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식 씨의 타격 폼 *..문........화..*



이원식 씨의 타격 폼 - 8점
박상 지음/이룸


나는 박상 작가를 (인간으로서) 좋아한다. 따라서 이 글은 약간 사심이 들어간 글이다.

나는 내 글을 읽고 사람들이 마지막 문장에서 눈을 뗀 뒤에 잠시 내 글을 음미하는 순간을 맞이하기 바란다. 그건 어떤 감동일 수도 있고, 감동이 아니더라도 어떤 충격, 아주 작은 충격이라도, 혹은 작은 행복감, 또는 작은 상실감이나 작은 아쉬움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어떤 구체적인 감정을 느끼기를 바란다.

진리는, 제임스 미치너의 말이다.

소설은 불타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리하여 가슴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소설 중에는 가슴에 불이 아니라, 의문을 던지는 일이 많다. 그냥 물음표만 남는 것이다. 이 글을 왜 쓴 걸까? 이게 뭘 의미하는 거지? 도저히 모르겠는 걸? 뭐, 이런 의문들.

어떤 경우에는 이런 의문이 수치심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불행히도 나는 자뻑 기질이 강한 몸이라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 소설은 그냥 못 쓴 소설일 뿐이다.) 아, 나는 이 작가가 이야기하는 고상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천박한 지성을 가진 몸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만일 박상의 소설을 읽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면, 그건 두 배로 안쓰러운 일이 될 것이다. 꿔어어 꽃병이니, 꾱꾱꾱 꽃병이니 하는 말이나 쓰고 "조개가 고갈된 수달처럼 계속 고통스러웠지?"라든가, "세상에, 여기 깨끗한 모포라곤 한 장도 없군. 이렇게 웃길 수가."와 같은 앞뒤 맥락을 찾는 것이 더 힘든 거대한 농담 같은 글을 읽는데, 이해가 안 된다면 이건 뭔가 너무 고상하고 문장이 어려워서 이해가 안 되는 일보다 백만 배는 슬픈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좀 그렇다. 백만 배까지는 아니어도 한 십만 배는 슬픈 일이 될 글들이 여기 있더라. 작가를 개인적으로 아니까 물어보면 될까? 하지만 이렇게 말하겠지.

"이봐, 내 글에 대해 내가 말해야 돼?"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해야 할 거다.

"아차, 미안. 우리들 스스로 글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니. 잡학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로서 부끄러운 질문이었어."라고. (<가지고 있는 시 다 내놔>의 패러디)

<가지고 있는 시 다 내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글이 이 단편소설집 안에 있는 글 중 가장 좋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미발표작으로 되어 있다. 나는 정말 궁금해서 이것만은 뭔 소리를 듣더라도 박상 작가에게 물어볼 생각인데, 그 질문이란

"이 작품, 퇴짜 맞아서 아무데도 안 실린 거지?"

이다. 원래 좋은 작품이란 퇴짜를 맞는 법이다. 스티븐 킹도 그랬고 조앤 롤링도 그랬으니까.

박상 작가의 글은 "가슴에 불을 지르"기는 좀 힘들지만, "불타는 상상력"으로 글을 쓴 것은 분명하다.

사실 친한 작가끼리는 책에 대한 독후감 따위는 안 쓰는 게 맞다. 뭐라고 쓰건 좌백님이 진산님에게 바치는 찬사처럼 쓰지 않는 한, 마음 상할 가능성이 이원식 씨가 외계로 가는 문을 향해 돌진하다가 헬리 혜성으로 옮겨탈 확률보다 딱 만 배쯤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제법 유쾌하게 읽었고, 이 책은 오직 저 하나의 단편 <가지고 있는 시 다 내놔>만 가지고도 책값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무려 나는 작가가 사인한 책을 공짜로 받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횡재를 한 셈이다.

그런 이유로 이 책에 대해서 내가 조금 과찬을 했다고 해도 무조건 나를 이해해줘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박상 작가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그와 만나서 인생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주위를 영하 80도로 얼려버리는 농담을 서로 주고받는 걸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면 아마도 우리 둘은 추워서 서로 껴안지 않고는 못 버틸 것이다.

그리고 박상 작가의 작품은, 이제 곧 나올 <말이 되냐>에서 진가를 발휘할 것이니까. 나는 목이 빠져라 그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박상 작가는 술독에 빠지지 않고 글을 쓰고 있는지 아닌지 자못 궁금하다.


핑백

  • 초록불의 잡학다식 : 말이 되냐 - 박상 장편소설 2010-02-10 11:40:36 #

    ... 있었다고 한다. 그런 논란 덕분인지 첫 단편집이 나오는데 3년이 걸렸다. 이 그의 첫 출판된 책이다. (이 책에 대해서도 나는 사심이 깃든 독후감을 쓴 적이 있다. 이원식 씨의 타격 폼 [클릭] 이런 독후감을 쓰고도 박 작가로부터 형 소리를 듣고 있으니 박 작가는 대인배에 틀림없다.) 위 독후감에서도 박 작가의 진가는 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 바 ... more

덧글

  • 우기 2009/09/25 22:48 #

    같은 일을 하는 분 중에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가지고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인 것같습니다.

    부럽습니다.
  • 초록불 2009/09/26 14:13 #

    ^^
  • 한도사 2009/09/25 23:22 #

    저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읽고나서는 플럭서스 그룹의 존 케이지의 음악을 듣고난 후에 느꼈던것과 비슷한 느낌이 남았습니다. 박상 작가는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 초록불 2009/09/26 14:13 #

    40대와 30대가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 다르다는 말을 박언니가 하더군요...^^
  • joydvzon 2009/09/26 10:29 #

    "박상 작가는 일단 문장이 좋습니다."라고 그제 기자들 모인 자리에서 열변을 토했었는데 록불님이 포스팅을 올리셨네요. ^^
  • 초록불 2009/09/26 14:10 #

    문장이 좋지요. "뭔가 너무 고상하고 문장이 어려워서"라는 말은 사실 순문학 작가를 놀리는 말로 쓴 거랍니다. (비밀 폭로)
  • catnip 2009/09/26 12:38 #

    인터넷서점 유효기간 다되어가는 포인트로 무슨 책을 또 살까 고민중이었는데..
    참고해보겠습니다.^^
    다만 알라딘이 아니라 다른 사이트라서..
  • 초록불 2009/09/26 14:13 #

    어느 곳에서 팔리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