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부리는 사람 *..만........상..*



1.
사람을 부릴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쉽게 말하자면 파출부를 못 쓰는 사람 같은 거다.

2.
파출부를 부르면 일을 시켜야 하는데, 일을 시키는 것이 일단 어렵다. 알아서 착착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할까 두렵다. 왜냐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 무엇무엇을 어찌어찌 하라고 말해야 하는데, 우선 그 말을 하는 게 미안하다. 그런데 돈 주고 시키는 건데 이것조차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3.
정작 싫은 것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리저리하라고 했는데, 가서 보니 요리조리 해놓았다. 다시 이리저리 하라고 말하자니 상대가 부루퉁하게 대할까 싫다. 비유하자면, 차일 것이 두려워 고백하지 못하는 심경이랄까.

4.
남편에게 집안 일을 못 시키는 아내의 마음도 비슷하다. 남편이 시원찮게 일을 하면 복창이 터진다. 그 간단한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궁시렁 대는 건 누구보다 잘한다. 일을 마치고 나면 생색은 오죽이나 잘 내는지! 하지만 결국은 못 참고 비키라고 하면 신경질을 부린다. 알아서 잘 할거니까 신경 끄라고 한다. 그렇게 일을 망치는 꼴을 한 번 보고나면 다시는 일을 시키고 싶지 않다.

5.
좀 더 발전한 조직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다. 아랫 사람에게 이런저런 일을 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제대로 일이 처리되지 않는 걸 보면 화가 난다.

일을 까먹고 안 하는 사람들도 있다. 회사라면 그러기 쉽지 않지만 친목 모임에서는 흔히 보이는 일이다. 그만큼 일을 소홀히 생각하는 것이라서 더 기분이 나쁘다.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한 번 말해주면 다음부터는 알아서 척척 해야 마땅한데, 그렇게 도통 되지를 않는다. 다시 설명하려니 짜증이 나고, 이쪽에서 짜증이 나면 듣는 쪽도 고운 얼굴일리는 없는데, 그러고나면 내내 그게 마음에 걸린다. 그냥 일을 지적한 건데 왜 부루퉁해지는지 알 수 없다. 아무튼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한 점이 다시 나를 괴롭힌다.

그런 마음고생이 싫으니까 그냥 내가 다 해버리기로 한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다시 화가 난다. 내 짬밥이 몇 년인데 시다바리 일까지 다 해야 한다. 더구나 밑의 것들은 으레 내가 해야 하는 일인줄 안다. 미치겠다.

6.
그래서 참다가 폭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래봐야 앞에서만 위로하는 척하고 뒤에서는 뒷다마 까는 일도 다반사다.

7.
어쩔 수 없이 남의 일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생색"을 잘 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보다는 일을 확실히 분담하고 책임과 권리를 나눠주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일을 맡은 쪽은 수고로움을 몸으로, 머리로 행해야 한다. 반면 시키는 쪽은 입만 놀리면 되는데, 입만 놀리면 되는 것을 불편해해서는 안 된다.

잘 못하면 불러다 다시 일의 프로세스를 가르쳐준다. 안 되면 종이에 매뉴얼을 만들어서 주는 것도 방법이다. 친목단체의 자질구레한 일에야 매뉴얼까지 필요치 않겠지만 회사 일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할 일이다. 친목단체의 일이라 해도 안 되면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다시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언젠가는 그 사람도 당신의 위치에 와야 하기 때문이다.

8.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잘 하는 사람일수록 아랫사람을 잘 못 부린다. 자신이 더 빠른 시간에 더 완벽하게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에 기준점이 매우 높은 탓이다. 더구나 자신은 처음부터 그 일을 척척 해냈던 경험이 있다면 더 그렇다. 놀란 라이언이 "왜 150킬로미터를 못 던지는 거야? 잘 봐, 이렇게 하면 돼. 참 쉽죠?"라고 말하는 격이다.

9.
입을 놀리는 수고를 아끼지 말라. 그러면 마음에 평화가 올 것이다.

덧글

  • asianote 2009/10/28 22:56 #

    스포츠에서 스타급 선수들이 감독을 잘 못하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고 있군요.
    스타급 선수들: 아니 왜 이렇게 쉬운 걸 못해!!!
  • 초록불 2009/10/29 09:06 #

    사조영웅문에서 곽정의 사부들이 곽정에게 답답해하는 이유도 여기 있죠.
  • 네비아찌 2009/10/28 22:58 #

    저는 스스로도 일을 잘 못하는데 아랫사람도 잘 못 부린답니다 ㅠ.ㅠ
  • 초록불 2009/10/29 09:07 #

    겸손의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 Allenait 2009/10/28 23:06 #

    8. 과외 뛸때였나 고등학교때였나 들었던 이야기가 있군요. 명문대, 그것도 공부 좀 했다는 천재형이 과외 뛰면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이 어떤 개념을 잘 모르거나 이해를 잘 못하는 걸 이해 못한다고 말이죠(..)
  • Charlie 2009/10/28 23:32 #

    사촌형 친구분이 흔히 말하는 '천재'였는데 제가 어릴때 영어를 가르쳐 준다고 한적이 있어요.
    "영어는 라틴어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에 기본인 라틴어단어를 알면......."
    ....
  • 발산과 수렴 2009/10/29 07:34 #

    알레나이트/ 전 뒤늦게 <개념>의 중요성을 깨우쳤다고나 할까요?

    찰리/ 그럴 바에야 <화학 배우기 전에 물리 존나 해야 쉬워진다>라고 말하는게 설득력있을듯^^
  • 초록불 2009/10/29 09:07 #

    Charlie님 / 덜덜덜...
  • 치오네 2009/10/28 23:08 #

    8번을 보니 지도교수님이 생각납니다... OTL
  • 초록불 2009/10/29 09:07 #

    8번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군요.
  • 을파소 2009/10/28 23:08 #

    일 잘하는데 아랫사람도 잘 부리면, 아랫사람은 대신 고생이 많을 겁니다.(...)
  • 초록불 2009/10/29 09:08 #

    대신 빨리 자리를 잡을 겁니다...^^
  • Niveus 2009/10/29 01:10 #

    .........무언가 가슴에 엄청나게 와닿는건 지금 제 후임이 생각나서일까요(...)
    아 눈에서 땀이 많이 나네요 ㅠ.ㅠ
  • 초록불 2009/10/29 09:08 #

    저런...
  • Hatchery 2009/10/29 02:09 #

    그래서 마라도나가 아르헨 국대를 말아먹고 있는것이군요...
  • 초록불 2009/10/29 09:08 #

    마라도나는 신의 손만 전수하면...
  • 보리차 2009/10/29 03:50 #

    저는 파출부를 못 쓰는(사람을 부릴 줄 모르는) 부류입지요. ^^a
    개인적인 소회가 깊어 삼가 트랙백합니다.
  • 초록불 2009/10/29 09:08 #

    트랙백 잘 보았습니다.
  • 2009/10/29 08:4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10/29 09:08 #

    맞습니다.
  • zert 2009/10/29 09:21 #

    저도 8번에 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일을 잘했던 건 아니고 잘했다고 스스로 생각했던거죠-_-;;

    생각을 바꾸고 관점을 바꾸면서 이것저것 부탁할 것은 부탁하고 시킬 것은 시켜서 나눠서 하니 마음도 편해지고 몸도 편해지더군요.
  • 초록불 2009/10/29 09:25 #

    마음도 몸도 편해진다는 경지에 이르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 marlowe 2009/10/29 09:28 #

    스타 플레이어가 스타 감독이 되기 힘든 것도 그때문이겠죠.
    (자기가 현역시절에는 쉽게 했던 걸 못하는 선수들을 이해하지 못하지요.)
  • 초록불 2009/10/29 11:05 #

    그 점만 이해하면 정말 좋은 감독이 되겠지요.
  • 허안 2009/10/29 10:06 #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 초록불 2009/10/29 11:05 #

    천만의 말씀을... 감사합니다.
  • catnip 2009/10/29 11:02 #

    오늘 인생 가르침은 정말 뭔가 공감하면서도 무척이나 답답함이 더 솟아나는 그러한 말씀이었습니다.ㅠㅠ
    입을 놀려서 오히려 일할 의욕 상실하게 만드는 노하우를 갖추고 있는 사람이 주위에 특히 윗자리에 있는 경우엔...참 어려운 문제지요...ㅠ_ㅠ
  • 초록불 2009/10/29 11:05 #

    윗자리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건 정말 문제지요.
  • 별빛수정 2009/10/29 16:27 #

    8번 절대공감...ㅠㅠ 일 잘하는데다 워커홀릭에 완벽주의자면...OTL 조직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 Niveus 2009/10/29 19:06 #

    ...모 티X스 만든 소프트웨어 사장님이 비슷한 패턴을 보이시죠(;;;)
    결과는 모두가 아시다시피 ㅠ.ㅠ
  • 2009/10/29 18:54 #

    그래서 전 지금 혼자 발표 준비를 하고 있군요 . OTL......(이렇게 자위라도 해야;;)
  • 갑그젊 2009/11/03 03:16 #

    으흐흐허허허ㅓ허허ㅓㅇ엉 전 아랫사람이 없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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