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 *..역........사..*



1. 위서 (출전 : 삼국유사 기이편 상 고조선)
위서(魏書)에 전한다. 이천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세웠다. [경에서 말하기를 무엽산이라 한다. 또 전하기를 백주 땅에 있는 백악이라고도 한다. 혹은 개성 동쪽에 있는데 지금의 백악궁이 이것이라 한다.] 요임금과 같은 때에 나라를 세우고 조선이라 이름했다.

2. 고기古記 (출전 : 삼국유사 기이편 상 고조선)
옛날에 환인[제석이라 일컫는다.]이 있었다. 아들 중에 환웅이 있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는 뜻이 있었다. 환인은 환웅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가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만해서 이에 천부인 3개를 주어 인간을 다스리도록 보냈다. 환웅이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여기서 태백은 지금의 묘향산이다.] 신단수 아래로 내려갔다. 그곳을 신시라 일컫는다. 이것이 환웅천왕을 일컬음이다.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 무릇 인간 세상의 360여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교화하였다. 이때에 곰 하나와 호랑이 하나가 같은 굴에서 살고 있으며 항상 환웅 신께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 신은 신령스러운 쑥 심지 하나와 마늘 이십 개를 보내며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햇빛을 백일간 보지 않는다면 사람의 형상을 얻게 될 것이다." 곰과 호랑이가 그것을 먹고 21일간을 금기를 지켰다.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호랑이는 금기를 지키지 못해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 웅녀는 혼인을 할 사람이 없어 신단수 아래서 매번 아이를 잉태하게 해달라고 축원을 올렸다. 이에 환웅이 잠시 몸을 변하여 그녀와 혼인을 하여 아들을 갖게 해 주었다. 그를 가리켜 단군왕검이라 한다. 당요가 즉위한지 50년 경인[당요의 원년은 무진년이니 50년은 정사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사실이 아닌 것 같다.]에 평양성[지금 서경이다.]에 도읍하고, 처음으로 조선이라 칭했다.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다. 또는 궁홀산[방홀산]이나 금미달이라 이름한다. 나라를 다스린지 1,500년이었다. 주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이에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겨갔다. 후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 산신이 되었다. 그 수명이 1908세 였다.

3. 단군기 (출전 : 삼국유사 기이편 상 고구려)
단군기(檀君記)에는 "단군이 서하(西河) 하백의 딸과 관계하여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夫婁)라 하였다.

4. 제왕운기 (출전 : 제왕운기 권하 전조선기)
처음에 어느 누가 나라를 열었는고.
석제의 손자, 이름은 단군일세.
요제와 같은 해 무진년에 나라 세워
순 임금을 지나 하나라까지 왕위에 계셨도다.
은나라 무정 8년 을미년에
아사달에 입산하여 산신이 되었으니[지금의 구월산. 다른 이름은 궁홀, 또는 삼위. 사당이 지금도 있음]
나라를 누리기를 1028년
그 조화 석제이신 환인의 유전한 일.
그 뒤의 164년 만에
어진 사람 나타나서 임금과 신하를 마련하다.[일설에는 이후 164년 동안 비록 부자(父子)는 있었으나 군신(君臣)은 없었다고 함] 


5. 단군본기 (출전 : 제왕운기 권하 전조선기 / 한사군 및 열국기)
본기(本紀)에서는 상제 환인(桓因)에게는 서자가 있었는데 이름을 웅(雄)이라 했다고 하였다. 환인은 웅에게 삼위태백에 이르러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웅은 천부인 3개를 받아서 귀신 3천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강림하였으니, 이가 곧 단웅천왕(檀雄天王)이 되었다고 한다. 손녀(孫女)로 하여금 약(藥)을 마시고 인신(人身)이 되게 하여, 단수(檀樹)의 신(神)과 더불어 혼인해서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檀君)이라 하고 조선 땅에서 왕이 되었다. 따라서 (尸羅), 고례(高禮), 남·북 옥저(南北沃沮), 동·북 부여(東北扶餘), 예(濊)와 맥(貊)이 모두 단군의 후손이다. 1038년을 다스리고 아사달 산에 들어가 신이 되니 죽지 아니 하였다.

단군본기에서는 "비서갑하백(非西岬河伯)의 딸과 결혼해서 남자를 낳았다. 이름은 부루(夫婁)라고 한다."

6. 단군고기 (출전 :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평양조)
《단군고기(檀君古記)》에 이르기를, "상제(上帝) 환인(桓因)이 서자(庶子)가 있으니, 이름이 웅(雄)인데, 세상에 내려가서 사람이 되고자 하여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가지고 태백산(太白山)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강림하였으니, 이가 곧 단웅천왕(檀雄天王)이 되었다. 손녀(孫女)로 하여금 약(藥)을 마시고 인신(人身)이 되게 하여, 단수(檀樹)의 신(神)과 더불어 혼인해서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단군(檀君)이다.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니, 조선(朝鮮),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 옥저(南北沃沮), 동·북 부여(東北扶餘), 예(濊)와 맥(貊)이 모두 단군의 다스림이 되었다. 단군이 비서갑(非西岬) 하백(河伯)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으니, 부루(夫婁)이다. 이를 곧 동부여(東扶餘) 왕(王)이라고 이른다. 단군이 당요(唐堯)와 더불어 같은 날에 임금이 되고, 우(禹)가 도산(塗山)의 모임을 당하여, 태자(太子) 부루(夫婁)를 보내어 조회하게 하였다. 나라를 누린 지 1천 38년 만인 은(殷)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에 아사달(阿斯達)에 들어가 신(神)이 되니, 지금의 문화현(文化縣) 구월산(九月山)이다. 부루가 아들이 없어서 금색 와형아(金色蛙形兒)를 얻어 기르니, 이름을 금와(金蛙)라 하고, 세워서 태자(太子)를 삼았다. 그 정승 아란불(阿蘭弗)이 아뢰기를, "일전에 하느님이 나에게 강림하여 말하기를,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여기에다 나라를 세우도록 할 것이니 너는 다른 곳으로 피하라. 동해(東海) 가에 땅이 있는데, 이름은 가섭원(迦葉原)이며, 토질이 오곡(五穀)에 적당하여 도읍할 만하다. ’고 하였습니다." 하고, 이에 왕을 권하여 옮겨 도읍하였다. 천제(天帝)가 태자를 보내어 부여(扶餘) 고도(古都)에 내리어 놀게 하니, 이름이 해모수(海慕漱)이다. (이후는 주몽 이야기라 생략)

7. 단군기 / 삼한고기 (출전 : 연려실기술별집 역대전고 단군조선)
단군의 휘는 왕검이니. 구사(舊史) 단군기(檀君記)에 "신인이 태백산[지금의 영변 묘향산] 단목 아래에 내려오시니, 나라사람들이 받을어 임금으로 삼았다. 때는 당요(唐堯) 무진년이었다. 상나라 무정 8년 을미에 이르러 아사달산[지금의 문화 구월산. 본 이름은 궐산(闕山)이니, 궁궐터가 있기 때문이다. 뒤에 발음이 늦춰져, 구월산으로 그릇 발음되었다. 일설에는 '아사(阿斯)'란, 방언으로 구(九)이고, 달(達)은 방언으로 월(月)이니 '아사달'이란 '구월'의 방언이라고도 한다.]으로 들어가 신이 되었다"고 하였다. [삼한고기]

아들 부루(扶婁)를 낳았는데, 이가 동부여왕(東扶餘王)이 되었으며, 우(禹)임금이 제후를 도산(塗山)에 모을 때, 단군이 부루를 보내어 조회하게 하였다. [삼한고기 하나라 우임금 18년 갑술]

8. 시고개벽동이주(始古開闢東夷主) (출전 : 조선왕조실록) - 권근이 지은 시
듣자하니 황막한 그 옛날,
단군(檀君)이 단목가에 강림하시어,
동쪽 나라 왕위에 오르시니,
그때가 제요(帝堯)의 시절.
대를 전해온 것 몇인지,
햇수는 천년을 지났다 하오.
그 뒤에 기자(箕子)의 대(代)에도,
한가지로 조선(朝鮮)이라 이름하였소.
聞說鴻荒日, 檀君降樹邊。 位臨東國土, 時在帝堯天。 傳世不知幾, 歷年曾過千。 後來箕子代, 同是號朝鮮。

9. 응제시주(應制詩註)
옛날 신인(神人)이 단목(檀木) 아래 내려와 국인(國人)이 군주으로 삼아 세우니 부르기를 단군이라 하였는데, 당요(唐堯) 원년 무진의 일이다.

10. 동국통감(東國通鑑)》외기(外紀)
단군조선
동방의 땅에는 처음에 군장이 없었는데, 신인이 있어 단목 아래로 내려오니 나라 사람들이 임금으로 세움에 그가 바로 단군이며,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니 바로 당요의 무진년 때 일이다. 처음에는 평양에 도읍하였다가 후에 백악으로 도읍을 옮겼으며, 상나라 무정 임금 8년인 을미년에 아사달산에 들어가 신이 되었다.
東方初無君長, 有神人降于檀木下, 國人立爲君, 是爲檀君, 國號朝鮮, 是唐堯戊辰歲也. 初都平壤, 後徙都白岳, 至商.武丁八年乙未, 入阿斯達山爲神.

11. 기수사문록 (출전 : 청학집)
금선자(金蟬子)는 이렇게 말했다. "변지(卞沚) <기수사문록(記壽四文錄)>은 우리나라 도류(道流)의 무리를 기록했는데, 거기에서 언급하기를 '환인진인(桓因眞人)은 명유(明由)에게서 업을 받았고, 명유는 광성자(廣成子)에게서 업을 받았는데, 광성자는 옛날의 성인이다. 환인진인은 동방 선파(仙派)의 조종이고, 환웅천왕은 환인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뜻을 계승하여 사실을 기술하고, 바람, 비, 오곡 등의 360여 가지의 일을 주재하시어, 우리나라 백성을 교화시켰다. 단군이 대업을 계승해 10년간 교화하니, 구이가 모두 그를 존경하여 천왕으로 추대하였다. 쑥으로 만든 정자와 버드나무로 만든 대궐에서 머리를 땋고서 소 위에 걸터 앉아 세상을 주관해 다스린 지 1418년만에 아사산(阿斯山)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 그의 자손들이 번창하여 그 당시 큰 나라 9개국과 작은 나라 12개국이 모두 단씨(檀氏)였다.'라고 하였다.

12. 청학집
위한조(魏漢祚)에게 취굴자(翠窟子)가 물었다. "단군은 어찌하여 당장리(唐莊里)로 옮겼습니까?" 이에 선생님이 답하였다. "단군에게는 재주가 있는 아들 네 명이 있었으니, 곧 부루(夫婁), 부소(夫蘇), 부우(夫虞), 부여(夫餘)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하후(夏后)가 도산에서 제후들을 불러 모을 때에 부루는 사신의 임무를 받들어 입조했다. 구이 중의 '알유'가 난을 일으키자, 부여는 중외 각국의 군사를 모아 토벌하여 평정했다. 나라에 질병이 돌 때에는 부우가 의술과 약으로 백성을 살리었다. 산에 사나운 짐승이 많으니, 부소가 불을 지르고 사냥하여 짐승들을 몰아냈다. 이 네 왕자의 공로는 당세의 으뜸이 되는 것으로, 후세까지 그 업적이 드리워졌다. 요 임금 때 9년 동안 홍수가 나고, 우 임금은 8년 동안 치수 사업을 했는데, 홍수로 등주, 내주 바다가 하늘에 닿을 정도로 범람했고, 패수도 불어 넘쳐 평양이 물에 잠겼었다. 이에 네 왕자가 이 산에 올라 토지의 마땅함을 살펴, 당장리에 도읍했다. 이제 물의 형세를 살펴본 즉, 동쪽으로 흐르고 원 땅이 건조하다. 이후에 만양 용진(茸津)에 조수가 생기고 마령(馬嶺)에 돌이 일어나면, 이곳은 다시 왕자의 터전이 될 것이다.

단군왕검 때 남이(南夷)의 침입이 있었다.

13. 단군세가 (출전 : 미수기언)
상고(上古) 구이(九夷) 시대 초기에 환인씨(桓因氏)가 있었는데, 환인이 신시(神市 환웅을 가리킴)를 낳고 비로소 생민(生民)의 정치를 가르치니, 백성들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환웅(桓雄)이 단군(檀君)을 낳으니, 단군이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살면서 호(號)를 단군(檀君)이라 하고, 처음으로 나라의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였는데, 조선이란 동녘 가에 해가 뜬다는 명칭이다. 어떤 사람은,
“선(鮮)이란 산(汕)을 말한 것으로, 그 나라에 산수(汕水)가 있기 때문에 조선이라 한 것이다.”
라고 한다. 조선이 평양(平壤)에 도읍한 것은 도당씨(陶唐氏 요(堯)를 말함)가 즉위한 지 25년이 되던 해였다. 단군이 부루(夫婁)를 낳았는데, 어떤 사람은,
“해부루(解夫婁)의 어머니는 비서갑(非西岬)의 여자이다.”
라고 한다. 우(禹) 임금이 수토(水土)를 평정하고 제후(諸侯)들을 도산(塗山)에서 회합할 때에, 부루도 도산에 가서 우 임금에게 조회하였다. 그 뒤에 단군은 당장(唐藏) 땅에 옮겨 살다가 중국 상(商) 나라 무정(武丁) 8년에 이르러 죽었다. 송양(松壤) 송양은 지금의 강동현(江東縣) 서쪽에 단군총(檀君塚)이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단군은 아사달로 들어갔다.”
하고, 그의 죽음은 말하지 않았다. 태백산과 아사달에 모두 단군 사당이 있다.
부루(夫婁)가 즉위하여 북부여(北扶餘)를 세웠다. 부루는 곤연(鯤淵)에 기도하여 ‘금와(金蛙)’를 얻었는데, 그의 생김새가 금개구리와 같아서 이름을 금와라고 하였다. 부루 시대에 상(商) 나라가 망하여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왔다. 그 뒤에 주(周) 나라의 치덕(治德)이 쇠퇴해지자, 공자(孔子)도 구이(九夷)에 살고 싶어 하였다.
부루가 졸(卒)하고 금와가 뒤를 이어 수도를 가섭원(迦葉原)으로 옮겨 동부여(東扶餘)를 세웠다. 금와 말년에 진(秦) 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자, 진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동쪽 경계에 들어와 진한(秦韓 진한(辰韓)을 말함)을 세웠다.
한 고후(漢高后) 때에 위만(衛滿)이 조선(朝鮮)을 점령하자, 조선후(朝鮮侯) 기준(箕準)은 남쪽으로 달아나 금마(金馬)에 이르러 마한(馬韓)을 세웠다.
한 효무제(漢孝武帝) 때에는 한 나라가 예맥(穢貊)을 공략(攻略)하여, 예맥 임금 남여(南閭)가 항복하니, 처음에는 창해군(滄海郡)을 설치하였다가 승상(丞相) 공손홍(公孫弘)의 청을 받아들여 혁파(革罷)하였다.
금와(金蛙)가 대소(帶素)에게 전하니, 대소가 강대함을 믿고 고구려와 전쟁하다가 마침내 죽음을 당하자, 아우 갈사(曷思)가 즉위하였으며, 손자 도두(都頭)에 이르러서 고구려에 항복하여 동부여가 망하였으니, 갈사(曷思)는 왕의 이름이 아니다. 갈사에 도읍을 했기 때문에 호(號)를 갈사라 한 것이다. 그 연대를 상고하여 보면 중국의 왕망(王莽) 때이다. 환인(桓因)ㆍ신시(神市)에 대하여서는 그 시대를 상고할 바가 없고 단군의 정치는 요 임금 25년부터 순 임금, 우 임금의 3대를 거쳐 상의 무정(武丁) 8년까지 1048년이고, 해부루(解夫婁)의 뒤로 갈사가 망하던 왕망(王莽) 시대까지 또한 1천 년이다. 그 뒤에도 남은 종족이 있어서 진(晉)과 통교하였다.

덧글

  • 아야소피아 2009/11/15 21:08 #

    어디서는 부루(扶婁) 말고도 부소(扶蘇)인가 하는 아들이 또 있다고 한 걸로 기억합니다만...(출처는 <ㅎㄷㄱㄱ>가 아니었습니다.)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저게 전부인가요?
  • 아야소피아 2009/11/15 21:12 #

    그나저나 (저걸 다 믿는다면) 부루와 주몽은 異父형제 간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데...ㅎㄷㄷ;; 2000여 년의 시간 격차가 있습니다요;;
  • 초록불 2009/11/15 21:18 #

    단군의 사적에 대한 이야기는 좀더 있습니다만, 단군 출자에 대한 신화를 기록한 문건은 저게 전부이리라 생각합니다.
  • 초록불 2009/11/15 21:29 #

    환단고기 식 해결법은 마지막 단군의 자손들로...
  • 초록불 2009/11/16 12:04 #

    청학집에 단군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미에 추가했습니다.
  • 아야소피아 2009/11/16 23:03 #

    감사합니다
  • 耿君 2009/11/15 21:24 #

    단군과 부루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단군기, 단군본기, 단군고기 등은 기실 같은 책일 수도 있겠네요.
  • 초록불 2009/11/15 21:25 #

    사실 그 점이 궁금해서 적어보았습니다. 본래 원문으로 적어야 하는데... 귀찮아서...
  • Allenait 2009/11/15 21:28 #

    단군과 부루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단군기와 단군본기, 단군고기는 같은 책일수도 있지만 이게 같은 사료를 참고했을 수도 있겠군요(?)
  • 아야소피아 2009/11/15 21:42 #

    "昔有桓囯"이라... (....죄..죄송해요;;)
  • Leia-Heron 2009/11/15 21:44 #

    환독에 빠졌다 나오니 단군이나 고조선 얘기는 어디까지 믿어야 되는 지를 모르겠습니다 ㅇㅅㅇ;;;
  • 초록불 2009/11/15 21:46 #

    저 위에 나온 이야기들을 기본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 한단인 2009/11/15 21:52 #

    음.. 문득 든 생각입니다. 소설의 영역에서 다루면 꽤 재밌겠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단군의 태자로 부루가 등장하고 해괴하게도 이 부루는 부여왕으로써 다시 등장하게 되는데 단군이 나라를 등지고 떠났다고 주로 언급되는 대략 1천년 후는 기자 동래 이후 등장하는 기자조선 성립시기와도 비슷한데요. 그렇다면 이 태자라고 된 부루는 어쩌면 기자조선을 세웠던 집단에 의해 단군 집단이 패망한 후 그 집단 일부가 북방으로 이주하여 부여 지역에 정착한 후에 부여지역 건국 전설이 발생하는데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좀 드네요.

    뭐, 실제 사실과는 동떨어진 얘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부여인들이 자국 시조에 대한 전설 차용 중에 인근 지역인 고조선의 전설전승을 차용한 것이 '부루'라는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뭐, 그렇다는 얘기지요.
  • 초록불 2009/11/15 21:55 #

    그런 추측들이 이미 등장한 바 있습니다. (무서운 음향효과)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서요. (더 무서운 음향효과) 식민빠들의 생각이 다 그렇지, 뭐. (헬박사의 웃음소리가 에코)
  • 초록불 2009/11/15 21:57 #

    약간은 농담이고... 일본인 학자들은 단군이 기자 앞에 놓이지 않았다고 생각했죠...^^
  • 한단인 2009/11/15 22:24 #

    컿.. 혹시나 이미 선학(응?)들이 지적한 바가 있지 않나 했더니 이미 나왔던 진부한 얘기였군요. OTL
  • 들꽃향기 2009/11/15 22:04 #

    잘 읽고 갑니다. 그러고보니 해동역사나 기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했을지 살펴봐야겠네요.

    (저의 사랑 한백겸님께선 아예 이를 다루시질 않으니 엉엉)
  • 초록불 2009/11/15 22:06 #

    동사강목을 보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 들꽃향기 2009/11/15 22:39 #

    추천 감사드립니다. ^^
  • 소하 2009/11/15 23:25 #

    <삼국유사>에 인용된 고기와 <실록>에 인용된 고기의 내용이 조금 다른데, 전승되던 신화체계가 달랐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른 종류의 <고기>들이 실전된 것을 생각해보면, 단군신화는 시대나 작자의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전승이 만들어지고 전해졌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 초록불 2009/11/15 23:34 #

    실록은 제왕운기 계통의 기록에 바탕을 두고 있지요. 일본학자들은 제왕운기의 기록이 삼국유사의 기록이 발전한 것으로 여겼었는데, 저는 동의하기가 좀 어렵고, 말씀하신대로 다른 전승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 Marcus878 2009/11/15 23:42 #

    '저 많은 고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라는 이문을 환단고기 같은 위서로 해소하고 인터넷 곳곳을 돌아다니며 '대동여지도는 일제 시대에 조작된 것이라능! 나의 조선이 만주를 지배하지 못하는 시대 따위는 없었다능!'같은 주장을 하며 창의력을 낭비하는 현실이 안타깝지요.
  • 초록불 2009/11/15 23:48 #

    환단고기나 규원사화가 이런 고서들과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는 것에 눈길이 간다면, 그런 것들을 믿을 이유도 없을 텐데 말입니다...^^
  • 2009/11/16 00:1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09/11/16 00:17 #

    고맙습니다. 링크는 따로 말씀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 消爪耗牙 2009/11/16 04:49 #

    고려시대부터 구한말 ㅡ 일제초기 (1920년 이전) 의 단군기록들을 보면 규원사화 ㅡ 단기고사 ㅡ 친일찌라시가 명백히 이질적인 전승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자칭 선가(仙家)한다는 작자들이 '위서3종셋트는 선가사서의 맥을 잇고 있다 !!' 는 선동질을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완전히 별개.
  • 야스페르츠 2009/11/16 11:06 #

    환단류가 도가계통 사서의 맥을 잇는다는 뻘소리를 볼 때마다 복장이 터져 죽습네다.ㅠㅠ
  • 초록불 2009/11/16 11:43 #

    그러고보니 문득 생각나서 <청학집> 추가했습니다.
  • 消爪耗牙 2009/11/16 17:07 #

    허투른 사견입니다만, 청학집과 규원사화가 서로 상당한 연관이 있는 도가사서처럼 함께 취급되는 이유에는 두 서적이 1976년에 한 책으로 묶여서 출간되었다는 점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

    뭔가 ㅄ같은 이유지만 그것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
  • 초록불 2009/11/16 23:38 #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의문이 풀린 듯한... ^^
  • 2012/04/16 00:1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2/04/16 00:53 #

    1. 어딘가 써놓았을텐데... 당연히 부여 것을 고구려가 베낀 거죠.

    2. 그 점은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노태돈 교수의 <단군과 고조선사>를 참고하세요.
  • 2012/05/03 22:3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초록불 2012/05/03 22:55 #

    1. 단군과 왕검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단군이 이름이고 왕검은 최고통치자에게 붙는 호칭이었겠지요.

    2. 위략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략은 현전하지 않는데, 그 내용은 진수의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실려 있습니다.

    3. (1)번입니다. 비밀글님의 결론과 달리 저는 부왕과 준왕의 조선이 당연히 존재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조선이 그 전에 존재했다는 사료는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으니까요.
  • 경언o 2012/05/04 13:49 #

    넙!!!!!! 감사합니다!!!ㅠㅠ
  • 질유키 2012/05/20 14:08 #

    단군은 원래 실존인물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신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군이 BC2333년에 태어났다는 기록도 후세의 과장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중적인 청동기는 BC10세기경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하긴 하은주 왕조들의 군주이야기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신화가 되버렸는데 말입니다. 이래서 신화는 역사적 맥락에서 읽어야합니다.
  • 초록불 2012/05/20 14:33 #

    단기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을 참고해주세요.

    http://orumi.egloos.com/841154
  • 2012/07/15 23:1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7/15 23:3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07/16 00:1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07/16 00:3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07/16 00:3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경언o 2012/07/16 15:17 #

    음,,, 혹시 <제왕운기>에서 무정부 기간의 164년이후 등장한 깨우친 임금이
    기자 라고 생각할수 있을까요 ..(?)
  • 초록불 2012/07/16 21:04 #

    생각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전조선기 다음에 기자의 후조선기가 바로 이어져서 나오거든요.
  • 경언o 2012/07/16 23:03 #

    꼬투리 하나 잡을수있겟군요 .. ㅋㅋ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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