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광고대행사 - 조심해서 읽어야 할 책 *..문........화..*



전쟁 광고대행사 - 6점
다카기 도루 지음, 정대형 옮김/수희재


지난 번에 <역사 사용설명서>를 포스팅했을 때,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받았다. 흥미로워보여 구입했고, 재미있게 읽긴 했으나 문제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이렇다.

세르비아계의 전쟁 위협을 느끼고 있던 보스니아-헤르체비나의 외무장관 실라이지치는 미국으로 건너가 홍보대행사인 루더핀 사에 자국에 대한 홍보를 의뢰한다. 이 일을 담당한 짐 하프라는 사람의 활약상을 적은 책이라 하겠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책의 결말에 잘 나와 있다.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와 전혀 동떨어진 워싱턴에서 팩스와 전화(현재는 인터넷과 이메일)로 국제 여론을 유도하는 이런 방식은 윤리적으로 의문의 여지를 남긴다. (중략) 그러나 뚜렷한 부정이 없는 한, 국제 분쟁을 사업 대상으로 선택한 PR 기업을 모두 나쁘다고 책망하기는 어렵다. 정보의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현재 PR의 '전쟁터'가 지구 규모로 확대되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355쪽)

다시 말해서 전쟁도 PR이 되고, 이 선전에서 이기는 쪽이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사실상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이 책은 시작 부분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실제로 루더핀 사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관한 사업을 할 때 고객을 위해 증거를 날조하는 등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51쪽)

루더핀 사는 그야말로 홍보를 했다는 것이다. 고객의 의뢰에 맞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밀로셰비치를 옹호하는 듯한 느낌을 자꾸 풍긴다.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공정성 표방 때문이다.

1990년대에 일어난 최악의 민족분쟁인 보스니아 분쟁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에 대해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 어디를 찾아봐도 없다. (27쪽)

이런 이야기에도 동조하기가 사실 쉽지는 않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두번째 이유는 좀 다르다. 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세르비아 측이 일방적인 악당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렇게 처리된 부분들이 있다는 의심이 내게는 강력히 든다.

가령 이 책에는 이 전쟁의 절대적 주역인 밀로셰비치에 대해서 할애한 부분이 매우 적다. 그의 이력 소개도 변변히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이 책의 다른 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가 주장한 大세르비아주의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지 않다. 그가 코소보에서 행한 일은 이 책의 주제와는 약간 떨어져 있지만, 역시 지나치게 간략하게 처리했다. 또한 그가 실제에 있어서는 민중봉기로 쫓겨났다는 사실도 거론하지 않는다.

밀로셰비치는 분쟁 후에도 계속 대통령 직을 맡았으나 2000년 9월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 패배했다. 권력을 잃은 그는 이듬해인 2001년 4월에...(353쪽)

저 글 중, "권력을 잃은" 앞에 이야기가 좀 더 있다. 그는 2000년 9월 24일 투표에서 야당 후보에게 졌으나 결선투표를 하겠다고 주장했다. 그가 권력을 내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 세르비아의 국민들은 봉기를 일으켰다. 10월 6일 그는 국민들의 공세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사임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저 말 자체에는 어폐는 없다. 이 책에는 딱히 거짓말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어보인다. 다만 거론하지 않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 가령 이런 식으로...

밀로셰비치는 1997년에 세르비아 공화국의 대통령에서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1999년에 코소보 자치주에 군대를 보내 그곳에 사는 알바니아 인을 탄압했다. (353쪽)

그 탄압이 무엇이었는지는 간단하게도 거론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밀로셰비치는 PR전쟁에 뒤져 전적으로 세르비아인이 나쁘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353쪽)

마치 밀로셰비치가 적절한 PR 회사와 손만 잡았다면 그는 건재했을 것이라는 뉘앙스가 이 책 안에 있다. 물론 이 책에서 이야기하듯이 세르비아만큼 보스니아에도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세르비아의 책임을 덜게 해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미 이야기했듯이 이 책은 세르비아에게 책임이 없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이 책의 저자와 비슷한 톤으로 말하자면) 단지 독자가 그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지금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미 앞에서 루더핀 사는 사실을 날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 효과적 홍보 사례로 들고 있는 학살, 추방, 감금, 강간 등의 일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그 끔찍한 이야기는 굳이 옮기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한 어떤 분노도 표시하지 않고, 그저 그것을 루더핀 사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포장했는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일본인에 의해 쓰인 점이 마음에 걸린다. 너무나 객관성을 드러내놓고 있는 이 책이 그들의 어떤 비인간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여겨지고 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루더핀 사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홀로코스트의 이미지를 사용했는지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 홀로코스트의 자행자인 독일과 동맹국이었던 일본에 대한 이야기는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물론 당연하게도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이고,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홍보이므로 일본에 대한 이야기는 나올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자행된 민족분쟁과 민족정화(민족청소)에 대해서 그 어떤 분노나 개탄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내게는 좀 섬찟하다.

이러한 우려를 빼고 이 책을 살펴본다면, 현대 사회에서 이미지 조작, 아니 좋게 이야기해서 이미지 포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미지 선전이 얼마나 잘 먹히는가, 어떤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가 등등에 대한 이야기로서 책값은 충분히 하는 책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밀로셰비치가 억울한 이미지 조작에 당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건 아니라고 이야기하겠다.

덧글

  • Allenait 2009/11/22 20:14 #

    아무리 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해도 이런 식의 논조는.. 좀 그렇군요. 유럽에서 이 책 갖고 난리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살짝 듭니다.
  • 초록불 2009/11/22 20:19 #

    난리를 칠 성질은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오독할 여지가 있다는 것뿐이지. 책 자체가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 초록불 2009/11/22 20:20 #

    어찌 보면 루더핀 사의 홍보 전략으로 만들어진 책일지도 모릅니다...^^;;
  • 네리아리 2009/11/22 20:22 #

    쿼바디스 도미네...
  • 잠본이 2009/11/22 21:04 #

    "왜곡은 하지 않았다. 생략만 했을 뿐이다"

    ......................어? OTL
  • tloen 2009/11/22 21:09 #

    일본 지식인들은 좌파는 물론 우파쪽에서도 미국 주도하의 세계질서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가끔 듭니다. 일본 우파들은 유고에서 과거 미국과 싸웠던 자신들의 이미지를 읽어냈을지도 모른다른 생각도 들고요.

    저는 초록불님보다는 좀더 책에 우호적인 입장인데요, 일단 세르비아는 그렇다해도, 보스니아가 클린핸드였는가라는 문제제기는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국 정책결정자에게 PR을 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이책만큼 명확히 설명해주는 책도 없는 듯 합니다. 이 책에서 제시되는 입장에서 봤을때 우리나라의 좌파나 우파의 대미전략은 철저하게 국내용 및 대북한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코믹했던 것은 역자도 아닌 편집자의 말이었는데, 밀로세비치를 옹호하면서, 북핵도 그와 같이 매도된 것일수도 있다는 입장을 제시하더군요. 아마 책을 살까말까할때 편집자의 말을 먼저 읽었다면 집어던져버렸을지도.

    초록불님 말씀따나 주의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초록불 2009/11/22 21:19 #

    저는 아예 나쁜 책이라고 생각하면 TTB를 걸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도 이 책을 읽어볼만한 책으로 분류한 것이죠...^^;;

    그리고 말씀한 대로 편집자의 말은 바로 그런 함정을 뚫지 못한 것으로 봅니다. 제가 이 포스팅을 작성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 KenisKen 2009/11/22 22:51 #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많은 부분이 동감되는 내용입니다..
    전쟁의 이미지조작은 어떤면에서는 한국보험업계의 광고들과 닮은 것이 많아 보이네요
  • catnip 2009/11/23 07:41 #

    우려하시는 부분은 이미 현실의 아니 가상현실인 이글루스안에서도 종종 목격하는...
    흐음. 학문으로, 연구해볼만한 주제라고 생각되긴해도 그건 이론일뿐이지 현실에 적용되는건 뭔가 많이 불편한거겠지요.
  • 이준님 2009/11/23 08:57 #

    사실 저런류의 책에서 늘 주의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만행고발" "특정 정치인 비판" "한국전쟁" 관련책에서 저런류의 함정에 자의건 타의건 빠지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 초록불 2009/11/23 10:36 #

    옳은 말씀입니다.
  • 시골 2010/08/08 03:07 #

    오래된 책을 정리하다가.. 독서기록에 이 책의 논점이 거슬려서 조금 읽고 덮어버렸던걸로 돼어 있어서.
    문득 다른 분의 의견은 어떤가 검색하다가 들렸습니다.

    제가 알기론 보스니아측에서
    '사실을 알려주마... 우스타샤에 의한 인종청소는.. 알려진것보다 적었다..'
    더 나아가.. '있었다면 피해자 너희가 아주 정확한 객관적 증거를 보여줘봐라..못대면 없는거다'
    라는 식으로 세르비아계를 자극했다고 아는데..
    (물론 이게 또 이슬람계와의 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지만요..)

    거칠게 생각하면, 저자는 일제-세르비아식의 연결을 하려는듯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제-보스니아라는 식의 연상(?)이 돼더군요..

    물론 역사적 사실의 객관성은 확보해야지만.. 피해자의 감정을 자극하고, 과오를 희석하기 위한 정치외교적 장치나 전략 전술적인 심리전의 일부로서 그리 달갑지는 않습니다.
  • 초록불 2010/08/08 03:11 #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유사역사아웃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