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의 충돌 *..역........사..*



유사역사학에서는 역사를 "승자의 역사"라고 굳건히 믿는다.

그들이 주장하는 환단고기나 기타 유사역사학 경전들에 등장하는 환국 따위가 바로 그 "승자"라는 점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모순임을 드러낸다. 그러다보니 누군가 중간에 "패자"가 되어서 역사를 "잃어버려야" 하고, 그 덕분에 최종적으로 조선이 그 총대를 매게 된다.

뭐, 저런 이야기는 애초에 성립 되지 않는 것이고, 오늘의 주제를 보자.

신당서에는 매소성 전투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상원 2년(675) 2월에 유인궤가 칠중성에서 그 무리를 쳐부수고 말갈병에게 바다를 건너 남쪽 경계를 공략케 하니 참획이 매우 많았다. 이에 고종이 이근행으로 안동진무대사를 삼아 매소성에 주둔시켰는데 세 번을 싸워서 그때마다 오랑캐를 패배시켰다. 그러자 법민(문무왕)이 사신을 보내 사죄를 하는데, 공물의 짐바리가 줄을 이었다. 인문 또한 신라에서 돌아와 왕위를 내놓으므로 고종이 법민의 관작을 다시 회복시켜 주었다. 그러나 신라는 지난날 백제의 땅을 많이 차지하고 드디어는 고려의 남부까지 점령하였다. (신당서 권220 상원2년조)

이에 따라 자치통감 등에도 이근행의 패배는 적혀 있지 않다. 그런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이때 전황이 다르게 적혀 있다.

2월에 유인궤가 칠중성에서 우리 군사를 깨뜨렸다. 인궤는 군사를 이끌고 돌아가고, 조칙으로 이근행을 안동진무대사(安東鎭撫大使)로 삼아 경략케 하였다. 그래서 왕은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사죄하니 황제가 용서하고 왕의 관작을 회복시켜 주었다. 김인문은 중간에서 [당으로] 되돌아갔는데, 그를 임해군공으로 고쳐 봉하였다. 그러나 백제 땅을 많이 빼앗아 드디어 고구려 남쪽 경계지역에 이르기까지를 주와 군으로 삼았다. 당나라 군사가 거란· 말갈 군사와 함께 침략해 온다는 말을 듣고 아홉 부대의 군사[九軍]를 내어 그것에 대비하였다.
가을 9월에 설인귀가 숙위학생 풍훈(風訓)(106)의 아버지 김진주(金眞珠)가 본국에서 처형당한 것을 이용하여 풍훈을 이끌어 길잡이[鄕導]로 삼아 천성(泉城)을 쳐들어 왔다. 우리의 장군 문훈(文訓) 등이 맞아 싸워 이겨서 1천4백 명을 목베고 병선 40척을 빼앗았으며, 설인귀가 포위를 풀고 도망감에 전마(戰馬) 1천 필을 얻었다. 29일에 이근행이 군사 20만 명을 거느리고 매소성(買肖城)에 주둔하였는데, 우리 군사가 공격하여 쫓고 말 30,380필을 얻었으며 그 밖의 병기도 이만큼 되었다. 사신을 당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7 문무왕 하 15년조)


삼국사기를 깔보는 유사역사학에서 설명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쳤다. 중국 사서에 없는 중국의 대패가 적혀 있는 것이다. 더불어 매소성에서 세 번 진 이야기는 없다는 점도 주목.

삼국사기의 기록은 저뿐이 아니다.

당나라 군사가 거란· 말갈 군사와 함께 와서 칠중성을 에워쌌으나 이기지 못하였는데, 소수(小守) 유동(儒冬)이 전사하였다. 말갈이 또 적목성(赤木城)을 에워싸 멸하였다. 현령 탈기(脫起)가 백성을 거느리고 대항하여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모두 죽었다. 당나라 군사가 다시 석현성(石峴城)을 포위하여 함락시켰는데, 현령 선백(仙伯)과 실모(悉毛) 등이 힘껏 싸우다가 죽었다. 또 우리 군사가 당나라 군사와 열여덟 번의 크고 작은 싸움에서 모두 이겨서 6,047명을 목베고 말 200필을 얻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7 문무왕 하 15년조)

우선 위의 기록부터 보자. 신당서의 기록은 2월의 일이다. 우리측 사료에는 2월에 유인궤와 이근행이 임무 교대한 사실만 적혀 있다. 하지만 정황상 이 당시 패배했을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반면 우리측 사료의 9월 기록은 중국측 사료에는 보이지 않는다.

2월에 패배했을 것이라는 점은 우리 측 사료를 보아도 분명하다. 이겼다면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사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당은이 당시 토번(티베트)의 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문무왕의 화해 제스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문무왕은 이후 양 사료에 나오듯이 백제 땅을 빼앗고 고구려 경계까지 먹어치웠다. 당의 사료들은 이후의 상황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있는데, 그렇다고 모든 것을 감출 수는 물론 없다. 웅진도독부는 676년 2월 요동으로 옮겨지는데, 그 이유는 불문가지, 명약관화하다. 신라군에게 내쫓긴 것이다.

신당서는 매소성 패전을 어디에도 기록하지 않고 있다. 신당서 이근행 열전에도 누락되어 있다. 아예 한반도 출정 자체를 누락시켜 버렸다. 그가 여러 공을 세운 것은 본기에 나오는데도 열전에 빠진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결국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패전이 있었기 때문이라 볼 수밖에 없다.

반면 아래쪽 기록을 보면 우리측 기록은 패전 사실이 오히려 자세하고 승전의 경우는 뭉뚱그려서 써놓고 있다. 패전 때 분전하다 죽은 장수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어서 기록의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이 전쟁이 얼마나 힘겹게 진행되었는지도 알려주고 있다.

이후 진행된 역사도 삼국사기의 편에 선다. 당은 웅진도독부를 요동으로 옮긴 뒤인 676년 11월 다시 한번 금강 하구를 통해 백제 지역으로 공격을 감행했다가 22차례의 전투 끝에 패배하고 물러났다. (삼국사기)

이때의 내막을 자치통감을 통해서 살펴보면 이렇다. 677년 1월-2월의 기록이다.

(1월) 애초에 유인궤가 군사를 이끌고 웅진에서 돌아오자(665년 8월 취리산 맹약 후) 부여융은 신라의 압박을 두려워하여 감히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곧 역시 조정으로 돌아왔다.
(2월) 사농경 부여융을 웅진도독으로 삼고, 대방왕에 책봉하여 또한 돌아가서 백제의 남은 무리들을 안무하게 하며 이어서 안동도호부를 신성으로 옮겨서 그들을 통괄하게 하였다. 이때에 백제가 황폐화되고 부서져서 부여융에게 명하여 고려의 경계에 우거하도록 하였다. (중략) 부여융 역시 끝내 감히 옛날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니 고씨와 부여씨는 드디어 망하였다. (자치통감 권 202, 권중달 역)


"여우의 신포도" 타령이다. 못 돌아가게 되자 백제 땅을 황폐화 된 곳이라 자기 최면을 걸고 있다. 당의 야욕은 사실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구당서 장문권 열전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678년 9월의 일이다.

그후 신라가 배반하니 고종이 병사를 내어 토벌코자 했다. 이때 문권은 질병으로 집에 있었는데, 이에 수레를 타고 와 고종에게 상주하길 "근래 토번이 침공하여 병사들 두고 노략질하는데 신라는 비록 순종치는 않아도 군사를 보내 침공치는 않으니 만일 동서를 모두 정벌코자 한다면, 신은 백성이 그 폐해를 감당치 못하리라 걱정스럽습니다. 청컨대 병사를 쉬게하고 덕을 닦으시어 백성을 위무하십시오." 고종이 이를 따랐다.

신라가 이미 675년 2월에 항복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래서 당이 용서한 것이 사실이라면 위와 같은 기사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당이 신라가 점거한 땅을 포기 선언한 것은 735년이었다.

사료들은 서로 충돌할 수 있는데, 그 안에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역사가가 하는 일이다. 아마도 이 매소성 전투(한자대로 매초성 전투라고도 흔히 읽는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명해서 당연한 사실로 아는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본 바와 같이 당 측의 기록에는 이런 부분이 상당 부분 누락되어 있다.

다행히 우리 역사책에 이런 기록이 남아 있어서 진실의 구성이 한결 쉬워진 것은 사실이나, 설령 없었다 하더라도 이런 추론은 생겨날 수밖에 없다. (단 이 경우에는 반론도 그만큼 더 많아질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어찌 보면 기록이 승자인 학문이다. 다만 그 기록은 단 하나의 글줄로 모든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을 통해 구체적 진실로 나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라 하겠다.




[사족]
이근행의 처

자치통감에는 이근행의 와이프 유劉씨 부인 이야기가 있다. 이근행이 고구려부흥군을 호로하(임진강)에서 무찔렀는데, 이때 그의 처 유씨는 평양 인근의 벌노성에 있었다고 한다. 고구려부흥군이 말갈군과 쳐들어오자 유씨 부인은 갑옷을 입고 나가 무리를 이끌어 성을 지켰다. 한참 싸운 끝에 고구려부흥군이 물러나고 말았고, 당 고종은 그 공으로 유씨 부인을 연국부인(燕國夫人)에 봉했다 한다. 이근행은 말갈인 돌지계의 아들로 무예가 뛰어났다고 하는데, 그의 부인도 한가락 하는 몸이었던 것이다.

덧글

  • LVP 2009/09/20 13:29 #

    사기질도 주둥이가 맞아야 'ㅅ';;;

    딴건 둘째치고, 인구도 얼마 안되는 때에 뭔 얼어죽을 제국타령인지 그게 참 궁금해요 'ㅅ';;;

    그 많은 인구도 일제가 다 죽였나 'ㅅ';;;
  • Niveus 2009/09/21 16:16 #

    목성에서 연료주입하고 안드로메다로 떠났다죠(...;;;)
  • 아브공군 2009/09/20 13:37 #

    기록이 승자라.... 맞는 말 같습니다.
  • 을파소 2009/09/20 13:56 #

    승자가 왜곡기록한 사료가 있어도, 사학자들이 그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정도로 바보들은 아니죠.
  • 곧은나무 2009/09/20 20:26 #

    사학자들은 식민사관에 찌들어 있으니 무효
  • FELIX 2009/09/20 21:33 #

    사학자들은 식민사관에 찌들어 있으니 무효 2
  • 들꽃향기 2009/09/21 10:22 #

    사학자들은 식민사관에 찌들어 있으니 무효 3
  • Allenait 2009/09/20 14:05 #

    하기야 기록이 있어야 구성을 할 수 있으니.. 기록이 승자군요
  • 耿君 2009/09/20 14:41 #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기록이 승자라는 말 절대 공감합니다.
    그저께부터 계속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인데 글로 쓰신 걸 보니 공명하게 되네요.
  • dunkbear 2009/09/20 15:21 #

    다른 분들 말씀처럼 기록이 승자라는데 동의합니다. 차이가 저정도라니..
  • 아야소피아 2009/09/20 15:57 #

    역사 연구에서 가장 먼저 해야할 게 바로 사료비판이란 걸 왜 그들은 모를까요? (이건 모든 연구의 기본 아닌가요?) 그나저나 알면 알수록 <삼국사기>는 정말 소중한 책인 것 같습니다...

    덧. '女人天下'란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닙니다!
  • 야스페르츠 2009/09/20 15:59 #

    기록이, 유물이, 증거가 진정한 승리자!!!
  • blue ribbon 2009/09/20 16:39 #

    기록이 승자라는 사실에 인정합니다.

    삼국사기보다 삼국유사가 정통이라는것은 변하지않을듯.

    김부식이 없었으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었을까..
  • 화성거주민 2009/09/20 16:40 #

    흠냐... 당장 이번주 리포트 과제가 삼국사기에 관한 거라서 흥미가 가는군요....

    고병익 박사님의 논문이나 김철준 박사님의 논문 둘 중 하나를 읽어가야 하는데... 두분의 상반된 시각이 참 흥미롭기도 했구요.
  • raw 2009/09/20 18:03 #

    이래서 교차검토의 필요성이...
    아니 그냥 당장 지금 신문만봐도 느껴지는거긴하지만요 ㅎㅎ;
  • 계원필경Mk-2™ 2009/09/20 19:23 #

    손바닥으로 햇볓을 가린다해서 해가 사라지지는 않는 법이죠...(환빠들은 손바닥도 안펼치고 해가 없다고 하지만요...)
  • draco21 2009/09/20 19:33 #

    환독안에 빠져 있으면 절대 귀에 들어오지 않겠지요. ... 역시 달콤한 이야기에는 혹하면 안됩니다. 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
  • ExtraD 2009/09/20 20:14 #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초록불 2009/09/20 21:03 #

    고맙습니다...^^
  • 라세엄마 2009/09/20 20:27 #

    왠지 이건 환빠들을 위한 글은 아닌거 같아요. 뽕쟁이한테 아편의 과도한 중간마진과 불법성을 설명하는듯한 느낌으로.. 저분들은 그걸 몰라서 저러는게 아니라 그거랑 아예 무관계하게 저러는거잖아요.
    초록불님정도 되는 메이저 분이 진정한 환빠를 위한 글(예: 환빠는 아스피린 먹고 장기기증하는것이 사회를 위한 최선이다..라던지)을 써주면 좋을 듯 해요.
  • 초록불 2009/09/20 21:04 #

    에... 그런 글도 여러번 썼습니다만...^^

    어떤 글이건 이미 초록불이 한 이상 무효...라는 발상이 저 동네에 있더군요.
  • 라세엄마 2009/09/20 21:36 #

    메이저인 분이 환빠에게 아스피린을 먹이고 장기를 적출하는 봉사를 실처[끌려가서 죽도록 맞는다]
  • Niveus 2009/09/21 16:17 #

    당장 요새 일만 해도 교차검증해야하는데 과거의 일은 더욱 심하겠죠.
  • Ezdragon 2009/09/22 01:32 #

    역사는 승자의 기록 운운 하는 사람들은 자기 이전에 존재한 모든 사학자를 자기만 못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거나 마찬가지란걸 좀 알아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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