형 - 이념적, 정치적 특징을 현저히 드러냄. 민주주의적 경향을 지님
(2) 감성적 유형 - 비정치적으로 보이나 감성적 민주주의라 정의할 수 있음
(3) 음모 유형 - 이념적으로 보수, 반동의 내용
(4) 역사소설 - 뒤마는 민주적인 경향이 있고, 테라유는 보수 반동이다.
(5) 추리소설(범죄소설) - 이중적 측면을 지닌다. (가보리오, 코난 도일, 모리스 르블랑 등) : 기계적 범죄소설과 예술적 범죄소설(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체스터튼)
(6) 신비소설 - 고딕소설(래드클리프)
(7) 지리공상과학소설 - 쥘 베른. (그람시는 웰스와 같은 작가는 대중소설작가로 보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지리공상과학소설이라니... 원문이 궁금하다!)

그람시의 '현대'에서 대표 대중소설인 범죄소설과 추리소설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문제는 이것이다. 범죄소설은 왜 인기를 누리는가? 그것은 비예술적인 문학이 왜 인기를 누리는가 하는 더 일반적인 문제의 특수한 양상인가? 범죄소설이 그렇게 인기를 누리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실질적이고 문화적인(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이유 때문이다. (58족)

이 부분의 번역도 좀 이상한데, "실질적이고 문화적인 이유"가 아니라 이렇게 번역해야 하는 것을 잘못 한 것 같다.

범죄소설이 그렇게 인기를 누리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실질적이고 문화적(정치적이고 도덕적)이기 때문이다.

그람시 당시 이탈리아 문학계는 해외문학에 점령당한 상태였던 모양이다. 그람시는 여러차례 왜 이탈리아 작가에 의한 대중문학은 없는지를 묻고 있다. 특히 백 년 전에 나온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같은 소설이 다시 연재되고 인기를 끄는 것에 대해서도 개탄하고 있다.

프라키아의 하소연은 <크리스티카 파시스타>의 하소연과 놀랄 만큼 비슷하다. 이른바 '예술적인' '국민' 문학은 이탈리아에서 대중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인가? 책을 읽지 않는 독자들의 잘못인가? 문학적 '가치'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드높이지 못하는 비평의 책임인가? 아니면 '이탈리아 현대소설'을 연재로 내보내는 대신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찍어내는 신문의 잘못인가? 다른 나라에서는 글을 읽는데 이탈리아 독자들은 왜 읽지 않는가? (37쪽)

그람시는 계속해서 "번역된 외국 서적들은 대단한 선풍을 일으키면서 읽히고 연구되고 알려"지는데 이탈리아 작품에는 그런 일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탈리아의] '교양 계급'이 지적인 활동에서 예외없이 대중-국민과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중-국민이 지적인 활동을 보여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또 가장 하급(연재 통속 소설 따위)부터 가장 고급스러운 단계까지 지적인 활동을 다양하게 펼치지 않아서도 아니다. (38-39쪽)

그람시의 진단은 매우 중요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이탈리아 토착적인 지적 요소가 대중-국민에게 선보이는 외국의 이질적인 문화보다 더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런 문제의식은 싹도 보이지 않는다. (39쪽)

이 포스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이 구절에 있었다. 이 말은 현대 한국문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더 의미심장한 것은 이탈리아 작가들이 특히 프랑스의 역사소설을 읽고 자란 이탈리아 대중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그들의 주제를 이탈리아 밖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쪽수 적는 걸 까먹었음)

이 점을 해제를 쓴 박상진은 이렇게 정리해 놓았다.

이탈리아 지식인이 대중문학을 일구지 못한 것은 우선 대중과의 접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대중 취향의 문학을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식인의 우선 과제는 그러한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작품을 쓰고 찾아내는 일이다. (중략) 그러기 위해서 지식인은 고립된 상황에서 뛰쳐나와 당대와 현실과의 결속을 되찾고 국민대중적 운동의 틀 내에서 문화적 통일체를 건설해야 한다. 이 통일체는 대중의 희망과 투쟁에 참여하는 지식인과 대중이 서로 언어와 사상을 교환하는 가운데 이뤄진다. (해제 140-141쪽)

그러나 많은 논의가 있었음에도 이탈리아 문학에는 그야말로 빵 터지는 놈이 나오지를 않았다. 그 이유는?

그러나 아무런 결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과거를 찬미하려는, 다시 말해 과거로 회귀하려는 태도로 빠진 것이 문제였다. (해제 141쪽)

그리고 이런 경향은 결국 파시즘과 결합하는 최악의 수순을 밟고 만다.

외국에서 '자신의' 문학을 찾는 이유는 거기서 이른바 국민 문학보다 더한 '자신의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중략) 모든 대중은 그 자체의 문학을 갖지만, 그 문학은 다른 대중에게서 올 수도 있다. 즉 한 대중은 다른 대중의 지적, 도덕적 헤게모니에 종속될 수 있다. (130쪽)

이런 결과 그람시의 분노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경우에 문학가들이 어떠한 노력으로도 정치적 중심부를 돕지 않으며, 그들의 빈 두뇌는 국민주의적 찬미에 광분하느라 그들의 헤게모니가 어디에 의존하는지, 어디서 억압받는지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150쪽)

대중문학의 미적, 도덕적 가치는 대중적 헤게모니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데에서 나온다. 그람시는 이탈리아 지식인이 프랑스에서와 달리 대중문학을 일구지도, 발견하지도 못한 것은 그들이 지배 계급에 속해 있기 때문이었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거꾸로 대중문학을 주목하는 것은 지식인이 대중에게 다가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그람시가 말하는 혁명일 것이다. (해제 147쪽)

그람시는 대중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학을 창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새로운 문학은 대중과 지식인이 소통하는 문학이다.

즁요한 것은 새로운 문학이 있는 그대로의 대중 문화의 토양에 해당 문화의 심미안과 경향, 그리고 도덕적, 지적 세계 - 그것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든, 관습적인 것이든 상관없이 - 와 함께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이다. (101쪽)

그람시의 시대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났다. 그람시가 대중소설이라 본 것들 중 상당수는 고전의 반열에 들었고, 그람시의 뭉뚱그려진 분류와는 달리 장르소설들은 더 이상 대중소설이라 부를 수 없는 위치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가 가졌던 문학과 대중의 관계에 대한 고민은 오늘 대한민국에서는 아직도 유효하다.

특히 글 쓰는 사람으로서 다음과 같은 말을 새겨놓아야 할 것 같다.

문학이 대중에서 멀어질 때 문학은 특권 계급의 현상이 된다. (67쪽)




* 이 책의 번역질은 그다지 양호하지 않다. 원문을 보지 못했지만 부정확하게 번역했다고 느끼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핑백

  • leopord의 무한회귀 : 그람시 팜플렛 2010-11-13 17:39:04 #

    ... 스팅했는데, 주로 지금 한국의 장르문학(및 문학 일반) 상황을 염두에 둔 듯하다. 그람시의 문제의식과 맥을 같이 하려는 시도가닌가 싶다(초록불, &lt;안토니오 그람시의 &lt;대중문학론&gt;&gt;). 이탈리아 대중이 즐길만한 이탈리아 대중 소설이 없다는 비판은 언뜻 문학비평가의 푸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 more

덧글

  • rumic71 2009/09/05 14:52 #

    그러나 한국엔 '문학을 향유' 할만한 특권 계급이 몇이나 될 지 의문스럽습니다. 일부를 제외하면 그저 돈만 많을 뿐 언행은...
  • Allenait 2009/09/05 15:02 #

    ..뭐 이미 어느 정도는 그렇게 나눠져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사유 2009/09/05 15:08 #

    읽어보려고 했는데 마지막순간에 삑하는군요.
    전 번역이 조금만 삑나서 오독하면 울화가 터지는성격이라서리.
  • 초록불 2009/09/05 15:16 #

    느낌이라서 좀 그렇긴 한데, 위에 붉은색으로 고친 부분 같은 경우를 보면 그대로 읽으면 도무지 의미가 잡히질 않거든요. 따로 원본이 있는 책도 아니고 일종의 편역이라서 영역본을 찾아볼 수도 없고 해서 억지로 읽었습니다만 좀 아쉽네요.
  • 신독 2009/09/05 15:47 #

    붉게 고치신 게 의미상 맞는 건 같은데요? ^^
    저 책은 안 봐서 모르겠지만... 그람시는 결국 대중문학을 유기적 지식인의 무기 중 하나로 생각했나 보군요.
    덕분에 좋은 글 봤습니다. 오랫만에 그람시를 생각해 보게 되네요...
  • 초록불 2009/09/05 15:56 #

    네, 본문처럼 되어 있으면 저 문장 다음에 그 이유가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게 없습니다. 그건 저 말이 이유인 거죠. 포스팅에는 없지만 뒷문장 읽어보고 잘못 번역했다고 판단했습니다.
  • 카방글 2009/09/05 16:39 #

    책세상 문고. 한번 구입해봐야겠네요. 그러고보니 예전에 리포트 때문에 자료 조사하던 중 김동인이 한국 최초의 SF를 쓴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죠.
  • 초록불 2009/09/05 22:35 #

    김동인 작품 중에 SF느낌을 주는 것들이 있긴 하지만 그보다 앞선 사람이 없나요? 어떤 작품을 최초의 SF로 잡는지 궁금하군요.
  • 카방글 2009/09/05 22:39 #

    다시 찾아보니 창작으로 최초라는 문구가 있네요. 작품은 k박사의 연구라고 합니다^^;
  • 초록불 2009/09/05 22:43 #

    역시 그 작품이군요.

    똥으로 식량을 만든 박사가 자기 똥을 먹은 개고기는 못 먹는 아이러니를 그린 작품이죠.
  • 말코비치 2009/09/05 17:28 #

    번역도 번역이지만 제가 알기로 애초에 '대중문학론을 써야겠다'라고 쓴게 아니라 이런저런 글들에서 추렸기 때문이 아닐지요.

    그람시의 정치사상 좋아하시는 분은 위 책보다는 옥중수고 1권이나 옥중수고 이전이라는 책을 보면 좋습니다.
  • 초록불 2009/09/05 22:35 #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옥중수고는...

    대학 다니던 때도 못 읽었는데 무리입니다...^^
  • amitys 2009/09/05 22:32 #

    한국에 한정되는 현상은 아닐 겁니다.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팩션 열풍만 봐도
    그런 느낌이 들던데요.
    팩션도 엄연한 의미에서,
    지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중과 지식인이 몹시 떨어져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 초록불 2009/09/05 22:36 #

    그 부분은 좀 생각이 다릅니다만 댓글로 이야기하기는 어렵겠네요...^^
  • amitys 2009/09/05 22:38 #

    차후에 기회가 생기면 좋겠군요^^;
  • draco21 2009/09/06 12:18 #

    .....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려운 이야기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그람시 선생이군요. ToT 두껍지 않다면 각오하고 사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 초록불 2009/09/06 12:20 #

    이 책의 어려움은...

    예시되는 작가의 태반이 처음 듣는 작가라는 점입니다. OTL...
  • 메로니 2009/09/07 01:40 #

    "범죄소설이 그렇게 인기를 누리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실질적이고 문화적인(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이유 때문이다."의 번역.
    원문을 보지 않았고 이태리어를 읽지도 못하지만, 가까운 언어권인 불어에 "...한 이유(까닭, 원인)로"란 표현이 있는 걸 보면 맞는 번역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군다나, '실질적이고 문화적인(이다)'라는 술어가 주어(범죄소설)에 붙을 때와 '이유'에 붙을 때 문장의 의미가 달라지지요.
    "범죄소설이 그렇게 인기를 누리는 데에는 두말할 필요 없이 실질적이고 문화적인(...) 이유가 있다" 정도가 원문의 의미가 아닐까 추정해 봅니다.
  • 초록불 2009/09/07 08:26 #

    그러한 이유가 있다...라고 한다면 그 다음 문장에서 그 이유가 뭔지 설명해야 하겠지요.
  • Bloodstone 2009/09/08 15:59 #

    이 책에 대해서는 초록불님 평이 처음입니다만, '문학평론가들'에 대해서 제가 불편한 느낌을 갖는 이유가 함축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에휴);; '즐기기 위한' 글들에서, 혹은 '정치적이지 않은' 사유를 담은 글들에서 자신의 소위 고급스런 취향을 드러내면서 그런 글들이 고급스럽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걸 보면, 솔직히 화가 나더라구요.

    즐거움에 '고급의 즐거움'이 따로 있는 것일까요? 저는 문학엔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 초록불 2009/09/08 16:10 #

    음... 몇 번 댓글을 쓰다가 지웠습니다. 이게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람시는 대중소설을 배격하자는 게 아니라, 대중과 일치하는, 그러면서 단지 퇴행적인 말초적 재미에 빠지지 않는 새로운 문학을 일궈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람시가 위 글들을 쓴 1930년대로부터 근 80년. 거의 3세대가 지났습니다. 저는 그람시가 바랐던 대중소설이, 장르소설에서는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말씀하신 것과 같은 시각이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점이 더 강하다는 점이 문제긴 하죠.

    하지만 극복이 될 겁니다. 그렇게 노력해야죠. 저는 그 노력의 방향을 살피는데, 그람시의 견해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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