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Q가 말했다.
"지난 번 뼈 아픈 패배에 잠도 못 잤으리라 생각한다. 크크크. 그래서 이번엔 완전히 널 묻어주려고 왔다. 받아랏! 네놈이 더럽게 좋아하는 삼국사기닷!"
"어쩌라고?"
"신라본기를 본다. 고허촌장 소벌공이 ... 말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어 가보니 말은 없고 알만 있었는데 그 알에서 갓난아기가 나왔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흐흐,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군. 좋다. 그 밑에 보면 또 이런 말도 있다. 용이 알영정에 나타나 오른편 갈빗대에서 계집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어떠냐! 이단 콤보닷!"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냣! 이따위 황당한 이야기가 적혀 있는 <삼국사기> 따위를 믿는 주제에 왜 <환단고기>에 몇 구절 이상한 것 가지고 위서니 뭐니 지랄염병을 떠냔 말이닷!"
그래서 말해주었다.
"역사가는 사료를 통해서 역사를 구성하지. 그래서 사료 없이는 역사도 없다, 라고 말한다." (Charles Langlois and Charles Seignobos,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History (trans. by G. Berry, 1912), 17쪽, 임희완, <역사학의 이해>, 건국대학교출판부, 1994, 57쪽 재인용)
"잠깐, 논점에서 벗어나지 말라고. 너저분한 주석을 단다고 네 말이 권위가 있게 되는 건 아니야."
"그래, 그래. 사료의 정의, 사료의 종류 이런 것들 이야기하려면 날밤을 새도 모자라니까 핵심만 이야기하자. 네 말은 <삼국사기>는 '사료'인데 왜 <환단고기>는 '사료'가 아니냐는 거잖아."
"그렇지."
"둘 다 허랑방탕한 이야기는 들어있고."
"솔직히 말해서 <삼국사기>가 더 많지. <삼국유사>는 더더 많고."
"그건 니 생각이고."
그래서 또 말해주었다.
"왜 두 문건에 대해서 그런 차이가 벌어졌는지 설명해주마. <삼국사기>는 사료의 외적비판을 통과했는데, <환단고기>는 외적비판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아놔, 또 잘난 척하면서 이상한 용어 쓴다. 그런다고 검은 게 흰 게 되고, 흰 게 검은 게 되냐?"
"너희들이 역사학을 우습게 볼 뿐이지. 역사학의 사료 비판이란 이미 15세기에서부터 시작된 전문적인 작업이야."
"좋아. 그렇다치고. 그래서?"
"사료의 외적비판을 통과하지 못한 책은 위서일 뿐이고, 아무 가치도 가질 수 없어."
환Q가 흥분해서 말했다.
"아, 그러니까 똑같이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있는데, 왜 <환단고기>만 위서라고 그러냐고!"
"똑같지 않다니까."
"뭐가 안 똑같은데?"
"사료의 외적비판이란 문건 그 자체를 검토하는 거야. 그 내용을 보는 게 아니야."
"뭐가 어쩌고 어째? 문건 그 자체? 내용?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그래서 말해주었다.
"외적 비판의 첫 단계는 문건의 저술자를 찾는 거야. <환단고기>의 경우, 여러 명의 저자가 있는 것으로 나오고 있지. 이 중 몇 명은 실존인물의 이름을 가지고 있어."
"그것 봐!"
"흥분하지 말고. 하지만 저자명에 올라 있는 안함노와 원동중은 안함, 노원, 동중이라는 세 사람을 착각하여 잘못 쓴 것이 명백하므로 이 책은 여기에서부터 이미 <위서>임을 증명하고 있지. 더불어 이 책에 관련된 사람들 중 실존인물의 경우는 이 책을 지엇다는 다른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어."
"그거야 비전으로 내려오니까! 하지만 다른 책에 이 책의 편목이 나온다고!"
"첫 단계는 저술자에 대해서 비판하는 거라니깐. 하지만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지었다는 점을 숱하게 많은 문헌들에서 확인할 수 있어."
"흥, 겨우 그까짓 걸 가지고!"
"두번째 단계에서 사료의 연대를 확정하게 되지."
"연대야 말로 <환단고기>의 가치를 증명하지. 천문학으로 다 증명이 되었으니까."
"그건 역사의 ㅇ도 모르는 바보놀음이고. 우선 <환단고기>의 내용은 기원전 수만년까지 올라가는데, 그런 기록이 어떻게 전해져 왔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도 없어. 이 책에 대해서 확실한 증거는 1979년에 찍혀져 나온 책 뿐이야. 1979년 것이 원전인 거지. 그리고 이 책을 이른 바 '공개'한 사람은 마치 처음 공개한 것처럼 설레발을 쳤지만 이미 몇 년 전부터 각종 매체에 꾸준히 이 내용을 퍼뜨리고 있었어. 결정적으로 원전을 잃어버리고 기억에 의거해서 썼다는 증언까지 나와 있는 형편이지."
환Q가 분노해서 으르렁댔다.
"이유립 선생님은 절대 거짓말할 분이 아니야!"
"그건 네 생각이고. 누군가는 히틀러도 절대 거짓말 안 할거라고 믿겠지."
"실증밖에 모르는 식민빠 같으니라고!"
그래서 말해주었다.
"역사는 비판의 학문이야. 의심하고 의심하는 거지. 그래도 진실에 다가가기는 쉽지 않아. 그런데 <환단고기>는 의혹 덩어리에 불과해. 안의 내용도 엉터리지만, 무엇보다도 사료 외적비판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사료로 이용해서는 안 되는 거야. 너희가 이 책을 진짜 역사의 일부에 편입시키고자 한다면 그 방법은 간단해. 사료의 외적 비판을 견딜 수 있는 증거를 찾아내면 돼."
"그런 자료는 이미 일제가 다 없애버렸다고!"
"그건 개뻥인 거 이미 다 증명되었고."
"증명은 무슨 증명! 네 놈이 친일파라서 일본 놈들 이야기를 그냥 믿는 거지!"
환Q는 다시 으르렁댔다.
"일제가 모든 자료를 없애고 오직 <환단고기> 하나 남았는데, 그걸 하나 남았다고 증명할 수 없으면 위서, 라고 말하는 게 가당키나 하냐!"
"그런 괴상한 책으로는 <규원사화>도 있고, <단기고사>도 있고, <부도지>도 있고, 어딘가에는 <연사>라는 것도 있다지?"
"봐라! 다른 책도 많이 있네!"
"어이, 어이. 금방은 일제가 다 없앴다면서?"
"그 와중에 남은 책이 조금 있는 거지. 그런데 왜 안 믿는 거냐!"
"얘기해 줬잖아. 사료의 외적비판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그런 말로는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자세히 보려면 책 한 권은 써야하는 건데, 논문이나 읽고 와서 이야기 하지 그래?"
"흥! 식민빠가 쓴 논문 따위 볼 줄 아냐!"
그래서 말해주었다.
"정리해서 말해주마.
첫째, <위서>라는 건 책 안에 있는 내용이 황당해서 <위서>라 부르는 게 아니다.
둘째, 사료의 외적비판을 통과하지 못한 문건은 <위서>라 불린다.
셋째, 사료의 외적비판을 통과하지 못한 문건의 내용은 연구에 사용할 수 없다.
넷째. 사료의 외적비판을 통과하면 사료의 내적비판에 들어간다. 이때 책 안의 내용을 비판 검토하게 된다."
"진짜 뭐라 그러는 거야?"
"아주 쉽게 말하자면 <위서>란 지은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짓지 않은 책을 가리킨다. 됐냐?"
환Q는 승복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뭐, 외적비판을 통과하지 못한 문건의 내용은 이용할 수 없어? 웃기지 마셔. 너만 해도 <환단고기> 내용을 가지고 조목조목, 꼬치꼬치 따지고 들었잖아!"
"그건 대부분의 경우 사료의 외적비판, 즉 사료의 성립연대에 대한 고증을 위해서 따진 거야. (놀려주려고 따진 것도 있긴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사료의 내적비판이 무엇인지 설명해야 하는데, 그건 다음으로 미루겠어."
"왜!"
"그거야 이것만으로도 네 두뇌의 용량을 초과했으니까!"
"이젠 인신공격이냣! 두고보자! 다시 돌아오마!"
덧글
둘째, 사료의 외적비판을 통과하지 못한 문건은 <위서>라 불린다.
셋째, 사료의 외적비판을 통과하지 못한 문건의 내용은 연구에 사용할 수 없다.
넷째. 사료의 외적비판을 통과하면 사료의 내적비판에 들어간다. 이때 책 안의 내용을 비판 검토하게 된다
그동안 위서의 정확한 개념을 모르고 있었는데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장자>의 예를 들어보면, <장자>는 내편 외편 잡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체로 내편은 장자의 저술로, 외편과 잡편은 장자학파나 장자의 제자들이 저술로 봅니다. 또 유명한 "관자사경"은 제나라의 직하 황로도가의 저술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 구체적인 작자에 대해서는 갑을논박 정론이 없습니다.
선진시대의 저작들은 한나라 시기에 편집 정리된 것이 많습니다. 당시에 죽간이나 백서의 형태로 전해지던 것들을, 세세한 구별이 어려웠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장자는 장자와 장자학파[제자], 관자는 관자와 후대 제나라의 학자, 상군서는 상군과 상군의 제자나 법가들의 저술들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저자로 볼 수 없으므로 위서인 것은 분명하지만, 버릴 수가 없는 것이고, 비판적 시각으로 문헌의 성격을 규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대의 상황이나 국가(장소)에 따라서 탄력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그 연구는 본래 천문학 기록이 독자관측인가를 검증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각국의 수도에서 관측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따져야 하는 것인데, 그 관측을 할 수 있는 곳이 수도라는 본말이 전도된 결말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런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엄밀하게 제한되어야 할 조건(말하자면 통제해야 하는 실험 조건)을 전혀 특정할 수 없는데, 그것을 박 교수는 자기 임의로 특정한 다음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주장한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과학자로서는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환빠+제국일빠의 절묘한 크로스!!!!!!!!
님들 독립운동하다가 일제의 밀정에게 오체분시당한 계연수 선생님 무시하냐능!!!
이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입니다.
이상신, 역사학 개론, 신서원, 1994... 책을 참조하면 좋겠습니다.
사료의 외적 비판이란 이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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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님이 노량해전 후에 살아서 쓴 서신이 발견되었다! -> 그런데 이게 왜 원고지에 만년필로 썼니?
원본은 잊어버리고 내가 외웠다가 적은 거야 -> 흥! 그럼 어디에 원본이 있었는데?
원본은 우리집 도배지 뒤에... -> 그 집은 1990년에 지은 집...-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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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거지요. 원래는 그 책의 지질, 서체 등을 검토합니다만 환단고기는 원본이 없으니까 이런 비판은 아예 필요가 없고요.
이번글을 보니 그 환큐의 추억이 떠오르네요. 사료의 내외적비판 과정에 대해서 이해못한 환큐였던것 같아요.
우왕 우리의 환큐 정말 질기네요(....)
도서관에서 환담고기를 읽고 이기 뭔..헛소리인가 하고 잠깐 고민하던 차였는데 감사합니다 ㅠ
이해하기도 쉽고. 전전편같은 경우는 아주 조금 난해했지만..
글밖 질문하나..
팝스가 안보이는게... 저뿐인가요?
팝스는 조금 문제가 있나 봅니다. 이 글 쓸 때는 키워드가 안 잡혔습니다.
"셋째, 사료의 외적비판을 통과하지 못한 문건의 내용은 연구에 사용할 수 없다."
아마 이게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듯 하네요 (..)
[인류가 자연에게 휘둘리는 존재라고 생각 자체를 안 하지요. 노예라는 사실을 미화하거나 정복했다고 착각하는....]
이정도면 환Q는 발린거네요.
환단고기는 역사성보다는 판타지성이 강하니 위서가 될수밖에 없습니다.
환단고기 같은건 안믿음.
역시 삼국유사나 삼국사기가 정확하다고.
환단고기는 당시 파시즘적 사관의 수많은 산물중 하나일뿐이니...위서 가운데서도 하급이라 그저 눈물이 앞을 가릴 뿐입니다. ㅠ
(프톨레미 아저씨는 그대로 그 시대 나름의 최선을 다하기라도 했지...)
나중에 분량 늘려서 책으로 나오는 걸 기대하는...
이곳 글은 거의 다 읽은 듯하네요.
너무 재미있어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
P.S. [안함, 노원, 동중이라는 저자명은 안함노와 원동중 두 사람을 세 사람으로 착각하여 잘못 쓴 것이 명백하므로] 부분은 혹시 오타 아닌가요? [안함로, 원동중이라는 저자명은 안함, 노원, 동중 3명을 2명으로 착각하여 잘못 쓴 것이 명백하므로]인 듯한데요....
감기 기운으로 오락가락 하다가 쓰는 바람에 그랬네요. 지적에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중국인 욕은 정말 많이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중국인을 닮아가니.........................
요즘은 중국인보다 한국인이 더 멍청하다고 생각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