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분이 없을 것 같지만 허준은 임진왜란 때 어의로 선조를 쫓아 의주까지 수행하고 동의보감을 만든 사람이다.
이 분의 묘소는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산 129번지에 있다.
민통선 안에 있어서 쉽게 볼 수는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앞에 있는 묘가 허준과 그의 부인 묘이고, 뒤의 것은 허준의 어머니 묘라고 한다.
1992년에 경기도 지정문화재 기념물 128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 비석이 발견되어서 허준의 묘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하는데, 글자를 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나요?"
물어보자,
"한의사 분들이 많이 옵니다."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누군가 문중에서는 안 오나요, 물었더니 오기는 오는데 절은 안 합디다, 라고 답변이 돌아왔다. 서자라 절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단다. 이런 풍습은 언제나 사라지려는지.
DMZ 현장에 가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개성공단의 설치로 인해서 현지 주민들의 부담감이 많이 덜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이거야말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일지도 모르겠다.
임진강은 용암이 흘러 만들어진 강이라던데 그 때문에 양 강변으로 적벽이 형성된 것을 볼 수 있다.

바람과 비가 갈대를 흔드는 동안, 용암으로 이루어진 절벽을 지나쳐 가는 강물은 시간을 거슬러가는 것만 같이 보였다.
날이 궂어서 한낮에 다녀왔는데도, 사진은 오후 늦은 시간처럼 보이는구나.
덧글
ps: 해방이후 남한에서는 악마 사촌으로 여기는 박헌영의 "패악"을 늘어놓은 반공 서적에도 어김없이 나오는게 박헌영 서자설이죠. 박헌영은 서자니까 그런 짓거리를 하고 다녔다는... 최근에 호적이나 족보 연구한 분들에 의하면 후처의 "적자"이지 서자는 아니라고 하더군요. 서자는 인간 취급도 안 해주는 풍습때문에 고의로 "서자설"을 유포했다나 어쨌다나.
dmz에 있다는것도 처음 알았네요.
1차 왕자의 난의 경험으로 신덕왕후 강씨와 이복동생들의(좀더 정확하게는
막내동생이자 세자였던 방석의 왕위계승권) 정통성을 약화시키기위해
- 그래야 자신의 쿠데타?? 왕위등극의 명분이 살기 때문에 -
신덕왕후는 태조 이성계의 후궁- 첩이었다!! 고로 방번과 방석은 서자다!!
서자는 적자와 차별받음이 당연하다라는 논리를 맹글어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원래 신덕왕후 강씨 역시 이성계의 정실부인이었다지오. 고려식으로는.
이방원의 어머니 한씨가 함흥에서 얻은 향처(鄕妻 고향에서 얻은 아내)이고
신덕왕후 강씨가 개경으로 올라와 입신양명했을 때 얻은 경처(京妻
서울에서 얻은 아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의문이 가는 게 고려사회는 일부일처제라고 알고있는데
향처와 경처라는 일부다처제가 가능했다는 점이지오.
제가 이런 내용을 어디서 읽었는지 모르겠네요;;;
-_- 박시백님의 만화 조선왕조실록에서 봤나;;; 으잉;;;;
이근처가 정말 DMZ만 아니면, 하는생각이 마구솟을정도로 풍광이 죽이죠.
특히 GOP급으로 올라가면... 작살납니다. 고지라인은 정말...멋지죠,
잘하면 당대에 판서 정승 역임한 영광스런 인물이 되었을 것이요, 못하면 당쟁에 휘말려 귀양살이나 했을지도 모르지만,
서자였기에 오히려 차별 받던 분야에서
후대에 와서는, 당시 떵떵거리던 삼공육판들 이름은 아무도 기억 안해주는 반면에 그들보다 더 추앙받을 업적을 남긴 것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역사는 참 재미있는 것이죠.
제가 행군할 때 늘 저 곳을 지나가면서 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는데 못가보고 있습니다.
사진으로나마 보니 좋군요..
저기에도 북괴가 숨어있을 확률이 있다면서 수색정찰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기동순찰 지역이기도 해서 3주에 한 번은 보던 곳이로군요.
1사단 군인들한테는 묘하게 친근한 곳이랄까... -_-;;
종교에 따른 이유라거나...
굳이 서자라서 절을 하지 않는 거라고는...
허준 선생의 가계가 끊어졌다면 모를까, 자기 직계 조상이 묘에 절을 안하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 일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읽은 누군가의 단편 소설이 기억나네요.
남의 피 붙이를 데려다 키웠는 데, 이 아이가 커서 성공해 찾아와 자신을 거둬 키워준
양부모 뿐만이 아니라 윗대 조상의 묘와 일까지 다 꿰차고 있다는 것에
양부모의 자식보다 낳은 모습을 보여준 것을 말입니다...
뭐, 그렇다는 겁니다...^^;;;;
돌아가신 조상님께 절하는 풍습이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요?
이게 언제부터 전통으로 시작되었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사상 차리고 하는게 다 유교문화였던것 같은데
일관성(?)은 있다고 생각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