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풍도하 *..문........화..*



연말 덕분인지 요즘 시내를 왔다갔다 하는 일이 늘었다. (오늘도 나가봐야 한다.)

시내를 오가며 하는 일은 잠자기와 독서. (나는 차에만 타면 잔다.)

그런데 가끔 잠을 못 자게 만드는 책들이 있는데, 이런 책을 만나면 나중에 두통이 온다. (저질 육체...)

최근 내게 그런 두통을 안겨준 책. 좌백의 <흑풍도하>.

흑풍도하 1 - 10점
좌백 지음/로크미디어


15년 전에 나와서 무협소설계를 흔들었던 <대도오>의 속편이다. 소설 속 시간도 15년이 흐른 뒤.

<대도오>는 책장에 꽂혀 있었다. 집에 증정본으로 들어왔던 책. 물론 좌백님을 개인적으로 알기 전이었다. 어느날 심심해서 방바닥 장판 놀이를 하다가 책장에 못 보던 책이 꽂혀있는 것을 보고 꺼내 들었다. 이때까지 내가 읽은 무협은 거의 김용 것들 뿐이었던 시절.

한국 무협에 대해서 극히 감정이 안 좋았던 때이기도 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대학생이었던 사촌형이 우리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무협소설의 광팬이라 방에는 언제나 대본소 무협소설이 뒹굴고 있었다. 당연히 몇 편 읽어보았는데,

그는 비명을 질렀다.
윽!
쿵!
휘리릭!
"도망쳐라!"
후다닥.
휙!

뭐, 이따위 글이었다. 휑한 여백. 의성어의 남발. 손발이 오그라드는 비유들. 이걸 왜 읽나 싶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다가 만났던 김용의 <영웅문>은 새로운 무협소설을 보여주었고, 그만큼 한국 무협소설들에 대한 경멸감도 커졌다. 처음에는 뭔지 모르고 잡았던 <대도오>. 앞뒤 설명을 보니, 무협소설이다. 그리고 좌백이라는 소설가, 한국작가였다.

그렇고 그런 소설이겠거니 했는데, 아무튼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읽기 시작했다. 첫 챕터를 넘기기 전에 이야기 속으로 훅 빨려들어간 나는 세 권을 모두 읽고 깜짝 놀랐다. 이것은 무협이라는 장르를 넘어서서 허접한 한국 소설들보다 월등하게 좋은 소설이었다.

소설계에는 그런 말이 있다. "데뷔작으로 기억되는 작가는 가장 불행한 작가"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 작가는 데뷔작보다 뛰어난 글을 그 후 쓰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좌백의 대표작으로 무엇을 꼽을 것인가에는 독자들마다 의견이 달라질 것이겠으나, <대도오>의 강렬한 인상과는 별개로, 나는 <혈기린외전>과 <비적유성탄>을 지금까지 그의 대표작으로 생각하고 있다. <흑풍도하>가 이런 결정을 뒤집을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좌백은 책머리에 속편쓰기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속편이 전편보다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속편은 전편을 본 사람도 재미있어 해야 하고, 전작을 안 본 사람, 그러니까 이전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재미있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 <흑풍도하>는 최소한 현재까지는 <대도오>를 몰라도 재미있다. 일반적인 평대로 1권보다 2권이 재미있는데, 그것은 1권은 투쟁의 주체가 모호한 상태라는 점이 크다. 무협소설은 확실히 사람대 사람의 대결인지라, 적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는 통쾌한 재미가 덜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1권의 주된 내용 - 파티 모으기 - 라는 것은 정말 쓰기가 어려운 파트인데, 이렇게 능수능란하게 끌고 나가는 것은 참 신통방통하기만 하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일컫는 대여점 판형으로 나온 점도 좀 영향을 준 듯 싶다. 만일 서점용 책으로 나왔다면 지금 2권 분량이 1권 반 정도일 것이다.

좌백의 장기 중 하나는 배경을 확실히 전달하는 능력이다. 뒷 배경이 바뀌면 반드시 그 배경에 대한 백스크린이 들어가는데, 짧은 글 속에서 확실하게 머리에 들어오는 묘사를 전개한 뒤에 행동이 들어간다. 이로써 독자들은 눈앞에서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언제나 느낀 것이지만 흑풍도하에서는 이런 능력이 훨씬 더 강력해진 것으로 보인다.

등장인물들이 꽤나 많은데, 각각 그들의 스토리를 툭툭 던지듯이 내놓고 있음에도 하나같이 깊이가 느껴진다는 점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전작과 상관없이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 된다. 사실 나는 읽다가 몇 번이나 <대도오>를 다시 꺼낼까 생각했다. 하지만 기억 나지 않는 것은 기억 나지 않는대로, 처음 책을 보는 독자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싶기도 해서 그대로 2권을 읽어나갔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사건이, 점점 구체적인 사건으로 변하면서 충돌이 일어나고, 급기야 무림의 거대방파가 끼어들고, 이제 그 여파는 어디까지 퍼져나갈지 모르는 상황. 여기서 2권은 끝난다. 3권이 어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총6권 예정이다.)

흑풍도하 2 - 10점
좌백 지음/로크미디어


TTB는 걸었지만, 미안하게도 알라딘에서는 현재 품절이다. 적게 찍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역시 좌백, 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덧글

  • 벨제브브 2009/11/27 10:08 #

    개인적으로는 천마군림을 참 좋아했는데 좌백님이 중간에 멈추셔서 굉장히 아쉽습니다....신간을 내셨다니 찾아봐야 겠네요.
  • 초록불 2009/11/27 10:18 #

    천마군림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좌백님이 마무리할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천마군림을 잘 모셔두고 다음 권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 觀鷄者 2009/11/27 10:17 #

    응24에서도 일시품절이라 좌절중입니다...orz
  • 초록불 2009/11/27 10:20 #

    3권 나올 때 같이 풀릴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달 초에 3권이 나오는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 MrNoThink 2009/11/27 10:38 #

    대도오가 품절이라 아쉽습니다. 다행히 생사박은 제때에 구했지만 항상 대도오가 눈에 밟히더군요. 흑풍도하가 나오면서 대도오도 재간되는지 궁금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웃돈을 얹어 중고매물을 구해야하나 싶습니다. OTL
  • 초록불 2009/11/27 10:39 #

    대도오는 파란미디어에서 재간 계획이 있습니다.
  • 곧은나무 2009/11/27 10:40 #

    드디어 새 책이 나오는 건가요?

    예전에 아예 절필하셨다는 소문이 돌아서 절망했었는데.
  • 초록불 2009/11/27 10:46 #

    그건 헛소문입니다...^^
  • 디어환 2009/11/27 11:22 #

    흑풍도하.. 대도오를 전혀 모르고 봐도 흥미진진하고.. 알고 보면 또 다른 맛이 있는거 같습니다.

    애꾸가 이렇게 성장했군요.. 과거의 그분들이 어떻게 언급되고 나타날지 하는기대가

    다음권을 애타게 만듭니다.
  • Allenait 2009/11/27 12:19 #

    그러고 보니 좌백님 무협은 제대로 손대본적이 없군요. 이 포스팅 보면서 '괜찮겠는데?' 했는데. 품절이라니..(....)
  • 초록불 2009/11/27 18:39 #

    비장미 넘치는 작품에 취향이 있다면 <혈기린외전>, 유쾌한 무협에 흥미가 있다면 <비적유성탄>을 권해드립니다. <흑풍도하>로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케이포룬 2009/11/27 13:00 #

    오오, 혈기린과 유성탄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니.. 흥분되네요. 집에 내려가서 빨리 사보고싶네요-
  • 현골 2009/11/27 13:08 #

    비적유성탄을 정말 재미있게, 감격적으로 본 사람으로서...

    지르려고 했지만 절판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ㅜㅠㅠ

    아오 로크미디어는 뭐하나몰라요. 물량이 떨어지면 제깍제깍 책을 다시 찍어내야하지 않겠어요ㅠㅜㅠㅜㅠㅜㅠㅠ
  • 초록불 2009/11/27 18:39 #

    3권 내놓으면서 같이 내놓을 생각인 것 같습니다.
  • 별빛수정 2009/11/27 14:50 #

    좌...좌백님 신작이 나왔었군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초록불 2009/11/27 18:39 #

    계속 나오는 중인 거죠...^^
  • 五月星 2009/11/27 18:07 #

    좌백님 작품은 읽으면 못 빠져나오죠, 암요. ㅋㅋㅋ
  • 초록불 2009/11/27 18:40 #

    그렇습니다.
  • 루드라 2009/11/28 06:00 #

    대도오 다시 읽으며 기다려야겠군요. 기다리는 게 꽤 어려울 거 같습니다.
  • 언에일리언 2009/12/01 01:18 #

    제목만 봐도 대도오 속편이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기대가 됩니다. 천마군림도 얼른 완결이 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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