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의 띠 *..만........상..*



1.
옛날 옛날 하이텔 한사동 시절에 중학생 하나가 있었다. 지금은 그 친구도 십여년이 지났으니 얼추 삼십대는 되었겠지. 당시에 유사역사학에, 심취도 아니고 겉멋이 들어서 머리에 든 건 하나도 없으면서 바락바락 악 쓰는 데만 도가 터 있었다. 기초 상식도 없고, 남의 말을 들으려는 자세도 없고. 물론 논리도 없었고. 아마 유사역사학 신봉자 중 가장 상대하기 힘든 인간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아이에게는 아무튼 측은지심이 더 크게 작동해서 끝까지 사람 되게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때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십년 후에 네 글을 보면 그때 부끄러워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2.
예전에 썼던 글들을 찾아내서 지금과 다른 "모순"을 보인다고 공격하는 일을 보곤 한다. 정권이 바뀌고 나니까 더 자주 그런 일들을 볼 수 있다. 사실 민주당 정권 시절에도, 그들이 야당 시절에 했던 말과 여당이 된 뒤에 했던 말을 들어 종종 공격이 있었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정권이 좀 더 자주 바뀌어보아야 하는 것 같다. 자꾸 바뀌면 점점 헛소리 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그래서 말이 많으면 실수가 잦다고 하는 거였던가. 과연 침묵이 금인지도 모른다. 말을 하지 않으면 책 잡힐 일도 없으니까.

3.
시트콤이나 연애 영화 같은 데서, 자주 나오는 설정 중 하나가 길거리에서 막 돼먹은 짓을 하다가 집에 왔는데, 그때 그 사람이 집에 와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매우 중요한 어르신으로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

4.
이제 그런 일을 인터넷에서 겪을 확률이 매우 높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인터넷 이용인구의 연령대가 매우 달랐다. 그러니까 1990년대 후반에서 2천년대 초반에는 내 친구들 중에는 이메일을 사용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이메일 정도는 사용하고, 네이버로 검색도 하고, 뉴스도 보는 수준에 도달한 친구들이 많다. 블로그와 같은 일을 하는 친구들도 이제는 제법 있을 거다. 이렇게 추측으로 말하는 건, 그게 그들의 사적인 영역이라서 나로서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5.
따라서 어느날 "포스팅 쩌네. 개드립도 정도껏 해야지. 이런 X같은 새끼를 봤나"라고 댓글을 달았는데, 그날 저녁 밥상에서 아버지가 "어떤 X새끼가 쌍욕을 해가지고... 아우, 열터져!"라고 말하는 상황에 놓이지 말라는 법이 없다.

엄마에게 블로그를 들켰어요...가 아니라 딸래미에게 욕 리플 받았어요...가 화제가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6.
집 밖에서는 "존나, 씨팔"을 입에 달고 다니는 아이들도 부모 앞에서는 그런 말을 삼가는 법인데, 인터넷은 이미 생활의 영역, 안과 밖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욕을 신나게 할 공간은 이렇게 공개된 블로그가 아니라 뜻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사적인 공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안과 밖이 똑같아서 부모 앞에서도 똑같이 욕질하면서 산다, 라고 한다면... 글쎄 아무튼 그것이 자랑으로 보이지는 않겠다.

7.
자신을 잘 감추는 것은 어쩌면 그래서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익명게시판에서 실제 정체가 탄로나면 조요경에 비친 요괴처럼 꼬리를 말고 어쩔 줄 모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여러차례, 선을 넘으면 정체가 드러난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던가? 무엇이든 과한 것은 좋을 것이 없다.

덧글

  • 아브공군 2009/09/06 19:51 #

    맞는 것 같습니다.
  • 초록불 2009/09/06 20:15 #

    고맙습니다.
  • 반쪽사서-엔세스 2009/09/06 19:59 #

    언제나 한결 같은 태도가 중요하지요.
    그렇다고 한결 같은 태도로 거짓부렁만 늘어놓고 악행을 일삼으면 곤란하지만 말이지요
  • 초록불 2009/09/06 20:13 #

    공자가 종심소욕이나 불유구...라고 말한 경지에 도달한게 나이 70.

    사람이 한결 같은 태도를 지니기는 참으로 어렵다 하겠습니다. 그저 노력하는 수밖에요.
  • 에로거북이 2009/09/06 20:08 #



    하이텔 !! 중학생 !!! 유사역사학 !!!!!

    뭔가 뜨끔 합니다. (..)

    p.s. 사실 전 하이텔 쓴 적 없고 pc-serve(천리안) 만 했었습니다. ^^;;
  • 초록불 2009/09/06 20:15 #

    ^^
  • 개발부장 2009/09/07 08:20 #

    가만... 10년 전쯤에 누구하고 대판 싸운 적이 있었는데...(먼산드립)
  • 을파소 2009/09/06 20:28 #

    군대를 간 A씨는 어느 고참과 근무를 서면서 얘기를 하다가 그들이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뜻밖의 사실이 밝혀집니다.

    고참은 A씨가 꽤 심한 악플을 단 상대였다는 점이었죠.

    ...이런 일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 초록불 2009/09/06 21:53 #

    그런 일은 충분히 가능하겠죠.
  • 쓴귤 2009/09/06 20:42 #

    초록불님. 저 왠지 그 중학생 누구인지 알 것 같아요. ;;;; 왠지 아련히 떠오르는 기억이. 으하하.

    뭐, 저 또한 그때 고등학생…혹은 중학생 정도였는데 유사역사학에 낚여 있었죠. 초록불님을 비롯해 한사동을 드나들면서 많이 배우고, 깨달은 바 있었습니다. 다행이에요. 그때 한사동 고대사 게시판에 글 안 써서(...). 그때 마구 써제꼈더라면 지금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
  • 초록불 2009/09/06 21:53 #

    뭐, 글이라는 게 원래 한 달 뒤에만 봐도 부끄러울 때가 있죠.
  • 2009/09/06 20:55 #

    나우누리만 해서 ㅎㅎ; 아 그때 참 즐거웠는데 음악 하나 받는데 1시간 넘게 걸리곤 했지만......;;


    언젠가 뒤돌아보며 이날을 아름다웠다 기억하겠죠? ^^
  • 초록불 2009/09/06 21:53 #

    ^^
  • 루드라 2009/09/06 21:36 #

    하이텔 한사동만이 아니고 다른 동호외에서까지 유사사학 전파를 위해 날뛰던 초딩이 한 명 기억나는군요. 아마 같은 초록불이 말씀하신 중딩과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이 "손"이라면 같은 사람 맞겠네요. 당시 하이텔에서 친하게 지내던 분과 이름이 좀 헷갈려서 아직도 이름이 기억납니다.
  • 초록불 2009/09/06 21:52 #

    "손"은 당시 고등학생이었죠. 중학생은 다른 친구입니다.
  • 루드라 2009/09/07 16:48 #

    처음 활동할 땐 초딩 맞습니다. 제가 가입했던 다른 동호회에서도 환단교 전도를 해댈때 초딩이라고 여러말 많이 나왔던 기억이 있어서 확실히 기억합니다. ^^;
  • 초록불 2009/09/07 16:52 #

    아, 그랬나요. 하지만 이야기했던 친구는 다른 아이였습니다. 뭐 둘 다 선명한 흔적을 남기긴 했죠. 서로 사이도 좋은 편이었죠.
  • 코토네 2009/09/06 22:10 #

    하이텔 한사동이라... 그 중학생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 초록불 2009/09/06 23:41 #

    잘 살고 있겠죠...
  • 보리밭 2009/09/06 22:52 #

    저도 옛날 옛날 하이텔은 중학교 즈음부터 사용했었는데, 그 기억이 아련히 떠오르는군요. 한단고기라는 책을 고등학교 때 읽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는데, 내용은 거의 기억이 안 나고, 열변을 토하던 기억이 나네요. 그 친구들 지금 다 어디 있는 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생각이 어떤지 궁금도 하군요. 근데 생각해보면 다들 바쁘게 살아서 그런 책을 읽었는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구요. 하여튼 글 늘 잘 읽고 갑니다.
  • 초록불 2009/09/06 23:41 #

    고맙습니다.
  • SAGA 2009/09/06 22:59 #

    아아, 유사역사학이란 단어를 들으니 부끄러웠던 역사관을 가진 중,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르네요. ㅠ.ㅠ 그땐 정말 우리나라 역사가 날조된 거라고 착각을 하고 다녔었죠. 지금 생각하면 심히 부끄럽습니다. ㅠ.ㅠ

    그래도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다란 생각도 합니다. ^^;;;
  • 초록불 2009/09/06 23:42 #

    저도 뭐 여러가지로 잘못된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 Allenait 2009/09/06 23:05 #

    하이텔 하니까 잠시 예전 생각이 나긴 하는데.. 전 그때 게임만 찾아 다니느라 동호회 활동은 거의 안해서.. 전혀 모르던 이야기였습니다. 아무튼 간에.. 저도 그때 생각하면 참 여러모로 기분이 묘하더군요.


  • 초록불 2009/09/06 23:42 #

    ^^
  • 무한의끝을넘어 2009/09/06 23:06 #

    저도 유사역사 쪽에 부끄러운 과거가 있죠;;;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을 해 보면... '전향(?)' 전에도 약간의 '의심'을 계속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어느 순간 확 눈이 뜨이면서 '전향(^^)'하게 되지 않았나...

    (전향의 계기가 된 건 난하요수설에 대한 근거를 찾다, 챠오양 관련 조사 중에 아무리 해도 후연의 '용성'이 챠오양이 아니란 걸 증명할 수 없었을 때였습니다. ... 그렇게 되면 도저히 난하를 요수로 비정할 수 없게 되죠;;;)
  • 초록불 2009/09/06 23:42 #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계속 빠져있지 못하는 법이죠.
  • 고어핀드 2009/09/06 23:15 #

    http://ringblog.net/1676#comment14177

    다른 곳에도 비슷한 의견을 남겼습니다만... 어차피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한, 네티켓을 최대한 지키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초록불 2009/09/06 23:41 #

    네, 이제 안팎의 구분이 없는 시대에 돌입한 것 같습니다.
  • 2009/09/06 23:2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09/06 23:42 #

    청춘이라 그렇죠...^^
  • raw 2009/09/07 02:29 #

    조용히 있으면 욕이라도 덜먹겠지만 대신에 뭘 잘못알고있는지 모르고 지나칠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요새는 그냥 일단 순화시켜서 말하고 봅니다.
    물론 책잡혀서 욕을 먹는다면 별수없겠지만 말이죠;
  • catnip 2009/09/07 08:17 #

    전 나이가 좀 먹은 다음에 통신을 시작해서 다행하게도 그런 실수는 안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넷츠고에서 네이트로 게시물 이전 신청은 안한건 두고두고 잘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과오가 웹상에서 (아마도) 싹 사라졌을거라는 걸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수...
    다만 추코(추천코멘트, 현재의 덧글)는 다른 사람 게시물에 붙어서 이전이 되었는데 볼때마다 손발이 오골거리는...ㅠ_ㅠ
  • 배둘레햄 2009/09/07 22:40 #


    늦게 배운 XX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는 말도 있죠...먼 바다...


    아...늦게 배운...XX질에 언제 정체가 탄로날지 몰라 둑흔둑흔 거리는 1인...OTL
  • highseek 2009/09/08 21:24 #

    뭐 하긴 저도 살짝 빠질 뻔 했었지요. 그게 아마 당시 교회를 다니던 중학교 시절이었을 겁니다. 에덴과 홍수신화와 아프리카,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들을 짜맞추려 들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마치 지금 누구처럼 말이죠-_-;;

    프로이드나 융을 만나고 신화를 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꿔버리지 않았다면 아직도 허우적대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고보니 피씨통신.. 전 하이텔은 아니고 나우누리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이제 참 오래 전 이야기군요;;
  • 초록불 2009/09/08 22:00 #

    의외로 교회가 그런 통로가 잘 되는군요. 당시 그 중학생도 교회 신자였지요.
  • highseek 2009/09/08 22:05 #

    아무래도 종교인들이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데다가, 같은 교인이나 목회자가 하는 말이라면 그냥 믿고 보는 경우가 많아서, 엉뚱한 이야기가 꽤나 많이 돕니다.

    특히 성경의 신화적 사건들을 꼭 역사적 사실로 끌어들이려는 식의 시도가 많이 일어나죠. 그런 일화가 왜 탄생했는지, 거기에 어떤 정신적 의미가 있는지 등의, 본질을 못보고 믿고싶은 대로 믿는 경우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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