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부리영감의 비밀 *..문........화..*



이제 웬만큼 알려셔서 알만한 사람들은 혹부리영감 이야기가 일본 민담이라는 것을 대개는 안다. 하지만 나는 과연 그런가, 궁금했다. 왜냐하면 한국최초의 민담집인 <조선동화집>(1924)에 혹부리영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동화집>이라는 것이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럼, 그렇지"라고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차만 보아서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샀다.

조선동화집 - 10점
조선총독부 엮음, 권혁래 옮김/집문당


세번째 편 <혹 떼이기, 혹 받기>가 바로 혹부리영감 이야기다. 그런데 첫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귀신이 혹을 떼어준 남자와 귀신에게서 혹을 붙여 받은 남자의 이야기라고 하면 여러분들은 곧, "아, 그 이야기?"하며 떠올릴 분도 있을 줄 압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귀신이 아니라 다른 것이 혹을 떼어간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귀신이라고 나온 것은 바로 일본 도깨비로 흔히 번역되는 오니[鬼]를 가리키는 것이다. 즉 일본의 민담을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이 <조선동화집>은 일본어로 발행되었으며, 조선민속자료 제2편이라 명명되어 있다.)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민담의 수집자는 이 이야기가 일본에 잘 알려진 혹부리영감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분명히 조선에서 채집한 이야기라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야기가 다르다.

여기서 혹을 떼고 붙이는 주체는 오니도 도깨비도 아닌 "장승"이다. 사실 "장승"에 얽힌 민담도 적지 않다. 장승이 밤새 "웅웅"거리며 뛰는 것을 보고 측은한 생각이 든 "혹이 있는 남자"는 장승 대신 "웅웅"거리며 뛰었고 그 보답으로 혹이 없어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것을 듣고 다른 "혹이 있는 욕심 많은 남자"도 장승을 찾아가 뛰었는데, 하필 "웅웅" 다음에 "딱딱" 소리를 내며 뛰는 바람에 장승이 기분이 나빠져서 혹을 두 개로 만들어버렸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한일 양국 간에 혹부리 영감 이야기가 그 얼개만 유지한 채,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사건은 서로 다르게 전해졌던 것일까?

그런데 역시 널리 알려진 것처럼 혹부리영감 이야기는 일본 교과서와 조선의 교과서 양쪽에 모두 실렸었다. 제일 처음 실렸던 것은 일본의 경우 1887년, 조선에는 1915년 <보통학교 조선어 급 한문독본>이었다.

위 그림은 일본 교과서에 실린 삽화다. 아래 그림은 식민지 조선의 것.
보다시피 동일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데, 복장만 한일 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 교과서의 삽화를 그린 이가 일본 교과서를 보고 베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다. (그림의 인용은 김용의, 한국과 일본의 혹부리영감담, 일본어문학6, 1999)

그리고 이때 조선교과서에 수록된 이야기는 위 <조선동화집>에 실린 조선에서 채록된 이야기가 아니라 일본 민담의 번안 작품이 들어가 있다. "오니"는 "괴수 독갑이"로 번역된 셈.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해볼 수 있는 상식적인 추론은 이런 것일게다.

혹부리영감의 근원 설화는 한일 양국에 다 있었고, 때문에 한일 양쪽에 모두 쉽게 받아들여지는 이야기로 여겼다. 이때 한일 양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게 함으로써 일체감을 양성하고자 하는 방편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물론 이 경우 일본을 위주로 사고하게 되므로, 조선 쪽의 민담은 일본의 민담으로 대치되게 된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으로, 혹부리영감이라는 것은 아예 우리나라에는 없는 이야기로 일제의 유산으로 여기게 되는 현상을 가져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만사의 변화무쌍함이 참 대단하다.


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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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마구둥지 : 당사주 (唐四柱) 에 등장하는 뿔 달린 도깨비 (조선후기 추정) 2014-09-03 06:12:43 #

    ... 아니라 '장승'이 조선버전- 한일 양국의 공통설화였죠). 여기 등장하는 오니의 생김새가 조선에 퍼지기 시작했다는 설이 가장 흔한 오니-도깨비 연관설이라 하겠습니다.혹부리 영감의 비밀 표지의 제목은 후대에 표기한 듯 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포인트는 이 책에 나오는 '한글의 형태'를 서지적, 언어학적으로 파악해서 연대를 추정하는 일이 될 ... more

  • 까마구둥지 : 혹부리 영감 설화와 관련있는 설화들 2014-12-13 06:27:40 #

    ... 예전 초록불님 포스팅중 흥미로우면서도 연구대상인 이야기가 하나 있어서, 항상 설화쪽 주제의 하나로 생각하던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혹부리영감의 비밀 (글 링크) 바로 유명한 '혹부리 영감'과 그 근원은 일제시대에 일본의 설화를 조선인들에게 동화시키기 위해 만들었다는 최근의 담론이 아닐수도 있다는 ... more

덧글

  • zert 2009/11/21 23:34 #

    허허;;; 이런 것도 있었군요;;;
  • Allenait 2009/11/21 23:38 #

    일제의 유산으로 여긴다는 이야기를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 초록불 2009/11/21 23:40 #

  • 을파소 2009/11/21 23:54 #

    중국이나 일본에 우리나라와 비슷한 설화가 있는 건 들었지만, 혹부리영감으로 알려진 이야기도 그런 경우인 줄은 처음 알았군요.
  • Charlie 2009/11/22 00:03 #

    우리나라의 도깨비라고 했지만, 몇몇 동화책에는 일본의 도깨비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나중에 보면서 궁금했었는데, 장승이라고 하면 아귀가 꽤 맞아들어가는군요.
  • 네비아찌 2009/11/22 00:11 #

    교과서 삽화를 보니 예전 일본 만화가 한국에서 번역본이 나올 때 유카타에 덧칠해서 한복으로 만들고 하던 일이 생각나네요^^;
    현재 우리가 아는 도깨비가 일본의 오니에서 왔다면, 대체 조선의 원래 도깨비는 어떤 크리처 였을지 참 궁금해집니다.
  • 초록불 2009/11/22 00:15 #

    도깨비에 대해서도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 있습니다. 언제 한 번 다뤄보도록 하지요.
  • 에로거북이 2009/11/22 09:49 #

    오오 기대하겠습니다.
    오래전에 이매 망량 괴뢰 도깨비 이런 것들의 차이점을 다룬 책을 본 기억이 나는데,
    이젠 하나도 차이점을 모르겠습니다. ^^;
  • 야스페르츠 2009/11/22 00:19 #

    혹부리 영감도 일본의 영향이 있었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ㅡㅡ;;
  • 초록불 2009/11/22 00:25 #

    으음, 제 생각과는 달리 이걸 모르는 분들이 많군요. 저는 이제는 일반화된 이야기라 생각했습니다...
  • 잠본이 2009/11/22 00:30 #

    독갑이... 참 정겨운 이름이군요 OTL
  • 다복솔군 2009/11/22 00:45 #

    오오 좋은 글입니다.
  • Niveus 2009/11/22 00:48 #

    원류가 있었다 라는것정도까지밖에 모르고 있었습니다.
    (애시당초 중국에도 유사 이야기가 있는데 한국에 없을리가 없다! 했었죠)
    정말 우리나라의 전통이야기를 보면 제대로 생존한것을 찾기가 힘든듯;;;
  • rumic71 2009/11/22 01:17 #

    獨脚대왕이잖습니까, 도깨비는 원래.
  • 초록불 2009/11/22 10:51 #

    원래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한자로 차용하다보니 채택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 acarasata 2009/11/22 15:11 #

    도깨비를 獨脚鬼, 獨甲이라고 적는 것은 취음입니다.
    모든 표기를 한자로만 했을때 우리말에도 그럴듯한 한자를 갖다 붙인 것이죠.
    택시(taxi)를 宅侍라고 써놓고 "집으로 모셔다 주는 것"이라 풀이하는 것이나 같습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C%B7%A8%EC%9D%8C

    참고로 도깨비의 중세 어형은 돗가비이며, 앞 부분의 뜻은 불확실하지만,
    돗ㄱ+아비로 분석되는 걸로 보입니다.
  • C문자 2009/11/22 02:50 #

    처음 알았어요. 좀 슬프네요.
  • 포더윙 2009/11/22 04:52 #

    이야기는 생각보다 전파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천일야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중국이나 동남아 민담에 들어 있고... 일본하고 우리나라 사이는 멀지도 않고 계속 왕래가 있었으니 재미있는 이야기는 발생 후 얼마 안 가 전해지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황조가, 공후인 유래담과 똑같은 이야기를 중국쪽 얘기로 접하고 어어 했던 적이 있었는데 내막이 궁금하긴 하더군요.
  • 미니드래곤 2009/11/22 07:06 #

    어릴때 읽었던 프랑스 동화집에도 혹부리 영감이랑 비슷한 얘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거기에는 도깨비대신 요정이고 혹부리 영감대신 곱추였었어요.
  • 벚꽃냥이 2009/11/22 09:22 #

    오.. 저도 지금까지 혹부리영감은 일본 설화로 알고 있었는데, 공통되는 설화가 한/일 양국에 있으면서 은근슬쩍 치환되었다는 의견도 상당히 흥미진진하네요 [..]
  • 소심쟁이 2009/11/22 09:53 #

    어찌보면 심청전이나 알라딘이야기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도 있을 듯 하군요. 심청전의 모태가 되는 근원설화가 있고 알라딘과 요술램프의 근원설화또한 중국이듯이, 이 혹부리영감의 경우에도 중국이나 인도등에 근원설화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갑지기 생각난 것인대요.

    혹시 고려장이야기는 어찌보시는지요. 양국에서 모두 내려온 이야기인지 아니면 일제때 일본에서 들어온 이야기인지 헛갈립니다. 일본 영화, 드라마에서도 이 고려장이야기가 등장을 하고 있어 처음엔 일제때 넘어온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는데요. 근원이 되는 이야기가 <효자전(孝子傳)> 원곡(原穀)이야기라고 하는 것을 보니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일 양국에서 전해진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기도해요.=_=;;
  • 초록불 2009/11/22 10:35 #

    고려장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을 참고해 주세요.

    http://orumi.egloos.com/2523096
  • 차원이동자 2009/11/22 16:29 #

    게으름뱅이가 기름독 새워놓고 자기가 돈을 벌면...하고 상상하다가 신나서 춤추다가 기름독 깬이야기도 인도, 아랍쪽에서 유래했다고 하죠. 메두사같이 '내눈을 바라봐 넌 석상이되고' 도 전 세계마다 있었고 말이죠...
  • 진성당거사 2009/11/22 11:13 #

    비슷한 얘기가 전에 지적한 바 있는 에밀레종 설화겠죠.
    도대체 이것저것 다 일제 잔재라고 하면 어떻게 하라는 건지.......
  • 7♪ 2009/11/22 14:06 #

    이런 식의 민담은 가장 유명한 신데렐라 이야기(콩쥐팥쥐)처럼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민담류가 아닌가 싶은데요.

    얼마전 아일랜드 민화가 나오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거기에도 등에 거대한 혹을 지닌 남자가 요정들의 "노래"를 다듬어 준 뒤 혹을 잃고 보통사람이 되는데 성격이 나쁜 남자가 그를 따라하다 두배의 혹을 짊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일랜드 요정의 세계]라는 책으로 기억하는데... 한국이나 일본 이외에도 다른 지역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요?
  • 서린 2009/11/24 13:13 #

    도깨비의 전통적인 형상이, 한복에 패랭이를 쓴 모습이라고 하죠.

    아이러니 하게 일반적인 미디어 중에서 저런 식으로 도깨비를 표현한 건 단 한번 봤습니다.

    아틀라스의 진 여신전생........이었습니다.
  • 역사관심 2014/05/30 02:11 #

    도깨비 이야기를 올리고 혹부리영감에 대해 더 찾아봤는데 예전에 다루신바가 있군요. 흥미만점입니다. 포스팅에 이 이야기를 링크 걸겠습니다.^^
  • 초록불 2014/05/30 10:36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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