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는 언제부터 "의거"라 불렸을까? *..역........사..*



사람들은 흔히 5.16 이후 4.19가 의거로 "폄하"되었다고 종종 이야기 한다. 이는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일일이 비교를 한 것은 아니고 그냥 눈대중으로 살펴만 보았는데, 네이버에서 70년대의 신문에 4.19를 검색해보면 70년대 내내 4.19를 혁명으로 부르거나 의거로 부르거나 제각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것을 "의거"로 만든 것을 어떻게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

국사교과서를 살펴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것 같은데, 국정으로 국사교과서가 나온 것은 1974년.

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이걸 확인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리라 생각한다.

나한테는 1972년 만들어진 <시련과 극복>이라는 책이 있다. 하지만 책이 인쇄된 것은 1976년이다. 소소한 부분의 변화 같은 것은 기록하지 않으니 1972년 모습 그대로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아무튼 이 책은 문교부에서 발행한 국정교과서이므로,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긴 할 터인데, 이 책에는 4.19를 의거라고 쓰고 있다.

4.19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의거"로 불렸다면 그것은 10월 유신 이후가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최소한 박정희는 1971년에 쓴 <민족의 저력>에서 4.19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4.19 혁명은 이 나라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민중의 자연발생적 운동이었다. 그것은 생명을 걸고 궐기한 학생들의 순진한 정의감의 발로이며, 부정 불의에 항거하는 민족 정기의 표현이었다. 4.19는 진정 민족의 불행한 운명을 극복하고 국민의 권리가 보장되고, 국민의 민생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참된 정치를 요구하는 일대 민권운동이었다.

박정희가 60년대에 4.19를 혁명이라 부른 기록은 셀 수 없이 많다. 4월 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면 내가 본 바로는 박정희가 4.19를 의거라고 부른 자료가 없다. 그가 치졸하게 10월 유신을 변명한 <민족중흥의 길>에서는 4.19를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1960년에 초판을 내고, 1965년에 9판을 낸 남도영 교수의 <국사정설>이라는 책은, 국가고시대비용 수험서 같은 것인데, 이 책에서도 4월 혁명이라고 나온다.

박정희는 5.16을 높이기 위해 4.19를 의거로 깎아내렸다는 평가가 널리 퍼져 있는데, 과연 이것이 사실인지 궁금하다. 60년대 박정희의 글을 읽어보면 4.19를 매우 높이 평가하면서 제2공화국의 무능과 부패를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1971년에 나온 위 책의 경우도 저 단락 뒤에 바로 제2공화국 비난에 열을 내고 있다. 4.19로 정권을 어쩌다 차지한 민주당 정권이 혁명의 본 뜻을 잃어버렸고,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5.16을 했다는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런 일련의 논리는 논리 자체로는 탄탄한 셈이다.

1공화국의 독재 - 학생혁명 - 2공화국 탄생과 무능, 부패, 혼란 - 5.16 군사정변.

박정희의 논리는 이런 것이기 때문에 4.19를 폄하할 아무 이유가 없다. 나는 6.3때 학생들을 격렬하게 비난한 것을 보고 이때부터 4.19의 폄하가 일어난 것인가 했는데, 1971년에도 여전히 박정희 스스로 "혁명"이라 부르고 있는 것을 보니,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다.

따라서 아무래도 이런 평가가 일어난 것은 유신 체제 그리고 국정 교과서 체제 돌입에 의한 현상이 아닌가 의심스러운데,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공난으로 남겨 두어야 할 것 같다.


[추가]
dunkbear님 지적에 따라 헌법의 표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군정 하에서 개정된 5차 헌법의 전문입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 제제도를 확립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여,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된 헌법을 이제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이후에도 박정희는 꿋꿋하게 4.19를 혁명으로 쓰고 있는 것을 본다면, 이 헌법을 기초한 사람들이 누군지 궁금해집니다. 혹은 지금에 와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의거나 혁명이 어떤 서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즉 용어의 엄밀성이 지금보다 떨어졌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추가2]
66년 4월 19일에 행한 박정희 연설문에 4.19 의거라는 말이 나오네요. 이로 보아도 당대에 의거와 혁명에 대한 개념 정립이 미흡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덧글

  • 耿君 2009/12/09 23:53 #

    아하 그렇군요! 좀더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5.16. 이후에도 1970년대 초까지 4.19.가 '혁명'으로 불린 적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군요.
  • 초록불 2009/12/09 23:56 #

    네, 일단 박정희 이름으로 나온 책에 "혁명"이라고 쓰인 이상, 그전에 정부가 의거로 폄하했다는 이야기는 확실한 증거 제출 없이는 좀...

    일단 궁금해서 한 번 써보았습니다. 자료가 있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죠.
  • Allenait 2009/12/10 00:28 #

    저도 박정희가 4.19를 폄하했다 하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던 것도 같은데.. 이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 초록불 2009/12/10 01:26 #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인데, 근거가 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 슈타인호프 2009/12/10 01:03 #

    제가 가지고 있는 1968년판 <韓國軍事革命秘史 - 信義와 背信(김승일, 흥진사, 1968)>에서는 4.19를 "학생의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의거라는 표현 자체의 사용은 적어도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봐야겠죠.
  • 초록불 2009/12/10 01:26 #

    그렇군요.
  • dunkbear 2009/12/10 07:57 #

    별의미 없는 얘기인지 몰라도 헌법 조문의 경우 3공과 4공에서는 (5-7차 개정) "4.19 의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근데 막상 5공 (8차 개정, 전두환 정권)의 헌법 조문에는 4.19 의거 자체가 사라지고 말죠. 6공 (9차 개정) 헌법 조문에서 "4.19 민주이념"이라는 표현으로 다시 부활합니다. (근데 "민주이념"은 표현이 뭔가 좀 애매하다는 느낌도 드네요. 의거나 혁명이 아닌 민주이념이라..)

    아무튼 박정희가 4.19를 "의거"로 폄하했는지는 모르지만 전두환 시절에는 위의 사례만 봐도 4.19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나 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오래 안가봐서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지 몰라도) 4.19 기념공원 자체가 4.19 의거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기고 있어서 어차피 어느 정권에서든 4.19는 푸대접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4.19와 같은 민주화운동을 기념한다면서 도대체 박물관도 아니고 추모공원도 아닌 무슨 이상하고 애매하게 디자인된, 다시 말해서 이렇게 '아이덴티티'가 희미한 기념시설은 전세계에도 흔치 않을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ㅡ.ㅡ;;;;
  • 초록불 2009/12/10 09:13 #

    아, 그렇군요. 헌법이 있다는 생각은 깜빡...^^;;

    5차 헌법이 1962년에 군정 하에서 개정되었죠. 이때 4.19를 의거로 표현했군요. 5차 헌법을 기초한 사람들이 궁금해지네요.
  • LVP 2009/12/10 09:42 #

    거 그래도 뉴라이또의 '데모개드립'에 비하면야... 'ㅅ'
  • 초록불 2009/12/10 10:11 #

    방금 올린 포스팅이 입맛에 땡기실 듯 합니다...^^
  • 슈타인호프 2009/12/10 09:51 #

    저 역시 의거라는 단어 자체가 그렇게 비하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혁명이라고 하면 대체로 기존의 사회체계를 뒤엎는 걸 의미하는데, 4.19를 의거라고 부른 사람들은 그게 기존 체제의 오류를 시정하기는 했을지언정 완전히 뿌리부터 뒤엎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혁명이라고 부르기는 좀 그렇다고 여겼던 게 아닐까요?
  • 초록불 2009/12/10 10:10 #

    혁명에 대한 정의 문제는 사실 학자들의 것이므로, 정치가였던 박정희와는 생각이 다를 수 있을 겁니다.

    저 역시 기존의 일반적인 "혁명"의 정의에 4.19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이런 문제들, 4.19, 유월대항쟁, 필리핀 2월 혁명등은 기존 혁명 이론과 맞지 않지만 체제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는 포스팅을 한 적도 있습니다.
  • 초록불 2009/12/10 10:21 #

    그리고 말씀한대로, 의거라고 해서 폄하한다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거와 혁명에 서열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 조와 종에 어떤 서열을 넣고 싶어했던 것처럼 세월이 지나면서 현재에 와서는 그런 식의 관념이 생긴 것처럼 보이긴 하네요. 의식의 문제는 참 다루기 힘든 부분인 것 같습니다.
  • 이준님 2009/12/10 10:31 #

    80년대 교과서에서는 버젓히 1950년대 헝가리 반소 시위를 "헝가리 의거"라고 표시했지요. 도덕책에 "신의주 학생 의거"(수십의 학생들이 북조선의 탱크부대에 유린되는 장면이 나오는)와 함께 콤비로 나왔습니다.

    의외로 박정희가 한국의 일부 사건에 대해서 혁명을 잘 붙이죠. 동학"란"이 공식 명칭인 사건이 동학혁명이 된것도 박정희 연간입니다.

    PS: 의거는 폄하..논쟁은 아마 유모씨의 책에서 첨 대중적으로 소개되었을겁니다.
  • 초록불 2009/12/10 10:33 #

    오호, 그런가요. 유모씨는 참...
  • 초록불 2009/12/10 10:34 #

    동학을 "亂"이라고 써야 한다고 게거품을 문 인간들이 안호상 등 유사역사가들이죠...^^
  • 다복솔군 2009/12/10 13:35 #

    그나마 그 동네 중에서는 정통파 축에 드는 월간 J같은 곳에서는 "4.19 혁명"의 완결이 5.16 쿠테타(그쪽 표현으로는 군사정변)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더군요. 5.16에도 군사혁명을 붙이던 자들인지라;; =_=

    여하간 전 그들이 뭐라고 부르든 상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리어 4.19에 5.16을 세트로 묶는 의식이 더 무서운 것 같아요.
  • 초록불 2009/12/10 13:42 #

    박정희가 계속 주장하던 것이 그런 것입니다. 4.19를 위기에서 건진 것이 5.16이라는 논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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