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에 대한 꿈? *..역........사..*



나관중의 삼국지 102회에 보면, 목우와 유마라는 로봇이 등장합니다.

過了數日 木牛流馬皆造完備 宛然如活者一般 上山下嶺 各盡其便。眾軍見之 無不欣喜。
불과 며칠에 목우와 유마가 모두 완성되니 살아있는 것이나 다름 없어 산을 오르고 고개를 내리는 것이 편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군사들이 그것을 보고 기뻐했다.


이것은 단지 소설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실제 역사서에도 적혀 있는 것입니다. 가령 자치통감 권 72에도,

亮帥諸軍入寇 圍祁山 以木牛運。
제갈량은 군사를 이끌고 도적을 쳤는데, 기산을 포위하고 목우로 군량을 운송하였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런 신묘한 것이 만들어졌으니 후대에 어찌 이런 것을 다시 만들어보고자 하는 노력이 없었겠습니까?

조선 시대 목우를 만들어 운송 수단으로 삼으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발명을 좋아하는 세종대왕 때 일이죠.

세종 69권, 17년(1435 을묘 / 명 선덕(宣德) 10년) 9월 4일(임신) 2번째기사
급제 이적이 목우를 바치니, 상의원에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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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제(及弟) 이적(李迹)이 목우(木牛)를 만들어 바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장차 친히 관람하겠다.”
하면서 상의원(尙衣院)에 내렸다.


적벽 땅에 있는 목우 모형


만든 사람 이적李迹은 대제학 이행의 아들로 태종 원년에 2등으로 급제하여 장흥고직장(長興庫直長)이 되었고 그후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오고 왕의 명에 따라 천문을 배우고, 양잠을 익혀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 호조참의, 풍해도관찰사, 공조참판을 거쳐 다시 명에 다녀왔고 다녀온 뒤에는 공조판서, 경기감사를 역임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이적은 매부의 일로 곤경에 처합니다. 매부 김훈金訓은 문과로 급제한 선비였으나 무예를 좋아하여 활로 맹수를 잡는 등 뛰어난 솜씨를 선보이고 성격도 거칠었습니다. 수원 관기 벽단단碧團團을 사랑했는데, 벽단단의 숙모 소매향小梅香은 정종을 모시는 궁인이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김훈은 정종을 만났고 정종은 그에게 활과 화살, 옷을 하사했습니다. 상왕과 이처럼 얽히면 곤란하다 생각한 이행은 이적을 시켜 김훈을 고발케 했습니다. 자칫 사형을 당할 수 있었지만 태종이 관대히 용서해서 장 100대를 때리고 귀양보내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적은 이 일로 김훈에게 내심 미안했을 터인데, 이종무가 여진을 정벌하러 떠나게 되자 김훈을 천거해서 따라가게 했습니다. 이 일이 탄로나면서 관직을 박탈당했습니다. 김훈도 노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큰아들 신미는 좌절하여 중이 되었다가 후대에 요승이라는 평을 얻었습니다(세조와 안평대군은 이 중을 몹시 따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집현전에 들어가 세종이 아끼는 학자가 되었고 부원군의 지위까지 올랐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수온金守溫.

강등된 이적이 세종의 마음에 들고자 목우를 만들어 바친 것이죠. 그러나 그리 성공적인 작품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이적은 뒤에 아버지 이행에게 불효한 일로 유산을 못받게 되자 유서를 위조하여 재산을 가로채려다가 들통이 나서 하옥되고 맙니다.)

세종 101권, 25년(1443 계해 / 명 정통(正統) 8년) 9월 27일(무인) 2번째기사
유학 이숭로가 제갈양의 제도를 모방하여 나무소를 만들어 올렸으나 소용에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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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幼學) 이숭로(李崇老)가 제갈양(諸葛亮)의 제도를 모방하여 목우(木牛)를 만들어서 올리고, 아울러 상서(上書)하여 그 제작한 연유를 논하였는데, 다 맹랑하여 보잘것없고, 그 제작한 것도 역시 소용에 맞지 아니하였다.


8년 후 다시 다른 사람에 의해 목우가 바쳐졌는데, 이번에는 대번에 형편없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종 실록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때 목우를 만들었던 사람이 또 있습니다.

성종 55권, 6년(1475 을미 / 명 성화(成化) 11년) 5월 25일(계유) 4번째기사
석강에 나아가서 목우·유마를 지금 만들 수 없는가 물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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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강(夕講)에 나아갔다. 강독(講讀)하다가 ‘승상(丞相) 양(亮) 이 목우(木牛)·유마(流馬)를 만들어 양미(糧米)를 날라다가 사곡(斜谷) 어귀에 모았다.’는 대목에 이르러, 임금이 묻기를,
“목우·유마는 지금 만들 수 없는가?”
하니, 시강관(侍講官) 홍귀달(洪貴達)이 대답하기를,
“만든 제도는 이 주(註)에 상세히 적혀 있으나,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우승지(右承旨) 유권(柳睠)이 아뢰기를,
세종조(世宗朝)에 최혼(崔渾)이라는 성품이 정교(精巧)한 자가 있었는데, 세종께서 명하여 목우를 만들게 하였으나, 형체는 갖추었으되 가지는 못하였습니다. 제갈양이 어떠한 방법을 써서 운행을 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이숭로나 최혼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 수 없군요. 위 글에 나오는 승상 "양"은 물론 제갈공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목우를 만들고자 한 노력은 이처럼 실패했는데, 그럼 목우만 만들려고 했을까요? 아닙니다.

연산 34권, 5년(1499 기미 / 명 홍치(弘治) 12년) 7월 7일(을축) 1번째기사
군사에 쓰는 작은 유마를 김응문이 제작하여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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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앞서 김응문(金應門)이, 작은 유마(流馬)를 만들어 올렸는데, 이를 의논하도록 명하였다. 윤필상이 의논드리기를,
“목우·유마(木牛流馬) 의 제작은 제갈양(諸葛亮) 후로는 그 기술을 전한 자가 없었으며, 세종·세조 같은 성군으로서도 또한 시행하지 못하셨는데, 지금 비록 그 제작을 강구한다 할지라도 만들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그러나 김응문이 여기에 생각을 두어 그 형체를 만들어서 아뢰었으니, 폐각(廢却)할 수 없는 일이므로 공장(工匠)을 명하여 그 제작을 세밀히 살펴서 사용 여부를 시험하도록 함이 어떠하옵니까.”
하고 신승선은 의논드리기를,
“지금 유마를 보옵건대, 옛날 제도와 합치하는 것 같으니, 교장(巧匠)으로 하여금 이 양식대로 조작하여 시험하게 하는 것이 온당합니다. 다만, 우리 나라는 산천이 구불구불하여 중국의 평원 광야의 지대와 같지 아니하므로 행용하지 못할 듯하옵니다.”
하고 정문형은 의논드리기를,
“목우·유마의 제도를 후세에서는 사용할 수 없음은 전일 의논할 때에 이미 다 말하였으며 또 지금 김응문이 만들어 올린 체제가 너무나 작아서 사용 여부는 전혀 알아볼 수 없으니, 김응문으로 하여금 그 체제를 크게 제작하도록 하여, 미곡을 실어 시험하면 그 운용의 편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고 한치형은 의논드리기를,
“목우·유마는 비록 옛날 제도의 전한 바라 할지라도 세종·세조조에서 행용하려고 여러 모로 제작하였으나 행용하지 못하였으니, 신의 뜻으로는 행용할 수 없을 듯하옵니다.”
하고 성준·이극균·이계동은 의논드리기를,
“김응문이 만들어 올린 유마(流馬)의 제도가 교묘하기는 하나 그 높은 데로 끌어올리고 낮은 데로 밀어 내림에 있어서 지족(支足)이 파괴되기 쉬우므로 행세가 멀리 운행하기 어려울 것이며, 또 구부리거나 주선할 수 없어 험한 데를 운행하기도 또한 어려우므로, 이는 반드시 옛사람이 만들었던 제식과는 다른 듯합니다. 그러나 이를 시험한 후에 폐기하여도 늦지 않으니, 군기시로 하여금 이 양식에 의거, 제작하여 시험해보게 하소서.”

하고 박건·신준은 의논드리기를,
“유마는 제갈양이 사용한 것이오나 후세에 이를 계승한 자가 없었습니다. 지금 김응문이 스스로 만든 소형을 보건대, 이것으로는 그 행용 여부를 헤아릴 수 없으니, 교장(巧匠)으로 하여금 김응문의 지휘를 받아 1건을 만들어 시험하도록 함이 어떠하옵니까.”
하고 홍귀달은 의논드리기를,
“목우·유마의 제도는 《촉한기(蜀漢紀)》의 주(註)에 갖추 기재되어 있으나, 이를 알아 볼 수도 없고 그 제도를 상세히 아는 자도 없으므로, 제갈양 이후로 행용한 자가 있음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김응문이 올린 글과 제작한 바를 보옵건대, 자못 의연(依然) 하니, 김응문은 지교(智巧)가 있는 자인 듯하오나 어찌 다 공명(孔明) 의 제도에 합치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나라의 지리는 대부분 험악한 데가 많으므로 비록 이를 사용코자 하여도 어려울 듯합니다. 평지에서 자그마한 운반에는 혹시 쓸 만도 하거니와, 대군중에서 이것으로 군량을 운반하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하고 여자신은 의논드리기를,
“김응문이 만들어 올린 목마(木馬)는 가령 운전할 수 있다 할지라도 우리 나라 산곡의 험한 곳에 어떻게 운용하겠습니까. 듣자옵건대, 세종 대왕께서 옛날 제도를 강구하도록 하였으나, 마침내 제작하여 사용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성준의 의논을 좇았다.


성준의 의견을 따랐다 하니 만들어 보긴 했을텐데 성패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성공했다면 널리 사용하였을 것이니 실패한 모양입니다. 대체 어떤 구조로 만들어 스스로 움직이게 했을지 자못 궁금하네요.

또 구부리거나 주선할 수 없어 험한 데를 운행하기도 또한 어려우므로
又不能屈曲周旋, 涉險亦難


해석이 좀 이상한데, 결국은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아서 굴곡진 곳을 다니기에 적합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평평한 곳에서 운용할 수 있는 어떤 수레를 만든 것이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이런 목우유마의 제도는 우리와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조선 조정은 해운에 집중하기로 하고 윤선輪船을 제작하는 등 조운을 정비하는 방법으로 수송법을 변경합니다. 윤선이란 물갈퀴가 둘레에 고착되어 있는 차륜車輪을 뱃전에 달아 놓고, 그것을 회전시켜 배를 추진하는 것입니다.

명종 10권, 5년(1550 경술 / 명 가정(嘉靖) 29년) 2월 25일(경신) 1번째기사
조강에서 상진이 윤선을 제작하여 양곡을 수송할 것에 대해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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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조참(朝參)을 받고 조강에 나아가니, 영경연사 상진이 아뢰었다.
“전에 안현(安玹)이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 《대학연의보유(大學衍義補遺)》를 보고 윤선(輪船)의 제도를 살펴 깊이 연구하여 당시에 병사(兵使)로 있던 김순고(金舜皐)로 하여금 윤선을 제작하게 하여 배안을 6∼7층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 만일 이 윤선을 많이 제작하여 배를 잘 다루는 사공으로 하여금 마음대로 운행하게 한다면 양곡을 수송하는 일이 실로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제갈양(諸葛亮)이 위(魏)나라를 칠 때 목우유마(木牛流馬) 를 가지고 군량을 운반하였으니, 이것은 임기응변으로 적을 제압하는 좋은 계책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본다면, 배를 제작하는 방법을 한결같이 중국의 제도에 의하고 그것으로 양곡을 수송하게 한다면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윤선이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명종 15권, 8년(1553 계축 / 명 가정(嘉靖) 32년) 9월 3일(병오) 1번째기사
망원정에 거둥하여 관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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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망원정(望遠亭)에 거둥하여 관무재(觀武才)하고 새로 제조한 윤선(輪船)을 시험한 다음 심연원과 윤개에게 전교하기를,
“종친(宗親)과 재신(宰臣)들로 하여금 시를 짓게 하려고 하니, 지금의 풍경으로 제목을 정하라.”
하니, 즉시 ‘망원정에 머무르다[駐蹕望遠亭]’라는 제목의 칠언 율시(七言律詩)를 짓도록 아뢰었다. 예조 판서 정사룡(鄭士龍) 등 6명이 입격하였는데, 차등 있게 상사(賞賜)하였다. 해거름에 서교(西郊)에서 관가(觀稼)하고 유시(酉時)에 환궁하였다.


아직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던 때, 스스로 걷는 목우나 유마는 만들 수 없었겠지요. 오늘날 도로를 씽씽 달리는 온갖 승용차들을 옛날 사람들이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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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ishi 2009/09/27 21:05 #

    목우유마는 그저 수레의 개량이었단 이야기도 어디서 본 것 같은데요..
  • 초록불 2009/09/27 21:09 #

    동력장치가 없던 때니까 그것이 당연한 추리일 겁니다. 촉으로 가는 잔도가 길이 좁아서 그곳을 쉽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든 "일륜거"라는 말도 있지요.
  • 러움 2009/09/27 21:07 #

    목우가 웃는 사진을 보니 못 만든 자들의 약오름이 이입되는 듯 합니다..(..;) 쿨럭;
    옛날 사람들 말씀을 하시니 코미디 프로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가 떠오르네요. :)
  • 초록불 2009/09/27 21:09 #

    저런 것이 뚜벅뚜벅 움직이면 재밌었을 것 같습니다...^^
  • asianote 2009/09/27 21:10 #

    그래서 전무후무 제갈무후인 게지요. (먼 바다)
  • Ya펭귄 2009/09/27 21:11 #

    회전 기구는 일단 베어링기술부터 확보해야 하는.....
  • C문자 2009/09/27 21:11 #

    일본 만화가가 그린 삼국지가 생각나네요.
    거기서는 일륜거로 그려졌던 것 같습니다.
  • 존다리안 2009/09/27 21:16 #

    http://zondarian.egloos.com/3567497
    자세한 건 링크된 개렉터님 블로그를 참조하시길.... 전설에 한한다면 이런 엄청난 괴물도
    있었습니다.
  • 을파소 2009/09/27 21:32 #

    또 꿈얘기인 줄 알고 들어온 사람은 저 뿐인가 보죠?ㅡㅡ;
  • 초록불 2009/09/27 21:47 #

    하루에 꿈을 두 번이나 꾸기는 어려워서...
  • windxellos 2009/09/27 21:40 #

    목우나 유마의 제작 동기나 운용 지역을 감안하자면 이건 애당초 '험지에서의 운용'을
    전제하고 만든 것일 터인데, 조선시대의 물건은 '평지에서나 쓸 수 있다'라고 하고 있어
    그 운용개념이 정반대이니 초장부터 글러먹은 물건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다만 중국 삼국시대 당시의 물건을 제대로 재현했다면 산지와 험로가 많은
    조선의 특성상 육상운송에서 꽤 유용하게 쓰였을 것 같기는 하군요. 그래서
    조정에서도 목우와 유마에 나름의 관심을 보였던 것일까요.
  • 초록불 2009/09/27 21:47 #

    결국은 육상 운송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겠지요.
  • 나인테일 2009/09/27 22:02 #

    http://www.youtube.com/watch?v=W1czBcnX1Ww

    하지만 결국 21세기엔 진짜로 만들어 내는군요...;;;
    (끝내 나무로는 못 만들어 제갈 승상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만..OTL...)
  • 초록불 2009/09/28 06:40 #

    재밌네요...^^
  • blue ribbon 2009/09/27 22:02 #

    윤선이라면.
    동양이 서양보다 앞서는거군요.
  • 초록불 2009/09/28 06:38 #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 我行行 2009/09/27 23:32 #

    목우유마는 인력거로 보아야 할 것 같은데요, 윤선의 동력이 궁금합니다.

  • 들꽃향기 2009/09/28 05:15 #

    윤선의 동력은 송대의 윤선처럼 발로 밟아서 크랭크를 움직이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남송시기 수군이 확충되어 대형윤선이 나왓을 때에는 마소를 사용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있는데, 이것은 출전을 확인하지 못해 부기만 합니다.
  • 네비아찌 2009/09/27 23:37 #

    목우유마는 윗 댓글 다신분들 말씀처럼 일륜 손수레로 보는게 정설인데, 조선 시대에는 삼국지의 묘사 그대로 다리 넷 달린 "견마형 로봇"이라고 믿었나 보네요.^^;
    윤선은 정말 어떤 동력으로 외륜을 돌렸냐가 관건인데....아마 다람쥐 쳇바퀴처럼 사람의 힘으로 돌렸겠지요? ^^;
  • 초록불 2009/09/28 06:39 #

    저도 궁금하긴 한데, 잘 모르겠네요. 당시에는 인력 이외의 대안은 없었을 겁니다.
  • lolicon 2009/09/27 23:38 #

    개인적으로는 접촉면이 매끈한 형태의 바퀴가 아니라, 현대의 캐터필러 등(또는 눈 올때 감는 체인이라던가)과 비슷한 원리를 가지는 형태로 험지에 적합한 수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Allenait 2009/09/27 23:39 #

    진짜 목우유마는 수레의 개량형 같습니다
  • Joshua-Astray 2009/09/28 03:40 #

    궁금해서 그런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말고 정사 '삼국지'에도 목우/유마에 대해 저런 식으로 서술이 되어 있나요? 저절로 움직이고 이를 이용해 위나라의 물자를 대량으로 빼앗는 데에 성공했다고...
  • 초록불 2009/09/28 06:37 #

    정사에는 목우와 유마로 물자를 날랐다는 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이용해 위의 물자를 빼앗았다는 것은 나관중의 창작입니다...^^

    또한 목우와 유마가 저절로 움직였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 들꽃향기 2009/09/28 05:20 #

    개인적으로 조선이 육운보다 조운에 중점을 둔 이유의 일부를 이를 통해 볼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

  • 초록불 2009/09/28 06:38 #

    고맙습니다.
  • 차원이동자 2009/09/28 10:37 #

    윤선보니 갑자기 생각나는 남북전쟁때 증기선...
    오! 우리가 앞선걸까요? 아니면 다른나라에도 저런게 있었던걸까요?

    그나저나 목우유마에 굳이 다리가 아니라 케터필러나 바퀴를 달고 뒤쪽 추진력을 크게 줬다면...
    소와 말이 아니겠죠.
  • 초록불 2009/09/28 10:50 #

    서양의 윤선은 화륜선이라고 불렀지요...^^
  • BigTrain 2009/09/28 17:43 #

    일륜거로 보는 게 정설인 모양이네요. 삼국지 읽으면서 대체 어떤 도군지 궁금해 했었는데 좀 허탈... ^^:
  • 초록불 2009/09/28 18:12 #

    사람에 따라 유마만 일륜거로 보기도 합니다.
  • 나이브스 2009/10/20 02:09 #

    아! 이연걸 주연의 모험왕 초반에 어떤 박사가 만지작 거리가 대량 살상 일으킨 그 소 모양의 전차가 저기서 착안 된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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