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변한다는 것 2 *..만........상..*



본래 글쓰기란 다른 대상에게 전달하기 위해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글쓰기에는 대상이 있다.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일 경우도 있는데, 그걸 일기라고 부른다.

신문이나 잡지 등에 글을 쓸 때는 그 신문이나 잡지의 구독자가 글을 읽게 되므로, 그들에 맞춰서 글을 쓰게 된다. 가령 신문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성인들이 보는 것이기 때문에, 성인층을 대상으로 그 지적인 수준에 맞춰서 글을 쓰게 된다. 조선일보라면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경향이라면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므로 그에 맞춰서 글을 쓰게 된다. 어린이 신문에 영화에 대한 글을 실을 때와 씨네21에 영화에 대한 글을 실을 때, 똑같은 수준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일 있다면 그런 필자는 재빨리 잘라버려야 한다.)

이렇게 자기 글을 읽을 대상을 알고 글을 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블로그의 문제점이 도출된다. 블로그는 흔히 말하듯이 불특정다수가 구독하는 공간이다. 자신의 글을 열살 어린이도 보고, 쉰 살 전문가도 본다. 어린이가 이해하게 쓴 글에 전문가가 와서 토를 달면 대응하기가 난감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제법 수준있는 전문가들을 향해서 쓴 글에 분별력 낮은 사람이 와서 헛소리를 하면 난감하다. 바로 "난독증" 소리가 튀어나간다.

사람들은 글을 읽는 대상이 특정되지 않았을 때, 대개는 자기 자신을 가상의 독자로 삼고 글을 쓴다. 자신 정도의 이해력이 있는 사람들을 향해 글을 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게 가끔은 알 수 없는 결과를 빚는다. 가령, 이 정도는 당연히 알겠지, 라고 생각한 것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르는 경우를 발견한다. 반대로 이런 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한 것은 의외로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심지어는 오류를 지적 당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건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경우, 다른 블로그에서 비슷한 경우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유명 블로거가 쓴 글인데, 너무 뻔한 내용이거나 거의 자신과 동일한 포스팅을 했는데도 상대방 포스팅에는 댓글이 버글버글하고 나는 그 1/10도 안 되는 방문객에 댓글도 한두 개에 불과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명백한 오류가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 문제는 이번 글의 논지가 아니니까 여기서 생략.)

이런 일이 인류 역사상 언제 있었을까?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구독자가 있는 경우는 사실 언제나 있었다. 신문에 글을 싣건, 출판을 하던 간에 일단 세상에 글이 노출되면 그 글을 누가 읽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 따른 피드백이 거의 실시간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아주 최근에 생긴 일이다. 더구나 그 피드백의 대상은 점점 넓어지고 시간은 반비례하여 짧아지고 있다.

나는 한 곳에서 꾸준히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나처럼 한 자리에서 오래 손님을 받다보면 구독자가 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나는 피드백을 한정시키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과거 이글루스에 미성년자가 없을 때는 좀 더 확실히 피드백이 조정될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대상이 조금 넓어졌다.

그러나 근래에 만들어진 블로그나, 불특정 다수 모두가 피드백을 할 수 있는 구조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바로 이점, 즉 누가 자신의 글을 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서(왜냐하면 글을 읽은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이 오니까) 블로그를 운영해야 한다. 따라서 그런 광범위한 피드백을 허용하는 사람들은 악플에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다. 누누히 말한 바 있지만 우리는 우리가 인정할만한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비평에만 신경쓰면 된다. 난독증의 리플을 볼 때, 내가 글을 어렵게 쓴 것인가를 반성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난독을 한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을 모르는 한에서는 아무 필요 없는 자기 비하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 결국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준이 아닌 사람들은 그 블로그에 찾아오는 일을 그만두게 되고 만다. 그것은 단지 수준이 낮아서 포스팅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구독하던 사람의 수준이 높아서 더 이상 그 블로그에서 정보를 찾거나 견해를 참고할 필요가 없을 때에도 일어난다.

또한 댓글, 혹은 트랙백 등을 통한 교류가 일어나면서 이 인터랙티브한 과정은 발행자와 구독자의 수준을 조정하여 평행한 상태로 이끌어주는 역할도 서서히 하게 된다. 어떤 글에 어떤 내용이 어떤 반응을 일으키며, 어떤 부분을 생략했을 때 오해가 일어나는지를 발행자가 차츰 이해하게 되면서 글쓰기 능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과정은 사실상 인류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비약적 발전을 상징하는 멋진, 그야말로 원더풀한 일이라 할 수 있겠는데, 여기에 의외의 복병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그것은 인간이 이성과 감성을 같이 가지고 있다는 역시 너무나 당연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의 감정을 쉽게 해치지 않기 위해서 어떤 장치를 수천년간 개발해 왔다. 그리고 그걸 동양에서는 예의, 서양에서는 에티켓이라 부른다. 에티켓의 기본은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개인적인 공간까지 침범하지 않는 것인데, 디지털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서는 이것을 무시하고 뛰어넘기가 매우 간단하다. 물리적인 방어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것이 "솔직함"이라는 미덕의 포장을 쓰게 되면서 사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 채 남발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오늘은 이만...

덧글

  • C문자 2009/10/12 16:54 #

    깊이 생각하고 갑니다.
  • 초록불 2009/10/12 17:08 #

    ^^
  • 파리13구 2009/10/12 16:56 #

    저는 항상 20대 대학재학 수준 정도의 남자들을 가상 독자로 삼아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방문자들이 거의 20대 인지라... 그 중의 70%는 남자...
  • 초록불 2009/10/12 17:08 #

    가상 독자를 여성으로 바꿔보면 여성 방문객이 늘어날지도 몰라요.
  • 고독한별 2009/10/12 17:01 #

    잘 읽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고백을 하자면...

    [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일 경우도 있는데, 그걸 일기라고 부른다. ]

    ... 저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일기는 어른들에게 보이고 검사를 받기
    위해서 쓰는 줄 알았다죠. (...) 비단 애들뿐만 아니라, 군대의 수양록도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쓰는 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카투사였기
    때문에 한국군 수양록은 논산 훈련소에서 맛만 봤습니다만... orz)
  • 초록불 2009/10/12 17:07 #

    한국 사회의 병폐지요. 예민한 친구 중에는 그런 전시용 일기와 진짜 일기를 구분해서 쓰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 Ya펭귄 2009/10/12 17:07 #

    어린이 신문에 영화에 대한 글을 실을 때와 씨네21에 영화에 대한 글을 실을 때, 똑같은 수준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일 있다면 그런 필자는 재빨리 잘라버려야 한다.)

    ==> 잘라버리는 건 너무 잔혹하고 조직의 '교육적 지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초록불 2009/10/12 17:07 #

    ^^
  • asianote 2009/10/12 17:20 #

    블로그는 성격상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되니까 조금 다르지 않을까요?
  • 초록불 2009/10/12 17:21 #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 asianote 2009/10/12 17:22 #

    굳이 글에서 읽는 사람을 상정하고 쓰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 초록불 2009/10/12 17:29 #

    >사람들은 글을 읽는 대상이 특정되지 않았을 때, 대개는 자기 자신을 가상의 독자로 삼고 글을 쓴다.

    대상을 상정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다 위의 경우입니다.
  • Allenait 2009/10/12 17:37 #

    저도 일기를 어른들에게 보이고 검사맡는 걸로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군대 가서 수양록 쓸때도 좀 비슷하더군요. 내용은 안보지만 그래도 얼마나 썼는지 검사하더군요(...)
  • asianote 2009/10/12 17:43 #

    저는 병장때까지 수양록 썼습니다. OTL. 집요하게 검사하더군요.
  • 갑그젊 2009/10/12 18:21 #

    <난독증의 리플을 볼 때, 내가 글을 어렵게 쓴 것인가를 반성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난독을 한 그 사람의 지적 능력을 모르는 한에서는 아무 필요 없는 자기 비하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난독증의 리플을 볼 때, 저는 우선 싸우고 봅니다ㅡㅜ;; 한참을 싸우다가 '아 또 병림픽했네'하고 그만두는 고질병이 있습니다..ㅜㅜ 헛소리는 상큼하게 무시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데, 그게 잘 안 되네요. 나름대로 '소통'을 블로그질의 원칙으로 삼고 있는데, 요새는 소통의 대상이 아닌 '것'들이 자꾸 들러붙어서 혈압이...(..)
  • 초록불 2009/10/12 18:55 #

    나이가 나이니 만큼... 저는 그 시절에 훨씬 더 신랄하게 싸웠습니다...^^
  • 네비아찌 2009/10/12 18:56 #

    오늘 말씀은 마치 저에게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2년 전에 모 무기체계에 대해 블로그에 끄적거린 낙서가 지난 주말에 디씨 기갑갤에 흘러들어가서
    한바탕 욕을 먹었는데, 그때 디씨 기갑갤에 달린 댓글 중에
    오늘 초록불님이 말씀하신,
    블로그는 일기장이 아니라 불특정다수가 보는 공간이다.
    누가 자신의 글을 읽을지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포스팅을 해야 한다. 이 말씀과 같은 주제의 비판댓글이 있어서 제 마음을 찔렀습니다.
    주말 동안 마냥 노느라 그 부끄럼을 잊을 뻔 했는데,
    오늘 초록불님의 글이 다시 그 부끄럼을 일깨워 주네요.
    포스팅을 한 달에 하나도 못하는 한이 있어도 말씀하신 점을 잊지 않고 포스팅을 해야겠습니다.
  • 초록불 2009/10/12 18:57 #

    아, 글을 중간에 끊어서 그런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것 같은 자세가 제일 좋은 자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3편에서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 갑그젊 2009/10/12 19:05 #

    사실 저도 기갑갤에서 그 '블로그는 개인 공간이 아니다'는 글을 보고 지금까지 가졌던 생각을 바꿨다능;;

    블로그가 웹에 노출됨과 동시에 그 블로그는 개인의 장소가 아님을 깨달았다능.
  • 초록불 2009/10/12 19:48 #

    값그절님 / 3편도 보아주십시오.
  • Niveus 2009/10/12 19:02 #

    개인적으로 블로그 자체를 그때그때의 기록의 차원, 그리고 제 생각을 어느정도 공개해두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원하는 공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피드백이 거의 없다는것일까요(...)
    악플보다 무서운건 무플인듯합니다. (笑)
  • 초록불 2009/10/12 19:47 #

    무플이 무섭죠...^^
  • leopord 2009/10/12 23:29 #

    블로그는 게시판 시대와 달리 감정과 일상의 개입이 더 많아서, 그만큼 열린 동시에 발행자의 정신적 데미지 가능성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 초록불 2009/10/12 23:36 #

    그런 셈입니다.
  • 머미 2009/10/13 09:48 #

    인격 수양의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 초록불 2009/10/13 12:51 #

    하하. 명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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