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에 집안 모임이 있었는데, 우연히 문무왕비 발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니까 그게 김춘추잖아."
"네?"
"김춘추가 일본 왜구 못오게 한다고 대왕암에서 용 된 사람이잖아."
"네?"
의외로 "대왕암에서 용 된 사람" = 김춘추 = 태종무열왕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더라는 이야기.
"그거 문무왕인데요."
"그래, 문무왕. 김춘추."
"네?"
그리고 문무왕(법민)과 김춘추(태종무열왕)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더라.
2.
김춘추는 본래 왕위 계승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 김춘추의 아버지가 김용춘... 이건 누군지 모른다 치고...
그 할아버지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진지...하지 못했던 진지왕이다. (그냥 말장난입니다.. 죄송..)
호색을 일삼다 왕위에서 쫓겨나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러고도 속세에 미련이 남아 혼령의 몸으로 과부를 찾아간다.
이 과부는 유부녀 시절에 미색으로 이름이 높아서 진지왕이 콜 한 적이 있는데, 유부녀라서 모실 수 없다고 버텼다.
다윗은 바새바의 남편을 전장에 보내 죽여버렸지만, 진지왕은 느긋하게 그 남편이 자연사하기를 기다렸는데, 아뿔싸 본인이 먼저 죽어버렸다.
그러나 그 뒤 남편도 죽자(설마 혼령의 힘으로 죽인 건...) 진지왕은 귀신이 되어 유부녀와 동침했다. 그리고 아이를 하나 얻었는데, 귀신의 능력을 타고 태어나 도깨비와 여우를 부릴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 그 이름을 비형랑이라 한다.
이런 재밌는 캐릭터가 선덕여왕에는 안 나오나?
3.
아무튼 김춘추는 신라의 적통 가문이다. 문제는 할아버지가 왕위에서 쫓겨난 인물이라는 것. 그 뒤를 이은 왕이 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이다.
진지왕과 진평왕은 숙질간이다. 이들은 모두 진흥왕의 후손인데, 진흥왕의 둘째가 진지왕. 장남인 동륜태자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었다. 따라서 진지왕의 폐위는 사실은 왕실 정통으로 왕위에 오르지 못한 한을 품었던 진평의 쿠데타일 가능성이 높겠다. (이것은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쿠데타일지도 모른다. 진지왕이 죽은 것 말고는 그 아들도 다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언제 따로 포스팅을...)
문제는 이 동륜태자 계열로는 남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덕여왕에게 남편도 있었고, 족보상으로 보면 후손도 있지만 이들은 왕실 계승 서열에는 끼지 못했다.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상식 - 선덕여왕 [클릭])
이종욱 교수는 법흥왕 때 성골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데, 성골은 왕을 중심으로 직계에게 부여되는 신분이다. 이에 따르면 진지왕의 아들인 용춘은 성골이었지만, 용춘은 왕이 되지 못해서 그 아들 김춘추는 성골이 아니다.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상식 2 - 성골과 진골 [클릭])
4.
사도세자가 죽은 뒤 그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 피바람이 불 것이라 생각해서 정조의 왕위 계승에 반대가 심했다. 김춘추의 경우도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았으리라. 그렇지만 김춘추는 이미 왕실에 대한 충성을 보인 상태였다. 더구나 김춘추의 어머니는 선덕여왕과 자매간인 천명부인. 그는 성골왕가의 사위로서도 왕위 계승 서열을 찜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진덕여왕이 죽은 후 사람들이 알천에게 섭정을 맡기고자 했으나 알천이 늙음과 공이 없음을 이유로 사양했다고 나온다.
왕위 계승 서열에 있어서 김춘추보다 앞선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선대의 원한이 여기서 풀릴까 걱정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왕위 계승 서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섭정"을 꾀했을 리가 없다.
5.
여기서 사료는 없지만 소설가의 상상을 발휘해보면, 당시 왕위 계승에 대해서 이런 움직임이 있었을 수도 있다.
선덕여왕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움직임 - 아무튼 가장 왕위에 가까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섭정이라 함은 바로 이 점을 가리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선덕여왕은 비담의 난 중에 죽었다. 암살 당했을 지도 모른다. 아직 어린 아들이 있었을 수도 있다. 진덕여왕은 왕위에 8년 밖에 있지 않았다.
비담은 진평왕의 아우 백반, 국반 중 하나의 자식이 아니었을까?(진덕여왕은 국반의 딸) 그가 여왕의 통치에 반기를 든 것은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 이후, 그의 가계에 대한 기록이 모두 삭제된 것은 아닐까? 비담 반란에 연좌되어 죽은 이가 서른 명이 넘는다. 이로써 김춘추의 왕위 계승에 걸림돌이 될 왕족은 다 죽었던 게 아닐까?
김춘추보다 왕위에 가까운 인물이 하나 더 있다. 만일 생존해 있었다면... 바로 진지왕의 사갓집 아이인 "비형"이다. 비록 서자기는 하지만 그가 진지왕의 혈통임을 확실히 증명할 수 있었다면, 그도 만만찮은 적수였을 것이다. 그가 귀신을 부리고 산다는 이야기는 흥선대원군처럼 진면목을 가리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지만 하룻밤만에 다리를 놓는 등, 동원할 수 있는 인력과 재력이 상당했다는 이야기로 풀 수도 있다.
또는 선덕이나 진덕의 남편(진덕여왕에게 남편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음)이 생존해 있었다면 어떨까? 이들도 김춘추나 마찬가지로 왕가의 사위로서 왕위를 노릴 수 있었을 것이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을 보면 알천의 섭정 야망을 분쇄한 것은 김유신인 듯 하다. 김유신은 알천과 상의하여 김춘추를 왕위에 올렸다고 한다.
6.
사실 당시 신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신라인의 입장에서 보면 당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는 것 말고는 나라가 살아날 방법이 안 보였을 수 있다. 김춘추는 왕이 되자 바로 딸을 김유신에게 보내 그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김춘추의 아들 법민은 이때 30대. 그는 백제 정벌군을 총지휘했고, 왕이 된 뒤 고구려 정벌에도 나섰으며, 당군과의 결전도 망설이지 않았다. 삼국통일의 실질적인 주역은 바로 이 사람이다.
그리고 대왕암에서 해외의 적을 무찌르겠다는 일념을 불사른 인물도 바로 이 사람.
태종무열왕(김춘추)의 아들 문무왕(법민). 이 부자지간을 혼동하지 말자.
얼마 전에 집안 모임이 있었는데, 우연히 문무왕비 발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니까 그게 김춘추잖아."
"네?"
"김춘추가 일본 왜구 못오게 한다고 대왕암에서 용 된 사람이잖아."
"네?"
의외로 "대왕암에서 용 된 사람" = 김춘추 = 태종무열왕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더라는 이야기.
"그거 문무왕인데요."
"그래, 문무왕. 김춘추."
"네?"
그리고 문무왕(법민)과 김춘추(태종무열왕)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더라.
2.
김춘추는 본래 왕위 계승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 김춘추의 아버지가 김용춘... 이건 누군지 모른다 치고...
그 할아버지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진지...하지 못했던 진지왕이다. (그냥 말장난입니다.. 죄송..)
호색을 일삼다 왕위에서 쫓겨나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러고도 속세에 미련이 남아 혼령의 몸으로 과부를 찾아간다.
이 과부는 유부녀 시절에 미색으로 이름이 높아서 진지왕이 콜 한 적이 있는데, 유부녀라서 모실 수 없다고 버텼다.
다윗은 바새바의 남편을 전장에 보내 죽여버렸지만, 진지왕은 느긋하게 그 남편이 자연사하기를 기다렸는데, 아뿔싸 본인이 먼저 죽어버렸다.
그러나 그 뒤 남편도 죽자(설마 혼령의 힘으로 죽인 건...) 진지왕은 귀신이 되어 유부녀와 동침했다. 그리고 아이를 하나 얻었는데, 귀신의 능력을 타고 태어나 도깨비와 여우를 부릴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 그 이름을 비형랑이라 한다.
이런 재밌는 캐릭터가 선덕여왕에는 안 나오나?
3.
아무튼 김춘추는 신라의 적통 가문이다. 문제는 할아버지가 왕위에서 쫓겨난 인물이라는 것. 그 뒤를 이은 왕이 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이다.
진지왕과 진평왕은 숙질간이다. 이들은 모두 진흥왕의 후손인데, 진흥왕의 둘째가 진지왕. 장남인 동륜태자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었다. 따라서 진지왕의 폐위는 사실은 왕실 정통으로 왕위에 오르지 못한 한을 품었던 진평의 쿠데타일 가능성이 높겠다. (이것은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쿠데타일지도 모른다. 진지왕이 죽은 것 말고는 그 아들도 다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언제 따로 포스팅을...)
문제는 이 동륜태자 계열로는 남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덕여왕에게 남편도 있었고, 족보상으로 보면 후손도 있지만 이들은 왕실 계승 서열에는 끼지 못했다.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상식 - 선덕여왕 [클릭])
이종욱 교수는 법흥왕 때 성골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데, 성골은 왕을 중심으로 직계에게 부여되는 신분이다. 이에 따르면 진지왕의 아들인 용춘은 성골이었지만, 용춘은 왕이 되지 못해서 그 아들 김춘추는 성골이 아니다.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상식 2 - 성골과 진골 [클릭])
4.
사도세자가 죽은 뒤 그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 피바람이 불 것이라 생각해서 정조의 왕위 계승에 반대가 심했다. 김춘추의 경우도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았으리라. 그렇지만 김춘추는 이미 왕실에 대한 충성을 보인 상태였다. 더구나 김춘추의 어머니는 선덕여왕과 자매간인 천명부인. 그는 성골왕가의 사위로서도 왕위 계승 서열을 찜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진덕여왕이 죽은 후 사람들이 알천에게 섭정을 맡기고자 했으나 알천이 늙음과 공이 없음을 이유로 사양했다고 나온다.
왕위 계승 서열에 있어서 김춘추보다 앞선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선대의 원한이 여기서 풀릴까 걱정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왕위 계승 서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섭정"을 꾀했을 리가 없다.
5.
여기서 사료는 없지만 소설가의 상상을 발휘해보면, 당시 왕위 계승에 대해서 이런 움직임이 있었을 수도 있다.
선덕여왕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움직임 - 아무튼 가장 왕위에 가까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섭정이라 함은 바로 이 점을 가리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선덕여왕은 비담의 난 중에 죽었다. 암살 당했을 지도 모른다. 아직 어린 아들이 있었을 수도 있다. 진덕여왕은 왕위에 8년 밖에 있지 않았다.
비담은 진평왕의 아우 백반, 국반 중 하나의 자식이 아니었을까?(진덕여왕은 국반의 딸) 그가 여왕의 통치에 반기를 든 것은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 이후, 그의 가계에 대한 기록이 모두 삭제된 것은 아닐까? 비담 반란에 연좌되어 죽은 이가 서른 명이 넘는다. 이로써 김춘추의 왕위 계승에 걸림돌이 될 왕족은 다 죽었던 게 아닐까?
김춘추보다 왕위에 가까운 인물이 하나 더 있다. 만일 생존해 있었다면... 바로 진지왕의 사갓집 아이인 "비형"이다. 비록 서자기는 하지만 그가 진지왕의 혈통임을 확실히 증명할 수 있었다면, 그도 만만찮은 적수였을 것이다. 그가 귀신을 부리고 산다는 이야기는 흥선대원군처럼 진면목을 가리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지만 하룻밤만에 다리를 놓는 등, 동원할 수 있는 인력과 재력이 상당했다는 이야기로 풀 수도 있다.
또는 선덕이나 진덕의 남편(진덕여왕에게 남편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음)이 생존해 있었다면 어떨까? 이들도 김춘추나 마찬가지로 왕가의 사위로서 왕위를 노릴 수 있었을 것이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을 보면 알천의 섭정 야망을 분쇄한 것은 김유신인 듯 하다. 김유신은 알천과 상의하여 김춘추를 왕위에 올렸다고 한다.
6.
사실 당시 신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신라인의 입장에서 보면 당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는 것 말고는 나라가 살아날 방법이 안 보였을 수 있다. 김춘추는 왕이 되자 바로 딸을 김유신에게 보내 그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김춘추의 아들 법민은 이때 30대. 그는 백제 정벌군을 총지휘했고, 왕이 된 뒤 고구려 정벌에도 나섰으며, 당군과의 결전도 망설이지 않았다. 삼국통일의 실질적인 주역은 바로 이 사람이다.
그리고 대왕암에서 해외의 적을 무찌르겠다는 일념을 불사른 인물도 바로 이 사람.
태종무열왕(김춘추)의 아들 문무왕(법민). 이 부자지간을 혼동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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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역사 못해서 죄송해요 초록불 님... ㅠㅠ
수정하겠습니다.
2009/09/16 11:16 #
비공개 덧글입니다.왕실입니다. 수정했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마립간 4년(A.D.53)조를 보면, 신하들이 신라국왕이라는 칭호를 올린다고 나와있다더군요. 그래서 지증마립간부터 왕이란 칭호를 쓴 걸로 알려져 있고요.
또 어떻게 찾다보니...
법흥왕 때인 536년에 '건원'이라는 연호를 반포하면서 황제국을 칭했다라는 얘기도 있네요. 진흥왕 재위 12년에 다시 연호를 '개국'으로 고치고, 그 이후에 '대창'과 '홍제'로 연달아서 고쳤다고 하더라능.. 진평왕이 또 '건복'으로, 선덕왕이 '인평'으로, 진덕왕이 '태화'로 연호를 고쳤으나...
그 이후에 당나라의 '영휘'란 연호를 받아서 쓰긔 시작하므로서 다시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되었다...라고 하더라능...
그러므로 법흥제~선덕제가 맞다는 얘기를 들었다능...ㅎㅎ
뭐, 고려도 초기엔 황제국이었으니...ㅎㅎ;;
안에서는 연호도 쓰고(연호를 쓴다는 것은 독자적인 달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帝를 칭하기도 하는데, 외부적으로는 王에 그치는 것이죠. 이 경우 법흥제...니 하는 건 근거없는 말이고, 그냥 법흥왕이 맞습니다.
삼국유사에 보아도 신라왕들을 帝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위에 나온 진지왕의 경우도 성제聖帝라고 칭하거든요.
하지만 이건 대통령을 각하, 라고 부른 것과 비슷한... 그냥 호칭이죠. 그리고 이 시기만 해도 이런 호칭과 제도가 완전히 정립된 상태가 아닙니다. 따져보면 당태종도 칸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하고...
저는 지금 MBC에서 하는 선덕여왕에서.. 자꾸 황제란 얘기가 나와서 까려고 자료 찾다가 연호 얘기가 나오는 걸 보고 '어 정말 황제네?' 했다능...ㅎㅎㅎ
역시 역사 전공하신 분은 다르다능...ㅎㅎㅎ
근데, 고려가 초기에는 황제국이었다..라는 건 역사스페셜에서 다뤄졌던 걸로 기억하는데... 잘 기억나지 않아서요...(...)
고려같은 경우에는 조공을 받은 기록도 있고, 또 뭐지... 궁궐의 문 개수가 황제국의 형태였다...는 얘기도 기억이 얼핏 나는 것 같다능...ㅎㅎ
고려 역시 그냥 외왕내제의 형태였던 건가요?
고려에서 내황외왕제 소리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발해의 경우도 그랬던 것 같고. 발해 비석에는 황후라는 말도 나오죠.
그나저나 비형랑 탄생설화(?)가 저런게 있었군요ㅇㅅㅇ!
라고 하고싶습셒습니다...ㅠ 아아...비형 나와주었으면... 본격 판타지드라마가 되었으면...
귀신을 부렸다라는 의미를 능력이 출중했다라는 해석과 김춘추가 왕위에 오른 다음 그 아버지 용춘을 추증할 때의 시호라던가 그런 것으로 보시는 것 같아요.
음, 재미있는 역사소설(;) 화랑세기에서는 비형랑과 용춘, 용수를 다 따로보지만 말입니다.
고대는 상상의 나래가 무한해서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김춘추보다 왕위계승서열이 높거나 대등했을 승만이 안나오면 어쩌자는 건지...
..... 나왔나?? 아아! 기억이... ㅡㅡ;;
신라 시대 상대등은 화백을 주관하고 국사를 총괄하는, 귀족집단의 권력을 상징하고 왕권을 견제하는 직책이었다...라고 대충 배웠었습니다만 상대등이 되려면 최소한 진골이상의 귀족만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 비담또한 진골, 즉 왕족이었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실제 삼국사기의 비담 관련 기록을 보면 "이찬" 비담을 상대등에 임명했다는 내용도 있는데, 이찬이라면 17관등중에서도 2등인데, 그럼 비담 또한 쓰신 대로 왕족이었을 가능성이 크겠죠?
왜 이런 질문을 드리느냐면...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 나오니까 어느 신문에서 "비담의 판단"어쩌구 하며 낚시 기사가 하나 떴는데(링크를 안 해뒀습니다. OTL)거기에 "비담은 역성 혁명을 꿈꿨다." "체제 밖에 있으면서 현실인식능력을 키웠다."이런 뻘소리들을 늘어놨더라고요.
가르침 고맙습니다.
그래도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김춘추와 김유신은 선덕여왕의 정적은 아니었을까요?
어디서 그런 생각이 생겼는지 근거는 댈 수 없지만,
이상하게 제 머릿속 한구석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생각이라
한번 여쭤봅니다. ^^
김춘추와 김유신을 중용하기 시작한 것도 선덕여왕인 것 같더군요.
아마 어렸을 때 읽은 책 가운데
김춘추가 일찍부터 왕위에 욕심을 냈는데,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느라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을 내세워
잠시 때를 기다렸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문무왕의 유언을 보면 영웅의 기상이 느껴져서 맘에 듭니다 ㄷㄷ
묘호라고 할 수 있는 '태종'이 앞에 붙은 걸까요? 여기에도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걸까요? 그냥 단순히 당나라와의 관계가 가까웠다는 의미인
걸까요? 아니면 백제를 정복한 군주라는 사실을 과시하려고 그런 걸까요?
2. 일설에는 진지왕이 하야한후 귀양지?에서 데리고 산 여자를 도화로 보기도 합니다.
3. 87년 이후에 나왔기 때문에 나름 정치적인 코드를 깔고 있는 국영방송 드라마 삼국기에서는 알천 즉위 전야에 김유신 졸개들이 군을 장악하고 여차하면 밀어버릴걸 암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신은 그걸 반대하고 알천-전우 시즌2의 강민호씨입니다.-은 고심끝에 이전에 알고 지내던 도인의 예언에 따라 권한을 김춘추에게 주는 걸로 마무리.
참고로 비담의 난 역시 궁정 쿠데타의 측면에서 그립니다.(고백신조 원작자는 전에 초록불님이 좀 비판하셨던 분인데 이 정도 지적능력은 안되고 시나리오 개작자인 에로 작가 --;;; 유현종 선생이 넣은 클리세였습니다만)
전공자지만 언제나 읽으면 재미있습니다 >_<
그리고 신라 초기의 박석김 돌아가며 왕하기... 이런 건 거짓말일 겁니다. 석씨들이 전멸한 걸 보면 알 수 있죠...^^
그런데 어떤 사람은 또 비형=용춘이 아니겠느냐는 가설을 내밀기도 하더군요.'비형같인 신묘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사라질 리는 없다. 이건 태종무열왕의 가계에 신비로움을 더하기 위한 조작이며, 비형은 용춘(용수)의 다른 이름일 것'이란 얘기던데요.
문무왕 무열왕 저도 가끔 헷갈립니다. 역사공부를 더 해야ㅠ.ㅠ
그래서 눈마새를 보고 자칭타칭 < 한국형 판타지 > 라고 그러잖아요 ㅋㅋ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