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 왕위에 오르다 *..역........사..*



1.
얼마 전에 집안 모임이 있었는데, 우연히 문무왕비 발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니까 그게 김춘추잖아."
"네?"
"김춘추가 일본 왜구 못오게 한다고 대왕암에서 용 된 사람이잖아."
"네?"

의외로 "대왕암에서 용 된 사람" = 김춘추 = 태종무열왕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더라는 이야기.

"그거 문무왕인데요."
"그래, 문무왕. 김춘추."
"네?"

그리고 문무왕(법민)과 김춘추(태종무열왕)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더라.

2.
김춘추는 본래 왕위 계승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 김춘추의 아버지가 김용춘... 이건 누군지 모른다 치고...
그 할아버지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진지...하지 못했던 진지왕이다. (그냥 말장난입니다.. 죄송..)

호색을 일삼다 왕위에서 쫓겨나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러고도 속세에 미련이 남아 혼령의 몸으로 과부를 찾아간다.

이 과부는 유부녀 시절에 미색으로 이름이 높아서 진지왕이 콜 한 적이 있는데, 유부녀라서 모실 수 없다고 버텼다.

다윗은 바새바의 남편을 전장에 보내 죽여버렸지만, 진지왕은 느긋하게 그 남편이 자연사하기를 기다렸는데, 아뿔싸 본인이 먼저 죽어버렸다.

그러나 그 뒤 남편도 죽자(설마 혼령의 힘으로 죽인 건...) 진지왕은 귀신이 되어 유부녀와 동침했다. 그리고 아이를 하나 얻었는데, 귀신의 능력을 타고 태어나 도깨비와 여우를 부릴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 그 이름을 비형랑이라 한다.

이런 재밌는 캐릭터가 선덕여왕에는 안 나오나?

3.
아무튼 김춘추는 신라의 적통 가문이다. 문제는 할아버지가 왕위에서 쫓겨난 인물이라는 것. 그 뒤를 이은 왕이 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이다.

진지왕과 진평왕은 숙질간이다. 이들은 모두 진흥왕의 후손인데, 진흥왕의 둘째가 진지왕. 장남인 동륜태자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었다. 따라서 진지왕의 폐위는 사실은 왕실 정통으로 왕위에 오르지 못한 한을 품었던 진평의 쿠데타일 가능성이 높겠다. (이것은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쿠데타일지도 모른다. 진지왕이 죽은 것 말고는 그 아들도 다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언제 따로 포스팅을...)

문제는 이 동륜태자 계열로는 남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덕여왕에게 남편도 있었고, 족보상으로 보면 후손도 있지만 이들은 왕실 계승 서열에는 끼지 못했다.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상식 - 선덕여왕 [클릭])

이종욱 교수는 법흥왕 때 성골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데, 성골은 왕을 중심으로 직계에게 부여되는 신분이다. 이에 따르면 진지왕의 아들인 용춘은 성골이었지만, 용춘은 왕이 되지 못해서 그 아들 김춘추는 성골이 아니다.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상식 2 - 성골과 진골 [클릭])

4.
사도세자가 죽은 뒤 그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 피바람이 불 것이라 생각해서 정조의 왕위 계승에 반대가 심했다. 김춘추의 경우도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았으리라. 그렇지만 김춘추는 이미 왕실에 대한 충성을 보인 상태였다. 더구나 김춘추의 어머니는 선덕여왕과 자매간인 천명부인. 그는 성골왕가의 사위로서도 왕위 계승 서열을 찜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진덕여왕이 죽은 후 사람들이 알천에게 섭정을 맡기고자 했으나 알천이 늙음과 공이 없음을 이유로 사양했다고 나온다.

왕위 계승 서열에 있어서 김춘추보다 앞선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선대의 원한이 여기서 풀릴까 걱정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왕위 계승 서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섭정"을 꾀했을 리가 없다.

5.
여기서 사료는 없지만 소설가의 상상을 발휘해보면, 당시 왕위 계승에 대해서 이런 움직임이 있었을 수도 있다.

선덕여왕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움직임 - 아무튼 가장 왕위에 가까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섭정이라 함은 바로 이 점을 가리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선덕여왕은 비담의 난 중에 죽었다. 암살 당했을 지도 모른다. 아직 어린 아들이 있었을 수도 있다. 진덕여왕은 왕위에 8년 밖에 있지 않았다.

비담은 진평왕의 아우 백반, 국반 중 하나의 자식이 아니었을까?(진덕여왕은 국반의 딸) 그가 여왕의 통치에 반기를 든 것은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 이후, 그의 가계에 대한 기록이 모두 삭제된 것은 아닐까? 비담 반란에 연좌되어 죽은 이가 서른 명이 넘는다. 이로써 김춘추의 왕위 계승에 걸림돌이 될 왕족은 다 죽었던 게 아닐까?

김춘추보다 왕위에 가까운 인물이 하나 더 있다. 만일 생존해 있었다면... 바로 진지왕의 사갓집 아이인 "비형"이다. 비록 서자기는 하지만 그가 진지왕의 혈통임을 확실히 증명할 수 있었다면, 그도 만만찮은 적수였을 것이다. 그가 귀신을 부리고 산다는 이야기는 흥선대원군처럼 진면목을 가리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지만 하룻밤만에 다리를 놓는 등, 동원할 수 있는 인력과 재력이 상당했다는 이야기로 풀 수도 있다.

또는 선덕이나 진덕의 남편(진덕여왕에게 남편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음)이 생존해 있었다면 어떨까? 이들도 김춘추나 마찬가지로 왕가의 사위로서 왕위를 노릴 수 있었을 것이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을 보면 알천의 섭정 야망을 분쇄한 것은 김유신인 듯 하다. 김유신은 알천과 상의하여 김춘추를 왕위에 올렸다고 한다.

6.
사실 당시 신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신라인의 입장에서 보면 당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는 것 말고는 나라가 살아날 방법이 안 보였을 수 있다. 김춘추는 왕이 되자 바로 딸을 김유신에게 보내 그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김춘추의 아들 법민은 이때 30대. 그는 백제 정벌군을 총지휘했고, 왕이 된 뒤 고구려 정벌에도 나섰으며, 당군과의 결전도 망설이지 않았다. 삼국통일의 실질적인 주역은 바로 이 사람이다.

그리고 대왕암에서 해외의 적을 무찌르겠다는 일념을 불사른 인물도 바로 이 사람.

태종무열왕(김춘추)의 아들 문무왕(법민). 이 부자지간을 혼동하지 말자.


핑백

  • 초록불의 잡학다식 : 소지섭이 알천의 후예가 되는 이유 2009-09-16 11:26:12 #

    ... 뒤 땅에 패대기쳐 죽여버렸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완력으로는 신라 제일이었죠. 김춘추 즉위 때 본래 왕이 될 순위는 알천이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김춘추, 왕위에 오르다 [클릭]를 참조해 주세요.) 진덕이 죽자 여러 신하들이 이찬 알천(閼川)에게 섭정을 청하였으나, 알천이 굳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저는 늙고 이렇다 할 덕행이 ... more

덧글

  • 시오 2009/09/16 11:06 #

    아들 법민이라는 말 앞에 김춘추의 아들이라고 덧붙여주시는 것도 좋을 것같습니다....
    역사 못해서 죄송해요 초록불 님... ㅠㅠ
  • 초록불 2009/09/16 11:10 #

    아니.. 죄송할 일이...^^

    수정하겠습니다.
  • 2009/09/16 11:1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09/16 11:19 #

    오타입니다...^^

    왕실입니다. 수정했습니다.
  • 애빠젊 2009/09/16 11:34 #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인데 말입니다...ㅎㅎ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마립간 4년(A.D.53)조를 보면, 신하들이 신라국왕이라는 칭호를 올린다고 나와있다더군요. 그래서 지증마립간부터 왕이란 칭호를 쓴 걸로 알려져 있고요.

    또 어떻게 찾다보니...

    법흥왕 때인 536년에 '건원'이라는 연호를 반포하면서 황제국을 칭했다라는 얘기도 있네요. 진흥왕 재위 12년에 다시 연호를 '개국'으로 고치고, 그 이후에 '대창'과 '홍제'로 연달아서 고쳤다고 하더라능.. 진평왕이 또 '건복'으로, 선덕왕이 '인평'으로, 진덕왕이 '태화'로 연호를 고쳤으나...

    그 이후에 당나라의 '영휘'란 연호를 받아서 쓰긔 시작하므로서 다시 황제에서 왕으로 격하되었다...라고 하더라능...

    그러므로 법흥제~선덕제가 맞다는 얘기를 들었다능...ㅎㅎ

    뭐, 고려도 초기엔 황제국이었으니...ㅎㅎ;;
  • 초록불 2009/09/16 11:42 #

    "황제"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내황외왕제라는 말도 있는데...

    안에서는 연호도 쓰고(연호를 쓴다는 것은 독자적인 달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帝를 칭하기도 하는데, 외부적으로는 王에 그치는 것이죠. 이 경우 법흥제...니 하는 건 근거없는 말이고, 그냥 법흥왕이 맞습니다.

    삼국유사에 보아도 신라왕들을 帝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위에 나온 진지왕의 경우도 성제聖帝라고 칭하거든요.

    하지만 이건 대통령을 각하, 라고 부른 것과 비슷한... 그냥 호칭이죠. 그리고 이 시기만 해도 이런 호칭과 제도가 완전히 정립된 상태가 아닙니다. 따져보면 당태종도 칸이라는 칭호를 받기도 하고...
  • 애빠젊 2009/09/16 11:48 #

    아 그렇군요...ㅎㅎ;;

    저는 지금 MBC에서 하는 선덕여왕에서.. 자꾸 황제란 얘기가 나와서 까려고 자료 찾다가 연호 얘기가 나오는 걸 보고 '어 정말 황제네?' 했다능...ㅎㅎㅎ

    역시 역사 전공하신 분은 다르다능...ㅎㅎㅎ

    근데, 고려가 초기에는 황제국이었다..라는 건 역사스페셜에서 다뤄졌던 걸로 기억하는데... 잘 기억나지 않아서요...(...)

    고려같은 경우에는 조공을 받은 기록도 있고, 또 뭐지... 궁궐의 문 개수가 황제국의 형태였다...는 얘기도 기억이 얼핏 나는 것 같다능...ㅎㅎ

    고려 역시 그냥 외왕내제의 형태였던 건가요?
  • 초록불 2009/09/16 11:54 #

    뭐... 전공이라고 해도...

    고려에서 내황외왕제 소리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발해의 경우도 그랬던 것 같고. 발해 비석에는 황후라는 말도 나오죠.
  • 홍월 2009/09/16 11:40 #

    김춘추=문무왕...뭔가 처음 듣는데 벙-스러운 이야기네요,

    그나저나 비형랑 탄생설화(?)가 저런게 있었군요ㅇㅅㅇ!
  • 초록불 2009/09/16 11:43 #

    이게 떼놓고 이야기하면 다들 아는데, 묶어서 이야기하면 동해에서 김춘추가 용이 되었다...라고 나오더라고요.
  • 개멍 2009/09/16 11:47 #

    떡밥춘추 제2호 기대해도... 될까요? :-)
  • 초록불 2009/09/16 11:51 #

    저는 떡밥춘추 회원이 아닌데요...^^
  • 민서 2009/09/16 12:20 #

    역사에 대해서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초록불님 포스팅 읽으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냥 읽기만 해서 죄송한 마음에 감사 메시지 올립니다.^^
  • 초록불 2009/09/16 12:27 #

    고맙습니다...^^
  • 현골 2009/09/16 12:23 #

    미실이 선덕여왕이랑 맞짱을 뜨고있는 이 마당에 비형이 안나올건 뭐냐!!

    라고 하고싶습셒습니다...ㅠ 아아...비형 나와주었으면... 본격 판타지드라마가 되었으면...

  • 초록불 2009/09/16 12:28 #

    역시 안 나오고 있군요. 폭탄으로 준비 중...일 리도 없겠죠?
  • 홍월 2009/09/16 12:30 #

    그 드라마 때문에 많이들 또 史실에 대해서 헷갈려 하더군요...ㅠ
  • 을파소 2009/09/16 12:37 #

    김유신 동생들도 안 나오는 마당에 비형을 신경쓸 여유가 있을까요?
  • Lon 2009/09/16 12:50 #

    저희 학교 선생님은 비형랑을 용춘이라고 보시더군요.
    귀신을 부렸다라는 의미를 능력이 출중했다라는 해석과 김춘추가 왕위에 오른 다음 그 아버지 용춘을 추증할 때의 시호라던가 그런 것으로 보시는 것 같아요.

    음, 재미있는 역사소설(;) 화랑세기에서는 비형랑과 용춘, 용수를 다 따로보지만 말입니다.

    고대는 상상의 나래가 무한해서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 아롱쿠스 2009/09/16 13:18 #

    김유신씨가 비담의 난을 진압하면서, 찝쩍댈만한 사람들을 미리 다 없앤것이나 아닐까요?
  • LaJune 2009/09/16 13:25 #

    푸흡;;; '아뿔싸' 대목에서 뒤집어졌습니다.
  • 야스페르츠 2009/09/16 13:29 #

    생각해보면 진덕여왕 승만도 아직 안나오지 않았나요?

    김춘추보다 왕위계승서열이 높거나 대등했을 승만이 안나오면 어쩌자는 건지...

    ..... 나왔나?? 아아! 기억이... ㅡㅡ;;
  • Allenait 2009/09/16 14:04 #

    아.. 저도 헷갈렸던 거군요
  • 위장효과 2009/09/16 14:22 #

    질문하나만 드리겠습니다.
    신라 시대 상대등은 화백을 주관하고 국사를 총괄하는, 귀족집단의 권력을 상징하고 왕권을 견제하는 직책이었다...라고 대충 배웠었습니다만 상대등이 되려면 최소한 진골이상의 귀족만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 비담또한 진골, 즉 왕족이었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실제 삼국사기의 비담 관련 기록을 보면 "이찬" 비담을 상대등에 임명했다는 내용도 있는데, 이찬이라면 17관등중에서도 2등인데, 그럼 비담 또한 쓰신 대로 왕족이었을 가능성이 크겠죠?

    왜 이런 질문을 드리느냐면...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비담 나오니까 어느 신문에서 "비담의 판단"어쩌구 하며 낚시 기사가 하나 떴는데(링크를 안 해뒀습니다. OTL)거기에 "비담은 역성 혁명을 꿈꿨다." "체제 밖에 있으면서 현실인식능력을 키웠다."이런 뻘소리들을 늘어놨더라고요.
  • 초록불 2009/09/16 14:28 #

    비담은 이찬이었고, 이찬은 진골만 오르는 관직이었으니, 그가 다른 성씨였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기록도 없고요. 그 사람은 비담이 "비"씨인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런 식이라면 유신은 "유"씨고, 춘추는 "춘"씨였을 겁니다...^^
  • 我行行 2009/09/17 12:46 #

    진골이 아닌, 경주김씨도 아닌, 가야 출신 김유신도 상대등이 되었던 것으로 앏니다.

  • 초록불 2009/09/17 13:27 #

    我行行님 / 금관가야의 왕족은 항복할 때 진골로 받아들여졌습니다.
  • 我行行 2009/09/17 16:19 #

    김유신이 진골이었군요.
    가르침 고맙습니다.
  • 解明 2009/09/16 14:38 #

    아마도 김춘추가 백제 정벌 이후에 갑자기 죽은 탓에 김춘추와 김법민의 관계에 대해 헷갈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 봅니다.
  • 초록불 2009/09/16 14:51 #

    거기까지 알지 못해서 그런 거죠. 삼국통일을 김춘추와 김유신이 이룩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혼선이 빚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 빼뽀네 2009/09/16 15:38 #

    저는 무열왕과 문무왕에 대해 헷갈려하진 않았지만. ^^
    그래도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김춘추와 김유신은 선덕여왕의 정적은 아니었을까요?
    어디서 그런 생각이 생겼는지 근거는 댈 수 없지만,
    이상하게 제 머릿속 한구석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생각이라
    한번 여쭤봅니다. ^^
  • 초록불 2009/09/16 15:51 #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춘추와 유신은 근왕파. 비담과 염종은 귀족파...라고 보는 것이 더 근사한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 빼뽀네 2009/09/16 16:34 #

    그렇겠지요? 요즘 선덕여왕에 대해 궁금한게 있어서 좀 알아보니,
    김춘추와 김유신을 중용하기 시작한 것도 선덕여왕인 것 같더군요.
    아마 어렸을 때 읽은 책 가운데
    김춘추가 일찍부터 왕위에 욕심을 냈는데,
    다른 사람 눈치를 보느라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을 내세워
    잠시 때를 기다렸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들꽃향기 2009/09/16 16:45 #

    잘 읽고 갑니다. ^^ 그러고보니 서구에서도 왕의 사생아는 상당한 위상을 가지고 왕의 측근관료나 법, 재계쪽에서 대성하는 그런 경향이 있더군요. 말씀하신대로 비형랑도 상상(?)을 좀 가미(?)하자면 그런 성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문무왕의 유언을 보면 영웅의 기상이 느껴져서 맘에 듭니다 ㄷㄷ
  • 고독한별 2009/09/16 20:17 #

    그런데 뜬금없이 궁금해졌는데... 다른 왕들과 달리, 무열왕은 왜 중국식
    묘호라고 할 수 있는 '태종'이 앞에 붙은 걸까요? 여기에도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걸까요? 그냥 단순히 당나라와의 관계가 가까웠다는 의미인
    걸까요? 아니면 백제를 정복한 군주라는 사실을 과시하려고 그런 걸까요?
  • 초록불 2009/09/16 20:36 #

    이 문제는 당에서도 시비를 건 적이 있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백제를 멸망시킨 위대한 왕이라는 의미로 당 태종에 비견하여 붙여졌습니다. 문무왕의 자부심이 깃든 묘호인 셈이죠.
  • 고독한별 2009/09/16 21:25 #

    감사합니다. 역시 그랬군요.
  • 이상주의자 2009/09/16 22:07 #

    드라마의 경우, 비담의 원래 이름을 '형종'이라 하는걸 보니 비담=비형으로 퉁칠 (높은 확률의) 가능성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사실 이미지도 겹치고) 아마 도화녀=미실 & 비담=비형으로 넘겨버리지 않을까 하네요.(사실 따로 비형이란 캐릭터를 만들기도 애매할거고)
  • 피코네와 2009/09/17 10:00 #

    퉁친다... 기보다도 비담한테 비형랑 캐릭터까지 같이 넣어버렸다고 이미 밝혔을걸요...
  • 이준님 2009/09/17 00:21 #

    1. 조성기씨의 모 소설-이게 은근히 성인코드가 들어 있습니다. 박제상건도 거의 엽기고-에서는 진지왕은 "의문의 독살처리"를 암시하는 걸로 나옵니다. 비형은 말 그대로 귀신과 접한 아들로 나오구요. 진지왕의 귀신과 도화의 정교 장면이나 그 전에 폐병 환자 본남편이 있던 도화의 DDR 장면이 좀 깹니다. --;;

    2. 일설에는 진지왕이 하야한후 귀양지?에서 데리고 산 여자를 도화로 보기도 합니다.

    3. 87년 이후에 나왔기 때문에 나름 정치적인 코드를 깔고 있는 국영방송 드라마 삼국기에서는 알천 즉위 전야에 김유신 졸개들이 군을 장악하고 여차하면 밀어버릴걸 암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신은 그걸 반대하고 알천-전우 시즌2의 강민호씨입니다.-은 고심끝에 이전에 알고 지내던 도인의 예언에 따라 권한을 김춘추에게 주는 걸로 마무리.

    참고로 비담의 난 역시 궁정 쿠데타의 측면에서 그립니다.(고백신조 원작자는 전에 초록불님이 좀 비판하셨던 분인데 이 정도 지적능력은 안되고 시나리오 개작자인 에로 작가 --;;; 유현종 선생이 넣은 클리세였습니다만)
  • Hyunster 2009/09/17 02:09 #

    역시 역사는 말로 풀었을 때 흥미를 유발하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전공자지만 언제나 읽으면 재미있습니다 >_<
  • Semilla 2009/09/17 03:40 #

    저도 성골 = 부모가 다 왕족인 사람으로 알고 있었고 김춘추는 문희랑 결혼해서 그 후손이 진골이 되니까 성골로 안 쳐준 줄 알았는데 그런게 아니었군요...
  • 새벽안개 2009/09/17 13:44 #

    신라초기에 죽기 살기 싸움이 아닌, 대화와 타협을 통한 왕권 이양이 가능했다는것은 귀족들의 카르텔을 통해 누가 왕을 해도 크게 문제되지 않을 권력기반이 있었다고도 해석할수 있지 않을까요? 아직 패거리 정치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다던가....
  • 초록불 2009/09/17 13:46 #

    이때는 이미 신라 초기라 하기에는...

    그리고 신라 초기의 박석김 돌아가며 왕하기... 이런 건 거짓말일 겁니다. 석씨들이 전멸한 걸 보면 알 수 있죠...^^
  • 머미 2009/09/17 14:30 #

    트랙백할 글이 산더미지만 대략 자제하고 몇개만 걸겠습니다. 전문가가 보시기엔 허접퉁이지만^^

    그런데 어떤 사람은 또 비형=용춘이 아니겠느냐는 가설을 내밀기도 하더군요.'비형같인 신묘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사라질 리는 없다. 이건 태종무열왕의 가계에 신비로움을 더하기 위한 조작이며, 비형은 용춘(용수)의 다른 이름일 것'이란 얘기던데요.

  • 초록불 2009/09/17 14:54 #

    아, 드라마 때문에 요즘 많이 쓰고 계시더군요.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 韓浪 2009/09/17 14:38 #

    2번은 삼국유사에서 나온 내용인가요?그나저나 진지왕 이름하고 딴판이라능...


    문무왕 무열왕 저도 가끔 헷갈립니다. 역사공부를 더 해야ㅠ.ㅠ
  • 초록불 2009/09/17 14:53 #

    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 catnip 2009/09/17 16:05 #

    정식 명칭이 문무대왕릉이라곤해도 흔히 문무암으로 알고 있던터라 - 울산에 살던때 - 두 왕이 헷갈리진않았지만 이런 내용은 역시 처음 알았네요.
  • draco21 2009/09/17 21:45 #

    저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었다니.. ^^: 아직도 어떤 이야기든 새롭기만 합니다. 그러고 보니 김춘추이야기는 어느날 밤에 라디오에서 들었던적이 있었던것 같기도 합니다만. ^^:
  • 하늘사랑 2009/09/18 12:43 #

    초록불님의 글에 (이종욱 교수에 의하면) 법흥왕 때 성골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고 소개하였는데, 일부 학자들은 좀 더 후대인 진평왕 때에 성골제도가 본격적으로 확립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진평왕 때 성골제도를 확립시킨 이유로는 진평왕이 아들이 없어 자신의 딸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서라고 설명하네요. 이런 견해에 따르면 당시 진지왕의 직계후손들이 버젓이 살아있으므로 이들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액시움 2009/09/18 22:51 #

    비형랑이라는 이름을 보고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나오는 도깨비 비형 스라블의 이름이 어디에서 유래됐는지 깨닫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참 별 걸 다 조사했네요. 이영도 작가. ㅡㅡ;
  • 초록불 2009/09/18 22:54 #

    아마 도깨비에 대한 전문서적 아무 거나 봐도 비형은 나올 겁니다...^^
  • 이야타 2009/09/30 15:03 #

    악 영도님의 눈마새를 읽어보셨군요!! ^^ 반갑습니다~~

    그래서 눈마새를 보고 자칭타칭 < 한국형 판타지 > 라고 그러잖아요 ㅋㅋ >_<!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google_myblogSearch_side

orumi.egloos.com

▷검색어


유사역사아웃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