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눈먼 자들의 도시 - ![]()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 |
갑자기 실명을 가져오는 바이러스가 나라를 덮친다. 이 소설은 매우 디테일하고 섬세하게 진행되지만 어떤 부분은 일부러 묘사하지 않는데, 여기가 어떤 나라인지 그 바이러스의 정체가 무엇인지(심지어는 그것이 과연 바이러스인지조차) 설명하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도 나오지 않는데, 컴퓨터가 처음부터 등장하지 않으니까 좀 오래된 소설인지도 모르겠다, 라고 쓰고 집필한 때를 보니 1995년. 그리 오래된 소설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런 것은 이 이야기를 읽는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처음 몇 문장만 읽는 것으로 족하다. 어떤 책은 처음 시작을 따라가기가 힘든 때도 있지만, 이 책은 그야말로 독자를 책 속으로 끌어당긴다. 책은 거의 문단도 바뀌지 않고, 대화를 표시하는 문장부호도 없기 때문에 매우 빡빡하게 보인다. 말하자면 책을 읽지 않고 들여다보았을 때는 두껍고 편집도 빡빡한 따분한 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고, 읽기 시작하면 책의 편집이 아니라 책의 내용에 대해서 불편해 하면서 끝까지 읽게 될 것이다.
작가는 모든 것을 잘 계산했다. 눈이 멀고, 눈이 먼 소집단을 밀폐된 공간에 집어넣었다. 현실적으로 서로 만났던 사람들이 그렇게 다시 한 공간에 수용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사건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우연의 조작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라는 너무 넓은 공간에서 너무 넓은 인원이 이 사건에 대처하는 모습을 그릴 때 일어날 모든 문제를 회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강점이라 하겠다.
적절한 순간에 외부에서 다른 사람들을 투입함으로써 기존 질서를 붕괴시키고, 외부 사회의 소식을 전달하게 한 것도 참으로 세련되고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처리되었다. 재봉선이 없는 옷을 보는 것 같다.
이 축소된 사회에서 우리는 일상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식량의 통제, 무력의 등장. 공포. 그리고 굴복.
상상력을 조금 더 발휘해보면 슈퍼맨이 혼자서 이 지구 상의 문제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가라는 데까지 사고의 영역을 넓혀볼 수도 있다. 아마 내 이런 상상까지 같이 했던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인데, 읽기는 편하다. 읽기는 어렵고 생각할 것은 쥐꼬리만한 소설을 읽는 것보다 훨씬 좋다. 눈뜬 자들의 도시도 읽어볼까 궁리 중이다. (봐야 할 책이 순서를 서 있는 탓에...)
덧글
사실, 주제 사라마구답지 않은 작품이 가장 유명해서 좀 미묘한 작품이죠^^ 그래도 재밌고 좋은 책입니다.
점점 빠져들게 되더군요. 그리고 무서웠습니다.
대충대충봐도 대충이해가가는 소설보단 저런게 낫죠.
다른 건 다 차치하고 눈뜬 자들의 도시는 눈먼 자들의 도시보다 재미가 없더군요.
눈뜬 자들의 도시는 정치적인 내용에 치중해서 재미가 덜하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물론 저도 아직 읽진 않았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